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 나오는 집이 무색하다. 견본주택을 옮긴 듯 반듯하고 정갈한 집안에는 먼지 한 톨, 물기 한 방울이 없다. 행주도 널려 있지 않고 그릇들은 선반장 안으로 숨었다. 자연무늬가 아름다운 대리석 바닥과 벽, 싱크대 상판이 상앗빛으로 창백하다. 대형 스크린 벽걸이 텔레비전과 물소 가죽 소파가 약간의 위압감을 조성할 뿐 어디 한 군데 흠이 없는 집이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한군데서 한 지 십여 년이다. 중개 의뢰가 온 집을 방문하면 대략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거래가 이루어질 집인지 감이 온다. 대형 평수이긴 하지만 상태가 양호하고 인테리어가 완벽한 집이라 쉽게 매매가 성사될 조건을 갖추었다. 주인 여자 얼굴은 본 적 없지만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인가 보다. 너저분한 살림살이가 보이지 않는 완벽한 살림 솜씨가 엿보인다. 한두 명만 보여주면 성사될 것 같은 자신감에 어떠시냐고 넌지시 고객에게 물었다.
“첩의 집 같아요.”
집의 분위기는 현관문을 여는 순간에 느껴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들이쉬는 숨에 섞인 냄새는 그 집안의 특별한 향이다. 사람의 지문이 다르듯이 집은 독특한 냄새를 머금고 있다. 집안 구성원들의 몸 내와 체온, 음식 냄새와 행동 양식이 은연중에 집안에 밴다. 놓인 신발 수만큼 다양한 향취의 무늬가 문을 여는 사람을 반긴다.
나이 든 사람이 사는 곳에는 묵은 향이 난다. 오래된 흙벽이 천천히 내려앉는 것처럼 아래로 가라앉아 조금은 눅눅하고 무겁다. 며칠 전 간장을 달인 듯 청국장을 끓인 듯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쇠락함이 깃든 내음이다.
중년 부부가 사는 집은 모과처럼 농익은 향이 난다. 생채기 난 상처가 아물어 더 달고 맛난 과일이 되듯 익어서 넘치는 풍부한 냄새는 집 떠난 탕아를 돌아오게 하는 그리움을 머금고 있다. 중년만이 느낄 수 있는 평온과 여유로움 때문일 게다.
신혼부부가 사는 집은 비릿한 향이 난다. 오월의 밤꽃 향처럼 사람을 들뜨게 하여 무언가 엿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작은 액자 안의 결혼식 사진이나 신혼여행 사진을 보며 신혼의 달콤함을 유추해 본다. 샤워 젤이나 오드콜로뉴(eau de cologne)같은 바디 제품의 아기자기함이 꿈처럼 황홀하다. 야생의 들꽃을 꺾어 꽃병에 꽂아 둔 듯, 바다 내음을 농축해 담은 듯 비릿한 날것들의 냄새가 난다.
아이가 있는 집에는 몽글한 젖내가 난다. 환한 햇살에 날리는 베이비파우더처럼 뽀송한 향기들이 어여쁘다. 간지럼 태우고 싶은 볼록한 배, 오동통 엉덩이를 뒤뚱이며 반기는 아이를 보면 창문에 찍힌 손가락 자국이 밉지가 않다. 작난감으로 어질러진 집에서 애착 인형 하나 들고나와 배꼽 인사를 하는 아이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장해제된다.
거실이나 주방, 방이나 발코니에도 그 집만의 풍경이 있다. 먼저 것실은 가구와 가전제품의 전시장이라 할 만하다. 최상급 가죽 소파, 앤티크 유화, 최신상의 대형 가전제품이 즐비한 집이 있고 패브릭 소파에 심플한 디자인의 탁자, 적당한 크기의 음향시설이 갖추어진 집이 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은 거실에 텔레비전을 없애고 서재로 꾸민 집도 늘어나는 추세다.
주방은 난해하여 다양한 해석을 낳는 곳이다. 가족과의 식사 자리이지만 주부의 노동 자리이다. 지금은 바뀌어 가고 있지만, 여자들 살림 솜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삼시 세끼 물이 묻고 기름이 튀고 음식 재료들이 널려 있고 주방 도구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다. 주방 살림은 노동력에 비해 표가 안 난다. 조금만 사용하면 기름때에 찌들고 누추해진다. 마치 먹고사는 일들의 비루함처럼 밥벌이의 고단함처럼 군내 나기 십상이다. 그나마 제자리에 있을 때는 덜하지만 이삿짐이라도 싸게 되면 삶의 민낯을 가장 먼저 보여준다.
방은 사용하는 사람의 연령이나 취향에 따라 다르다. 꽂혀있는 서적이나 구입한 물건을 보고 전공이나 취미를 짐작한다. 벗어둔 옷가지나 침대의 정리 상태로 방주인의 성격을, 커튼이나 침대보의 색상으로 미적 감각을, 책상 아래 의자 바퀴 자국을 통해 진득한 사람인지 아닌지 유추한다. 방 하나에서도 거주자의 이력서를 보듯 어쭙잖은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발코니의 정리정돈 상태나 꾸밈으로는 안주인의 성향이나 정서를 파악한다. 발코니 창틀까지 깨끗한 집에는 청소의 달인이 산다.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관엽식물의 잎이나 작은 화분의 잎사귀조차 닦여서 반짝이는 집에서는 부지런한 사람이 보인다. 큰 화분과 작은 화분들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작은 식물원에 온 듯 꾸며진 집도 있다. 경험에 의하면, 발코니의 식물들은 처음 간 낯선 사람에게 얘깃거리를 주고 친구집에 온 것 같은 안정감을 준다.
집을 둘러본 고객이 말한 ‘첩의 집 같다.’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녀의 말처럼 무엇 하나 흠잡을 게 없는 집인데 온통 대리석으로 치장된 실내 때문인지 초겨울의 하늘처럼 창백한 느낌을 어쩔 수 없다. 멀쩡한 집을 두고 애꿎게 ‘첩의 집’이란 오명을 씌운 것은 혹 주방에 널려 있어야 할 행주나 화구 위에 올려져 있을 법한 냄비가 보이지 않아서일까. 하얗게 삶아 걸어놓은 수건 한 장도 없는 집을 말하는 것일까. 약속이 있는 날만 찾아오는 손님처럼 집은 식구의 얼굴을 익힐 시간을 갖지 못한 게 아닐까. 사람의 체온과 체취가 묻기도 전에 도둑고양이처럼 슬며시 빠져나가 버리고 불이 켜지지 않는 식탁 등 아래서 집은 싸늘히 식어가고 있었나 보다.
하루에 수십 명이 다녀가는 견본주택에서는 특별한 냄새나 안온함을 느낄 수 없다. 최신식의 가구와 빌트인 제품, 환한 조명, 최상의 침구류, 유명화가의 복제화, 플로리스트가 꽂은 꽃꽂이가 있다 한들 소용이 없다. 이런저런 추억으로 얽힌 손때 묻는 가구와 가전제품의 이력들, 아이들이 그린 엉뚱한 그림과 가족사진이 걸려 있는 벽, 안부를 물으며 몇 년씩 키운 화분을 이겨내지 못한다. 만지고 쓰다듬어 향기 나는 식물들처럼 가족이 서로 부대끼며 지지고 볶는 삶, 그런 삶의 애환이 녹아 있는 집의 기운을 고객은 원했던 게 아닐까.
집은, 언제 새주인을 만나 온기를 가득 품을 수 있을까.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