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느곳에선가 보고 다운받아놓았는데 출처를 잘 모르겠군요. 제가 관심있는 부분은 순수학문입니다. 문제에 대한 답이 될런지 모르겠지만 그냥 참고하세요.
주역 - 점쟁이와 철학자 주역이라는 책
이번에는 주역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전에 우선 잘 알려진 퀴즈 하나를 내겠습니다.
세 사람의 나그네가 밤늦게 여인숙을 찾았습니다. 이 여인숙의 하룻밤 숙박비는 3000원이어서 이들은 한 사람이 1000원씩 냈습니다. 너무 늦게 도착한 이들은 이 여인숙에서 마지막 남은 제일 나쁜 방에 들수밖에 없었습니다. 숙박비 3000원을 받고 아무래도 미안한 생각이 든 주인은 심부름하는 아이를 시켜 500원을 손님들에게 되돌려 주게 했습니다. 방값을 깍아 준 것입니다.
하지만 심부름하는 아이는 '손님이 셋인데 500원을 돌려주면 똑같이 나누기가 힘들잖아'하면서 200원은 자기가 슬쩍하고 300원만 돌려주었습니다. 나그네ㄷ르은 주인의 착한 마음씨를 칭찬하면서 100원씩 나누어 가졌습니다. 처음에 1000원씩 내고 나중에 100원씩 돌려받았으니, 나그네들은 한 사람당 900원씩 숙박비를 부담한 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900원씩 셋을 합치면 2700원밖에 되질 않습니다. 그러면 처음의 3000원에서 100원은 어디로 갔을까요?
글쎄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지요? 이 문제에 나오는 숫자 3000, 2900, 2700, 500, 300, 200은 무엇을 뜻할까요? 3000과 2700, 200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이 숫자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남겨두고 주역 이야기로 들어가 봅시다.
주역은 유교의 '5경'에 들어가는 고전입니다.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를 합쳐서 5경이라 하며, 그중 역경은 주역을 가리킵니다. 5경이라 할 때, 경(經)이란 본래 베짤 때 세로로 걸어 놓는 날줄을 말하는데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를 적은 책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역은 '주나라의 역'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주나라 이전의 하나라와 은나라에도 역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주나라는 기원전 11세기에 들어선 나라인데, <사기>에 기록된 중국의 역사는 그보다 수천 년을 더 올라갑니다. 주나라 바로 앞 왕조가 은나라이고, 은나라 앞이 하나라입니다. 하나라의 역을 '연산'이라 하고 은나라의 역을 '귀장'이라고 하지만, 내용은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연산역은 산을 상징하는 간괘로 시작하고 귀장역은 땅·여자를 상징하는 곤괘로 시작하는 반면, 주역은 하늘·남자를 상징하는 건괘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주역이 부권 사회에 들어와서 탄생했음을 보여 준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보는 주역의 내용을 어느 시기에, 누가 만들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일반적으로 주역은 5경 중에서도 가장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도 '역림 삼천'이라고 할 만큼 주역 하나에 대하여 수천 명의 쟁쟁한 역대 학자들이 연구 해설서를 내놓았고, 그만큼 다양한 해석을 끌어낼 수 있는 문제의 책입니다.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질 만큼 공자가 애독하였던 책도 바로 주역이었고, 거기에서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고사 성어도 나왔습니다. 물론 당시의 책은 종이로 만든 것이 아니라 글이 적힌 대나무나 나무 조각을 묶어 놓은 것입니다.
주역에 대한 연구가 역대로 이처럼 많기 때문에 여기서 주역의 구체적 내용을 다룰 수는 없습니다. 자칫하면 역이라는 울창한 숲 속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하나의 괘에 대한 해석만을 놓고 이야기하더라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역의 내용은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유와 은유, 암호 같은 말로 되어 잇고, 그 때문에 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역을 사서 읽더라도 다른 책을 읽었을 때처럼 그 책에 어떤 내용이 쓰여 있더라 하고 말하기 쉽지 않은 것입니다.
