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면이 넉넉하면~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 넓고 크게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이란 비우고 싶다고 하여 호락호락 비워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마치 배설물에 파리가 들끓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에도 끊임없는 생각의 망상들이 달라붙습니다. 그렇기에 하늘을 가리고 눈과 귀를 가려서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관념작용인 것입니다.
마음이 가장 큰 도적이라 하였습니다. 이 마음이란 놈은 어떻게든 스스로를 부풀리고 확대시켜서 뻥튀기 허상을 그려내려고 발버둥 치지요. 이처럼 어떻게든 드러내어 뽐내고 싶어하는 마음이란 도적을 순화시키지 못한다면 참나는 깊숙히 갖히고 마음인 이 도적이 내 삶을 거짓의 환상속에 집착하게 하며 스스로를 관념의 감옥에 가둬버립니다.
생각이 나 인가요? 감정이 나 입니까? 우리가 생각하고 마음 먹는 이 모든 작용들은 내 영혼이 잠시 빌려 입은 가면이며 외투에 불과한 거짓 환상인 것입니다.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마음에 끌려다니면 외면으로 확장하려는 거짓 나의 허장성세(虛張聲勢)를 위장하도록 방치하는 도적의 하수인으로 전락합니다. 내면이 부족한 사람은 부족한 내면을 채우기 위해 부질없는 외연확장을 몹시도 서두룹니다.
하지만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하였듯이 잠시만 한숨을 돌리며 내면을 돌아보십시요. 나에게 무엇이 부족한가요? 뭔가를 채우려고 서두르는 부족한 내면의 가난함을 성찰해 보면 어떨까 하여 아래 글을 가져왔습니다. 참고해 주세요.
♡ 성문과정(聲聞過情)
* 소동파(蘇東坡)로 알려진 소식(蘇軾; 1037~1101) 선생의 시(詩)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士方在田里, 自比渭與莘.
사방 재 전리 자비위 여신
出詩乃大謬, 芻狗難重陳
출시 내 대류 추구난 중진
「선비가 시골에 있을 때에는 강태공(姜太公)과 이윤(伊尹; BC1648~BC1549)에다 저를 비기지~
시험삼아 써보면 엉망이어서, 추구를 다시 쓰기 어려움 같네!」
추구는 짚으로 만든 개인데 예전에 중국에서 제사 때마다 만들어 쓰고는 태웠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재야에 있을 때는 하도 고결하고 식견이 높을 듯 보여 맡기면 안될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막상 써보면 1회용도 못 되는 알량한 그릇이었다는 말입니다. 소식(蘇軾)이 '증전도인(贈錢道人)' 이란 시(詩)에서 또 말했습니다.
書生苦信書, 世事仍臆度.
서생 고 신서 세사잉 억도
不量力所負, 輕出千勻諾.
불량 역 소부 경출 천균낙
「서생들 몹시도 책만 믿고서, 세상 일을 억탁으로 가늠한다네.
견딜만한 역량도 못 헤아리고, 무거운 약속조차 가볍게 하지.」
當時一快意, 事過有餘작(부끄러울)
당시일 쾌의 사과 유여작
不知幾州鐵, 鑄此一大錯.
부지 기 주철 주차일 대착
「그때야 뜻에 마냥 통쾌했어도, 일 지나면 후회가 남음이 있네.
몇 고을의 무쇠를 모두 모아야, 이 큰 쇠줄 만들지 모르겠구나!」
입으로 하는 고담준론이야 누구나 다 합니다. 하지만 세상 일은 책에 나오는 대로 되는 법이 없을 따름입니다. 큰 소리 뻥뻥 쳐 놓고 뒷감당 못해 민망한 꼴은 예나 지금이나 세상 정치 판에서 날마다 보고 있습니다. 한유(韓愈)가 '지명잠(知名箴)' 에서 말했습니다.
內不足者, 急於人知.
내부 족자 급어 인지
沛然有餘, 厥聞四馳.
패연 유여 궐문 사치
「내면이 부족한 사람은 남이 알아주는 것을 조급해 한다.
넉넉하게 남음이 있으면 그 소문이 저절로 퍼져 나간다」
저를 알아달라고 설쳐대는 사람은 틀림없이 내면이 없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소문이 실정보다 지나침(聲聞過情)을 군자는 부끄러워한다.''
고 하였답니다. 이 말을 받아 홍석주(洪奭周)는 그의 '학강산필(鶴岡散筆)' 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군자가 본래 남이 알아주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지가 없는데도 남이 알아주는 것은 싫어한다. 실제보다 넘치는 이름은 사람을 해침이 창보다 날카롭다. 실지가 없으면서 남들이 알아주느니, 차라리 실지가 있으면서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사람들은 세상에 알려지기를 구하느라 정신이 없다. 알아줌을 얻지 못해 근심하고 미워하며 성내는 자는 반드시 실지가 부족한 사람이다.''
우리가 소통을 하는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요? 소통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가슴속에 쌓인 것을 풀어내며 소통하는 것도 건강을 위해서 좋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보 교환을 통하여 배우는 것이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자기가 올린 글에 올려지는 댓글 만을 바라보며 댓글 속에서 삶의 위안을 찾는 사람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여 내면이 부족한 분이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얼마전 조선일보에 정민의 교수(敎授)가 세설신어(世說新語)로 실었던 내용을 옮겨와 봤습니다. 언제나 신의 가호와 은총이 가득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朴成眞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