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an, 1598-1664)은
17세기 스페인 여인의 복장을 한 매혹적인 동정순교성인들을 연작으로 그렸다.
세비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는
스페인 여인의 복장을 한 성녀들의 연작 중 하나인데
왕관을 쓴 성녀 카타리나를 현실적인 얼굴 생김새를 한 처녀의 모습과
17세기 스페인 여인의 복식을 한 모습으로 독특하게 그렸다.
성녀 카타리나(St Catharina)는 10세기경부터 동방 교회에서
가장 높이 공경해오던 성인 중 한 명이지만
성녀에 대한 자료는 분명하지 않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카타리나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왕 코스타의 외동딸이었다고도 한다.
그녀는 학식이 뛰어나고 미모의 처녀였다고 한다.
그녀는 어떤 환시를 보고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으며,
막센티우스(Maxentius, 재위 306-312)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투옥시키라는 명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였는데,
이 놀랍고 뛰어난 논쟁으로 말미암아 50여 명의 이방인 학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녀는 만일 배교할 의향만 있으면
황제와 결혼시켜 주겠다는 회유책을 거부하고
두 시간 동안 매를 맞은 뒤에 투옥되었다.
그녀의 독방에는 비둘기들이 음식을 날라다 주었으며,
그리스도께서 발현하시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칼날이 박힌 바퀴에 의한 고문을 당하였지만
칼날이 박힌 바퀴가 부서지고 그녀의 몸에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고,
오히려 구경꾼들이 그 바퀴에서 튕겨 나온 부서진 파편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
그녀의 굳은 신앙과 인내심은 수많은 군인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그중에서 2백여 명이 개종한 후 곧 참수를 당했다고 한다.
그로인해 마침내 분을 이기지 못한 황제는 그녀를 참수하였고,
이때 그녀를 덮었던 수건에는 피가 아니라 우유가 묻어나왔다고 한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성녀의 시신은 천사들이 시나이 반도 제일 높은 곳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그 뒤 시나이 산 수도원이 성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도 이 수도원은 성녀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성녀 카타리나의 축일은 11월 24일이고,
그녀는 철학자, 처녀, 설교자들의 수호성인이다.
수르바란은 교회미술의 전통에 따라
그녀의 신분을 알리듯 금관을 머리에 쓴 카타리나를 사실적으로 그렸고,
그녀의 오른손에는 그녀의 고문도구인 칼날이 달린 바퀴를 잡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상징물이다.
또 그녀의 왼손에는 그녀를 참수했던 칼을 잡고 있는데,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하늘을 향하고 있다.
그녀는 순교를 상징하는 진한 포도주 색 드레스를 입고,
희망을 상징하는 녹색 망토를 두르고 있으며,
순교의 영광을 상징하듯 황금색에 붉은색 문양이 새겨진
부제복(Dalmatica) 모양의 제의를 입고 있다.
그녀는 순교로 영생의 희망을 얻었고,
생명보다 귀한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기 때문이다.
그분은 하늘을 우러러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 같다.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1요한 2,6)
그녀는 그리스도처럼 살기 위해 순교를 택했고,
카타리나의 죽음은 어둠과 혼돈 속에서 빛을 비춘 아름다운 덕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