주역의 '계사전'에는 점을 치는 원리와 해석 방법에 대한 원리적 설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역을 이용하려면 먼저 계사전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사전은 주역의 사상과 이용 원리를 해설한 보충 설명입니다. 그러나 계사전에도 충분한 설명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계사전에 대한 해석에 따라 역을 운용하는 방법이 달라지는 점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계사전은 공자가 지었다고 전통적으로 주장하지만 지금 학자들은 전국 시대에 그 대부분이 이루어진 것으로 봅니다. 또 중국 고대의 문헌들이 대개 그렇듯이 나중에 끼어든 대목이나 순서가 뒤바뀐 부분들이 있다는 문헌학적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계사전의 중심 사상이 공자의 사상이라는 주장을 뒤집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다만 계사전의 내용도 해석에서 일치를 볼 수 없는 요소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주역이라는 거대한 숲을 전체적으로 훑어보고 그 의의를 정리하는 데서 그쳐야 할 것 같습니다.
주역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경문'이고 또 하나는 '역전'입니다. 경문은 일찍 만들어진 내용이고, 역전은 경문에 대한 해설로 뒤에 만들어졌습니다. 역전은 '10익'이라고 하는데, 10익은 글자 그대로 '열 개의 날개'이므로 주역을 보조하는 해설이라는 뜻입니다. 주역의 형성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복희씨가 처음 8괘를 그렸고 신농씨가 64괘로 나누었다. 주나라 문왕이 비로소 괘를 풀이하는 말을 붙여 역이란 이름이 생겼고, 그 후 문왕의 아들 주공이 '효사'를 지어 일단 완성되었다. 공자가 다시 10억 - '단전'상·하, '상전'상·하, '계사전'상·하, '문언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 - 을 지어 보충 설명하였다.
그러나 복희씨나 신농씨가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인지도 분명하지 않고, 10익에는 전국 시대 후기나 진한 시대의 사상과 연관된 내용들이 들어 있어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대체로 주역은 중국 고대의 중요한 정신적 유산으로서,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 정리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주역은 64괘와 각 괘에 대한 해석인 괘사, 각 효에 대한 해석인 효사로 이루어져 잇고, 10익 가운데 문언전, 단전, 상전의 내용은 해당 괘에 포함시켜 편집해서 계사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처럼 따로 독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래는 10익이 따로 있었는데 한나라 때 비(費)씨가 지금처럼 배치하였다고 합니다.
주역의 짜임새
주역은 또한 내용을 표현한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상징 부호이고, 다른 하나는 문자입니다. 상징 부호가 들어 있는 것이 다른 책에서 보기 드문 특색입니다.
주역에는 64가지 상징 부호가 나오는데, 우리는 그것을 64괘라고 합니다. 각 괘는 대부분 한 글자, 가끔 두 글자로 이름이 붙었고, 두 종류의 부호로 이루어졌습니다. 한자의 한일 자처럼 죽 그은 선이 양효고, 양효에서 가운데가 끊어진 모양을 한 것이 음효입니다. 그러므로 주역에 나오는 상징 부호는 결국 양효와 음효 두 가지로 이루어졌습니다. 주역 부호의 기본 단위인 효가 6개씩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64괘입니다. 12세기에 활동한 소강절이라는 사람은 이 64괘를 원형과 방형으로 배열하였습니다.
양효만 6개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 주역의 맨 처음에 나오는 건괘이고, 음효만 6개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 건괘 바로 다음에 나오는 곤괘입니다. 건괘와 곤괘는 주역의 모든 괘를 낳는 모체로서 우주에서는 하늘과 땅에 해당하고, 가정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해당합니다.
음, 양 두 가지 부호를 세 번 사용하여 만들 수 있는 서로 다른 괘의 숫자는 모두 8개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본 8괘의 이름은 각각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인데 건, 곤, 감, 이 네 괘는 우리 태극기에 들어 있습니다. 초기의 태극기 중에는 8괘가 다 그려진 것도 있었습니다.
건은 하늘, 태는 못, 이는 불·태양, 진은 우레, 손은 바람, 감은 물·달, 간은 산, 곤은 땅을 상징하는데, 이 상징은 대상 영역이 바뀌면 그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한 괘에는 위에 말한 하나의 상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건괘는 하늘뿐 아니라 아버지를 상징하기도 하고, 동물 중에서는 말의 이미지와 연관을 맺기도 합니다.
