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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우바리와 계율
佛告優波離(불고우바리)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여행예유마힐문질)하라 優波離(우바리)가
白佛言(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아불감임예피문질)하나이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憶念(억념)하니 昔者(석자)에 有二比丘(유이비구)하여 犯律行(범율행)하고
以爲恥(이위치)라하여 不敢問佛(불감문불)하고 來問我言(내문아언)하되 唯優波離(유우바리)여 我等(아등)이
犯律(범율)하니 誠以爲恥(성이위치)라 不敢問佛(불감문불)하니 願解疑悔(원해의회)하야
得免斯咎(득면사구)케하소서 我卽爲其如法解說(아즉위기여법해설)이니라 時(시)에 維摩詰(유마힐)이
來謂我言(내위아언)하되 唯優波離(유우바리)여無重增此二比丘罪(무중증차이비구죄)하고
當直除滅(당직제멸)하야 勿擾其心(물요기심)하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彼罪性(피죄성)이
不在內(부재내)하고 不在外(부재외)하며 不在中間(부재중간)이니 如佛所說(여불소설)하야 心垢故(심구고)로 衆生(중생)이 垢(구)하고 心淨故(심정고)로 衆生(중생)이 淨(정)이어니와 心亦不在內(심역부재내)하고
不在外(부재외)하며 不在中間(부재중간)이니 如其心然(여기심연)하야 罪垢亦然(죄구역연)하며
諸法亦然(제법역연)하야 不出於如(불출어여)라 如優波離(여우바리)가 以心相(이심상)으로
得解脫時(득해탈시)에 寧有垢不(영유구불)아 我言不也(아언불야)니다 維摩詰(유마힐)이 言(언)하대
一切衆生(일체중생)의 心相無垢(심상무구)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나이다 唯優波離(유우바리)여
妄想(망상)이 是垢(시구)요 無妄想(무망상)이 是淨(시정)이며 顚倒是垢(전도시구)요 離顚倒(이전도)가
是淨(시정)이며 取我是垢(취아시구)요 不取我是淨(불취아시정)이니다 優波離(우바리)여 一切法(일체법)이
生滅不住(생멸부주)함이 如幻如電(여환여전)하며 諸法(제법)이 不相待(불상대)하며 乃至一念(내지일념)이라도
不住(부주)하며 諸法(제법)이 皆妄見(개망견)이라 如夢如焰(여몽여염)하며 如水中月(여수중월)하며
如鏡中像(여경중상)하야 以妄想生(이망상생)이니 其知此者(기지차자)는 是名奉律(시명봉율)이며
其知此者(기지차자)는 是名善解(시명선해)니다 於是(어시)에 二比丘言(이비구언)하되 上智哉(상지재)라
是優波離(시우바리)의 所不能及(소불능급)이로다 持律之上(지율지상)으로 而不能說(이불능설)이로다
我答言(아답언)하되 自捨如來(자사여래)코는 未有聲聞及菩薩(미유성문급보살)이
能制其樂說之辯(능제기요설지변)이니 其智慧明達(기지혜명달)이 爲若此也(위약차야)니라 時(시)에
二比丘疑悔卽除(이비구의회즉제)하야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하고
作是願言(작시원언)하야 令一切衆生(영일체중생)으로 皆得是辯(개득시변)일세
故我不任詣彼問疾(고아불임예피문질)이니다
佛告優波離(불고우바리)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여행예유마힐문질)하라.
부처님이 우바리에게 고하사대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라.
優波離(우바리)가 白佛言(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 我不堪任詣彼問疾(아불감임예피문질)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도 또한 그분에게 나아가서 문병할 수가 없나이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憶念(억념)하니 昔者(석자)에, 有二比丘(유이비구)하여,
왜냐하면 기억하건대 옛날에 두 비구가 있었어요.
犯律行(범율행)하고, 以爲恥(이위치)라하여, 그들이 율행을 범했어요.
그래서 아주 부끄럽게 여겼어요. 그 율행은 아주 결정적인 율행을 범했어요.
여기에는 그런 것이 안 나와 있는데 유마경 疏抄(소초)에 보면, 주석서에 보면 두 비구 있어요.
두 비구가 토굴에서 같이 열심히 정진하고 있었는데, 한 비구는 마침 음식이 떨어져서 먹을 것을
구하려고 마을로 내려가고, 한 비구는 토굴에서 정진하고 있었어요.
정진하다가 한 낮에 잠깐 졸고 있었는데,나무하러 왔던 그 밑의 마을 어떤 여자가 스님이 정진하다가
누워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그만 욕심이나가지고 한 마디로 요즘 표현으로 하면 강간을 해버렸어요.
그러니까 이것이 남자가 최초로 여자에게 강간당한 역사 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 때에 양식을 구하러
갔던 스님이 올라왔어요. 가만히 상황을 보니까 일이 보통일이 아닌 것을 알 수가 있어요.
