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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제주 양씨)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남원 양씨)
충청북도 충주시 (충주 양씨)
전라남도 나주시 (나주 양씨)
양순 (梁洵) (제주 양씨)
양우량 (梁友諒) (남원 양씨)
양능길 (梁能吉) (충주 양씨)
양인 (梁認) (나주 양씨)
양보숭 (梁保崇) (제주 梁氏/유격공파)
양구미 (梁龜美) (제주 梁氏/성주공파)
양능양 (梁能讓) (남원 梁氏/병부공파)
양주운 (梁朱雲) (남원 梁氏/용성부원군파)
양수정 (梁水精) (남원 梁氏/대방부원군파)
양능길 (梁能吉) (충주 梁氏/예성부원군파)
총 인구 460,600명 (2015년) 국내 24위 제주 남원 충주 나주
'양씨' 하면 87% 정도가 이것이다. 楊씨와 달리 이 성씨는 한자의 원음이 '량'이지만, 두음법칙 적용 대상이므로 '양'으로 발음하여 읽는다. 한국의 梁씨 인구는 460,600명(2015년)으로 24위이다. 제주도의 삼시조 중 한 명인 양을나(良乙那)가 시조이며, 제주 梁씨(142,211명)와 남원 梁씨(307,724명가 대부분이다. Y-DNA(부계 유전자인 Y염색체 마커) 분석을 통해 남원 양씨가 제주 양씨에서 분파된 혈통임이 유전적으로 확인되었다. 대종인 제주 양씨에서 남원, 충주, 나주 등이 분관된 것이나, 일찍이 육지에서 분적한 남원 양씨가 양씨의 다수를 차지하는 특이점이 있다. 본관이 있는 제주도와 호남 지역에 많이 거주하며, 이에 비하면 영남 지역에서는 잘 없는 편이다.
梁(들보 량)을 한자로 쓸 때, 한국이나 중화권에서 있는 梁씨 성인 사람들이 많은 경우에 오른쪽 위를 刃(칼날 인)으로 쓰는 鿄(U+9FC4)경우가 많은데, 정자(正字)는 오른쪽 위를 점이 두 개 찍힌 刅(비롯할 창)으로 쓴다.
1.1.1. 梁氏중앙종친회(통합)
오랫동안 기존 대종회와 종친회는 따로 분리되어 활동하였다. 2025년 5월 모임에서 6개(제주, 남원, 충주) 지파회장(유격공, 성주공, 병부공, 용성군, 대방군, 예성군) 6명과 종친회 회장 예하 임원진들과 상론하여 통합하기로 결론을 지었다. 이에 중앙종친회 사무실도 개편되었다.
양씨중앙종친회 사무실: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 111번지 (삼영빌딩 905호) 위치하고 있다.
1.1.1.1. 분파(제주, 남원, 충주)
제주 양씨
파조 양보숭(梁保崇) - 유격공파(遊擊公派)
파조 양구미(梁龜美) - 성주공파(星主公派)
남원 양씨
파조 양능양(梁能讓) - 병부공파(兵部公派)
2세. 양득겸(梁得謙) - 공부낭중
3세. 양득황(梁得璜) - 병부의랑, 국자진사
4세. 양탁영(梁卓英) - 이부전서
5세. 양 견(梁 堅) - 밀직사사, 진현관 대제학, 지춘추관사
6세. 양이승(梁利升) - 첨의평리, 상호군
7세. 양충립(梁忠立) - 수문전 태학사
8세. 양당취(梁唐就) - 정당문학
9세. 양 준(梁 俊) - 성균좨주, 한림학사
10세. 양동필(梁東弼) - 판사 (판서공파)
양동수(梁東秀) - 판서
양 우(梁 佑) - 묵재. 판도판서 겸 집현전 대제학 (묵재공파)
양 서(梁 瑞) - 삼가현감, 우봉현령, 국자좨주 (좨주공파)
양윤유(梁允儒) - 집의 (집의공파)
파조 양주운(梁朱雲) - 용성부원군파(龍城府院君派)
파조 양수정(梁水精) - 대방부원군파(帶方府院君派)
충주 양씨
파조 양능길(梁能吉) - 예성부원군파(蘂城府院君派)
1.1.1.2. 집성촌
1.1.1.3.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 (제주, 남원, 충주)
1.제주 양씨는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 14명을 배출하였다. 2.남원 양씨는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 46명을 배출하였다. 3.충주 양씨는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 2명을 배출하였다.
