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341장
성경 고린도후서 12:7~10
요절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 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10)
인생을 고해苦海라 했던가요? 바다에서 파도가 끊이질 않듯이 우리의 인생 여정
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파도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
께로만 향해 있는 신앙의 시선이 베드로(마14:29)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하
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본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바울에게는 병약함과 모욕,
궁핍과 박해 그리고 곤고가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
쳐 왔는지는 본문 앞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평생 바울을 괴롭힌 육
체의 가시였습니다. 그가 이를 두고 떠나가게 해 달라고 세 번이나 간청했을 때
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응답이 왔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육체의 가시'
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한 가시였다는 것과 "내가 약한 그때가 강해질 때"라
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문득 중국의 '經典'경전이라 부르는 『서유기』의 손오공이 생각납니다. 그
는 천궁天宮을 소란케 한 교만한 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부 당승唐僧에게
는 손오공의 머리를 꽉 조일 수 있는 머리띠가 있었습니다. 이 머리띠는 손오공
에 대한 제약이고 행위에 대한 규범을 나타냅니다. 이 소설에서는 아마도 어떤
행위에는 준칙과 제어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시에 찔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10절의 말씀대로 그리
스도를 위하여 감당하겠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가시로 인해 온전해지
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되었다고 자랑합니다. 지금은 나의 아픔이, 시련
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가시로 아파봤기 때
문에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그 아픔을 치유해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상처가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셨던 것처럼, 내가 겪은 가시의
아픔은 서로의 아픈 가슴을 만져 주는 은혜가 될 것입니다.
형통과 장밋빛 인생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내가 약할 때 강함이 되게 하시는 하
나님의 능력과 손길을 체험하길 소망합니다.
약할 때 강하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까?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경험한 가시의 아픔이 타인의 아픈 가슴과 상처를 만져
주는 은혜가 되게 하옵소서. 더욱이 형통과 장밋빛 인생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약할 때 강하고 온전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바울은 자신의 고통이 떠나가지 않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에 크게 기뻐하면서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였다. 그는 자신이 부족한 것을 느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다시 강하게 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참조.엡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