주역의 64괘 384효는 우주 만상의 변화 원리를 알리는 부호이고, 64괘는 기본 8괘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계사전에서는 "역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4상을 낳고, 4상이 8괘를 낳는다"고 하여 기본 8괘가 생성되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양의는 음과 양을 가리키고, 사상은 음양이 분화하여 이루어지는 노음, 노양, 소음, 소양 넷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이것은 주역이 설명하는 천지 만물의 생성 도식이 되고 우주 진화론의 기본 골격이 됩니다.
그러면 기본 8괘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거기에는 두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도 낙서설'이고 다른 하나는 '양관 부찰설'입니다.
하도 낙서설은 하수와 낙수라는 강에서 등에 신비한 금과 글이 적힌 용마(龍馬)가 나와서, 그것을 해석하여 팔괘를 그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역의 탄생을 매우 신비화하고 있는 설입니다. 반면에 양관 부찰설은 "옛날 복희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 우러러 천문을 보고 굽어 지리를 살펴서" 팔괘를 그렸다는 주장으로 자연과 인간사를 모두 설명하는 주역의 원리를 천지 자연의 운행 법칙에서 찾았습니다. 실증적, 과학적인 연구 경향이 생기면서 하도 낙서설은 학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고, 비판의 증거를 대는 글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청나라 때 호위라는 학자가 지은 <역도명변>은 그 대표적인 책입니다.
미신인가,철학인가
주역을 연구하는 것을 역학이라 하는데, 역학은 연구자가 주역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크게 두 파로 나누어져 왔습니다. 하나는 주역을 수리와 예언의 책으로 보는 상수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주역을 도덕, 철학의 책으로 보는 의리학파입니다.
의리란 도리나 윤리와 같은 말인데, 의리학파는 성인의 주역을 만든 본래 의도가 결코 점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며, 역의 목적은 천지 자연의 운행과 역사의 변화 원리를 밝혀 인간의 임무를 분명히 아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상수학파는 점치는 기술에서 나온 상수학적 해석 기술을 중시하고, 도상과 수리하는 해석 방법에 의하지 않는 의리의 주장은 내용이 없다고 합니다. '상수'라는 개념은 <춘추 좌씨전>에 처음 나타납니다. 거기에는 "거북점은 상이고 산대점은 수이다. 사물이 생긴 뒤에 상이 먼저 있게 되고, 상이 있게 된 뒤에 여럿으로 늘어나게 되며, 늘어난 뒤에 수가 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상은 거북을 불에 구워 금이 갈라지는 형태로 점을 치던 것이고, 수는 시초라는 식물의 줄기로 조작하여 수의 원리에 따라 점을 치던 방법이었습니다.
상수학과 의리학의 역사적 변천에 대하여 <사고전서총목제요>에 정리된 것에 따르면, 상수학은 <좌씨전>에 쓰인 옛 점법의 계승이고, 한나라 때의 유가가 말한 상수도 이와 연결되며, 경방과 초연수에 이르러 미신적 예언 이론으로 빠졌고, 도사인 진단과 송대의 유학자 소옹에 와서 무궁한 조화의 학문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의리학은 역학이 백성의 실생활에 맞지 않는 공허한 이론으로 되자 왕필이 상수론을 비판하며 노장의 학설로 해석했고, 호원과 정이천에 이르러 유학의 의리 정신으로 해석하였으며, 이광과 양만리에 이르러 역사 사실로 해석하는 방향으로 변천하였습니다.
왕필의 해석은 현대의 미신적·신비적 경향을 벗어나 역을 철학적으로 해석하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강백의 왕필의 미완 작업을 보완한 후 왕필 역은 역학의 전통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상수론자들은 왕필의 이러한 해석이 상수학적 방법론의 중요성을 무시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의리론자들이 괘상과 관련 없이 문장의 의미를 중심으로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교훈을 끌어내려고 한 것은 왕필의 영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왕필은 '설괘전'에서 괘상과 물상을 연관지어 설명한 대목을 무시하고 물상과 괘사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해서, 괘사 자체에서의 의미가 서로 맞는 것을 보면 될 뿐 괘상이 괘사에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왕필의 이러한 입장은 '득의망상론'에 들어 있는데, 이것은 역의 괘가 구체적 대상의 직접적인 추상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오대 말기와 송대 초기, 즉 10세기 전후에 도사인 진단은 화산에 숨어 살며 역학 도형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진단의 영향을 받아서 주돈이는 '태극도설'을 지었습니다. 당시 역학의 새로운 흐름인 도수학적 상수학이라는 방법이 탄생한 것입니다. 특히 소강절의 상수학은 이 새로운 상수학을 대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도(圖)중에서도 하도와 낙서를 중요하게 여겨 수리적인 해석을 붙였습니다.