남원 본관으로 양성지(梁誠之)는 문과에서 2번 급제를 하였다. 제주 본관으로 양응정는 문과에서 2번 급제를 하였다.
문과(文科) 현전:46명
양권(梁權) 양사적(梁思逖) 양성지(梁誠之) 양순석(梁順石) 양성지(梁誠之) 양지손(梁芝孫) 양하(梁賀) 양자해(梁自海) 양취영(梁就盈) 양철견(梁鐵堅) 양연(梁淵) 양의(梁艤) 양응태(梁應鮐) 양희(梁喜) 양사원(梁士元) 양몽열(梁夢說) 양경우(梁慶遇) 양응락(梁應洛) 양극선(梁克選) 양시헌(梁時獻) 양곡(梁穀) 양형우(梁亨遇) 양경우(梁慶遇) 양유인(梁有仁) 양도(梁燾) 양중하(梁重廈) 양성규(梁聖揆) 양우전(梁禹甸) 양정호(梁廷虎) 양성시(梁聖時) 양우항(梁禹恒) 양주익(梁周翊) 양종대(梁宗大) 양봉화(梁鳳華) 양종유(梁宗維) 양재맹(梁在孟) 양치묵(梁致默) 양우준(梁禹濬) 양한용(梁漢容) 양혁수(梁奕洙) 양봉제(梁鳳濟) 양주혁(梁柱赫) 양봉기(梁鳳騎) 양선모(梁善謨) 양재팔(梁在八) 양도옥(梁燾鈺) 양정우(梁晸宇)
문과(文科) ※현전:14명※
양계벽(梁季璧) 양덕하(梁德厦) 양덕호(梁德浩) 양만용(梁曼容) 양봉래(梁鳳來) 양상기(梁相器) 양석관(梁奭觀) 양응정(梁應鼎) 양응정(梁應鼎) 양응태(梁應台) 양일위(梁日煒) 양정명(梁井明) 양진손(梁震孫) 양팽손(梁彭孫)
문과(文科) 현전:2명
양여공(梁汝恭), 양순경(梁舜卿)
1.2. 楊
楊씨의 인구는 69,101명(2015년)이고 본관으로는 청주, 안악, 중화, 밀양, 남원 등이 있다. 원음이 량인 梁씨와 다르게 원음이 양이다.
경기도와 서울 위주로 분포한다.(통계청자료 - 총인구조사 2015년이후)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양상문, 연예인 양희은과 양희경 자매가 이 성씨를 쓴다.
1.2.1. 청주 양씨 대종회
청주양씨 대종회 사무실: 서울특별시 마포구 만리재로14 1902호(공덕동 한국사회복지회관 르네상스타워) 위치하고 있다.
1.2.1.1. 유래
청주 양씨(楊氏)는 중국(中國)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이며, 원(元)나라에서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에 올라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이른 양 기(楊起)가 황제(皇帝)의 명(命)을 받고 제국대장공주(薺國大長公主 : 충렬왕비)를 배종(陪從)하여 고려(高麗) 원종(元宗) 때에 들어와서 정착(定着)하게 된 것이 청주 양씨(楊氏)의 시조(始祖)가 된다. 그 후 삼한창국공신(三韓昌國功臣)으로 상당백(上黨伯)에 봉해졌고 관적(貫籍)을 하사(下賜) 받음으로서 후손들이 본관을 청주(淸州)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문제는 원나라에 대광보국숭록대부란 산계가 없고 도첨의정승이란 벼슬이 없으며 원 간섭기에 고려가 오등작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기에 시조의 전승에 의문이 든다.
