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트라우마와 치유’, 정혜신 선생님과 이명수 선생님의 특강을 들었다. 두 분이 하고 있는 세월호 치유 활동은 진상규명과 트라우마 치료라는 투 트랙으로 이루어지고,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거기에 대하여 누군가가 진상규명을 하면 더 고통을 주어서 트라우마가 가중되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어찌 보면 일베 수준의 질문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진상규명의 당위성을 설명할 기회를 주었다. 진상규명이 되지 않으면 치료를 시작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진상 규명을 하지 않으면 피해자들을 치료 내부로 끌어들이지 못한다. 죽음이 이해되지 않고 의혹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기 때문에 치료를 할 수 없다. 진상이 규명되지 않으면 아픈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 마지막 질문하신 분의 발언은 살짝 욕먹을 말이었지만 오늘 강연의 핵심을 이끌어낸 것 같다.
두 분 선생님이 활동하는데 물적인 지원도 더 필요 없고, 무엇보다 공감이 중요하고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내가 세월호 희생자의 유가족이 되어봐야 안다. 자식이나 형제가 죽었는데 내가 멀쩡할 수 있겠는가? 언론은 종종 유가족의 거친 언행을 부각시킬 때가 있었다. 제 3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목적이었나? 그렇게 해서 언론이 지켜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이런 시국에서 내가 희생자 가족이라면 미쳤을 것 같다. 아니면 죽지 않았을까? 자식이 바닷물에 갇혀서 죽었는데 멀쩡할 수 있겠는가? 거기다 가끔씩 니들이 잘못한다고 뒤통수를 때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잊지 못하는데 잊으라고 강요까지 하는데, 어찌 미치지 않겠는가? 두 시간 강연이 무겁게 지나갔다. 강연을 들으면서 슬픈 감정이 샘솟다가 분노가 치솟았다. 두 가지 감정이 반복되어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도저히 감정을 한가로이 발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유가족들의 시계는 2014년 4월 16일 이후 멈췄다고 했다. 공감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의 죽음을 생떼 같은 죽음이라고 부른다. 죽었는데도 죽지 못한 죽음이다. 억울함을 풀지 못하면 시계는 영영 멈출 것이다. 한편 2014년 4월 17일, 세월호 다음 날이다. 삼성은 백혈병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때 삼성은 신을 본 것이다. 나만 본 줄 알았는데 꽤 여럿이 신을 봤었다. 나는 그때 정말 신을 보았었다. 꼭 그것을 글로 쓰고 싶었다. 그런데 아직 쓰지 못하고 있다. 몇년 후쯤 쓸 수 있을까? ~ 신이 없다고 믿는 나이지만 세월호 때 나는 신을 보았다. 내 세월호 시계도 그 글을 쓸 때까지 멈출 것 같다.
마지막 얘기가 가슴을 더 울렸다. 세월호 희생자가 304명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만 1명이 더 있다고 했다. 자살한 교감 선생님이다. 안산 단원고의 바로 옆 지역에서 내가 고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했었고, 사고 나기 2년 전 세월호의 쌍둥이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인솔했던 경험이 있다. 아마 내가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으면 세월호 무렵에도 배를 탔을 것이다. 교감 선생님의 죽음은 남다르다. 2016년 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