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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행
정현수
난 그들에게 도리 없이 이방인이 돼 버렸다.
생각지 못한, 이상하게 변화하는 환경(현실) 속에 나만이 외톨이가 된 듯 허둥대는 모습이다. 싱숭생숭 마음은 심란하고 갈팡질팡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찌뿌데한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안정이 안 되는 가지가지의 생각은 나를 나른하게 하는 혼미에 빠트린 듯 어떤 것에서도 자유스러워질 수가 없다. 나는 이 모든 게 시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왜 이리 내 주위에선 맹랑한 일이 자주 맴돌까? 마뜩지 않은 그들이 밉다. 뻔뻔스럽고 어정쩡하게 말장난하는 그들이 싫다. 굳이 말 싸움할 필요 없이 돌아서는 내가 더 미워진다. 이 모든 걸 꼬깃꼬깃 꾸겨서 어디론가 가 내동댕이 치고 오자.
70 년대 말 황지에 있을 땐가? 그리고 친구 K와 함께 96 년 거제도 여행 때 지나가 듯 두 번을 방문한 부산은 다시 한 번 꼭 가고 싶은 여행지였다. 급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 옹골찬 그곳은 나에겐 항상 꼭 보고 싶은 아쉬움이었다. 원래 부산 여행을 봄에 계획했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지금이 기회다 싶어 떠난 여행이다. 여행이란 지나는 곳곳을 샅샅이 음미하고 제대로 즐겨야 하는데 부산 도심 속의 여행은 고독과 씁쓸함이 더해 여행 내내 희열을 맛본 적은 별로 없었고 실감하지 못한 피곤한 스토리텔링이 된듯하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부산 사람들의 마음씨였다. 그들은 성의가 대단했고 미소 깊은 친절은 촌구석의 미움을 상쇄하는 듯했다. 내 물음에 적극적인 그들의 호응은 오랜만에 맛본 꾸밈없고 자연스레 맛 낸 그들 본질의 양념 같은 것이었다. 3박 4일을 예정으로 권역별로 여행 계획을 구성했다. 숙소는 다행히 지인이 광안리 근처에 잡아주어 그곳을 본거지로 여행 계획을 짰고 내 계획과 별 상이 없는 여행이 될 수 있었다.
첫째 날.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해 청주 오송역에서 탄 KTX는 두 시간여를 달려 부산역에 도착해 숙소에 왔을 때는 4 시가 지나 있었다. 알뜰한 여행을 위해 배낭을 풀고 바로 이기대행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려 서울 우면산 올라갈 정도의 경사에 그만큼의 시간이 걸려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어스름이 막 다다라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광안 대교에 낙조의 빛이 서리고 있었다. 광안리 해수욕장과 대교의 어울림이 도시와 조화가 되어 지나가버린 한 여름의 안쓰러움과 여운을 남기 듯 쓸쓸한 풍경으로 남아 있었다. 그곳 벤치에 앉아 붉어지는 바다를 보며 저 도시 안에서 평범하고 무탈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그 속에서 안주하고 적당히 친구도 만나며 저녁이면 삼겹살집에서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세상사의 뒷이야기를 하거나 때론 헐뜯으며 궁상맞은 삶을 사는 것도 외로움도 잊고 허전함을 달랠 수 있을 텐데…… 한데 나는?