그리고 이 도반은 그만 부끄러워 가지고 도반에게 참회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ㆍ이렇게 됐노라고 하면서 이걸 어떻게 하나?
우리가 참 정말 돈독하게 공부하려고 이렇게 둘이 작심을 하고 토굴에 올라와서 공부 하는데,
어쩌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그렇게 자탄을 하고 있으니까
이 도반이 그만 화가 난 겁니다. 양식을 구하러 갔던 도반이 너무너무 화가 나는 겁니다.
‘우리 평생공부는 저 여자가 다 버렸다.’ 라고 해가지고 그냥 엉겁결에 그 여자를 꾸중을 하고
막 때리고 싶기도 하고 구타도 하고 싶기도 하고 해가지고는, 그 여자를 쫓아가니까
그 여자는 그만 겁이 나가지고, 쫓아오는 것이 심상치가 않거든요. 붙들리면 큰일 날 것 같거든요.
죽일 것 같거든요. 그래서 거침없이 도망을 가다가 그만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죽었어요.
이 것이 고의는 아니지만, 벌써 살인을 범하고ㆍ비구계 제 1조인 음계를 범하고,
두 사람이 그것을 범한 것이지요. 영가 증도가에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참 멋지게 표현했는데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큰일 났거든요. 공부고 뭐고 ‘참회부터 받아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한 것 입니다. 그래서
不敢問佛(불감문불)이라. 來問我言(내문아언)하되,律師(율사)니까요.
부끄러운 마음을 품고는, 감히 부처님 앞에는 부끄러워서 말할 수가 없고
우바리는 지계 제일이니까요. 이 분에게 와서
우리가 “이러이러 해서 그만 어쩌다가 이런 계행을 범했습니다
.” 唯優波離(유우바리)여, 我等(아등)이 犯律(범율)하니, 誠以爲恥(성이위치)라.
我等(아등)이 犯律(범율)하니, 誠以爲恥(성이위치)라.
여보시오 우바리여우리들이 율행을 범했으니
진실로 부끄럽기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그래서 부끄러워서
不敢問佛(불감문불)하니, 願解疑悔(원해의회)하야
감히 부처님께는 묻지 못하고 하니 원컨대 우리들의 의혹과 뉘우침을 풀어주어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들의 得免斯咎(득면사구)케하소서. 이 허물을 면하도록 참회방법.
삼천 배를 시키든지ㆍ삼만 배를 시키든지ㆍ팔을 태우라하든지ㆍ
무슨 방법이든지 저희들에게 지시해주십시오. 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우바리가
我卽爲其如法解說(아즉위기여법해설). 願解疑悔(원해의회)하야
저는 그 때에 그들에게 그들을 위해서→ 계율대로 설명해줬다.그랬어요.
사바라이를 범했으니까 不通懺悔(불통참회)입니다. 사바라이를 범했으니까
이것은 어디가도 참회 할 수가 없 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세속 법으로 치면
사형과 같은 것이지요. 완전히 사형 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우리 승가에서는
발을 붙일 수 없다. 율사니까 계율에 있는 조목대로 이야기한 것이지요.
時(시)에, 그 때에 維摩詰(유마힐)이,來謂我言(내위아언)하되.
유마힐이 그런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듣고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唯優波離(유우바리)여, 여보시오 우바리여 無重增此二比丘罪(무중증차이비구죄).
이 두 비구의 죄를 더욱 더 무겁게 하지 말라. 그랬어요.
더 이상 이 비구들, 안 그래도 이 사람들은 부끄럽고,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너희들은 不通懺悔다. 이제 나가라. 못된 짓을 했으니 세속에 가서 처벌이나 받아라.”
이런 식으로 말을 했으니 그 사람들이 완전히 타락해가지고 나가서 앞으로 무슨 짓을 하겠는가?
그럼 그 사람들에게 죄를 더욱 더 무겁게 하는 길을 제시 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말라ㆍ
當直除滅(당직제멸)하야,除滅 해서 勿擾其心(물요기심)하라.
마땅히 곧 바로 그 죄를 그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요란하게,
더 어찌할 바를 모르도록 그렇게 하지 말라. 저렇게 신심 있는 수행자가
어쩌다가 실수를 했는데 그것을 가지고 그렇 게,
자기 딴에는 如法 하게 계율의 조항대로 그렇 게 너희들은 不通懺悔라고
이런 식으로 말을 해가지고, 사람을 더 죄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그렇게 하지 말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彼罪性(피죄성)은,
不在內(부재내) 不在外(부재외)하며,不在中間(부재중간)이니,
그 죄라고 하는 본성은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그 사람 밖에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그 사람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야.
罪無自性從心起야. 바로 자성은 없어.
