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 1. 나는 왜 과거의 상처를 잊지 못하는가
[현실을 외면하는 나] 마음이 불안할 때는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상상은 우리를 현실과는 다른 세계로 이끌어주는 줍니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상상하면 잠시나마 행복해집니다. 하지만 반대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을 상상하면 우울해지죠. 이렇듯 상상은 우리의 기분부터 잠재의식까지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기간에 독일 나치주의자들은 한 포로를 대상으로 잔혹한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나치주의자들은 포로를 의자에 묶어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당신을 고통스럽게 죽일 거야. 피가 마를 때까지 피를 뽑아서 죽게 만들 거야.” 방에는 몇 사람이 더 서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대야를 들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끝에 고무관이 달린 주사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포로에게 방의 모든 풍경을 보게 한 후 검은 천으로 그의 눈을 가렸습니다. 곧 그는 주삿바늘이 자신의 혈관에 들어오는 걸 분명하게 느낍니다. 피가 몸에서 흘러나오고 곧이어 핏방울이 ‘툭툭’ 대야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는 매우 두려워하면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칩니다. 그는 계속해서 발버둥 치며 울부짖다 결국 십여 분이 지난 후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정말 온몸의 피가 다 뽑혀서 죽은 것일까요? 사실 그는 작은 주사기로 피를 아주 조금 뽑혔을 뿐이었습니다. 주사기에 연결되어 있던 고무관은 막혀 있었고요. ‘툭툭’하는 소리는 사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였죠. 포로는 출혈로 죽은 게 아니라 상상으로 인한 쇼크로 사망한 것입니다.
이 사례는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줍니다. 직접 그 일을 겪지 않았는데도 겪은 것처럼 심리를 조종할 수 있죠. 또한 상상은 현실의 상처와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잠재의식을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잊히는 상처는 없다: ‘격리’란 정신적으로 불쾌함을 느끼지 않도록 일부 사실을 의식의 세계에서 분리시켜 자신이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심리 방어 기제입니다. 가정 흔히 격리되는 대상은 개인의 감정적 부분으로 특히 불안, 초조, 상처 등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 때문에 불안을 느끼고 상처를 받을 때 흔히 격리 방어기제를 선택해 스스로를 보호합니다. 대개는 자신이 느끼기에 불쾌한 단어 대신 다른 대체 단어로 치환함으로써 마음속의 불안을 피합니다. 또한 재난을 겪고 나면 고통스러운 기억과 관련된 감정을 의식에서 격리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고통스러웠던 사실만을 기억하며 억압된 감정은 느끼지 못합니다.
한 50대 남자가 인터넷상에서 알게 된 여자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 건장한 남자들에게 잡혔고, 며칠 동안 감금되어 엄청난 액수의 돈을 빼앗겼습니다. 그는 생전 처음 와보는 지방의 길거리에 버려졌고 정신이 오락가락해져서 끊임없이 같은 소리를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간신히 빠져나왔어.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해.” 다행히 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파출소로 이송되었습니다. 경찰이 오랜 시간 그에게 사건 경위를 물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자신은 지금 강도를 당했으며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가 정신이 오락가락해져서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만 반복한 이유는 격리 심리 방어기제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두려움, 절망, 경솔하게 인터넷에서 사귄 사람을 만난 일에 대한 후회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강도를 당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상처받은 자신의 감정은 잊으려고 했습니다.
격리 기제가 상처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의식 상태를 바꾸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격리 기제가 작용하면 사람들은 현실의 괴로움, 상처, 불안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슬프고 힘든 일을 겪으면 다시는 그 일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던 장소를 피하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같은 이름을 보면 괜히 불쾌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한 번 받은 상처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으며 우리는 끝없이 그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갑니다. 상처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우리의 무의식은 격리 기제를 선택하는 것이죠.
상처는 우리를 계속해서 따라다니며 우리를 괴롭히고 마음 아프게 하지만, 언제까지고 상상에 빠져 사건의 발생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격리 심리 방어기제를 지나치게 사용하면 마음의 병을 얻을 수 있죠. 그런 경우 심리치료사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힘들어도 자기 자신에게 닥친 불안과 괴로움, 상처에 대해 조용히 직시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마음은 더 가벼워지고 상처를 받아들이기가 더 편해질 것입니다.