어두움은 완전히 내려 초행인 나를 당혹케 했다. 이 오솔길이 내가 올라왔던 저 오솔길 같았다. 길을 잃고 무작정 내려가고 있을 때 한 사람을 만났다. 그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는 친절하게도 그가 왔던 길을 거슬러 다시 돌아가 오솔길 삼거리에서 이 길로 다른 길로 빠지지 말고 죽 가면 내가 타고 왔던 경동 APT 앞 9번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신신 당부하듯 말했다. 참 고마운 분이다. 한참을 다시 돌아가 길을 안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결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요즈음 세상에 경험하기 어려운 친절이었다. 뭐든 쉽게 생각하고 어려운 건 신경 쓰지 않으려는 것이 요즈음 세태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억지로 꾸민 것도 아니었고 나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한 것도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그의 삶을 항상 새롭게 다질려는 그의 노력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오륙도 선착장까지 걸을 예정이었는데……
네온 찬란한 광안리 해변 야경과 그럴듯한 광안 대교 조명은 어느 잡지에서 본 듯한 외국의 부르주아 풍경을 연상하는 것 같았다. 바닷가 특유의 비릿한 내음은 내 코를 자극했지만 깨끗하다 못해 티 하나 없는 백사장은 가끔 TV 광고에서 보던 어느 남쪽 나라 휴양지 같았다. 일렬로 잘 정돈된 초가 파라솔, 부드러운 모래 위에 잔잔히 스미는 작은 물결, 울긋불긋 네온에 반짝이는 낭만, 그곳에서 연인들은 그들의 연애사를 쓰고 있었다.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은 거기에 있다. 흘깃 보는 내 눈에 그들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저녁은 근처 횟집에서 회덮밥을 먹었다. 부산 바닷가 인심인지 예쁜 아줌마가 여분의 해물 부속 음식과 생선 매운탕에 공깃밥도 한 그릇 더 가져다주는 넉넉함에 후한 정을 읽을 수가 있었다.
둘째 날.
숙소에서 버스로 한 20여 분 이동했나? 해운대 모래사장이다. 철 지난 해운대 비치에 모래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백사장 모래를 만끽하며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다. 흐름이 잔잔한 파도에서 서핑을 배우며 즐기는 학생들, 단채 관광인 듯 햇볕이 뜨거워 양산을 받쳐 든 중년의 아낙들,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듯 신발을 벗은 채 파도가 이는 물가를 거니는 연인들, 나 같이 하릴없이 방황하며 서성이는 영혼들, 모두가 지금 그곳에 있는 듯했다. 과히 우리나라 최고의 비치 명소의 하나인 건 분명하다. 어정쩡한 보헤미안은 그만하고 계획대로 해동 용궁사까지 걸어야 한다. 가야 할 북 쪽을 바라보니 집들이 빼곡히 들어 찬 산동네가 보인다. 해변 길을 찾는데 수월하다 싶어 관광 안내소에 들어가 길 사정을 확인했다. 아까 보았던 북 쪽 언덕이 달맞이 언덕이란다. 그 언덕 날맹이 아래에 해변가로 계속 이어지는, 지금은 끊어진 기찻길이 있다 한다. 가만히 기억해 보니 옛날 처음 부산에 왔을 때 타 봤던 동해 남부선 철도 길이다.
달맞이 언덕에서 보는 풍경은 바다에서 뜨는 보름달과 일렁이는 파도의 조화로운 풍광이 창파(滄波)라 할 정도로 아름답다 한다. 또 달맞이 길이라는 문텐로드가 조성되어 있고 주위엔 예쁜 카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보름달이 뜰 때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어울리는 명소다. 둥근달 뜨는 밤, 여기서 사랑 고백을 하면 연인들 서로의 삶이 항상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하는 숨 막히는 사랑이 영원할 것이다. 감동과 설렘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 다시 내려와 철길을 걷는다. 폐쇄된 기찻길은 초가을 이글거리는 태양에 무뚝뚝하게 늘어 저 있다. 기찻길은 극히 철학적인 길이다. 사색(思索)의 길이고 한없이 맞닿지 않는 길이다. 미련의 길이며 가까이 갈수록 멀어지는 길이다. 그러나 손 뻗으면 닿는 길, 결국 어디에선가 만나는 길이다. 어쩌면 그 길은 시작과 끝이 함께 있는 길일 수도 있다.
기찻길 옆 벤치에 앉아 궁금했던 휴대폰을 열어봤다. 미국 프로야구 디비전 시리즈가 한창이다. 추신수는 3 안타를 쳤는데 텍사스는 결국 저버렸다. 그러나 귓속의 이어폰에서는 파도 소리와 어울리게 삼손과 델릴라 中 아리아가 짙은 감성으로 애잔하게 들려온다. 멀리 하얀 등대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일러줄 듯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도 외로워 보인다. 이 모든 동시의 교감은 서로 어울려 나한테 전해온다.
