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부처님오신날 단상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데카르트는 철학사의 무대를 장식하는 유명한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에게, 생각하는 나는 엄연한 실체로서 존재합니다. 곧 변함 없이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본체입니다. 순서에 따라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정신과 육체는 같은가 다른가? 당연히 이 질문 속에도 ‘정신’이 생각하는 실체로서 전제되어 있고, 정신과 육체는 별개의 실체로 정립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에 부딪칩니다. 데카르트가 생각해낸 것과 같은 '생각하는 나'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그것이 본체로서 존재한다면 불교의 무아론, 또는 대승불교의 공사상과 양립가능한가?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와 인도 베단따 철학자 샹까라(akara, 8세기)의 ‘아뜨만’이 기묘하게도 마치 쌍둥이같이 닮은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입니다. 함께 비교해보지요.
샹까라의 저서 〈우빠데샤 사하스리〉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나옵니다.
한 제자에게 스승은 이렇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제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저는 육체와는 별개의 것입니다. 육체는 태어났다가는 죽으며, 새가 먹어치우거나 흙으로 돌아가며, 칼이나 불에 상하고 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저는 제가 저지른 선악의 업 때문에 새가 집으로 들어오듯이 이 육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육체가 스러지면 또 다시 선악의 업으로 인해 다른 육체 안으로 들어가겠지요. 마치 새가, 전에 살던 집이 부서지면 다른 집으로 옮겨가듯이. 이렇게 저는 시작도 끝도 없는 윤회의 와중에 있습니다.
제 자신의 업 때문에 신·동물·인간·아귀 상태를 전전하며 한 번 얻은 육체를 차례로 버리면서 되풀이해서 새로운 육체를 획득했습니다. 제 자신의 업 때문에 물레방아같이 그칠 새 없는 생사의 바퀴에 꿰어 돌면서 금생의 육체를 획득하고 나서 저는 윤회의 바퀴를 전전하는 데 지쳐버렸습니다. 윤회의 바퀴를 전전하는 일을 그치기 위해서 저는 당신께 입문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영원하며 육체와는 별개의 것입니다. 사람들이 걸치는 옷과 같이 육체는 왔다 갔다 합니다.”
‘정신’이니 ‘아뜨만’이니 표현이야 다르지만 영혼과 같은 본체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와 샹까라는 친형제 같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샹까라의 말을 들어볼까요? 샹까라는 〈브르하드아라니야까 우빠니샤드〉의 한 구절을 원용하여 ‘아뜨만’에 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남이 그(의 모습)을 볼 수는 없으나 그 자신은 보고 있는 자이며, 마찬가지로 남이 (그의 소리를) 들을 수는 없으나 그 자신은 듣고 있는 자이며, 남이 (그에 관해서) 생각할 수는 없으나 그 자신은 ‘생각하고 있는 자’이며, 남이 (그를) 식별해낼 수는 없으나 그 자신은 식별하고 있는 자입니다.”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가 여기에서도 얼굴을 내밀고 있군요. 〈아함경〉에도 유사한 문답이 나옵니다. “영혼과 육체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부처님은 이 질문에 대해서 ‘불기(不記)’, 같다 다르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은 것은 질문을 한 상대편이 지독한 본질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곧 존재하지도 않는 영혼을 놓고 그것이 육체와 같다 다르다 어느 쪽으로도 말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어찌 대답하든 상대편의 본체론적 세계관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택한 방식이 ‘불기(不記)’였던 것이지요.
데카르트나 샹까라의 대답과 사뭇 다르지요? 현상적 존재에 본체가 없음. 이것이 공사상에서 바라본 존재 세계의 실상이고, 바로 이 점 때문에 본질주의자와 공사상가는 서로 다른 길을 갑니다. 공사상의 입장에서 보면, 데카르트나 샹까라는 본질주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알맹이는 여전히 데카르트주의, 샹까라주의인 갖가지 사상, 종교가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전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곰씹어보는 까닭입니다.
■ 이종철 교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 동경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도 Mysore대학 연구원과 중국 북경대 교환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로 재직중이며, 전공은 불교철학(구사, 유식)이고 ‘인도불교와 동아시아불교의 비교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