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6.17(일)
산행정리:04:15내대리-05:40북해도교-06:40세석교-07:10세석산장-08:00출발-08:30음양수-09:25석문-10:30한벗샘-11:40삼신봉-12:10갓거리재-14:00내대리-16:00덕산출발
오랫만에 거림골로 산행 들머리를 잡았다. 이번 산행엔 1년 만에 다시 만나 근무하게 된 권 부장님과 이, 신 선배와 4명의 일행은 토요일 밤 송내 남부역에서 만나 지리산으로 떠난다. 이번에 수고할 애마는 새로 구매한 이 선배의 신차 뉴스포티지. 가볍고 날렵한 뉴스포티지는 발 빠른 치타처럼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대전을 지나 금산을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조그만 사고가 발생한다. 2차선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고라니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속도를 줄였으나 충돌을 하는데 안타깝게도 고라니의 생사는 확인할 수 없다. 덕유산 휴게소에서 야식을 먹으며 액땜을 했다고 위로하나 왠지 마음이 무겁다. 혹 오늘 산행에 있어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우리의 애마는 단성 I.C를 나와 덕산을 향하는데 오랜만에 온 탓으로 도로가 조금 낯설다. 특히 외공리와 곡점을 지나 거림으로 들어가는 길이 헷갈렸으나 내대리로 들어선다. 거림골의 들머리인 내대리는 조용한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 지리산 주능 세석평전으로 오르는 가장 짧은 루트 거림골.
거림골의 거림(巨林)이란 말 그대로 커다란 나무들이 빽빽하고 울창하게 들어차서 붙여진 이름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거림골은 철쭉이 피는 5월이나 단풍이 지는 10월에 사람들이 찾았으나 최근에는 커다란 주차장과 새로 지은 민박집과 음식점이 생겨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모양이다. 도로 이면에는 밤을 지새운 자가용과 관광차들이 즐비하다. 당일 산행도 가능하며 아마도 뱀사골 다음으로 쉬운 길이 아닐까 한다.
내대리에는 영신봉과 촛대봉 사이에서 발원하는 거림골과 촛대봉과 연하봉, 일출봉 사이에서 발원하는 도장골이 있다. 지금도 덕산에서 이곳까지는 차로 달려와도 한참을 와야 한다. 그러니 한국전쟁 때 경찰초소와 군부대가 있는 덕산에서 곡점 삼거리를 지나 거림골과 도장골의 들머리인 내대리는 중산리의 순두류와 망바위 쪽과 마찬가지로 군경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빨치산의 천혜의 요새였을 것이다. 거림골에는 특히 빨치산의 비트가 많았는데 남부능선에 오르면 대성골, 단천골, 선유동골, 청학동, 백무동쪽으로 도주할 계곡도 많았으며, 도장골은 깊고 은밀한 곳이 많아 환자트가 여러 곳에 있다고 빨치산 이태의 수기 ‘남부군’ 에서 말하고 있다.
4명의 산꾼은 헤드 랜턴을 켜고 곧 숲길로 들어선다. 어둠이 짙고 캄캄하였지만 고맙게도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만들어 놓은 전자식 안내판을 보고 들머리를 쉽게 잡는다. 아마 이게 없었다면 잠시 헤맬 것은 자명한 일이다. 마을을 지나면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좌측의 계곡을 끼고 숲길을 연다. 거림에서 세석산장까지는 3시간이면 무난할 듯싶으나 일행이 여럿이 있어 30여 분을 더 예상한다. 날은 점차 밝아오면서 좌측 남부 능선의 실루엣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약간의 가스가 대기 중에 방출되고 이따금 빗방울이 떨어져 오늘의 산행이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 이렇다 할 된비알을 만나지도 않았건만 상의가 땀에 젖어 북해도교에서 잠시 간식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북해도라는 지명은 지리산과 어울리지 않지만 거림 마을에서 이곳까지는 겨울에도 날씨가 온순하고 따뜻하나 여기서부터 세석까지는 북풍한설 몰아치며 추위가 느껴지고 눈들이 많이 쌓여있어 그렇게 부른다. 잠시 쉬고 있으려니 소속 불명의 진돗개 한 마리가 다가와 빵을 내미니 냄새만 맡고 사라진다. 아마도 거림 마을의 견공인 듯싶다. 거림골의 코스는 순탄하고 평범하기에 산행은 순조롭게 이어진다. 세석교를 지나자 등로는 완만해진다. 세석대피소가 가까워졌다는 얘기다. 대성골 들머리와 남부 능선 갈림길을 지나자 세석대피소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이 내를 만들어 흐르고 있다. 동료들을 천천히 걷게하고 빠른 걸음으로 치고 올라 아침상을 준비한다.