작은 어촌인 청사포 테트라포드 방파제는 우리의 꿈과 비전을 방해하듯 을씨년스럽게 제멋대로다. 퉁명스럽게 울퉁불퉁하다. 시야를 가려 바다는 보이지 않고 사뭇 인위적이고 계산적이다. 그런지 몰라도 카페의 아메리카노는 4100 원이다. 한적한 곳이라 월세도 많이 안 낼 텐데 너무 비싸다. 또 백 원은 왜? 분명 종이컵 값 일 텐데 난 앉아 쉬기 위해서 머그 컵 주문을 했는데도 백 원은 돌려주지 않는다. 젊은 아가씨의 싸늘한 대응이 언짢았다. 작은 것에 좀 더 신경 써주는 배려가 필요했다. 꽁지 문(교미하는) 고추잠자리가 조금은 심란했던 기분을 눙치게 한다. 송정해수욕장 입구 전 녹색 철망 울타리에 삐딱하게 걸린 출입 금지 표지판, 녹슨 자전거가 철망 담에 기대어 서 있다. 아마 누군가가 부러 연출을 위해 놓은 듯한데 선명한 지난날의 자국을 남겨 놓은 것 같은 미련으로 보여 주위 환경과 잘 어울렸다. 송정해수욕장 앞 식당에서 오랜만에 먹은 대구탕은 깔끔한 반찬과 함께 고소한 일미였다. 6000 원, 싸기도 했지만 부족한 것 있으면 말하라는 아줌마의 표정이 따뜻하게 느껴지고 포근한 인심을 먹은 듯했다. 해안가 도로에서 잠깐 벗어나 해운대 구(區)와 기장군 경계에 이르렀다. 막 개발되는 곳인 듯 도로변에 세련된 빈 빌딩이 즐비한 가운데 어느 식당의 초가지붕과 키가 작은 탱자나무 울타리가 이채로웠다. 도보 여행을 웬만큼 다녀 길 찾는 데는 도사가 다 됐다. 멀리서 보고 저기에 길이 있을 거라 짐작하면 꼭 길이 있다. 가파른 길을 돌아 산 밑에 도달하니 해파랑길 표시가 나무에 묶여 있다. 강원도에서 많이 보던 표시다. 본격적 용궁사로 가는 숲 오솔길이다. 오솔길의 널브러진 낙엽 밟는 바삭거림의 소리는 정적에 싸인 숲 속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이다. 떡갈나무와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산자락 오솔길에 구절초와 감국, 산국이 드문드문 보이고 청미래덩굴이 보기 좋게 늘어 저 산자락의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다. 장식용으로 그만인 빨간 멍게(청미래) 열매는 누군가 다 꺾어간 듯 색이 바랜 허접한 것만 보인다. 국방부의 텃세도 보인다. 국방부라는 글씨를 새긴 노란 페인트칠을 한 경계석이 오솔길의 운치를 해친다. 드디어 해동용궁사에 도착했다. 내가 본 용궁사는 그야말로 요지경 세상이다. 좁은 듯한 절간에 사람들은 물론 교통안전 조형 탑 등 조형물과 부처님, 보살 등이 빼곡했다. 그곳 여기저기엔 보시를 위해 어울리는 화상(和尙)과 보살들은 손 때가 묻어 관록(?)을 자랑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불교에 대한 존경, 경외와 경탄은 저 멀리에 있는 듯했다. 같은 관음보살 사찰이고 분위기가 비슷한 강원도 현남에 있는 휴휴암도 그렇게 요란한 곳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면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애써 보려고 하지 않고 겉의 그럴싸한 모습에 관심이 있는 듯 흠모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유명 사찰 어딜 가도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냥 돈을 써야만 하는 관광 명소일 뿐이다.
