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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일 (2019. 03. 03. 일) 호치민 – 무이네
< 베트남 남부식 쌀국수. 돼지 족발과 돼지 간도 들어가 있다. 면이 넓은 북부식과는 달리 면이 가늘다.>
오늘은 무이네로 이동해야 하는 날이다. 7시 20분 출발 차이기에 6시 30분까지는 근처에 있는 신 투어리스트로 가서 발권을 받아야 해서 5시 50분에 로비의 소파에 자는 놈 깨워 체크아웃했다. 원 계획은 6시에 호텔 옆 퍼훙에 가 쌀국수를 먹고 갈 생각이었지만 퍼홍은 아직 준비 중이란다. 신 투어에 가니 아직 사무실 문은 안 열려 있고 맞은편 노점에 쌀국수와 과일주스와 차를 파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파는 국수는 한 그릇에 4만 동이니 값도 싼 편이거니와 특별히 남부식 국수라고 해서 단맛이 조금 더 강한 것이 특징인데 먹을 만 했다. 우리 옆 테이블에는 어젯밤 아마 근처 “크레이지 버팔로” 같은 술집에서 밤새 진탕 마시고 아침 해장을 하려는 듯 반 쯤 남은 양주병을 들고 있는 러시아 아가씨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무얼 흘려 휴지통을 건넸더니 고맙다고 하는데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아도 다 보이는 드러난 앞가슴은 두 사람 다 큰 수박 두 통을 매달아놓은 형국이다. 워낙 커서 목과 어깨가 아프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건장한 남자라도 수박 두 통을 목에 달고 다닌다고 생각해보면 거유가 여자 스스로 입장에서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모유가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설령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상품성이 없으니 귀찮기만 할 것 같다.
< 슬리핑 버스인데 내 키는 알맞아 별로 불편함이 없으나 덩치 큰 서양인들은 좌석 밖을 넘는 남아도는 키와 넘치는 살을 어딘가 배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고역으로 보인다. >
신 투어리스트의 문이 열리고 우린 가지고 있던 바우처를 승차권으로 교환 후 운전기사의 안내에 따라 대기하고 있던 공원 옆 슬리핑 버스에 탔다. 출발시간은 7시 20분이었다. 도중에 휴게소에 들렀는데 북 베트남 여행 때 경험을 살려 두 사람 다 신발은 두고 나갔더니 엄마! 여긴 슬리퍼가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다 나가길 기다렸다가 다시 신발을 가져와 신고 화장실로 갔다. 북 베트남 때는 신발을 들고 나가서 쪽팔리더니 여기서는 신발을 두고 와 쪽이 팔리는구나. 이래서 여행이 필요하다는 걸까? 그럼 중부 지방에서는 어떻게 하지?
버스가 거의 무이네 시내에 도착한 듯하여 호치민에서 익힌, 주소로 집 찾기를 해 보았다. 일단 우리가 갈 “Joe’s Cafe”의 주소를 본 후 길가의 가게들의 주소를 보며 숙소를 찾으려 했는데 이미 지나와도 한참을 더 지나왔다. 걸어가자고 우기는 안선생을 겨우 설득해 택시를 탔더니 3만동이 나왔다. 이 더위에 울퉁불퉁한 보도로 캐리어를 끌며 걸어왔으면 둘 중 하나는 사망할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일단 체크인하고 2박의 요금으로 118만 동을 지불했다. 그리고 옆에 식사하는 동양인 여자애들이 있어 우리도 여기서 식사하기로 했다. 안선생이 한국 애들로 알고 너희들이 지금 먹는 메뉴가 무엇이냐 등 여러 가지를 물었는데 중국 애들이었다. 그래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메뉴에서 찾아주었다. 그래서 먹은 것이 돼지고기 덮밥과 맥주인데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 “Joe’s Cafe”는 단순한 호텔이 아니라 레스토랑, 라이브 뮤직 카페,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공간까지 갖춘 제법 그럴 듯한 곳이었다. 물론 이 모든 시설이 우리 두 사람에게는 그냥 숙소에 불과했지만. >
내일의 일정은 무이네 투어였는데 “Joe’s Cafe”의 리셉션의 아가씨에게 예약이 가능하냐고 했더니 된다고 한다. 내일 새벽 4시 30분에 호텔 앞에서 출발하기로 하고 1인 165,000동으로 예약을 했다. 그리고 나는 숙소에 들어가 쉬고 안선생은 혼자 거리 구경하며 산책을 나갔다 와서 샤워를 했다. 조금 더 쉬다가 거리 구경을 하다가 커피 한잔 마시고 숙소에서 쉬면서 구글지도에서 찾아둔 “Lam Tong”이란 베트남 식당으로 가서 볶음밥 1그릇, 가리비 1㎏, 맥주 2병, 샐러드 1접시를 주문했는데 샐러드가 너무 맛있어 하나 더 주문했다. 그래봐야 192,000 동이니 우리 돈으로 9,600원이고 일인 당 4,800원이다. 우리나라로 보면 맥주 1병 값에서 조금 지난다.