실연당한 사람들이 일이나 공부에 몰입하는 이유: 격리와 비슷한 방어기제로 ‘회피’가 있습니다. ‘회피’란 위험한 상황과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심리를 가리키며 의식적인 회피와 무의식적인 회피로 나뉩니다. 의식적인 회피의 사례는 매우 많습니다. 사람들이 ‘4’라는 숫자를 싫어하는 것도 의식적인 회피죠. 전화번호나 차량번호 등의 숫자를 선택할 때 최대한 ‘4’를 피합니다. 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무의식적인 회피는 자신이 불안을 느끼게 만드는 사물이나 사건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데 이런 경우 역시 회피 증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30세 여자가 남자 친구와 헤어졌습니다. 그녀는 며칠 동안 슬퍼하고 나서 평온을 되찾았지만 전과는 다른 면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자주 친구에게 자신이 도대체 뭐가 부족하냐고 물어보았고 남자 친구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녀는 정신이 반쯤 나가서는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나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거지? 왜지?” 보다 못한 가족들은 그녀를 데리고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저는 오랜 상담 끝에 그녀가 남자친구를 잃은 상처를 회피하기 위해 자신이 남자 친구와 헤어진 원인을 계속 ‘곱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열심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처럼 보였고 지나치게 분석에 집착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똑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분석하고 조사함으로써 자신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린 것이죠. 이를 통해 그녀는 자기 스스로 이별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감지하는 것을 회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방법은 생각을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서 다른 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없게 만듭니다.
현실 생활에서 회피 현상은 매우 흔히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실연당한 사람은 일이나 공부에 집중하고 일 중독자가 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과 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걸 피하게 되고, 이는 실연의 상처로 인한 고통스러운 감정이 떠오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나 실패하고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격리와 회피가 고통과 상처를 기억 속에서 지우는 효과적인 심리 방어술이 될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문제,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습니다. 상처를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자세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며 우리의 인격을 더 성숙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PART 2. 나는 왜 갖지 못하는 것을 사랑하는가
[남을 따라 하는 나]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 필요하다
방어기제 중 하나인 ‘투사’는 자신이 싫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성격, 태도, 생각 등을 다른 사람이나 외부세계로 옮겨 다른 사람이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고 자책으로 인한 고통을 회피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에 반해 ‘내사’라는 방어기제는 외부의 대상이나 자신이 높이 평가하는 어떤 인물의 특징을 자신의 행동과 신념에 끌어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사와 투사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내사는 다른 사람의 특징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끌어들이지만, 투사는 자신의 태도와 관점을 다른 사람에게 덮어씌웁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者赤 近墨者黑, 붉은 색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어지고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검어진다)’은 내사를 한 눈에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 내사는 외부 세계의 사물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흡수합니다. 아이가 성장과정에서 여러 가지 행동과 생각을 익히고 심리적으로 발전하는 건 내사의 영향입니다. 따라서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행동은 아이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들이 내사라는 심리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이유는 아이에게는 외부 세계가 신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그 신비한 세계에 있는 사람과 어떻게 교류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들에게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안심하고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죠. 부모의 행동만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 건 아닙니다. 아이는 부모의 과도한 ‘암시’도 똑똑히 기억합니다. 전반적으로 내사는 일종의 미성숙한 심리 방어기제로 아이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자녀를 교육할 때 부모는 좋은 본을 보여야 하며 자녀가 자신의 나쁜 습관을 배우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내사는 흔히 외부 세계를 전면적으로 흡수하므로 결코 선택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확실한 생각이나 이념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자주 일어나죠. 자존감이 낮고 자신만의 인격, 의지, 신념이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견해를 흡수하는 내사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매우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을 때에도 내사 현상이 쉽게 발생합니다. 