7 분 정도 걸어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탄 나는 세상의 이기(利器)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송정 해수욕장에서 50여 분을 걸어왔는데 버스로 단 2 분도 안돼 송정을 지나가고 있었다. 해운대에서 다시 내려 곧바로 동백 섬으로 향했다. 갈맷길 코스인 섬 산책로는 바다를 끼고 아기자기하게 이어 저 안정감이 있다. 길 옆에는 차 나무인 사스레피 나무가 차향을 내 품 듯 차분하게 나그네와 같이 하고 높낮음의 계단길은 다양한 인생을 경험한 심오(深奧) 같았다. 첫 번째 만난 것이 인어상이다. 인어 나라 미란다국에서 온 황옥공주가 떠나온 고국을 잊지 못해 달 뜨는 밤에 슬픈 마음을 달랬던 전설이 있는 곳이라 한다. 파도치는 암석 위에 조형된 인어상의 자태는 그녀의 그리움과 아픔을 공감하게 하는 듯했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는 것 같았다. 계단 길을 벗어나 섬 일주 도로 길에서 보는 누리마루 에이펙 하우스는 나에겐 별 감흥은 없었다. 최치원 동상에 들른 뒤 해지는 석양을 보기 위해 바닷가 전망대로 다시 갔다. 부산은 해와 달의 고장인 것 같다. 기장 쪽에서는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고 달맞이 언덕에선 바다 위에 떠 있는 달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동백 섬에서는 해가 지는 석양을 볼 수 있으니 부산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저 멀리 오륙도 쪽으로 넘어가는 검붉은 태양은 또 한 편의 서사시다. 지는 석양이 바다에 비쳐 황홀하고 신비롭게 빛과 그림자로 애틋한 목가적 풍경을 만들어 놓는다. 관광객 모두가 서쪽을 바라보며 감탄사가 연발이고 셔터를 눌러대느라 분주하다. 다시 내려와 백사장 길을 걷는다. 해운대 야경은 어제 본 광안리 야경에 비해 화려하지 않고 그냥 소박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 낭만을 즐기고 있다. 지금 저 군중 속에는 진실한 사랑 고백을 하는 숨 막히는 떨림도 있을 거고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 주는 사랑의 입김도 있을 거다. 또 서로에게 스미는 감미로운 터치, 혹 견디기 어려운 심각한 이별도 있을 게다. 그들은 그들의 애환(哀歡)의 삶을 눈빛으로 교감하고 기쁨과 아픔을 받아들여 서로 공감, 공생할 것이다. 해변가 광고판에 재미있고도 씁쓸한 문구와 그림이 눈길을 끈다. 경찰 관복과 사복을 입은 배우 네 사람이 백사장을 내려보고 있다. 그 밑에는 "몰카 촬영 금지 사복경찰 잠복 중"이라는 네온사인 글씨가 반짝이고 있다. 저녁을 먹기 위해 해운대 식당 골목에서 벼르던 돼지 국밥을 먹었는데 생각만큼 맛은 별로였다. 5000원, 싸서 그런가?
셋째 날.
오늘은 도심 여행이다. 태종대를 먼저 들르고 자갈치 시장, 용두산 공원, 남포동 일대 국제 시장과 책방 골목, 그리고 감천 마을과 저녁에는 서면에서 방황할 예정이다. 부산 사람들의 겨울 그리움은 남다르다. 한 겨울에도 눈을 보기 어렵다는 그곳 사람들의 옷차림은 두툼한 항공 점퍼나 등산 재킷, 또 어떤 이는 빨간 털 스웨터에 목도리를 둘렀다. 대부분 한 겨울옷차림이다. 좀 덥지 않을까 염려되지만 세련돼 보인다. 출근 시간의 버스 안 아침 풍경이다.