의리학파인 정이천은 상이 의리, 곧 도덕을 밝히기 위한 수단적 의미를 가질 뿐이라고 하고, 소강절과 한마을에 살면서도 상수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천둥이 일어나는 곳은 어디인가'하는 소강절의 질문에 정이천은 '그것은 일어나는 곳에서 일어난다'고 대답하고, 도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수란 도리의 부스러기에 불과하므로 군자의 관심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합니다. 정이천은 수에 집착하면 점치는 사람들의 허황한 이론에 빠지게 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지금도 역의 해석에 대해 의리학파와 상수학파의 차이는 그대로 존재합니다. 상수학파의 입장은 주역이 천하 만물의 변화 법칙을 담고 있으며, 괘를 풀이한 말과 괘의 효의 상징은 구체적 세계를 표현한 상징이자 해석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을 발전시키면 주역은 만물의 이치를 담고 있는 책으로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는 이론이 나오고, 점을 쳐서 미래에 대비한다는 실제적인 행동을 일으킵니다. 간단히 말해서 지금도 점의 예언이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미신에 불과하다는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상수학에 동의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에 따른 것입니다. 점에 대한 입장의 차이는 마지막 대목에서 다루기로 하고, 먼저 주역의 기본 원리와 사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만물은 변화한다
장자 '천하'편에서는 "역으로 음양의 변화 원리를 말하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근세 서양 학자들은 주역을 번역할 때 "변화의 책"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것은 역(易)이란 글자에 바뀐다, 변한다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글자에는 또한 쉽다, 간단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한자 사전에서도 '바뀔 역'자와 '쉬울 이'자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우주 삼라만상의 온갖 복잡한 변화를 음양의 대립·조화 원리로 설명하므로, 쉽고 간단하다는 뜻입니다. 우주의 변화는 끊임이 없지만 음양의 원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역에는 변하지 않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역이란 글자에는 첫째 변한다. 바뀐다, 둘째 간단하고 쉽다, 셋째 변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결국 주역은 우주 만물의 변화를 음양의 변화 원리로 풀이한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만물은 변화한다'는 생각은 주역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사물을 보는 방법에서 매우 중요한 하나의 입장을 선택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 오직 미모를 기준으로 고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남이나 미녀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선택한 사람이 30년, 40년 뒤에도 미인일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미에 대한 자신의 기준도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미인의 기준을 계속 고집한다면, 이 사람은 평생 새로운 미인을 찾아다녀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만물이 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는 것과 지금 보이는 것을 고정시켜서 생각하는 것은 독같은 문제에 대하여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변화를 모르면 세계를 바로 알 수 없다고 주역은 가르칩니다.
주역에서 만물의 변화는 일정한 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순환의 원리'라 이름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만물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노쇠하여 죽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것을 보여 주는 예는 동식물의 성장과 자연계의 사계절 변화 같은 것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주역의 64괘 배열에서 마지막 괘의 이름이 '미제'인데, 그것은 글자 그대로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미제' 괘 바로 앞에 잇는 괘의 이름은 '기제'입니다. 이것은 '완성되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을 '미완성'으로 열어 놓은 것도 주역의 무한한 순환 원리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위와 역할
주역은 괘의 해석에서 천·지·인이라는 세 범주를 이용합니다. 이것을 '삼재 사상'이라고 하는데, 이 세 변수가 변화의 핵심 요소라는 생각입니다. 이것을 더욱 실천적으로 표현하면, 천시(天時)와 지리(地理)와 인사(人事)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셋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만물의 변화 가운데 큰 덩어리입니다. 주역의 삼재 사상은 천지 자연의 위력을 높이면서도, 인간의 위치를 만물을 덮고 만물을 실은 하늘과 땅에 맞먹는 존재로 올려 놓았습니다. 계사전에서 구체화된 이 사상은 순자에서 뚜렷이 표현된, 자연을 이용하고 다스리는 인간상을 나타낸 것입니다.
