76. 가설극장의 추억
이영백
1964년 여름을 맞이하였다. 불국 새 시장(市場) 옮긴 2주년 홍보차원에 일주일간 가설극장이 들어왔다. 낮 시간에는 시장이지만 밤이면 말뚝 박고, 긴 대나무 활대를 세워 광목으로 가림 막 친다. 영사기, 대형 스크린만 설치하면 뚝딱 가설극장이 되었다. 가림 막 둘레에 못 들어오게 띄엄띄엄 서서 경비원이 지킨다.
오후에 삼발이트럭 빌려다가 확성기를 설치하여 불국사 가근방 동네마다 다니며 홍보하였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시민 여러분! 이번에 어렵게 구한 필름‘성난 능금’으로 불국공설시장에서 일곱 시부터 영화를 상영합니다. 입장객에게는 복권을 드립니다. 금반지, 송아지 한 마리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옵니다. 많이들 오셔서 관람하시고 상금도 타기기 바랍니다.”신파극조로 홍보하러 다닌다.
나는 돈이 없어 가설극장 영화구경을 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마침 좋은 기회가 되었다. 왕고모 외손녀가 나보다 세 살 많은 처자였는데 저네 외가보다 넓은 우리 집이 좋다고 마냥 놀러왔다. 세 살이나 많아도 나보고 꼭 “외아제”라고 불러 주었다. 저녁 먹고 가설극장 영화 보러 가자고 졸라대었다.
“외아제! 영화 보러 같이 가요. 난 촌에 살아서 영화를 아직도 못 봤소.”
자꾸 졸라대니까 엄마가 돈을 만들어 주면서 “함께 조심해서 갔다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조금 걱정되었다. 항렬만 높았지 처녀를 데리고 간다는 것에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사하촌 연애박사 떠꺼머리총각들이 우글거렸다.
시장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입장료는 1인 50원, 입장권에 넘버링으로 시퍼런 색으로 날짜와 번호를 찍어두었다. 단, 복권은 일주일 후 영화 마지막 상영 후 포장 걷을 때 시상한다. 계속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 그만큼 상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였다. 그 시절에 참 위대한 상술이다.
“성난 능금”에 풋풋한 엄앵란이 선생님으로 나오고, 형사로 김희갑이 출연하였다. 대형스크린으로 영화 본다는 것은 그 시절 대단한 영광이요, 재미났다.
영화가 상영되고 스토리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곳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선 채로 관람하였다. 필름이 끊어져서 천지가 캄캄하였다. 사하촌 관광지 총각들이 시골 처녀들 영화 구경하러 온 것 알고 무엇을 건드렸는지 죽는다고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리었다.
필름이 이어져서 다시 상영되었다. 언제 그런 아비규환이 있었든가하듯 조용히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필름이 끊어진 횟수가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아비규환이다. 그 왕고모집 생질녀는 이를 재미 내었는지 밤마다 영화구경가자고 졸라댔다. 대략 남감 하였고, 무척 불안하였다.
가설극장은 처녀ㆍ총각들의 연애장소인가? 그래도 그 시절 그 추억이 그립다.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