기(起)의 아들 지수(之壽)가 광정대부(匡靖大夫)에 올라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를 지내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손자 백연(伯淵)이 동강도지휘사(東江都指揮使)와 서강부원수(西江副元帥)로서 왜구(倭寇)를 격퇴하여 찬성사(贊成事)가 되어 정방제조(政房提調)를 겸했고, 증손 영수(英秀)가 밀직부사(密直副使)와 상장군(上將軍)을 역임하여 가문(家門)을 중흥시켰다. 조선(朝鮮)의 무신(武臣)으로 무예에 뛰어났던 정(汀)은 세조(世祖) 때 좌익공신(左翼功臣)으로 양산군(楊山君)에 봉해졌고, 공조판서(工曹判書)와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거쳐 평안도도절제사(平安道都節制使)에 이르렀다.
또한 안평대군(安平大君)․ 김 구(金 絿)․ 한 호(韓 濩)와 더불어 조선(朝鮮) 전기(前期)에 사대명필(四大名筆)로 일컬어졌던 사언(士彦)은 명종(明宗) 때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강릉부사(江陵府使)와 함흥부윤(咸興府尹)을 지냈으며 시문(詩文)에도 뛰어났다. 이 외에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을 일으켜 금산(錦山) 전투에 참가하였다가 칠백의사(七百義士)와 함께 장렬하게 전사한 응춘(應春)과, 호종공신(扈從功臣)으로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내고 홍농군(弘農君)에 봉해진 순민(舜民), 그리고 서예(書藝)에 뛰어났던 만고(萬古) 등이 청주양씨(淸州楊氏)의 가문(家門)을 빛냈다.
1.2.1.2. 분파
서원백파(伯派)
정승공파(公派)
전서공파(公派)
서평군파(君派)
밀성군파(君派)
당악군파(君派)
1.2.1.3.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
양계원(楊繼元), 양억(楊億), 양순(楊洵), 양순달(楊順達), 양면(楊沔), 양사준(楊士俊), 양사언(楊士彦), 양사기(楊士奇), 양만고(楊萬古), 양진행(楊震行), 양치학(楊致鶴)
1.2.2. 안악 양씨
특히 안악 양씨와 중화 양씨는 본관의 위치와 사료에 나오는 인물들로 보아 고구려계 혹은 발해 우성망족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의 문신 양규가 이 양씨인데, 안악 양씨라는 추측이 있다.
1.2.3. 밀양 양씨
1.2.3.1. 시조
양근(楊根)
1.2.3.2. 유래
밀양 양씨(密陽 楊氏) 시조인 양근(楊根)은 청주 양씨(淸州 楊氏)의 시조인 양기(楊起)의 다섯째 아들이며, 고려시대 말에 밀성군(密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1.2.3.3. 인물
양근(楊根)의 아들 양문(楊文)이 조선시대에 가선대부에 올랐고, 손자 양세경(楊世經)이 전서(典書)를 지냈으며, 8세손 양자부(楊自敷)가 통정대부에 올라 의영고 주부(義盈庫主簿)를 역임했고, 12세손 양허국(楊許國)이 통정대부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켰다.
1.2.3.4. 과거급제자 (조선시대)
총 5명으로 문과 1명, 생원진사시 4명이다.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양정빈(문과), 양우성, 양수, 양건성, 양일신
1.2.3.5. 인구수
1985년 1,161가구 5,186명
2000년 1,369가구 4,477명
2015년 2,111명
1.2.4. 중화 양씨
1.2.5. 남원 양씨
1.2.5.1. 시조(始祖)
양경문(楊敬文)
1.2.5.2. 유래(由來)
남원양씨(南原楊氏)의 시조(始祖)는 양경문(楊敬文)인데,「남원양씨족보(南原楊氏族譜)」에 의하면 경문(敬文)은 고려(高麗)에서 지영월군사(知寧越郡事)를 역임하였다고 기록(記錄)되어 있다.
