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꽃과 나무를 키우기 시작한 것을 얘기하려면 신혼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처가에서 동양란 몇 수를 분양받아 키우기 시작 한 것을 시초로, 승진 시 가끔 집으로 배송된 축하 난이 끼어들기도 했다.
난은 게을러야 잘 키운다고 한다. 너무 물을 자주 주면 안 된다는 소리다. 내 경우 그런대로 많이 안 죽이고 키워왔다고 자부하지만 난 키우기는 정말 힘들다. 나는 달력에 보름 간격으로 물주는 날을 표시하고, 정해진 날에 물을 주면서 키웠다.
물주기 외에 하는 일 이라고는 해 걸러 분갈이 하면서 죽은 뿌리 제거하고 크게 자란 놈은 둘로 나눠 심기도 하여 난 화분은 그 수를 더해 가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었다.
일 년에 한번 꽃대가 올라오고, 손톱만한 꽃에서 내뿜는 향기는 진하다.
# 청계산 남쪽 옛골 자락에 자리 잡은 신구대 식물원은 규모는 크지 않으나, 잘 가꾸어진 식물원이다. 계절 따라 다른 꽃이 피어나고, 야생식물, 습지식물등이 골고루 갖춰져 있다. 또한 접근성이 좋아 어린 학생들 특히 유치원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10여 년 전 여기서 운영하는 조경가든대학을 졸업하면서 녹보수 한 그루를 졸업 선물로 받아 집에서 처음으로 나무를 키우기 시작했다. 덩치가 큰 나무를 집에 들이고 나니 물주기에 신경이 쓰인다. 대부분의 식물은 겉흙이 말랐을 때 물을 흠뻑 주라는데, 한 두 달 키우다 보면 요령도 생기게 마련이다.
# 나무에 대한 관심은 꽃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가끔 양재 꽃시장에 나가 본다.
한 바퀴 돌아 나올 때는 뭔가 손에 쥐어져 있다. 처음에는 화사한 일년초를 키웠으나, 이듬해부터는 구근식물 위주로 손이 갔다. 겨울 월동만 잘하면 다음 해에도 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일회용 화분은 버리고 알맞은 크기의 화분으로 갈아 준다.
처음에는 화분을 일일이 사서 썼는데 화분 값도 만만치 않다. 혹시나 하여 아파트 주위를 이리저리 돌아본다. 의외로 버린 화분을 쉽게 발견 할 수 있어 그 후부터 쓸 만한 화분을 보면 주어 오게 된다.
# 아파트 동 대표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턱에 동네에서 터줏대감이 되었다. 아파트 일에는 한 치의 관심도 두지 않다가 몇 년 전 주변의 권유로 선거에 나가 동 대표가 되었다. 천 세대가 넘는 단지인 만큼 일 년 간 수입과 지출을 보며 중소기업은 넘는 규모이다 보니 아파트 부정도 괜한 소리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뜬금없이 동 대표 얘기를 꺼낸 것은 나무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나야 미련퉁이라 한 곳에 30년을 엉덩이 부치고 살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쉽게도 이사를 다닌다. 이사를 가면서 많이들 버리고 가는 것이 덩치 큰 화분이다. 그런데 그 중에는 제법 쓸 만한 나무도 있다.
터줏대감에다 동 대표라는 직함까지 더했으니 일종의 신 권력이 탄생 한 것일까.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경비 아저씨들이 더 살갑게 대해 주면서 버리고 간 나무 중 좋은 것은 가장 먼저 내게 선택권이 주어지곤 했다.
# 벤자민, 해피트리, 감귤나무
경비아저씨의 선처로 들여온 나무들로 벤자민과 해피트리는 실내에서 가징 많이 키우는 나무들이다. 제일 먼저 들어온 벤자민은 깍지벌레로 고생은 했지만 그동안 새 줄기와 잎을 돋우며 많이 자라 거실에 푸르름을 더 해주고 있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오면 해피하며 맞아주던 해피나무가 올 초부터 시들시들 잎이 떨어지곤 해서 보다 못해 경비실 옆 화단으로 피접을 보냈다.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오는데, 경비실 옆에 엄청 큰 화분이 하나 놓여있다. 감귤나무다. 아저씨는 드나드는 사람마다 군침을 삼킨다며 빨리 들여가란다. 옆 줄 경비까지 불러 셋이서 힘들게 집으로 옮겼다. 갈지자로 뻗은 고목나무 줄기에 적당히 달린 나뭇잎, 동양화 한 폭이다. 봄이면 손톱만한 하얀 꽃에서 내뿜는 향기가 집 안을 맴 돌고, 꽃이 지면 초록 열매가 맺기 시작한다.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을 보내면서 창가 햇빛을 듬뿍 받고 자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가지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 해 고개를 숙인다. 늦은 봄, 식탁에 오른 무공해 감귤(낑깡)이 새콤달콤하다.
# 벵갈고무나무
헤피트리가 실려나간 빈자리를 벵갈고무나무로 채웠다.
수서역 화원에서 최근 들인 것인데 잎새 마다 노란색, 연두색, 초록색등이 각기 또는 같이 어우러져 관상수로 볼 만 하다. 미세먼지도 잘 잡는다고 한다.
# 꽃나무들
연이어 두 해를 꽃 피우던 제라늄이 잎은 보잘 것 없게 되고 줄기만 무성해져, 올 봄 새 것을 들였다. 모종 3개를 두 화분에 옮겨 심었는데 경쟁하듯 올라오는 꽃대에서 붉은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지난겨울 월동한 수국은 새로 돋아난 줄기에서 보랏빛 꽃잎이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사계절 붉은 꽃을 피우는 기린초는 일 년 사이 키가 엄청 컸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들여온 포인세티아는 붉은 잎을 다 지우고 돌아 올 크리스마스를 기약하며 잘 자라주고 있다.
# 식물지능
지구에 최초로 탄생한 종은 식물이다. 또한 지구에서 가장 많은 개체를 자랑하는 것도 식물이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식물 없이 살아 갈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죽음을 두려워 않는 식물에도 지능이 존재할까?
식물은 지각능력을 갖고 있고, 서로 의사소통도 하며, 잠도 자고, 기억을 하며, 심지어 다른 종을 조종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렇듯 식물은 세상과 소통하는 지능을 가진 생명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꽃과 나무를 키우다 보면 이들에게 보여주는 관심이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가끔 물수건으로 잎을 닦아주고 하는 것을 저들은 느끼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ps : 나무박사 박찬홍형 앞에서 주제 넘는 소리 많이 했네요.
첫댓글 집안에 화초, 나무 키우는 사람 보면 부러워요. 직장 친구 한명도 집안 곳곳에 화분을 쌓아놓고 키우는데 정성이 대단하지만 좋아 보였어요. 그 친구가 예전 내 일하던 곳에 와 보더니 당시 축하화분이 좀 있었는데 포장지까지 안뜯었다고 되게 나무랐어요. 얼굴이 화끈해져 살펴보니 정말 회사 곳곳에 포장지가 지저분하게 붙어있는 화분이 누가 물을 주는지 안주는지 모르고 아무도 신경 안쓰고 방치되어 일부는 죽어가고 있어 그 때부터 관상수에 관심을 가져보았지요. 관상수 이름도 찾아보고 특징이나 관리하는 법도 알게 되어 흥미를 느꼈었는데 그 이후에는 별 기회가 없어 멀어졌어요. 하여튼 고급 취미입니다. 아주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