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했던 경험
권재기
동네의 조그만 홈쇼핑 가게에 들렀다. 내 앞에 한 젊은 여인이 영수증 한 뭉텅이를 보여주며 점원과 실랑이하고 있었다. 자신이 사지도 않은 것이 찍혀 있다며 화가 나 있었다.
나와 똑같은 사례라고 생각하며 뒤에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길어지는 것 같아 가게를 두리번거리다 ‘누룽지둥굴레차’를 두통 들고 계산대 앞으로 다시 갔다. 씩씩대며 걸어 나가는 젊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계산대 직원에게 내 영수증을 보여주었다. 두 주전에 손톱깎이를 $4.99에 하나 샀는데 그 밑에 또 $4.99가 찍혀 두 번 계산이 돼 있으니 오늘 산 물건에 크래딛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퉁명스럽게 큰 소리로 “저 할머니가 손톱깎이가 두 번 찍혔대” 하며 한 직원에게 나를 가리키며 CCTV를 틀어서 확인해보란다.
의심받은 것으로 벌써 기분이 별로인데 ‘할머니’라는 말의 억양이 귀에 거슬렸다. 참 묘한 기분이다. 보통 손주들이 ‘할머니’하고 부르면 화가 났던 때도 내 마음이 녹아내린다. 나를 미소 짖게 하는 ‘할머니’라는 말 자체가 왜 이리 불편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녀의 말투와 태도에서 오는 반응일까? 아니면 내가 무시당한 것 같은 자격지심에서일까?
앞의 젊은 고객과 어떻게 문제가 해결된 지 나는 모른다. 나는 잘못된 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액수가 적어도, 비록 나이들은 할머니라도 그 직원은 예의를 지키고 공손하게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원이 조금 친절히 대해 주었다면 작은 문제로 마음의 불쾌감을 느끼는 대신 감사함을 느꼈으리라.
1980년대 초 한국을 방문할 때 시아버님이 부탁한 ‘던힐 라이터’를 한국 선물 가게에서 사 갔다. 꽤 많은 돈을 주고 샀는데 한국에 가서 사용하려니 작동이 안 됐다. 미국에 돌아온 후 곧 그 상점을 찾아가서 반환을 요구했는데 결국 그 선물은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그 후 우리는 거의 한국 상점을 다니지 않았다. 이제는 한국인 인구도 늘고 많은 상점이 늘어나 예전과 같지는 않지만, 한국 가게에서 물건을 반환하기가 아직도 까다롭다는 말을 듣고 있다.
보통 물건을 사면 그것을 반환할 수 있는 기간이 있다. 상점마다 다르지만 1개월에서 3개월 안에 반환할 수 있다. 마켓은 곧 상할 물건 때문에 7일 정도의 여유를 준다. 내가 물건을 산 날에 확인했어야 하는데 두 주 가까이 되어 나타났으니 조금은 미안하다. 그래도 한 달 안에 와서 문제점을 제시하고 크래딛을 요구했으니 무시당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미국 상점에서는 바꾸거나 반환하고 싶다면 아무 소리 않고 농담까지 하며 기분 좋게 바꿔준다.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한국 상점들이 고객에 대한 태도와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길 희망한다. 많은 고객이 편안하게 물건을 사고, 편안하게 반환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 친절한 직원이 많은 상점에는 사람이 많이 모일 것이다. 고객은 어떤 경우에도 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이를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평가절하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이를 떠나 모든 사람이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에 반스 마켓에서 내가 경험한 일이다. 사 가지고 온 물건들을 집에 와서 정리하는데 산 물건 중에서 여러 개가 안 보인다. 생각해보니 카트 밑에 놓았던 백을 안 갖고 온 것이었다. 빠진 물건을 다 적어서 반스 마켓으로 다시 갔다. 매니저에게 영수증을 보여주고 자초지종 설명했다. 아무도 내가 잃어버린 백을 가게로 가져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누군가 내 음식을 가져가서 즐기고 있을 거라며 잃어버린 것을 다시 담아가라고 웃으며 말했다. 고객에 대한 기막힌 신뢰의 표현이다. 당황하고 민망했던 나의 마음이 그의 말 한마디로 얼마나 안심이 되고 고마웠는지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미국이 참 좋은 나라구나’라는 것을 경험한 첫 사건이었다.
내가 애용하는 코스트코는 물건을 반환하는 것이 아주 쉬운 곳이다. 나는 가끔 거기 있는 옷들을 여러 개 사서 집에 와서 입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도로 다 반환한다. 값이 싼 대신 옷을 입어 볼 수가 없는 게 조금 불편하다. 괜찮은 것을 보면 다음에 가면 없어지므로 그 자리에서 금방 사게 된다. 반환하는데 이유도 물어보지 않고 스트레스도 안 준다. 예전에는 일 년이나 쓰던 컴퓨터도 반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미국의 대형 가게와 홈쇼핑 같은 조그만 가게는 운영 방침이 달라서 반환정책이 까다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래도 일하는 직원은 공손하게, 친절하게 표정 관리를 잘해서 손님들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찾아오게 하여 주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CCTV에 기록이 안 나온다고 하며 직원은 떫은 표정으로 내가 산 물건에서 $4.99를 빼 주었다. 잘 못 한 거 하나도 없는데 이런 대우를 받은 게 화가 났지만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돈 계산을 끝냈다. 크레딛을 받았으니 몇십 년 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엉망인 나의 마음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