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후기] Pilg'Rim' 위그모어홀 리사이틀 후기
Romeo2023.01.20 20:18갤로그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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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나저러나 간에 두 시간짜리 이벤트일 뿐인 연주회에서 관객은 각자가 평생 축적한 음악 감상의 기록을 공고히 다지고, 때로는 이를 항구히 바꾸게 하는 변혁적 경험을 체험한다. 바로 그 점이 해석자로서 연주자가 가지는 깊이를 알려주는 잣대인 것이다.”
1989년 10월19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를 본 에드워드 사이드는 특별한 체험을 고백한다. "오른손이 왼손에 호응하듯, 손가락 하나는 나머지 아홉 손가락에 호응하고, 전체는 그 깊숙한 곳에 있는 하나의 혼에 응답한다"는 피아노 연주에 대한 그의 묘사처럼 임윤찬의 위그모어홀 연주는 오랜 기간 음악을 들어왔던 내게 변혁적 경험을 제공한다.
임윤찬은 바흐의 신포니아 첫 곡부터 '노래하는 악기'로의 피아노의 음색을 나긋나긋하게 꺼냈다. 이어 공명이 따뜻하고 길게 이어지는 3번과 4번을 지나 마치 바흐의 청년기와 같은 5번과 8번에서 풍부한 장식음과 대위법적 세부를 선보였다. 신포니아의 후반부에서 마치 기도하는 순례자처럼 페달과 음색, 음역을 이어가는 모습에서는 바흐를 음악적 여정의 뼈대로 삼은 이 소년이 추구하는 음향이 예감된다. 단편을 하나씩 거쳐 감에 따라 점진적으로 경험되는 음악적 구조에는 낱낱의 개별성보다 오히려 전체의 통일성이 드러난다.
베토벤 바가텔의 초반에서 심연에서 피어오르는 듯한 금빛 음향이 찬연히 펼쳐졌고 2번에서는 장려한 페달링의 드라마로 시작되어 여러 성부가 꿈틀대는 내면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마치 현란한 풋워크를 자랑하는 검객처럼 연주자는 곡의 피크를 정확하게 겨냥했고 모든 음표들은 정확한 곳에 명중했다. 열정과 유머라는 두 강물이 베토벤의 음악에서 완벽하게 결합하며 왼손과 오른손이 그렇듯 서로에게 새로운 종류의 힘을 부여했다.
쾌속으로 질주하며 옥타브의 모든 것을 해치우던 연주자는 부드럽고 달달하게만 들릴 수 있는 에로이카 변주곡의 숨은 비밀인 헤테로포니를 환히 밝히며 베토벤이 의도했을 다성음악에 도달했다. 피아니스트로의 덕목인 아이러니와 위트를 이미 간파한 연주는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거장의 소리처럼 절제된 춤사위로 표현됐다. 대단히 창의적인 주제의 변용과 재현, 그리고 연주를 상통하는 탄탄한 논리의 비밀은 그의 신들린 왼손이었다.
연주자는 앵콜로 바흐와 리스트를 연주하며 음악에 대해 그가 표방하는 진지함과 숭고를 간취한다. 이야기하는 바흐, 노래하는 베토벤, 그리고 곡의 핵심마다 확신에 차 솟아오른 왼손의 도약은 앞으로 펼쳐질 연주자의 찬란한 예술 세계에 대한 눈부신 긍정이었다. 기교적 탐험에만 천착하지 않는 연주자의 정신은 마치 베토벤이 작곡가로서 그러했듯 절제된 구상과 흥미로운 실현을 이상적으로 융합한다.
그의 음악은 불필요한 각주나 부연이 없다.건반 위의 손과 페달을 거쳐 마침내 듣는 이의 귀에 도달하는 모든 몸짓과 음표들은 그 자체로 본질로서 공연의 일부이고 구체화된 음악적 실현이다. 바흐의 연주에서 모차르트가 들리고 베토벤의 연주에서 바흐가 들리는 그의 이야기는 앞으로 그가 펼쳐갈 고전 음악의 항해의 지도를 엿볼 수 있게 만든다. 아무리 졸여내고 졸여내도 끝내 귀로 들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듯 임윤찬의 연주에는 집요함이 있다.
예술가를 진정 위대하게 만드는 건 그의 이상함이 아니라 정상성과 평상성이다. 명료한 기지로, 온몸과 표정으로 음악을 풍경으로서 경험하는 단계에까지 우리를 이끌면서도 음악에 대한 진지함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 이 순례자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