주역의 괘사에서는 '회린'과 '길흉'을 표시하고 있는데, 역이 미래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해석할 때 가장 중요시되는 개념입니다. 계산전의 해석을 통하여 이 말을 풀이하면, 회린은 사태와 사물이 앞으로 변화해 갈 싹을 보인 것이고, 길흉은 사태가 진전되어 점치는 사람에게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로 확정된 것을 알려줍니다. 주역을 윤리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에서는 흉한 결과를 예고하면 반성 경계하고, 길한 결과를 예고하면 그 방향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해석합니다. 나아가 훌륭한 연구자는 희린, 다시 말해 사태의 초기에 더욱 잘 알아서 대처합니다. 그러므로 주역은 결정된 미래의 변화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반성하고 조심하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점을 믿는 사람들은 미래의 일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역의 사상에서 보면 사람의 미래는 스스로의 노력과 행동에 따라 다른 결과로 나옵니다. 조선 후기의 대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교 경전을 깊이 연구하고 특히 역에 대한 해설도 썼지만, 한 편지에서 "수십 년간 역을 연구하였지만 나 자신의 일을 가지고 점을 쳐 보지는 않았다"고 썼습니다.
주역을 점치는 책으로 보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점이라는 것이 이기심에서 나온다는 점을 우선 문제삼습니다. 자기의 이익만을 목표로 점을 치는 심리 자체가 선한 동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주역을 스스로 반성하고 경계하는 윤리서로 해석하지, 자기에게 유리하게 할 방법을 찾는 도구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실재 세계와 수
역은 세계의 변화를 괘와 효로 상징하고 괘사와 효사는 그 상징을 말로 풀이하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또한 역의 괘가 이루어지는 원리와 괘효의 변화에는 일정한 수리 법칙이 있고, 그에 따라 해석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과 사물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상수학의 논리라는 것도 이미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나 말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그 자체는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첫머리에 냈던 퀴즈를 다시 생각해 볼까요?
이 문제의 답은 무엇일까요? 나그네들이 낸 돈을 모두 합치면 2700원이고, 거기에 중간에서 심부름하는 아이가 슬쩍한 200원을 합쳐도 2900원밖에 되질 않았지요. 그래서 처음의 3000원에서 100원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다시 잘 생각해 보면 나그네들이 낸 돈은 모두 2700원이고 그중에서 주인이 2500원을 가졌고, 심부름꾼이 200원을 가졌으니 아무런 착오도 없었던 것입니다. 100원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뿐, 사실 이 퀴즈는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수나 말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그 자체는 아니라는 점이, 수리로 운명을 해석하는 경우에 흔히 무시됩니다. 예를 들어 수가 곧 참세계라고 생각한 서양 고대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의 원리에 따라 태양계에는 10개의 행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실재 세계에서 이들이 말하는 10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불확실합니다.