적에게 포로가 되거나 강도에게 잡혀가 인질이 되면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사람들은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과 이념을 버리고 적의 생각이나 강도의 의견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살기 위해 정신적으로 굴복하게 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확고하게 하고 자기 제어 능력을 강하게 하면 내사라는 미성숙한 심리 방어 기제를 사용하는 경우도 줄어들게 됩니다.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이 무분별하게 외부 세계에게 끌려 다니는 것을 막아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이용해 자신을 포장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결코 아무런 선택성 없이 광범위하게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특정한 실리적 동기를 통해 선택적으로 특정한 사물이나 인물을 받아들이고 모방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동일시’이라고 부릅니다. 내사와 비슷하지만 ‘선택적 수용’이라는 점이 다르지요. ‘동일시’란 어떤 사람이나 단체의 행동을 받아들이거나 따르는 경향을 가리킵니다. 개인이 자신의 능력, 안정감과 소속감 등을 증가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장점을 흡수할 때 동일시란 심리 방어기제를 사용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여자아이는 얼굴이 전혀 예쁘지 않고 외모 때문에 열등감도 있지만 예쁜 여자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친구를 칭찬할 때 그녀 역시 ‘나는 이렇게 예쁜 애와 친하게 지낸다고.’하며 자부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동일시는 기본적으로 내사에서 생겨납니다. 내사와 동일시 모두 인격이 아직 성숙하지 않을 때, 자존감이 낮을 때 나타나죠. 누구나 이 과정을 겪을 수는 있지만, 동일시와 내사가 자주 일어난다면 자존감은 더욱 낮아질 뿐입니다. 내면의 단단함이 없어지고 껍질만 남을 뿐이죠. 남의 시선과 의견을 너무 믿고 수용할 필요는 없어요.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지금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느냐’입니다. 스스로 오롯하게 일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은 외부 세계가 아닌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PART 3. 나는 왜 사람을 깊이 사귀지 못하는가
[속마음을 숨기는 나]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행복할 수 없을까?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어느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겁이 많았고 잘못을 저지를까 봐 항상 두려워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손톱을 깨무는 버릇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아이가 그런 적은 처음이었기에 아이의 엄마는 참을성 있게 아이를 타이르며 손톱을 깨무는 건 나쁜 습관이니 다음부터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에도 아이의 나쁜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난폭한 성격의 아이 엄마는 아이가 손톱을 깨무는 걸 보기만 하면 혹독하게 야단을 치고 아이를 때렸습니다. 그 후 아이는 손톱을 깨무는 버릇은 고쳤지만 한 가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엄마를 볼 때마다 매번 두 손을 뒤로 숨기고는 “엄마, 저 손톱 안 깨물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아이는 부모가 앞에 없을 때 여전히 참지 못하고 손톱을 깨물었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아이가 엄마 앞에서 자신이 손톱을 깨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손을 그냥 놔둬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왜 손을 뒤로 숨겼을까요? 이는 ‘반동 형성’의 심리 방어 기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반동 형성’이란 어떤 개인의 욕망과 동기가 당사자의 의식이나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을 때 그 욕망과 동기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고 반대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반동 형성 방어 기제를 사용하는 사람이 외부로 나타내는 행동은 마음속 진심과 상반되는 것이죠. 엄마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은 아이는 자신이 손톱을 깨물면 어머니에게 벌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 아이는 엄마를 보면 자신이 참지 못하고 손톱을 깨물어서 벌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기 위해 아이는 엄마를 볼 때마다 자신의 손을 뒤로 숨기며 자신은 손톱을 깨물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 애썼죠. 밥을 먹다가도, 화장실에 가다가도 아이는 엄마를 보기만 하면 항상 이런 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 남자아이는 나중에 ‘아동 행동장애’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례는 개인이 반복적이고 지나치게 특정 행동을 하는 경우 자신의 잠재의식에 있는 욕망을 완전히 반대로 표현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설명해줍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감추는 것은 정상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특정 행동이 너무 지나친 경우라면 반동형성의 심리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여자아이는 엄마랑 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사탕을 가리키면서 “사탕은 먹으면 안 돼. 사탕을 먹으면 충치가 생길 거야. 그리고 엄마도 싫어할 거야.”라고 말합니다. 이 아이는 정말 엄마 말을 잘 듣는, 철이 일찍 든 소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는 반동 형성 방어기제를 사용했을 뿐입니다. 사실 이 여자아이는 사탕을 매우 좋아합니다. 하지만 사탕을 먹으면 엄마에게 늘 혼이 났고 엄마에게 미움을 받을까 봐 두려웠던 겁니다. 그래서 아이는 사탕을 먹고 싶은 자신의 진짜 욕망을 숨기고자 일부러 엄마에게 자신은 사탕을 먹지 않는다고 반복적으로 표현했던 것이죠.
