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신자들이 4대 박해를 피해서 숨어들어 살아가던 곳을 교우촌이라 한다.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 발각되면 목숨을 내어놓아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낮에는 옹기를 구워서 생계를 이었으며
밤과 새벽에 함께 모여 천주를 모시고 초대교회 공동체처럼 살아갔던 신앙인들이다.
그러다 행여 밀고자가 생기면 공동체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 모진 고문으로 죽어갔다.
교우촌 공동체는 늘 하느님을 부르며 살았다.
한국에서 교우촌이 만들어진 곳은 최후의 퇴로가 확보된 첩첩산중에 있다.
전주교구 천호성지는 외지 중에 오지로서 하늘만 빠끔히 보이는 산골이다.
천호(天呼)마을 교우촌 신자들은 천주님을 부르며 살았다고 하여 천호성지로 개발되었다.
산세는 호리병을 닮았으며 외부로 전혀 노출되지 않는 곳이다.
주변에 일곱 개 공소가 있었을 정도로 안전한 장소였던 거다.
천호성지에는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분의 성인 중에서
이명서 베드로, 손선지 베드로,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한재권 요셉 과 김영오 아우구스티노의 유해를 옮겨와 묘를 썼다.
네 분 성인 묘 바로 아랫줄에 10명의 무명 순교자 묘가 있다.
이름도 남김없이 목숨이 날아간 분들이다.
어쩌면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했던 노비출신이 아닐까.
천주교회는 양반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시작되었지만 평민과 천민들이 많이 받아 들였다.
천주교에서는 반상의 구별이 없으며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처음으로 사람으로 대우 받아본 거다.
배움은 없을지라도 하느님에 대한 신앙심은 매우 깊었을 거다.
하느님을 만나 죽어도 여한이 없기에 목숨을 내어놓았던 거다.
나만의 추측인지도 모르겠다.
무명 순교자들은 대부분 신분이 낮은 교우들이었을 거다.
천주를 받아들이고 며칠을 살더라도 사람답게 살기를 원했던 그 분들은 평생의 한을 풀었을 거다.
사형장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아도 천주를 연호하며 순교하였을 거다.
무명 순교자의 묘가 있기에 천호성지는 더욱 이름에 걸맞은 ‘하느님을 부르는 곳’ 천호성지로 거듭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