현대 과학에서 분류하는 방식으로 하면 지구, 금성, 화성, 수성, 토성 등의 행성과 태양은 서로 다른 종류의 별입니다. 우선 스스로 빛을 내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을 항성이라고 하여 행성과는 다른 종류로 분류합니다. 지구와 달도 종류가 다릅니다. 달은 지구의 위성입니다. 태양계 안에서 발견된 수천 개의 소행성들은 왜 그 10에 넣을 수 없는 것일까요? 이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피타고라스 학파의 주장은 기초에서부터 합의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수는 대상을 분류하는 방식에 따라 달리 나타납니다. 대상 세계와 우리의 분류 방식을 무시하고 수를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도 하늘과 사람은 닮은꼴이라 하여 사람을 '소우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예를 들기를, 하늘에 해와 달이 있는 것은 사람에게 두 눈이 있는 것과 같고, 천지에 오운 육기가 있는 것은 사람에게 오장 육부가 있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해와 달이 있는 것과 눈이 둘인 것이 서로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우리 몸에는 눈 외에도 쌍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많을 뿐더러 우주에는 태양이 하나가 아니라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즉 태양계와 같은 구조가 수백억 개 모여 하나의 은하계를 이루고, 그 하나하나의 태양계에는 각각 태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수의 신비한 법칙으로 밝힌 주역의 운명론이라는 것은 자칫하면 아무 관련이 없는 수를 서로 더하고 곱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그네들, 여인숙 주인, 심부름하는 아이 중 누구도 가져가지 않은 100원을 찾아 헤맬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주역은 미래를 알려주는가
주역에 대한 현대인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주역에는 우주의 원리가 들어 있고, 주역을 완전히 이해하면 우리의 미래와 사물의 변화를 예견할 수 있다는 태도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역은 인류 정신 문화의 유산이고, 우리가 지나간 역사를 연구하여 오늘의 자신을 더 잘 알고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처럼 주역의 정신도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태도입니다. 이 두번째 태도가 보통 주역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역은 과거 무지한 시대의 유치한 부호 놀이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축하는 입장도 있겠지만 그런 독자라면 여기까지 읽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주역의 원리를 알면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는 이 매혹적인 주장이 우리의 과학적인 태도와 부딪힘에도 불구하고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들 딸이 대학에 합격했으면 하는 바람이나 중요한 거래가 잘 이루어져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 서로 모르는 것이 많은 한 쌍의 남녀가 앞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으면 하는 기원,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염려 등등 너무나 인간적이고 절실한 소망들에 대답하는 것에서부터 국가의 미래나 세계 정세는 물론이고, 인류의 미래를 떠맡고 있는 과학 기술의 최첨단 이론에 대답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신비한 책으로 주역을 믿는 태도, 이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주역이 인기를 유지하고, 복잡한 이론을 계속 만들어 오고, 세상의 온갖 일에 끼어들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신봉자들의 노력에 힘입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태도는 주역이 어째서 그토록 신비하고 위대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 설명하기에는 궁색합니다. 다만 성인이나 신인이 만들었다거나 하늘이 내려준 신비한 기적으로 주역 탄생의 신비성을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주역의 신비와 위력을 객관적으로 보여 줄 방도가 없습니다. 주역을 믿는 사람들이 신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점투성이로 보이는 것도 큰 부담입니다. 1989년에 중국에서 출판된 어떤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1981년 1월, 미국 해군 천문대의 두 과학자는 태양계에 열번째 행성이 존재한다고 예언하였다. 매스컴은 이 특종을 대서 특필했고, 사람들은 감격하고, 토론하고, 찬탄했다. 일찍이 1940년대에 한 중국인 학자가 역학의 특수한 방법을 사용하여, 열번째 행성의 존재를 계산하고 목왕성이라 이름붙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1940년 11월 1일, 프랑스 파리 대학에서 통과된 사천 출신 유자화(劉子華)선생의 박사 학위 논문 '8괘 우주론과 현대 천문학 - 한 행성에 대한 예측'이다.
이 중국인 학자는 현대 천문학 이론과 주역의 하도, 낙서 수리를 결합하여 이러한 예측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미 오래 전에 열번째 행성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현대 천문학의 이론과 관측 자료, 계산 자료를 이용하였다면 이 논문 결론이 주역의 원리에서 나왔다고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렇지만 중국의 역학 신봉자들에게는 역시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현대 과학의 놀라운 성과가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 시점에 주역 신봉자들은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개혁 개방을 추진하면서 학술 연구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열어 놓은 중국에서 이 모습은 흥미있게 나타납니다.
최근 10년 동안 주역 신봉파는 중국 학술계에 다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점차 흥성하고 있다. 새로운 신봉파들은 근대 이후 국내외의 성과 외에도 주역 속에 포함된 현대 과학 내용을 계속 끌어내고 또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였다. 주역을 중국 고대 자연과학 모든 분양의 원류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역 속에는 고대 천문학이 있고, 중국 의학의 기본 이론이 있고, 고대 수학의 성과가 있다는 등등이다.
