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 이러한 노벨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매우 명예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여도 노벨 수학상은 탈 수 없다. 왜냐하면 노벨 수학상은 없기 때문이다.
노벨상은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발명가였던 노벨이 자신의 많은 재산을 희사하여 물리학, 화학, 문학 등 5개 부문에 걸쳐 매년 한 번씩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그런데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은 있는데 자연과학의 기초가 된다고 여겨지는 수학부문에서는 왜 노벨상이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당시 노벨과 같은 시대에 스웨덴에서는 유명한 수학자 레플러가 활동하고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노벨과 레플러는 서로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만일 수학 부문에 노벨상이 제정된다면 레플러가 수상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노벨 수학상의 수상자 선정에 있어 당시 수학계의 대가인 레플러의 의견을 듣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있었으므로 노벨로서는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을 하기 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노벨 수학상을 만들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하였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수학 부문에는 노벨상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캐나다의 토론토 대학의 수학교수였던 필드는 항상 수학분야에 노벨상이 없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고 수학분야에도 노벨상에 해당하는 상을 제정할 것을 염원하였다. 그의 이러한 염원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필드상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필드상은 4년마다 열리는 국제 수학자 회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국제 수학자 회의는 세계 각국의 훌륭한 수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 동안의 연구 업적들을 발표하고 정보 교환 또는 앞으로의 수학의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의견 교환 등의 일을 하는 중요한 국제회의로서 수천명의 수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10여일간에 걸쳐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필드교수는 1924년에 토론토에서 열린 제 7회 국제 수학자 회의 회장직을 맡아 이 회의를 유치하고 무사히 마치는데 공헌하였다. 이는 보통때와는 달랐던 그 당시의 정세로 볼 떄,실로 세계수학계에 끼친 큰 공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