罪性은 不在內 不在外 不在中間 이야. 如佛所說(여불소설)하야 心垢故(심구고)로
衆生(중생)이 垢(구)하고 心淨故(심정고)로 衆生(중생)이 淨(정)이니야,
. 心垢故로 衆生이 垢하고 心淨故로 衆生이 淨이니라. 하~ 참 좋은 말이지요.
이 것이 부처님 설법 아니냐? 이 겁니다. 부처님 설법 이 다른 거냐?
마음이 더러우면 중생도 더러워지고, 마음이 깨끗하면 중생도 깨끗해져.
罪無自性從心起야. 그 마음 하나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런 차원
높은 설법했다고 그들이 그냥 “아이고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 고
그렇게 끄드럭거릴 사람이 아니잖아. 자기 죄는 죄대로 알고 있어.
잘 알고 있는데 그들을 안심시키고, 마음에 해방을 시켜주고 마음의 도리를 정말 제대로
설명해준다면 앞으로 그 사람이 얼마나 큰 그릇이 될 것인가? 그리고 처벌은 처벌대로
얼마든지 할 수도 있어. 그런 기회가 얼마든지 있는데, 너희는 불통참회니까 지금부터
나가라고 하고 산문출송 시켜 버리면 그 좋은 사람들을, 이것 잘 들으세요.
그 정도 정진하는 사람을 키우려면 돈으로 댈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 돈으로 키울 수가 없는 겁니다. 한두 번 실수가 있을 수가 있어요.
그것 가지고 그냥 영원히 내쳐버리는 그런 상황은 우리 승가에 많지요.
우리 참, 정말 어떻게 하더라도 그것 감싸줘야 됩니다.
그만치 키우려고 해도 참 어려운 겁니다. 행자로 들어오고 사미로 들어와서
그렇 게 고생하고 공부하는 사람을... 지금 자꾸 숫자가 줄어드는데 그것을
정말 어떻게 하더라도 다독거리고ㆍ용기를 주고, 북돋아줘서
紹隆三寶(소륭삼보).
삼보의 법맥을 끊임없이 계승해 가도록 그렇 게 해야 됩니다. 참 좋은 교훈이지요?
그것이 부처님 설법입니다. 如 佛 所說. 부처님이 설하신 것과 같아서
心垢故로 衆生이 垢하고 心淨故로 衆生이 淨이니와 心亦不在內(심역부재내)하고,
그렇다고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실체가 있다고 보면 안 돼. 그러니까 앞에서 제가 중도에
대한 것을 이야기 했는데, 죄도 중도적으로 봐야 되고ㆍ마음도 중도적으로 봐야 됩니다.
心亦不在內. 마음도 또한 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不在外(부재외)하며, 밖에 있는 것도 아니요,
不在中間(부재중간)이니,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中道正見(중도정견)입니다.
中道正見.
그 중도는 觀點(관점)입니다.
치우쳐서 보느냐ㆍ제대로 정견으로 보느냐?
하는 그 관점을 가지고 중도라고 하는 것이지,
중도가 무슨 불성이다ㆍ진여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조금 미완성 중도 이론이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과감하게 하는 것도 거기에 있습니다.
如其心然(여기심연)하야, 罪垢亦然(죄구역연)이라.마음이 그런 것과 같이
죄 라고 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하 정말 참 좋다. 아 이렇게 해야 사람 숨 쉬고 살지,
안 그러면 꼭 막혀가지고 어디 숨 쉬 겠습니까?
절 집안 이라는 것이 잘못 이해하기로 하면 사람 숨 못 쉬게 만드는 겁 니다.
정말 남의 스승 되고, 어른 된 사람은 소견이 정말 툭 터지고 바로 돼가지고 제대로
이렇게 고무줄처럼 조이기도 하고 늘리기도 하고, 이렇게 융통자재 할 줄 알아야 된다
하는 것을 이런 데서 우리가 또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諸法도 亦然(제법역연)해서 不出於如(불출어여)라.
모든 존재가, 또 여기서
諸法 하면
모든 사물과 사건 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물”
하면 모든 존재고요.
존재이외의 다른 사건들. 일체, 봄이 오고ㆍ여름이 오고ㆍ가을이 오고ㆍ낙엽지고ㆍ
그 다음에 춘하추동이 바뀌는 것뿐만이 아니라, 成住壞空(성주괴공)에서부터 우리가
하루에, 일어나서 하는 그런 진행되는 모든 일들. 이것까지도 다 아울러서 諸法.
그렇 게 합니다. 사물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것 모두가 역시 중도적인 이치로 존재하고 있다.
원래 존재하는 방식이 중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不出於如 입니다.
如 라고 하는 것은 “그와 같은” 말하자면
“진여” 라고 하는 입장으로 그렇 게 봐도 좋 습니다.