그러나 그 뒤 소목(昭穆)을 빠뜨렸고 다만 9세 양이시(楊以時)에 이르러 크게 번창(繁昌)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2세부터 5세까지는 자세한 기록(記錄)이 없어 공민왕(恭愍王) 때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집현전대제학(集賢殿大提學)을 지낸 양이시(楊以時)를 중조로 삼는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제용재기(濟用財記)》에서도 양이시는 남원(南原)사람이라고 기록(記錄)하고 있다. 따라서 남원(南原)에서 여러 대에 걸쳐 세거(世居)해 온 토착성씨로 알려져 있다.
남원(南原)은 전라북도(全羅北道) 남동부(南東部)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백제(百濟)의 고룡군(古龍郡)인데 후에 대(帶方郡)으로 고쳤고, 신라(新羅) 신문왕(神文王)때 소경(小京)을 두었다가 경덕왕(景德王)때 남원소경(南原小京)으로 개칭하였다.
고려(高麗) 태조조(太祖朝)에 남원부로 삼았다가 다시 대방군으로 하였으며, 후에 남원군으로 고치고 1360년(공민왕 9) 부(府)로 승격, 1739년 (영조 15) 일신현(一新縣)으로 하였고 다시 부로 복구, 1895년 (고종 32) 남원군이 되었다.
후손(後孫)들은 조상(祖上)들의 토착(土着) 세거지(土着世居地)인 남원(南原)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界)를 이어왔다.
조선(朝鮮)때 집의(執義)를 역임(歷任)한 자유(子由)와 중종(中宗)때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호조정랑(戶曹正郞)을 지낸 공준(公俊), 그리고 산림은일(山林隱逸)로 당대(當代)의 명사들과 이름을 나란히 한 백운거사(白雲居士) 공말 등이 대표적(代表的)인 인물(人物)이다.
이외에도 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館)을 거쳐 부사(府使)를 역임(歷任)한 홍(洪), 경사(經史)에 능통(能通)하였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의병(義兵)을 일으켜 구국전선에 나섰던 사형(士衡),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한 회형(會榮) 및 의병활동을 하다가 옥사(獄死)한 영(泳)등이 있다.
1.2.5.3. 분파 or 계파
둔암공파(遯庵公派)
쌍매당공파(雙梅堂公派) - 종파(宗派), 중파(仲派), 도사공파(都事公派), 중산파(中山派), 장사랑공파(將仕郞公派), 재동공파(齋洞公派)
익산파(益山派)
어은공파(漁隱公派) - 문학공파(文學公派), 낙하정공파(落霞亭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낙안공파(樂安公派)
통덕랑공파(通德郞公派)
한림공파(翰林公派) - 종파(宗派), 중파(仲派), 수파(秀派)
1.2.5.4. 집성촌
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전북 순창군 적성면 지북리, 내월리
전북 순창군 팔덕면 월곡리
2.1. 梁씨
양경민(1972): 전 농구선수
양경민(1999): 전 한화 이글스 투수
양귀자: 소설가
양금석: 배우
양근환: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양기대: 정치인. 전 광명시장
양노을: 인터넷 방송인. 동생과 마찬가지로 활동명이다
양동근: 가수, 배우
양동근(농구): 전 농구선수
양대인: Weibo Gaming TapTap 감독
양문석: 언론인 출신, 교육인, 정당인 겸 정치인, 정치평론가
양미경: 배우
양미라: 배우
양민석: YG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양민혁: 토트넘 홋스퍼 FC 소속 공격수
양민아: 배우/활동명 신민아
양민화: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활동명 레이 양
양방언: 음악가
양상국: 코미디언
양상국: 바둑기사, 바둑해설가
양서현: 배우
양석정: 성우
양석환: 두산 베어스 내야수
양성우
양성윤: 배우/활동명 김지수
양성지: 조선 전기의 문신, 남원 양씨로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양헌수: 조선 후기의 장군. 공조판서를 역임했다.