그리고 이 몇 년 사이에 기공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송대 이후 기공의 이론적 근원인 내단설은 역학의 도식을 많이 끌어왔으므로 기공의 유행은 또한 역학에 생기를 주었다. 인체의 건강과 장수는 여러 요인에 달려 있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체에는 산과 바다를 움직이고 백만 대군을 막아내는 능력이 얼마나 숨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신비가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현대 과학의 진보로 일반인들은 우주의 신비는 이제 거의 없다고 생각하게 된 반면, 현대 의학의 결함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인체의 신비가 도리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인체의 신비는 태극, 음양, 5행, 8괘, 선천 후천 따위의 관념 속에 들어 있고, 다양한 역학 도형 속에 들어 있다. 특히 흑백이 서로 휘감아 도는 '음양어도'는 더욱 사람들이 오묘 무궁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심코 만든 S형 곡선에 수학 원리가 있고, 물리학 원리가 있고, 천문 기상학이 있고, 인체의 신비가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중국 의학의 표시가 되었고, 기공 학회의 상징이 되었고, 주역의 태표가 되었고, 중국 고대 문명의 상징이 되었다.
주희는 주역 앞부분에 하도와 낙서를 붙였는데, 황백가는 이것을 양자를 데려와서 할애비로 삼은 꼴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음양어도'는 특별히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만일 황백가가 지금 살아 온다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이신(李申), '주역지하설해(周易之河說解)'>.
신봉파가 주역 속에 현대 과학이 들어 있다고 하는 내용들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주역의 괘상 배열은 2진법을 담고 있다. 주역의 사상은 현대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 양자론을 담고 있다. 주역의 방형도에서 디락 방정식, 화학 원소 주기율을 끌어낼 수 있다. 역수 속에 현대의 원자 모형이 들어 있다. 흑백이 서로 휘감고 있는 '음양어도'는 바로 양자도이며 이는 보어의 상보성 이론의 설명이고, 생물학자가 보면 그 그림은 동물의 배태다. 주역 이론에 중국 의학의 모든 이론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이 주역을 계승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동양의 선인들이 주역을 점치는 책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인간의 합리적 사고로는 아직 확정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특수한 접근 방법이었습니다. 또한 그것도 주역을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정신 집중과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계기로 삼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과학이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식과 기호와 과학 언어로 표현되어 극도로 추상회되었다면, 주역은 모호한 상징과 한문화되어 있습니다. 신비화된 주역 이론은 과학에도 낄 자리가 없고, 대중들에게도 설명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역을 알면 우주를 안다느니 귀신을 부린다느니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을 만들어 냈을 때 가졌던 나약함과 의뢰심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참으로 사람은 자신이 지어낸 것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존재인 모양입니다. 사람의 손발과 지혜가 만들어 낸 주역이 우리를 끈질기게 붙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들이 사귀는 처녀의 사주가 적힌 쪽지를 꼭 쥐고 누구에겐가 점치러 가는 어머니들을 탓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사자보다 더 시원스레 판단을 내려 주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훌륭한 카운슬러가 되고 쪽집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어머니들은 그런 사람과 상담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과 확신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주역 때문에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믿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역은 우리가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계획적으로 실천하기를 포기하고 무슨 신통력을 믿어 우주와 인간의 비밀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책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고대에 형성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입장에서 해석하고 보완하여 만들어 낸 세계에 대한 이해 방식이고, 자기 성찰을 전제한 행동 지침입니다. 주역의 설명 원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나온 역사의 산물이면서 갈래가 아주 많은 해석과 학설들의 집합입니다. 그러나 보통 점을 믿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미래의 세계가 도식적이고 운명적으로 결저오디어 있다거나 주역이 생년월일을 집어넣으면 미래가 나오는 신비한 장치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주역의 이론이 고대 과학 기술과 일상 생활 속에 하나의 사고 방식으로서 널리 파고들어가 미신과도 붙고 경험 과학의 원리로 원용되기도 하여 잡다한 모습을 띠게 되었고, 점의 대명사처럼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주역의 신비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말하듯이 고대 과학이 모두 주역에서 나왔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입니다. 주역에서 말하는 수는 1, 3, 5, 7, 9는 홀수·양수요, 2, 4, 6, 8, 10은 짝수·음수이며, 이들의 합은 55라는 정도의 초보적인 개념과 논리를 기초로 합니다. 주역에서 정수만이 쓰입니다.