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할까?: 반동 형성 기제의 사례는 성인들에게서도 매우 흔히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마음속으로는 어떤 사람을 미워하거나 증오하면서 겉으로는 오히려 그 사람에게 친절과 관심을 보이죠. 또 어떤 경우에는 마음속으로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그 사람을 매우 차갑게 대하거나 심지어 미워하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제가 가르쳤던 학생 중 한 소심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여학생을 같은 반의 남학생을 남몰래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 여학생이 자신의 감정만 생각했다면 마냥 설레어 하며 어떻게 남학생에게 다가갈지를 고민했겠지만, 그녀는 자신과 남학생이 너무 가깝게 지내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녀는 자칫하면 남학생을 만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려고 노력했죠. 하지만 그와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와 단둘이 있는 것이 아닌 다른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을 택했죠. 행여 친구들이 자신을 의심할까 봐 그 남학생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그의 말을 비웃기까지 했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남학생은 이 여학생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느끼고 점점 여학생을 멀리하기 시작했죠. 이 여학생은 자신의 마음을 숨긴 것을 후회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그녀는 친구들의 시선이 더 무서웠던 거죠.
이 여학생이 마음속으로는 남학생을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싫어하는 행동을 한 건 반동 형성 심리 방어기제의 작용을 나타냅니다. 그녀가 남학생을 좋아하는 마음은 원초아의 충동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그 충동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고 느꼈고 자신이 상처 받을까 봐 그 남학생을 싫어하는 척 했던 것이죠. 그녀는 마음속 욕망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보호했습니다. 하지만 이 여학생의 반동 형성은 부정적인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속마음을 숨기는 반동 형성은 아름다운 인연을 깨뜨릴 가능성이 많아요. 이 여학생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진짜 마음을 용기 있게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반동 형성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억압하게 되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죠.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외로워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특성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좋아한다면, 그리고 스스로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만 있다면 삶에서 그런 외로움은 줄어들 것입니다
나의 단점까지도 사랑하면, 상처를 이길 수 있다: 반동 형성 기제는 공포증 환자에게서도 잘 나타납니다. 대부분의 경우 공포증 환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자신의 마음속에 숨겨진 욕망이죠. 이성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두려움 역시 대부분은 반동 형성 기제로 인해 생깁니다. 이런 사람들을 상담해보면 청소년 시기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성적인 환상은 ‘저질스러운 것’이라고 교육을 받았거나 종교적인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마음속으로는 이성과 교제하고 싶은데 어릴 때 형성된 잠재의식 때문에 욕망을 억압하여 이성과 교제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순리를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너무 내 생각에만 집중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심리치료사에게 상담을 받는 것도 좋고 나를 아껴주는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숨기고 싶은 결점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이런 결점이 있다고 스스로를 미워하지 마세요. 나의 결점까지 끌어안지 않고 수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이 굉장히 잘난 줄 알고 기고만장하며 살게 될 겁니다. 나 자신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깨닫게 된다면,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과시하거나 포장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PART 4. 나는 왜 항상 남의 말에 흔들리는가
[남을 의식하는 나] 나를 속이는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면 그 잘못이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특히 그 잘못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손해를 입힐 때는 강렬한 죄책감을 느낍니다. 이때 개인이 심리적인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 상징적인 사건과 행동으로 이미 발생한 사건을 상쇄시키려고 하는 증상이 ‘의식화와 취소’ 방어 기제입니다. ‘의식화와 취소’는 먼저 ‘의식화’를 통해, 즉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이미 발생한 고통스러운 사건을 ‘취소’합니다. 죄책감을 없앨 수 있는 행동을 찾는 것이죠. 종교 의식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세례는 기독교인이 신자가 될 때 거행하는 중요한 의식입니다. 기독교 국가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아기 때 교회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목사는 아이를 받은 다음 아이의 머리 위에 성수를 떨어뜨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풉니다.” 기독교인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가 있기에 세례를 통해 더러움을 없애야지만 나중에 천당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세례는 일종의 의식화와 취소가 될 수 있죠. 사람들은 세례라는 의식이 과거의 죄악을 없애고 인생을 순결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심리 방어기제로서 의식화와 취소는 반드시 정형화된 형식이나 번거로운 규칙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단지 일종의 상징적인 행동으로 작은 행동이나 간단한 말 한마디도 의식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풍습과 종교 의식에서 의식화와 취소는 긍정적인 작용을 합니다. 의식화와 취소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 덕분에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부딪혔을 때 긍정적인 의식화와 취소를 사용한다면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식화와 취소는 사회에 적응하는 데 있어 비교적 괜찮은 심리 방어술이 되죠.