< 베트남이나 중국이나 밥은 2사람이 1인분을 시키는 것이 양적으로 적당하다. 가리비가 10만동으로 비싼 편이고 사이공 맥주는 24,000동으로 1,200원이다. 볶음밥이 49,000동, 샐러드는 19,000동인데 우리 돈으로 850원이다. 우리가 너무 많이 시켜 계산이 복잡했든지 나중에 계산서를 보니 샐러드 하나 값은 빼고 계산했다. 과연 내가 샐러드 한 접시 값을 다시 주었을까? >
들어오는 길에 잭 플루트와 캐슈너트 1봉지, 맥주 4캔, 그리고 내일 새벽 요기할 빵 1개, 컵라면을 샀다. 룸에서 가져간 보드카에 간을 하여 한잔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제 7 일 (2019. 03. 04. 월) 무이네 투어
4시에 일어나 대강 입고 로비로 갔더니 곧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를 펄럭이는 Jeep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픽업을 왔다.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돌아다니더니 젊은 서양인 커플을 태우고 “White sand dune” 입구에 도착했다. 아직 날은 밝지 않아 어둑어둑한데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수도 없고 우두커니 서 있으니 모래 꼭대기까지 사륜구동차로 40만동에 태워 준다고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날씨가 흐려 일출을 보지는 못하고 젊은 커플들이 갖가지 포즈를 연출하며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가증스런 사진 찍는 것만 실컷 구경했다. 사진 찍는 걸 보면 정말 저러고 싶을까할 정도로 여자들은 용기가 있고 뻔뻔하기까지 하다.
< 넓은 사구가 사막처럼 펼쳐져 있는데 그 넓은 사구에서 우린 가장 일출을 많이 맞이한 커플이었다. 청춘 커플이나 젊은 처녀애들끼리 와서 사진 찍고 놀 곳이지 우리가 올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할 일이 너무 없어 우리도 사진을 찍었다. >
< “White sand dune”을 나와 “Red sand dune”으로 가는 길이 마치 미국영화에 나오는 고속도로처럼 보인다. >
다시 차를 타고 40분 정도 달려 “Red sand dune”에 도착했으나 이미 해가 높이 떠 슬슬 더워지기 시작했다. 모래가 조금 붉은지 모르겠으나 역시 젊은 애들만 열심히 모래 언덕을 올라간다. 상점에 앉아서 커피를 주문해 마시며 올라간 일행이 빨리 내려와 다시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우리 차 운전기사는 도박을 하는지 머리에 이(虱)가 옮을 정도로 운전기사들끼리 바글바글 모여 노름에 열중하고 있다.
< 그냥 모래 언덕인데 이름을 그럴 듯하게 붙여 관광지로 만들어 놓았다. >
< 고깃배는 멀리 있고 바구니 배가 운반을 대신한다. 이 배가 다낭에서는 관광용으로 쓰이고 있다. >
다음 투어는 “Fishing village”라는 곳인데 쉽게 말해서 베트남식 “어촌”이다. 그러나 여러 척의 배들과 바구니 배들이 정박해 있는 풍경은 예사로운 풍경이 아니었고 이곳은 볼 만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선들이 고기를 잡아오면 이 항구는 수심이 얕기 때문에 직접 들어올 수 없어 바구니 배에 다시 고기를 옮겨 육지까지 운반하는 것이다. 우리는 항구까지 내려가지 않고 사진 몇 장을 찍고 근처 식당에서 진열해 놓은 고기와 조개를 구경하며 “요정의 샘물”로 갈 때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 짚 차 뒤에 특별히 만든 좌석에 앉아 있던 서양 처녀는 치마를 입고 차에서 뛰어 내리다가 어디서 그런 자연스럽고 화려한 기술을 익혔는지 치마가 날려 올라가 엄청나게 크고 뽀얀 히프와 오늘 아침 갈아입은 하얀 팬티를 보여주었다. 다음 행선지인 “요정의 샘물”에서도 또 뛰어 내리겠지.