주역이 책으로 만들어진 시기에서 그리 멀지 않은 때에 나온 중국 고대의 수학책 <구장산술>, <주비산경> 등에는 삼각형·사다리꼴·원·부채꼴의 면적 구하기, 비례 분제, 6면체·원기둥·각기둥·원뿔·각뿔 등의 체적 구하기, 개방술(제곱근을 구하는 법)과 구고법(피타고라스 정리의 특수 형태)등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주역의 수로는 물론 이 문제들을 다룰 수 없는 것입니다. 주역의 원리를 연역하여 이들 수학책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주역에서 디락 방정식이 나온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그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즉, '현대 과학의 최첨단 이론을 주역은 이미 고대에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 우주의 비밀을 담고 있는 신비의 책이다. 인류 지혜의 알파요 오메가다. 자잘한 인간들이 감히 멋모르고 비판할 책이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이런 이야기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을까요? 동양 고전에 대한 신비화는 동양 철학 자체의 발전을 가로막을 뿐입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주역이 인류의 정신적 유산임을 부정하거나 그 철학적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사고를 단련하는 데 철학 공부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우리는 주역을 철학사 안에서 의미있는 책으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라이프니쯔가 가지고 다니면서 즐겨 읽던 책이 바로 주역이죠. The book of change. 음양의 상대적 개념이 0과 1이라는 기본개념을 유추하게끔 만든것입니다. 그리고 주역은 그 근원은 태호복희씨로 연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분이셨고, 하늘에 천제를 지내고 내려오는중에
하늘에서 용마가 하도를 지고 나와서 계시를 해주셨습니다. 물론 신명의 형태로요. 그렇게 해서 그은게 팔괘입니다. 그래서 조선 말기에 길가던 어린아이한테 물어봐도 한결같이 태호복희씨가 始劃八卦 했다고 하는것입니다. 주역을 점술서로만 본다? 대전대 한의대 교수님은 주역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호복희씨는 사마천의 史記에서 인두사신(즉, 사람 머리에 뱀 몸)이라고 하여 동이족의 훌륭한 조상을 괴물로 둔갑시켰다가, 지금에 와서 한국이 스스로의 역사를 찾지 못하자 삼황오제라고 해서 태호복희씨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편입시키는 상황입니다. 그럼 정녕 태호복희씨는 가장의 인물인가요?
첫댓글 글씨가.... 개미들의 무리처럼 보이는건 왜일까요? 키키키
라이프니쯔가 가지고 다니면서 즐겨 읽던 책이 바로 주역이죠. The book of change. 음양의 상대적 개념이 0과 1이라는 기본개념을 유추하게끔 만든것입니다. 그리고 주역은 그 근원은 태호복희씨로 연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분이셨고, 하늘에 천제를 지내고 내려오는중에
하늘에서 용마가 하도를 지고 나와서 계시를 해주셨습니다. 물론 신명의 형태로요. 그렇게 해서 그은게 팔괘입니다. 그래서 조선 말기에 길가던 어린아이한테 물어봐도 한결같이 태호복희씨가 始劃八卦 했다고 하는것입니다. 주역을 점술서로만 본다? 대전대 한의대 교수님은 주역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하셨습니다.
주역이 얼마나 위대한 산물인지는 주역과 과학 정신의 道라는 책을 보시기 바랍니다. 더이상 주역이 한갓 점서에 불과하다는 헛소리는 사라졌으면 하는게 바램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호복희씨는 사마천의 史記에서 인두사신(즉, 사람 머리에 뱀 몸)이라고 하여 동이족의 훌륭한 조상을 괴물로 둔갑시켰다가, 지금에 와서 한국이 스스로의 역사를 찾지 못하자 삼황오제라고 해서 태호복희씨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편입시키는 상황입니다. 그럼 정녕 태호복희씨는 가장의 인물인가요?
아직 많은 부분에서 세상사람들의 동양철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많이 느끼는 바입니다. 그럼 올바른 道의 정신을 찾기 바랍니다. --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