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놈- 석전
(중략) 딱 한 번, 상놈의 눈에서 생기가 도는 것을 보았던 게 생각난다. 마치 그 옛날 용맹했던 시절 위험을 무릅쓰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그것은 돌싸움(석전, 편전, 편쌈 - 고구려 때부터 전래한 우리의 전통 돌싸움. 정월 대보름 무렵 대규모로 행하여지며 왕까지 나와서 구경할 정도였다. 일제시대 때 금지되어 사라졌다.)에서였다. 그 고장에서 내로라하는 수백 명의 명사들이 편을 가른 다음, 한두 근쯤 되는 돌멩이로 무장한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공중에 돌멩이가 미사일처럼 수없이 날아가고 있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자재로 돌을 던지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투석기가 자동으로 발사하는 것 같았다. 위험 속에서 모두들 눈이 살아 있었고, 돌격하거나 기어서 도망가는 모양이 마치 야생 짐승이 떼 지어 달려가는 것 같았다. 돌싸움은 경이로웠다. 진짜로, 신화 속 거인들의 작은 전쟁 같았다. 싸움은 급속도로 커졌고 맹렬했다. 먼지와 땀에 휩싸여 양편은 점점 가까워졌다. 그렇게 너무나 공포스럽도록 공중에 바위를 던져댔다.
그리고 찾아온 갑작스런 중단. 마치 골이라도 넣은 듯 터지는 함성. 상대편의 최고 사수가 정확히 강타당했고 즉사했다. 곧 그의 시신이 싸움터에서 치워진다. 그리고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저녁이 오기 전에 다른 편에서도 한 사람이 쓰러졌다. 그렇게 결과는 동점이었다.
이것이 상놈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세상 양같이 순하다는 그 어떤 족속보다도 점잖았다. 오랜 전통인 돌싸움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그들은 단연 평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비록 개인적으로 싸움이라도 붙을라치면 광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긴 했지만 말이다.
길거리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은 바로 싸움이었다. 시중드는 몸종을 데리고 다니면서 흙이 몸에 닿지도 않는 양반이 싸우는 경우는 당연히 없기 때문에 싸우는 사람은 언제나 상놈이었다. 처음엔 말싸움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단계를 높여가는데, 각 단계는 얼마나 언성을 높이고 있는지, 또 얼마나 말을 빨리 뱉어내고 있는지를 보면 판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펼쳐지는 광기의 최고 단계. 천지신명과 구경꾼들에게 하는 자신을 편들어달라는 호소와 상대에게 퍼부어대는 쌍욕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외국인 누구라도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 한 사람이 속에 품을 수 있는 화가 저렇게까지 클 수 있다는 사실에 겁에 질렸다. 그리고 사태는 갑작스레 끝이 난다. 그러면 어느새 골목 한쪽 끝에 각자 쭈그려 앉아 마치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 형제인 양 평화롭게 담배를 빨아대던 싸움 당사자들.
나는 가끔씩 이런 의문이 들었다. 과연 조선의 상놈들은 순전히 겁쟁이인걸까? 아니면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곶감 이래로 이 세상 가장 용맹한 사람인 걸까? 양쪽 모두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충분하다. 처음으로 청일전쟁 소식이 알려졌을 때, 우리는 그들의 흔들리는 뒷모습을 보았고, 산을 오르던 그들의 걸음걸이에서 상당히 동요되고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또, 우리는 보았다. 침략자가 휘두르는 회초리 아래에서 마치 칼로 베인 듯 살이 찢기던 그때, 애원하는 눈을 쳐들고 “Aigo!" 사람 잡네! 나 잡네!”를 계속 외치며 무너져가던 이들을.(후략)
제임스 S 게일 지음, 최재형 옮김,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1888~1897』(성남: 책비, 2019), pp. 70~73.
첫댓글 석전? 돌 던지기 싸움이지요. 저 돌 싸움 때문에 시골에서 눈을 다치거나 몸에 상처를 입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던진 돌에 눈이 다쳐도 실명만 안 하면 용서해주고 과자 한 봉지로 위로해주던 시골 인심도 보았습니다.
맞아요. 시골에는 조금 과격한 놀이가 도시보다 있었고, 대충 위험을 무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노베 그렇군요. 사실 위험한 놀이인데요.
게일이 한국을 많이 사랑한 것 같습니다. 중국은 대국이자 조공 받던 나라로서 한국을 무시하고, 일본 남자들은 한국 남자들이 샌님이고 싸움을 못한다고 무시하는 시각이 있는데요. 게일 선교사는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을 용감하게 평가해주니 신선한 시각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인간으로서 한국을 사랑한 분이 게일 선교사 같습니다 😂
@천이다 공감합니다.
땅 덩이가 크면 일단 무시하지 못하고 작으면 얕잡아 보게 되죠.
그러나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큰 나라도 헛점 투성이가 많고 작은 나라도 강점이 있어 무시 못할 부분도 있습니다.
석전
석전 놀이는 들판에서 한 마을 혹은 한 지방이 동편과 서편으로 나누어 수백보의 거리를 두고서 돌팔매질을 하는 것으로 패하여 달아나는 편이 진다. 처음에는 먼 곳에서 던지다가 놀이가 점차 고조되면 서로 가까이서 돌을 던진다.
석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수서 隋書≫ 고구려전에 보이는바, “고구려는 매년 정초에 패수(浿水:지금의 대동강) 위에 모여 좌우 두 편으로 나누고 서로 돌을 던지며 싸운다. 이 때 국왕은 요여(腰轝)를 타고 와서 구경한다.”고 하여 고구려에서는 석전이 하나의 국가적 연중행사로서 국왕의 참석하에 행하여졌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링크 참조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28491
돌팔매질 싸움에 저런 역사성이 있군요. 알겠습니다.
@노베 네, 그렇네요. 공감합니다.
돌팔매놀이
석전, 石戰, 석전놀이, 척석전, 擲石戰
흔히 석전·척석전이라고도 부른다. 정월 대보름을 위시한 명절의 세시풍속 놀이로 널리 행해졌으나 원래는 군사훈련적 성격도 지닌다. 과격한 싸움이며 우리 민속놀이 중에서 민중들의 힘찬 기세를 잘 드러내주는 전투적인 놀이이다.
이하 Daum 백과사전 링크 참조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5d1060a
척석은 돌을 투척한다는 의미로 쓰인 것인데, 더 정확한 용어 같습니다. ( ☆∀☆)
@천이다 한자로 보면 그것이 의미상 가장 정확한 것 같습니다.
게일 선교사는 막연하게 외국에 선교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를 구체적으로 알고 세밀한 선교를 하신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게일이 한국에 대해서 면밀히 조사하고 깊이 알려고 했던 부분을 높이 살 수 있다고 봅니다. 아는 만큼 애정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지식층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고 한국 교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대한 몰이해로 현지에서 추방당하거나 낭패를 보는 일이 다반사인데, 게일은 그런 점에서 성공한 선교사로 보입니다.
@코람데오 좋은 의견에서 배우며 공감합니다.
선교는 복음과 교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게일처럼 선교하는 나라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압니다.
네, 공감합니다 \(^_^)/
네.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