태종대는 부산의 대표적 명소인지라 올라가는 순환 도로 길은 쾌적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본격적 낙엽이 떨어질 때 흩날리는 낙엽과 황량한 오르막길 그림이 쓸쓸히 그려진다. 다누비 관광열차는 걸어서 거의 30여 분 올라가야 하는 등대까지 운용하고 있지만 나는 부지런히 걸어 등대 입구에 도착했다. 그때까지 관광열차는 오지 않았다. 전망대에서 보는 드넓은 바다 풍경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내 마음의 호수이며 고요의 정서다. 보고도 느낄 수 없는(?) 묘한 감촉 같은 것이었다. 저 건너 그리움의 향수(鄕愁)였다. 평화로운 풍경은 신비로웠고 펼쳐진 침묵의 광활은 놀라움이었다. 풍경을 바라보는 픽션(현실)은 나에겐 생소한 형태의 막연한 것인 듯 모든 게 낯설어지고 내가 추레하게 느껴졌다. 오래전 바다 건너 저편에서 나를 떠나버린 내 딸아이가 너무 보고 싶다. 저 밑 넓고 평평한 신선대가 보이고 건너 망부석이 허무한 느낌으로 서 있다. 도리 없이 가버린 이에 대한 그리움이 한이 돼 고통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절규는 먼 수평선 저 끝까지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분명 그녀의 외침이 승화되어 지아비 마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하나의 형상은 하나의 필연으로 이어가 거기 그 자리에 망부석이 되어 이제는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서 있다. 일정상 저곳 가까이 가지 못한 게 아쉬웠다. 다시 한번 올 기회가 있다면 관광 유람선을 타고 신선대와 망부석에 먼저 들려 다시 그리움에 젖어 볼 참이다. 내려오면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천천히 걷고 있는데 지나가는 여자가 영상 통화를 하고 있다.
"자기가 여기 없으니 너무 쓸쓸해"
수 십 년 만에 온 자갈치 시장은 예스러움은 사라지고 실용화된 구조에 조금은 어설픈 모습이다. 내 기억으론 꽤 큰 시장에 즐비하게 좌판이 늘어 저 긴 의자 등이 있어 앉아서 회와 술을 먹을 수 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앉을 수 있는 긴 나무 의자는 없고 시장 자체가 좁은 듯 보였다. 그냥 시장 분위기 그대로다. 그때는 호객하는 상냥스러움이 살며시 다가오는 교태였는데 지금은 사뭇 사무적이다. 나는 그때 모녀가 운영하는 한 좌판에서 가볍게 한 잔 하며 회를 먹었고 아주머니 허락하에 그분 따님과 광복동에서 커피도 마시며 데이트도 했었다. 그때 추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며 억지웃음이 나온다. 점심은 생선구이를 먹었다. 작은 전어 3 마리와 갈치 2 토막, 한데 1 인 손님은 푸대접이다. 찍어 먹을 수 있는 간장 종발도, 마실 물도 주지 않는다. 여러 테이블에서는 관광 온 손님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친정(親庭) 모녀 사이나 시댁 고부간(姑婦間) 사이인 것 같다. 식사 내내 여기저기에서 서로 챙겨주는 애틋한 모습이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대충 순서를 잡기 위해 노점 박스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쥔장에게 길 찾는 거나 궁금한 것에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여러 손님들을 응대하면서 내 궁금에 성의를 다해 대답해 주었다.
세상에! 난 처음으로 산을 오르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아마 용두산 공원에 노인들이 많이 찾는 데에 대한 배려인 것 같다. 공원 뒤편에 잘 채워 저 있는 사랑의 자물쇠는 많은 사연과 함께 그 자리에 있다. 부산 타워에서 바라보는 영도다리 풍경은 장관이다. 오밀조밀한 건물들과 녹색 바다, 그 위에 물방개 유영하듯 느리게 미끄러져 이동하는 배들이 아득하다. 타워에서 보는 그 도시는 다양한 모습이었다. 짐작건대 타워에서 밤에 보는 부산 야경은 변화무쌍하고 뭔가 꾸준히 추구하는 컬트적 색깔을 지녔을 것이다. 언젠가 밤에 와 타워에서 꼭 부산 야경을 보고 싶다.
공원 아래(용두산 올라가는 입구) 중앙성당이 보인다. 여행지 어딜 가나 꼭 한 번씩 만나는 성당이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혹시 은연중에 감추고 있던 내재적 덜 익은 생각 혹은 보편적 가치에서 벗어난 욕심, 혹은 불만, 최근에 겪은 황당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 등에서 묵상해 본다.