우리 “진여” 라고
하는 것이 상식이니까요.
如 라고 하는 것이 자주 나옵니다.
如 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여여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꼭 진여라고 하기 보다는 그것이 좋 습니다.
여여함에서ㆍ그러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대로ㆍ존재의 실상대로,
그것이 如 입니다.
존재의 실상대로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如優波離(여우바리)가, 以心相(이심상)으로써 得解脫時(득해탈시)에,寧有垢不(영유구불)아?
예컨대 우바리가 해탈을 얻었을 때에 어찌 허물이 있겠는가?
我言不也(아언불야)니다. 내가 말하되 “아닙니다.”
維摩詰(유마힐)이 言(언)하대, 유마힐이 말하되
一切衆生(일체중생)의 心相無垢(심상무구)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니라. 唯優波離(유우바리)여,
일체 중생의 마음 모습이 허물이 없음도 여보시오 우바리여
妄想(망상)이 是垢(시구)요 無妄想(무망상)이 是淨(시정)이며,
망상이 때가 되고, 無妄想 이 청정함이 된다.
顚倒是垢(전도시구)요, 전도는 더러움이요
離顚倒(이전도). 전도를 떠난 것이 是淨(시정). 청정함이 된다.
取我是垢(취아시구)요, 나를 취하는 이것이 허물이요.
不取我是淨(불취아시정)이니다. 나를 취하지 않는 것이 청정이 된다.
優波離(우바리)여 一切法(일체법)이 生滅不住(생멸부주)함이 如幻如電(여환여전)하며, 生滅.
일체법이 생멸부주입니다. 어느 하나도 생멸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如幻如電 입니다.
환과 같고
번갯불과 같아요.
정말 존재하지 않는ㆍ
실재하지 않는 것.
그리고 설사 실재한다 하더라도 번갯불처럼 퍼뜩 지나가 버리는 것.
그것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그렇 게 빨리 지나가지 않지요.
諸法(제법)이 不相待(불상대)하며, 서로 상대하지 아니하며
乃至一念(내지일념)이라도 不住(부주)하며, 잠깐도 머물지 아니하며
諸法(제법)이 皆妄見(개망견)이라.
우리가 제법ㆍ제법. 모든 존재라고 말은 하지만 그것은 전부 妄見 입니다. 잘못 보는 겁니다.
如夢如焰(여몽여염)이야. 꿈과 같은 것이고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다.
如水中月(여수중월)이야. 물에 비친 달과 같애.
如鏡中像(여경중상)이야. 鏡中像 과 같애. 以妄想生(이망상생)이니, 망상으로 생긴 것이다.
其知此者(기지차자)는, 이것을 아는 사람은
是名奉律(시명봉율)이야.그렇게 알아야 계율을 잘 받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어.
其知此者(기지차자)는, 이것을 아는 사람은
是名善解(시명선해)야. 이것이 善解 = 잘 알고 바로 아는 사람이다.
於是(어시)에 二比丘言(이비구언)하되, 그 때에 두 비구가 말하되
上智哉(상지재)라. 하~ 뛰어난 지혜로다! 정말 훌륭한 지혜를 가졌도다.
上智哉 라고 두 비구가 유마힐보고 그렇 게 말을 했습니다.
계율도 말하자면 “중도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런 뜻이지요.
上智哉라. 是優波離(시우바리)의 所不能及(소불능급)이며,
우바리로서는 발 벗고 따라가도 도저히 못 따라갈 이치며
持律之上(지율지상)으로도, 而不能說(이불능설)이로다我答言(아답언)하되,自捨如來(자사여래)코는,
계율을 가진 사람 중에서 최고 가는 사람으로도 이런 설법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
내가 답해 말하되, 여래를 두고는
未有聲聞及菩薩(미유성문급보살)이 能制其樂說之辯(능제기요설지변)이라. 樂說.
其智慧明達(기지혜명달)이 爲若此也(위약차야)니라.
부처님 두고는 어떤 성문도ㆍ어떤 보살도 그의 그 뛰어난 변재를 제압할 이가 없다.
그 지혜의 명달한 것도 이와 같으니라.
時(시)에 二比丘疑悔卽除(이비구의회즉제)하야,
그 때에 두 비구가 의혹과 뉘우침을 곧 제해버리고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하고,作是願言(작시원언)하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고 이러한 발원을 하되
令一切衆生(영일체중생)으로, 皆得是辯(개득시변)일세, 다 이 辯才(변재)를,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이와 같이 뛰어난 변재를. 변재는 지혜가 있어야 나오는 것이지,
지혜 없이 나오는 것은 변재라고 하지 않습니다.
皆得是辯일세 故我不任詣彼問疾(고아불임예피문질)이니다.
그러므로 저로서는 도저히 그 분에게 가서 문병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