세석대피소는 막 아침을 지어 먹고 떠나려는 산님들로 붐빈다. 바람이 불어와 땀이 식고 한기를 느껴 바람막이 재킷을 걸쳐 입는다. 코펠에 찌갯거리를 넣고 버너를 부지런히 펌프질한다. 동료들이 도착할 즈음엔 하얀 증기를 뽀얗게 내 뿜고 맛난 냄새를 풍기며 식욕을 돋울 것이다. 당일 산행을 하면서 아침 식사를 이렇게 제대로 하는 것은 오랜만이다.
운무가 끼고 비가 날려 아름다운 세석고원의 풍광을 감상하지 못해 아쉽다. 우리의 2차 목적지 삼신봉에서나 조망이 터져 준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세석산장-삼신봉 구간은 삼신봉에서 세석으로 오르면서 풍광을 즐기는 것이 더 멋지다. 날씨가 좋은 날. 삼신봉에서 지리산 주능을 바라보면 새처럼 훨훨 날아서 가고픈 욕망에 가슴이 방망이질한다. 거림으로 가는 길을 좌측으로 흘려버리고 걷다 보니 어느새 음양수에 도착한다. 목을 적신다. 좌측으로 낙남정맥 영신봉 길이 열려있다.
이제부터는 이 능선 길을 따라 걸으며 뒤를 돌아보면 주 능선의 장쾌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남부 능선도 황금능선과 같이 산죽으로 유명하며 몇몇 지정된 곳이 아니면 지리산의 풍광을 맛보기는 어렵다. 하산 길에 그런 곳을 찾아 쉬며 틈틈이 조망하는 것이 좋다. 커다란 2개의 바위 틈 석문을 지나 산죽이 유난히 많은 한벗샘에서 물을 보충한다. 한벗샘에는 야영터가 있고 이곳을 내려서면 거림골 본류와 만나게 된다. 길없이 너덜이 이어지는데 자빠진골이다. 수곡재를 지나 우리의 목표인 삼신봉을 향한다. 삼신봉은 아직도 멀게 느껴진다. 이름 없는 암봉에 올라 거림 마을과 구곡산을 바라본다. 그 건너 약간의 좌측엔 웅석봉 능선이 구름 속에 갇혀있다. 가까이 가면 우리를 희롱하며 멀어져 갔던 삼신봉에 올랐다.
1,228m의 삼신봉에 오르니 농후한 가스가 차올라 가까운 주변 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5월에 삼신봉에 올랐을 때는 물감을 뿌려놓은 파란 하늘에 성벽을 두르듯 주능선 100리가 펼쳐졌었다. 삼신봉 정상에는 여러 안내 산악회에서 산꾼들을 몰고 와 입추의 여지가 없었는데 삼신봉에 이렇게 많은 인파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이들은 대부분 청학동에서 올라와 쌍계사로 하산이 예정되어 있다.
우리는 차량 회수를 위하여 외삼신봉과 청학동 갈림길 갓거리재에서 내대리를 치고 내려가기로 한다. 삼신봉에서 바라본 내대리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외삼신봉을 앞둔 삼거리에서 ‘탐방로 아님’ 안내판을 넘어 조릿대 숲속으로 들어선다. 갓거리골은 산님들의 흔적이 거의 없이 원시 상태를 유지하며 그럭저럭 길의 흔적이 있었으나 곧 사라지고 협곡이 점차 넓어지면서 걷기 쉬운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너덜을 내려선다. 나와 달리 동료들은 이러한 등로에 적응되지 않아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계곡 곳곳에는 고사목들과 커다란 바위들이 가로막고 풍도목과 칡넝쿨이 엉켜있어 우회하거나 자세를 낮추어 기었다. 출입이 통제되는 지리산행의 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이러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기 위하여 지리산 마니아들은 비탐방 등산로를 찾는다.
내림 길에는 색 바랜 표지기가 간혹 있어 반갑다. 안전산행을 고려하며 느긋하게 하산하는데 2시간이 걸렸다. 거림골과 도장골에서 합류한 계류가 포말을 만들며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덕산마을을 향한다. 계곡을 건너 내대리 민박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산행의 피로를 씻는다. 덕산에 나가 목욕도 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귀경길에 오른다. 열어젖힌 창으로 빨려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