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Text Mt 28,16-20
(16)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이틀 동안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으며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까지 제자들에게 확실한 많은 부활의 증거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자세히 기록하려고 노력한 누가는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까지의 기간이 40일이었고 여러 가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여 주셨다고 했습니다.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한 바 있는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성령을 받는 것’이었고, 여기에 대하여는 이미 4.14 주일에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후에는 행하여야 할 사명이 있으니, 이 사명에 대하여는 오늘의 본문 마28,16-20에서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라 하였고, 막16,15에서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 하였으며, 요21,15ff에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양을 치라고 하였습니다. 각 복음서가 표현은 다르지만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의 증인이 되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하여 그들로 구원받게 하라는 뜻의 명령을 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승천하시기 전 40일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아주 짧은 기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신신당부하신 마지막 명령을 성도 모두는 최고의 경건한 자세로 경청해야 합니다. 부활 후 제 주일인 오늘 주님께서 신신당부하신 것들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면서 우리가 사는 동안 그 당부하신 것을 힘을 다해 행하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2. 16-17절은 예수님께서 이 당부를 하신 곳이 갈릴리의 한 산이었다고 가르쳐 줍니다.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거기에서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갈릴리의 한 산에 갔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처음으로 만났던 여자들에게 ‘내 형제들’이라고 표현한 열 한 제자들이었습니다.(마28,10)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형제라 칭하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비록 그들 중에 의심하는 몇몇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당신이 고난을 당하실 때 달아났거나 부인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알고 계셨음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여전히 형제라 하신 것입니다.
또한, 갈릴리는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가장 긴 시간 동안 함께 했던 곳입니다. 예수님과의 추억이 제일 많은 곳이라는 말입니다. 거기는 예수님과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제일 좋은 곳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주님으로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함께했던 것들이 부활의 주님을 뵈면서 예수님과 함께 행하였던 모든 것들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할 수 있는 곳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장차 감당해야 할 사명의 내용을 더 확실하게 할 수 있었던 곳이 갈릴리였습니다. 시끄럽고 복잡하며 두려움과 불안이 있었던 예루살렘으로부터 어머니의 품처럼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곳인 갈릴리로 부르신 것이기도 합니다.
열 한 제자들은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도 사실 엘리트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스스로도, 남들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는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 어쩌면 저들은 큰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은 처참한 실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제자가 되기 이전보다 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그들을 다시 초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분부를 받들 사람은 세상의 엘리트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실패를 알고 처절하게 자신의 무능과 부패를 깨달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51,16-17절에서 “(16)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은 잘 난 사람들의 기름진 제물과 함께 하는 제사보다 상하고 통회하는 상한 심령의 제사를 기뻐하실까요? 상한 심령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꾀와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힘만을 의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어 교만한 자들은 싫어 하십니다.
폴란드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파데르브스키는 첫 레슨을 받고 선생으로부터 "네 손은 조막손이니 아예 그만두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답니다. 불후의 테너 가수 카루소도 처음 노래를 부르고 나서 "구멍 뚫린 문풍지에서 나오는 목소리"란 혹평을 들었다고 합니다. 월트 디즈니가 만화 원고를 들고 신문사를 찾아갔을 때 ‘수준 이하’라는 말을 들으며 거절당했습니다만, 그들은 모두 평범한 능력자들을 뛰어넘는 명사들이 되었습니다. 인생을 망치는 것은 실패하는 무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자만이며 교만입니다.
우리는 자신만을 바라보며 좌절하고 포기하게 하는 예루살렘에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불러주셨던 분을 상기하고 능력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 있는 분을 의뢰하는 믿음과 그분께 부르짖는 기도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한없이 부족하기만 한 나를 여전히 형제라 불러주시는 분을 만날 수 있는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혹 지금 자신의 무능을 한탄하며 골방에 숨어 있습니까? 일어나 회복의 은혜가 준비되어 있는 갈릴리로 가십시오. 거기에서 주님을 만나십시오. 그런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3.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난 부활의 예수님께서는 18절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자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더 명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정도로, 알던 이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통하여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무능과 수치스러움은 더 많이 드러났지만 믿음이 권능이고 기도가 능력이라는 사실은 그것보다 더 크게 드러난 것입니다.
20절에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주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장차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I will be)가 아니라 "함께 있으리라"(I am with you alw- ays) 입니다. 이보다 더 큰 보장의 약속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며 너희를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군(prince) 미가엘이 했다고 말해지는 것처럼(단10,21) 나는 너희의 편이 되어 너희를 굳게 하리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며, 너희를 떠나거나 멀리 있지 아니하리라. 나는 큰 도움이리라.(시46,1)
그러므로 이것을 믿는 성도는 담대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13,6)라고. 이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사도 바울처럼,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하기 이전에 주님의 품 안에서 완전한 안식과 큰 소망과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두려울 때에, 슬플 때에, 가장 외로울 때, 즐거울 때와 기쁠 때도, 아프고 괴로울 때, 내가 숨진 후에도, 천국에 이르도록, 늘 함께하여 주시는 주님의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에 안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 그리고 약속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모든 것을 맡기고 살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내가 하려고 하니 모든 것이 힘들고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세상 살기가 힘들다고요? 주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은 불신앙입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언제나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은 두렵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 불 속에 던져지는 순간에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의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도 두려움은커녕 성령으로 기쁨이 충만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의뢰해도 좋은 겁니다. 주님은 절대로 당신의 자녀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 안에서 평안할 수 있는 겁니다. 내 뜻대로 되면 내 뜻만큼만 되지만 주님 뜻대로 되면 주님 뜻만큼 되기 때문에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시고 내 뜻을 꺾고 주님 뜻대로 하시니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것이 옳습니다. 가라고 하시는 곳으로 노래하며 가고 머물라 하는 곳에서 안절부절 하지 말고 턱 믿고 단잠을 주무십시오. 우리 주님은 부활하시어서 지금 여기에도 함께하고 계십니다.
4. 19-20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도에게 사명을 내리시는 것을 발견합니다.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주님 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것을 알지 못하고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설치는 것도 안 되는 일이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외면한 채, 주님 품 안에만 있으려 하는 것도 안 되는 일입니다.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이 임하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행1,8)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기 위해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은 다시 사신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왕이심을 알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은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 저들도 주의 이름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이유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셨고, 주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이 아닌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인데,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요10,14-17에서는 “(1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세워졌고 기름 부어졌습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받아들이고 사명을 위해 충성하는 것이 마땅하고도 당연합니다. 복음 전도는 중단없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영적 자녀를 많이 낳아 아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십시다. 꼭 그런 성도들이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