용두산 공원에서 걸어서 7,8 분 거리인 보수동 책방 골목은 실망이다. 내가 가 본 서울 청계천이나 대전 중앙시장 헌책방(내 오래전 기억으로 책을 무게로 파는 곳) 골목 보다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우선 책이 비싸다. 나는 몇 권의 책을 사 택배로 부칠 예정이었는데 그걸 포기했다. 내가 보기에 분명 신간도 아니고 색이 바래 누런데 새책이라며 완고하게 우긴다. 첫 집에서 실망이니 더 지체할 수 없다. 환할 때 감천마을을 다녀와야 한다.
감천 문화 마을.
저길 깊이 있게 보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우리가 사물을 깊게 관조해서 볼 때 그 형태가 새로이 해석이 돼 눈에 비치 듯 마치 오래된 연극 마당 같은 곳이다. 쉼표가 있는, 수수하고 깊은 맛이 나는, 한 편 우리의 아픔을 받아주는 그런 마을 같았다. 산자락 미로 같은 골목길이 계단으로 이어 저 있고 그곳 여기저기에 미술 프로젝트를 접목해 독특한 문화 마을로 만들어졌다.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 그냥 모든 게 소박해 보이고 특히 관광객들이 마치 무대 속의 연극배우인 양 이러쿵저러쿵하며 부산했고 때론 진지하게 빠져드는 연극 무대 같았다. 요소요소의 그런 콘셉트는 절묘한 타이밍이었고 바삐 움직이는 모습들이 익사이팅했다. 그리고 한 편 아련하고도 서정적인 모습도 보였다. 숨바꼭질하는 그림은 내 어릴 때를 추억케 했고 어린 왕자와 만남은 3 시와 4 시 사이의 설렘이었다. 작가들의 설치 미술은 인위적 빛으로 비치는 어떤 공명 속에서 또 다른 나를 찾게 한다. 나는 우주의 고아처럼 느껴졌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생각케 한다. 천덕수 우물은 휴먼을 상기시키고 북 카페는 마냥 쉬고 싶은 안식처 같았다. 성냥갑 같은 부산의 마추픽추는 내가 추구하는 조용하고도 무엇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고향 같았다. 잉어 안내판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다니는 감천 문화 마을은 조금은 험난하지만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여행지였다. 다시 국제시장으로 돌아온 나는 먹거리를 대표하는 이곳에 이른 저녁이라 눈요기에 그치고 시장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었다. 옷 가게 상인들의 외침은 능숙했고 음식점 쥔장들은 관계없는 사람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원래 전쟁 中 미 구호물자나 군용품을 몰래 빼내 팔던 곳인데 지금은 거의 먹거리 시장으로 변해 있다. 밀면과 당면이 유명하다 한다. 국제시장은 정감이 가득한 오래전 향수가 물씬 나는 곳이다. 그곳을 빠져나와 남포동 번화가로 향했다. 팔팔한 젊은 생기에 섞여 광복동까지 걸어 볼 참이다. 그곳까지 걸어가 그 옛날 자갈치 시장 아가씨와 커피를 마셨던 건물이 지금도 있나 기억해 찾아보고 싶다. 터키인으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다. 두 여고생이 시시덕 거리며 터키 청년과 실랑이를 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줄듯 말듯하며 약을 올리고 있다. 곧 아이스크림은 통에 떨어져 덤이 붙어 나오고 그 실랑이는 한동안 계속되고 결국 우아한 인사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건넨다. 그 청년은 자기 나라 정서대로 온 마음을 다해 차분하게 자기 할 일을 다하고 있고, 또 그 학생들은 그 행위가 신기하고 색다른 듯 재미있어하는 모습이다. 엿 판을 리어카에 실은 노인은 리어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가락에 머리를 흔들며 신명 나 있다. 장사가 되든 안되든 상관없이 흥얼거리며 어깨를 들썩인다. 