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디나 섬의 용龍
언제 보아도 놀라운 것은 동물의 세계이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기원된 갈라파고스 섬과 그 주위에 있는 페르난디나 군도의 여러 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경이로움을 넘어 전율을 느낀다.
얼마 전 내셔날 지오그래픽방송을 통해 본 ‘페르난디나 섬의 용들’이라는 프로그램은 이구아나를 중심으로 섬에서 살아가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 군도에 존재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글자그대로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한다.
어떻게 보면 페르난디나 군도는 고립된 낙원이다. 육지와 바다, 그리고 공중에는 수많은 적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적들 앞에 모든 개체는 종족유지라는 절대적인 본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매일을 쫓고 쫓긴다.
늘 그렇지만 우리 인간세상처럼 힘세고 덩치 큰 생물들은 비교적 이러한 위협에서 조금은 자유롭다. 이 섬에서 이러한 입장에 있는 동물은 아마 코끼리거북이 일 것이다. 이름처럼 이놈은 코끼리 같은 거북이 이다. 덩치는 산만하여 어슬렁거리며 다니는데 발정기를 맞이하면 수컷은 덩치가 작은 암컷의 등에 올라타서 짝짓기를 한다. 그런데 교미 중에 지르는 그 절정의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조그만 섬을 크게 울리며 ‘컹 컹’하는 공명의 소리가 참으로 멀리까지 들린다.
가끔씩 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모른 척 수백 마리가 무리지어 살고 있는 동물들이 있으니 바로 이 섬의 실제적인 주인들인 이구아나들이다. 이구아나는 생김새가 도마뱀같이 생겼는데도 다큐멘터리의 제목에는 dragon이라고 표현하였다. 잘 모르겠으나 아마 도마뱀과 상상속의 용을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구아나[iguana/Iguanidae]는 뱀목 이구아나과에 속하는 도마뱀의 총칭이다.
이구아나를 애완동물로 키우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이구아나는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정말 그 생김새가 흉측하고 고약하다. 그런데 이 이구아나의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 인간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구아나는 살아가는 터전을 중심으로 육지 이구아나와 바다 이구아나로 나뉜다.
바다 이구아나는 사람보다 바다를 더 무서워하는 육지 이구아나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들의 주요 무대는 바다이다. 그러나 물속에 들어가면 체온이 뚝 떨어지기 때문에 물속에 오래 있지 못하고 곧바로 따뜻한 바위 위로 올라가 일광욕을 즐기면서 체온을 높인다.
육지 이구아나는 주로 뭍에서 사는데 산란기가 되면 해발 1500미터나 되는 정상의 분화구 꼭대기를 향해 오른다. 분화구는 화산의 지열이 남아있어 부화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길은 지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기어 올라가야 하는 도마뱀으로서는 10여일이나 걸리는 천신만고의 긴 여정이다. 그리고 위험한 길이다.
다행히 수많은 포획자들을 피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였는데 대부분의 경우 먼저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동족들 때문에 자리가 없다. 그래서 새로운 자리를 물색하기 위해 이번에는 봉우리아래에 있는 칼데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그 길이가 장난이 아니다. 약 1킬로미터가 되는 가파른 경사길인데 얼마나 가파른지 동물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수천 톤의 바위가 굴러떨어진다. 그래도 도마뱀들은 종족유지라는 무서운 본능 하에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 내려간다. 다행히 우박처럼 쏟아지는 바위와 흙을 피해 무사히 아래에 도달하니 땅속의 온도가 30도 정도로 따뜻하여 알을 품기에 정말 좋다. 그러나 이곳도 이미 선점한 동족들로 공간이 없다. 하여튼 치열한 경쟁을 통해 겨우 자리를 잡은 도마뱀들은 장장 100일간의 잉태기간에 들어간다.
드디어 100일이 지나고 분화구바닥의 곳곳에서는 수많은 새끼들이 알에서 기어 나온다. 갓 태어난 새끼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이제 지체 없이 태어난 곳을 출발하여 산꼭대기를 올라야 하고, 오른 후에는 또다시 그들의 근원적인 고향인 바다를 향해 내려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엄청난 고통과 죽음의 위협이 도사린 처절한 길임을 또한 알고 있다. 하늘에는 독수리들이 기다리고 있으며 땅에는 뱀들이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또아리를 치고 있다.
이러한 적들에 대항해 이구아나새끼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단 하나이다. 수많은 새끼들이 한꺼번에 출발하여 자기 자신에게 가해지는 죽음의 확률을 최대한 적게 하는 것이다.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땅위에서 기다리는 독수리들은 바닥의 뜨거운 50도의 지열이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계속해서 발을 바꾸어 가면서 새끼발을 들고 이구아나 새끼들이 출발하기를 호시탐탐 기다린다. 마침내 사생결단의 판단을 내려 수많은 새끼들이 죽어라고 새까맣게 달리는 장관이 연출된다. 그 위를 독수리들은 날아가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정없이 낚아챈 후 뾰족한 부리로 목 부근을 찢어 죽인다.
뱀들도 이 잔치에서 빠질 수 없다. 마침내 표적이 잡혔다. 페르난디나 섬의 뱀들은 상대를 독으로 죽이지 않고 칭칭 감아서 질식시켜 죽인다. 그런 연후에는 자기 턱을 일부로 탈골하여 입을 크게 만든 후 새끼 이구아나를 거뜬히 삼킨다.
독수리와 뱀들의 협공 하에 필사적으로 바다를 향해 질주한 도마뱀들은 이제는 살았다 하는 기분으로 검푸른 파도를 향해 힘차게 자신의 몸을 던진다.
그렇다! 바다는 이들의 태고와 같은 고향인 것이다. 그러나 고향에 다다른 기쁨도 잠시뿐이다. 바다에도 수많은 적들로 차고 넘친다. 수많은 바다고기에게 이제 갓 태어난 이구아나는 더없이 좋은 말랑말랑한 육질 좋은 먹잇감이다. 그러나 도마뱀들은 만족한다. 죽더라도 고향같이 포근한 바다에서 죽는 것이 더 좋고 자신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제 살아남은 도마뱀들은 몇 년 후에는 늠름하게 한 마리 어엿한 이구아나로 장성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암놈을 발견하고는 사랑의 짝짓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는 부모가 그러하였듯이 자기들만의 유전인자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위험이 가득한 화산을 오를 것이다.
오늘도 페르난디나 섬의 많은 용들은 종족유지라는 지엄한 본능에 충실하기 위해 육지와 바다, 그리고 공중에서 노리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 사이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하루를 연다.
첫댓글 ㅎㅎ 아마 그래서 제가 이구아나를 좋아하나봐요. 치열한 생존경쟁에 있는 같은 처지라서...
크리스티나 김 교수님은 이제 페르난디나 섬의 이구아나가 아니라 충분히 힘과 권위를 갖춘 코모도섬의 왕도마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