“미안해”라는 말의 힘: 의식화와 취소를 통해 우리는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없애고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례로 바로 ‘사과’입니다. 흔하게 일어나는 사과와 용서의 과정에도 의식화와 취소가 작용합니다. 잘못을 하면 마음이 불안해지기 마련이고 피해를 입은 사람은 불쾌하겠죠. “미안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는 흔히 잘못한 사람이 느끼는 양심의 가책을 크게 줄여줍니다. 만약 상대방이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좋아질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먼저 사과를 하는 이유는 죄책감을 없애고 싶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사람은 사과를 통해 자신의 죄책감을 줄이고 상대방은 마음속의 짜증이나 잘못한 사람이 끼친 괴로움 들을 잊을 수 있습니다.
한 학생이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평소와는 다르게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는 등 착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는 사과의 마음이 담은 행동을 통해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없애려 했습니다. 이 학생은 취소 방어 기제를 사용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또한 자신과 다른 사람의 관계를 화목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혹시 한 가지 행동을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다른 심리 방어기제와 마찬가지로 의식화와 취소 역시 지나치게 사용하면 심리적인 질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아홉 살 난 한 남자아이는 날마다 잠자기 전에 세수를 하고 나서 수도꼭지를 깨끗하게 닦은 다음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을 때까지 수도꼭지를 계속 검사했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말하기를 그렇게 하는 건 가족, 특히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죠. 아이는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면 집이 물바다가 되어 잠자는 사람이 익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가정과 성장 환경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나서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매우 불친절하게 대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저녁 아이에게 피아노 연습을 시켰고 아이가 피곤해해도 쉴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사실 피아노 치는 걸 실어한다고 했어요. 아이는 아버지에게 희망을 걸어 보려 했지만 아버지는 아이의 상황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사업에만 열중했습니다. 아이의속마음은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아이는 수도꼭지를 깨끗하게 닦고 검사하는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마음속의 분노와 갈등, 상처를 없애려고 했던 겁니다. 부모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거기서 파생된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아이들은 때때로 말실수를 하고 나서 재빨리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크게 뜬 채 상대방을 바라보는 귀여운 동작을 취합니다. 또 친구들에게 “방금 한 말 취소.”라고 말하기도 하죠? 이 역시 무의식적으로 의식화와 취소를 사용한 경우입니다.
PART 5.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이타적인 나] 사람은 사람에 의해 구원 받는다
마지막으로 ‘이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타’는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성숙한 심리 방어기제로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통해 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만족시키면서 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거나 유익이 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프로이트의 견해에 따르면 이타행동을 하는 사람의 초자아는 그렇지 못한 사람의 초자아보다 비교적 균형이 잘 잡혀있다고 합니다. 이타란 다른 사람을 위해 적극적으로 봉사하면서 본능적인 만족을 느끼는 행동을 말합니다. 결국 사람들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만족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타 행동을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타인이 하는 호의적인 행동이 나의 이타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입니다. 사회 심리학자 앨빈 굴드너의 사회 규범 이론에 따르면 인류의 도덕 원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호성 규범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기보다는 도움을 베풀려고 하죠. 또 상대방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려고 하면 나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상대방을 대하게 됩니다. 즉 친사회적인 이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는 일종의 보답하는 행동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독일 특수병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적군의 참호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참호에 혼자 남은 적군 병사가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독일 특수병은 그 병사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다시 고개를 돌린 적군 병사는 순간 독일 특수병이 자신과 같은 편인 줄 알고 순간적으로 자신이 먹던 빵을 건넸습니다. 이는 본능적인 호의에서 나온 이타적인 행동이었죠. 그 적군 병사는 상대방이 독일 특수병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본능적인 이타 행동을 했고 동시에 자신의 마음도 본능적으로 만족시킨 것입니다. 독일 특수병 역시 순간적으로 적군 병사의 호의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도 의외라고 생각할 만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적군 병사를 차마 포로로 잡을 수 없어 그냥 다시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결국 독일 특수병의 임무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실패했지만, 그에게는 임무를 완수하는 일보다 적군 병사에게 보답하려는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심지어 그에게 이런 만족은 상관의 질책으로 인해 느낄 수 있는 불쾌감보다 더욱 중요했습니다.