양길 : 통일신라 말기(후삼국시대)인 9세기 말의 북원경(원주)의 대호족
양세봉: 독립운동가
양세종: 배우
양수아: 걸그룹 해시태그의 멤버
양수경: 가수
양순열: 메가공무원 (메가스터디교육) PSAT(공직적격성평가) 강사, 작가
양승동: 프로듀서, KBS 사장
양승리: 뮤지컬 배우
양승은: 아나운서
양승조: 정치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양승혜: 펜싱 선수
양아지: 스트리머
양연제
양영은: 기자
양예나: 걸그룹 APRIL의 멤버
양영민: 축구 선수, 축구 코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2024). 홍명보호(성인 2기)
양이원영: 제21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양오봉: 제19대 전북대학교 총장
양요섭: 하이라이트의 멤버
양용모: 전 빙그레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SK 와이번스 포수, 내야수, 외야수
양용은: 골프선수
양영순: 만화가
양우섭: 농구선수
양우정: 시인, 정치인
양원경: 코미디언이자 범죄자
양유진: 크리에이터, 배우
양은지: 유튜버, 양팡으로 활동
양은지: 가수, 양미라 동생
양의지: 두산 베어스 포수
양인자: 소설가, 극작가, 작사가, 각본가
양일환: 전 삼성 라이온즈 투수
양재봉(1925): 대신증권 설립자
양재원: 보이그룹 NINE.i의 멤버/활동명 이든
양재호: 바둑기사
양전백: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의 1인
양정모: 전 기업인, 국제그룹 2대 총수
양정모: 전 레슬링선수(올림픽 1호 금메달리스트)
양정원: 보이그룹 엔하이픈의 멤버/활동명 정원
양정인: 보이그룹 Stray Kids의 멤버/활동명 아이엔
양정아: 배우
양정화: 성우
양종광: 이북5도위원회 제15대 평안북도지사
양종철: 코미디언
양주동: 시인, 국문학자, 영문학자
양주남: 영화감독, 편집감독
양준모: 뮤지컬 배우
양준일: 가수
양준혁: 전 삼성 라이온즈, 해태 타이거즈, LG 트윈스, 내야수, 외야수. MBC SPORTS+ 야구 해설위원
양지영: 인터넷 방송인
양지운: 성우
양지은: 국악인, 트로트가수
양진모: 가수, 작곡가, 유튜버/활동명 마크툽
양진모: 프로게이머
양찬열: 두산 베어스 외야수
양찬욱: 보이그룹 L5ST의 멤버, 위어스의 前 멤버
양창섭: 삼성 라이온즈 투수
양창수: 전 대법관
양창식: 정치인
양치석: 정치인
양택조: 배우
양학선: 체조선수(도마)
양한묵: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의 1인
양향자: 정치인, 광주광역시 서구 을 국회의원
양혁: 보이그룹 OMEGA X의 멤버/활동명 혁
양현석: 연예인, 전 YG엔터테인먼트 사장
양현석: 야구선수
양현종: KIA 타이거즈 투수
양홍석: 농구선수
양효진: 배구선수
양희수: 프로게이머
양희종: 농구선수
양홍석: 펜타곤(아이돌)의 멤버/활동명 홍석
양홍원: 래퍼
2.2. 楊씨
양가온솔: NC 다이노스 소속 외야수
양병열: 배우
양사언: 문장가, 원예가
양상문: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양승호: 가수, 뮤지컬 배우
양동식: 아이돌 The KingDom의 멤버/활동명 루이
양지원: 스피카, UNI.T의 멤버
양지희: 농구선수
양진영: 전 배우
양혜지: 배우
양희은: 가수
양희경: 배우. (양희은의 동생)
양세찬: 코미디언
양세형: 코미디언
2.3. 한자 미상
양근영: 걸그룹 Bay.B, Sixth Sense, 퀸덤의 前 멤버
양승호: 보이그룹 BECZ, 에이블루의 前 멤버
양연정: 걸그룹 I.G의 前 멤버
양형성: 보아그룹 D.I.P의 前 멤버
양홍규: 보이그룹 Be.A의 前 멤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