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는 설정이다
화두(話頭)는 대부분 중국 당송(唐宋)시대 선사들의 일화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므로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임의로 설정된 가상현실에서 벗어나는 체험을 통해 이 세상이 가상현실임을 깨치는 것이다. 그 접근방식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과거의 일화를 ‘바로 지금 여기’로 가져오는 것이다. 예컨대, ‘병 속의 새’ 화두가 있다. 어떤 사람이 입구가 좁은 병 속에 새를 넣고 키웠는데, 새가 너무 커져서 나올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꺼낼 수 있을까? 새를 다치게 해서도 안 되고 병을 깨서도 안 된다. 필자는 이렇게 답하리라.
“그 병을 ‘바로 지금 여기’로 가져오라. 그러면 꺼내 주리라.” “나왔다!”
‘병 속의 새’는 애당초 없었다. 설혹 실제로 있었다 하더라도, 바로 지금 여기서는 아니다. 그러므로 ‘나왔다!’는 말은, 화두라는 가상현실에서 유일한 진짜 현실인 ‘바로 지금 여기’로 나왔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것뿐!’이다. 예컨대 ‘이뭐꼬?’ 화두가 있다. 견문각지(見聞覺知) 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마음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가? “이뭐꼬?” 모든 존재는 공(空)한 것이다. 색즉시공(色=空)이요, 공즉시색(空=色)이니, 결국 색즉시색(色=色)이다. 산은 산, 물은 물! 이것은 이것, 저것은 저것! 부르는 명칭이 있을 뿐, 고정된 실체는 없다. 그러므로 상대적인 유와 무를 초월한 ‘이것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셋째는, 반문(反問)이다. 고정된 실체가 있다는 선입견에 입각한 질문에 대하여 돌이켜 묻거나, 엉뚱한 답변 혹은 ‘방! 할!’ 등의 충격요법을 써서 실체 없음을 직관케 한다. 예컨대 홍주 개원사에서 배상국이 황벽선사에게 물었다. “큰 스님들의 초상은 볼만한데 큰스님들은 지금 어디에 계시오?” 그러자 선사가 불렀다. “상공!” 배상국이 대답하거늘, 선사가 물었다. “어디에 계시오?” 배상국이 말끝에 활짝 깨달았다.
실체가 없는 존재를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은 마치 꿈·아바타·물거품·그림자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는 없다. 변화하는 현상이 있을 뿐! 한 마디로 아바타인 것이다!
[불교신문 3760호/2023년3월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