두 번째 이타 행동은 죄책감 때문에 다른 사람을 돕는 경우입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종종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 이타 심리 방어기제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불가피하게 잘못을 하고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낍니다. 죄책감은 언제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며 마음에서 불안과 초조함을 일으키죠. 반대로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느끼게 하며 마음속에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자아 이미지를 확립합니다. 즉 다른 사람들을 돕는 행동은 사람들의 죄책감을 없애 마음속의 충돌을 완화해줍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잘못을 해서 죄책감을 느낄 때 흔히 다른 사람들을 더 도와주려고 합니다.
안정을 찾고 싶다면 남을 도와라: 미국에서 보도되었던 뉴스를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뉴욕 주 린덴허스트의 한 도로 위에서 한 운전자가 사고로 인해 빙글빙글 도는 차를 자신의 차로 막아냈다고 합니다. 운전자는 사고 차량을 가로막아 정지시키고 나서 그 차에 탄 운전자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대형 사고를 막은 운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천천히 속도를 내어 그에게 접근해서 추월한 다음 속도를 줄여 길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차는 제 차와 부딪쳤죠.” 어떻게 그런 방법을 생각해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남자는 “어쩔 수 없었어요. 그게 그 차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 운전자는 이렇게 위험한 방법으로 사고를 막았던 걸까요? 그는 도대체 왜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했을까요? 여기서 이번 장의 첫머리에서 언급했던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이 남자의 초자아는 다른 이들보다 매우 발달해서 이미 원초아의 일부분으로 내면화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그의 본능적인 이타 행동은 그에게 본능적인 만족을 주었죠. 이타는 일종의 성숙하고 고상한 심리 방어기제입니다. 이타의 목적은 이타 행동을 통해 만족감과 우월감을 얻고 더 나아가 자신을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이타는 다른 방어기제와는 달리 불안한 감정이 생기기 전에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타는 마음의 불안을 없애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불안이 생기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방어기제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위의 뉴스 보도에서 만약 남자가 사고 차량의 운전자를 신속하게 구하지 않고 그가 사고가 나는 걸 보고만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는 분명 끊임없이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자신이 나섰더라면 그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 거라고 괴로워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타 행동을 통해 그는 자신이 이러한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이타 행동은 사람들이 마음의 불안을 피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하지만 그는 사고 차량을 구할 당시 이러한 점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모두 잠재의식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죠. 그는 초자아가 매우 강했기 때문에 이타적인 행동을 하기로 결정할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나 대신 누군가가 도와줄 거야: 어떤 때에는 긴급한 상황임에도 선뜻 이타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타 행동을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어떤 심리를 가지고 있을까요? 심리학자들은 지켜보는 사람이 많을 때 일어나는 ‘방관자 효과’를 언급합니다. 구경꾼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 책임을 분산시키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있으면 개인은 이타 행동을 모두가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겠지’라는 심리가 생기는 거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심리 방어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현장에 한 사람만 있을 때 그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그는 신속하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게 되죠. 그러나 만약 현장에 많은 사람이 있으면 그는 ‘다른 사람이 분명 도와줄 거야.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안 도와준다면 나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심지어 자신이 도움을 주지 않은 원인에 대해 “누군가는 도와줄 줄 알았다.”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고는 이타 방어기제를 사용하지도 않고 이타 행동을 하지도 않죠.
심리학자 대니얼 뱃슨에 따르면 이타 행동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뱃슨은 도움을 베푸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한 걸 봤을 때 자기 마음속의 불안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심에 집중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때 작용하는 이타 방어기제는 그런 불안과 동정심, 즉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타가 발휘되는 과정에서 초자아는 상대적으로 강해집니다. 초자아가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가 더 쉽죠. 마음이 종종 불안하고 경계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저는 봉사활동을 권유하고는 합니다. 남을 돕는 과정을 통해 초자아를 강하게 만들 수 있으며 마음속 욕망과 충동을 더욱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어 보람도 크고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과정을 통해 나 역시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항상 상처받는 나를 위한 심리학/ 커커 지음 /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