양말 장수 리어카에는 유럽인인 듯한 사람이 양말을 고르고 있는데 내 눈에 양말 목 한 짝, 한 짝에 '잤더니 못난 놈'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예의나 배려가 깊은 서양인의 정서로 볼 때 그가 우리말을 이해한다면 일종의 조크가 아닌 섹시 어필한 무례로 볼 건 뻔하다. 한마디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상술의 못난 극치다. 좌우간 남포동 밤거리는 화려하고 여러 사연을 가진 듯 엉뚱 발랄하다. 광복동 그 다방은 흔적조차 사라지고 없다. 아마 건물을 새로 올렸는 듯 찾을 수가 없다. 그때의 추억이 바래지 않고 아직까지 내 맘속에 있다는 건 조금은 바보스럽다. 그러나 그런 꿈속의 기억들을 추구하는 내가 천진해(?) 자랑스럽고 흐뭇하다. 서면 밤거리는 서울 강남의 어느 거리와 흡사해 보인다. 도로변 건물 네온은 화려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활기차 보인다. 삶의 몸부림은 인간의 활동 중의 하나라 하지만 지금 여기 이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내쳐버리고 또 다른 휴식을 위해 참신한 연결고리를 찾고 있다. 어느 사람은 서면 뒷골목 술집에서 하루의 피곤을 달래고 연인들은 멋진 카페에서 눈길을 마주하고 있다. 약속 장소에 만나는 어느 셀러리 맨들은 호탕하게 웃으며 부산 사투리 맛으로 소리친다.
"야! 우리 친구 아이가"
조금 늦어서 하는 말인지 몰라도 그들 친구 간의 호연지기가 부럽다. 서면 밤거리를 헤매던 나는 내렸던 지하철역으로 다시 돌아와 저녁을 먹기 위해 서면 시장으로 가 밖에서 보기에 사람들이 제일 많은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해운대에서 한 번 먹어 본 돼지 국밥이다. 식탁마다 손님들이 들어찬 게 유명 식당인가? 6000 원, 해운대보다 1000원이 비싸지만 맛은 꽤 괜찮다.
넷째 날.
둘째 날 저녁에 휴대폰으로 예약한 돌아가는 KTX는 내 실수로 10 시 30 분에 출발하는 차를 예약했다. 얼핏 볼 때 도착 시간인 12 시 30분을 출발 시간으로 보았다. 참 멍청한 짓거리다. 원래 차 타기 전 오전에 을숙도 생태공원과 시간이 남으면 아미산 전망대에 가 볼 참이었는데 수포로 돌아갔다. 다음 기회를 바라볼 수밖에……
나는 이번 부산 여행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내가 그것들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에서 내 감정을 대입해 봤다. 어떤 것은 몸을 움츠릴 정도의 답답함도 있었지만 대부분 모든 것에서 벗어나 진정 내가 추구하는 자유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나 혼자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누가 거저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 존경하고 배려함으로 자연스레 생성된 것이다. 그것은 상호 노력일 수 있다. 그 노력은 무의미가 아니다. 헛된 노력도 더더욱 아니다. 분명 참신하고 중요한 경험인 것이다. 서로 노력할 수 있는 만큼의 가치는 중요한 것이다. 내가 곳곳에서 도움을 청할 때 스스럼없는 그들의 도움은 곧장 다가와서 행하는 선의였고 조건 없는 착한 반사(反射)였다. 어정쩡하고 심란한 일상에서 벗어나 청량감을 맛보게 한 더불어 사는 공생인 것이다. 나는 솔직히 내가 지금 사는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번 여행을 통해 내년 6 월까지 유예기간을 가질 예정이다. 다시 시작해 그들이(부산 사람들) 보여 준 성의를 나도 이곳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여행 때 주로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다녔다. 그러니 땀이 옷 안에서 젖어 여행 끝날 즈음 감기 기운이 있었다. 돌아와 몸살까지 겹쳐 꼬박 열흘을 앓았다. 수 십 년 만에 경험한 최악의 상태였다.
2015. 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