“요정의 샘” 입구에 도착하자 눈치 빠른 운전기사는 이 사람들은 이 투어에 적합한 사람들이 아니란 걸 알았는지 우리에게 그냥 호텔까지 태워 줄까라고 제의했고 당연히 우리는 “OK”라고 했다. 이런 회화에는 신경이 많이 쓰여 서양 처녀애가 다시 화려한 기술을 반복했는지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차로 약 3분 정도 가니 호텔이 보였고 우린 아직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어서 과일과 요구르트와 아이스 홍차를 시켜 마시며 더위를 식혔다. 우리는 무이네가 전체적으로 젊은 남녀가 올 곳이란 평가에 동의했다. 방으로 들어가 샤워 후 휴식을 취하며 낮잠을 잤다.
< 태어나서 부겐베리아 꽃이 이렇게 큰 것은 처음 보았다. 부겐베리아가 평범한 집을 누구나 한번쯤 다시 보는 꽃 궁전으로 만들었다. >
그래도 점심은 먹어야 하기에 근처 베트남 가정식 식당에 가서 새우구이와 돼지고기 스테이크, 샐러드와 맥주 2병을 주문했는데 버터에 구운 새우가 상당히 맛있다. 햇볕을 싫어하는 나는 다시 방에 누워 뒹굴고 안선생은 거리를 산책한다고 나갔다. 저녁은 어제 저녁을 먹은 “Lam Tong”에 가서 오징어 데침, 새우볶음, 샐러드, 맥주를 시켰는데 점심 때 먹은 새우구이와 너무 차이 나게 빈약했다.
< 점심 비용이 239,000 동이었는데 이곳 저녁은 157,000 동이라 그런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특히 오징어가 너무 무성의하다. >
내일은 아침 7시에 달랏으로 가는 버스를 신 투어리스트에서 타야하기에 짐을 꾸리고 늘 먹는 잭 플루트와 보드카로 간을 한 맥주 몇 잔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라이브 카페 주인인지 손님인지 쉰 목소리로 기타 반주에 맞추어 계속 라이브 음악이랍시고 고함을 질러 한참 잠을 설쳤다. 이곳은 이상한 숙소다.
♠제 8 일 (2019. 03. 05. 화) 무이네 ― 달랏
5시 10분에 일어나 대충 씻고 어제 사둔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웠다. 7시 10분 전에 체크 아웃하러 가니 아무도 없다. 경비원 비슷한 늙은이가 있어 “체크 아웃”이라 했지만 자기 오토바이로 어디로 태워줄까 하는 이야기를 하는 듯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신 투어리스트 사무실에 7시 30분까지 가야 하는데 계산은 다 되었으니 그냥 가도 되지만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종업원이 한 명 두 명 오더니 10분이나 되어 담당자가 왔다. 택시를 불러 달라고 한 후 기다리니 체크아웃 되었단다. 신 투어 사무실에서 표를 받은 후 7시 20분에 상당히 낡은 버스를 타고 달랏을 향해 출발했다. '자리가 넉넉해 편히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가는 도중 사람들이 자꾸 타더니 나중에는 짐으로 통로까지 꽉 막힐 지경이 되었다. 도중에 휴게소에 한 번 들르고 12시경에 “Da Lat”에 도착했다. 신 투어리스트 사무실에서 일단 3월 9일 Na Trang 가는 버스표 2장을 238,000동에 구입하고 택시를 타고 예약해둔 “President hotel”에 도착해 체크인하고 방으로 가니 새로 지은 건물이라 시설도 좋고 아주 깨끗하여 마음에 들었다.
점심때가 된 지라 우선 밖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나가면서 리셉션 데스크에 세탁물을 맡기고 호텔 입구에서 10m나 갔을까? 바로 쌀국수와 간단한 음료 등을 파는 동네식당이 있어 쌀국수 스페셜을 주문했다. 스페셜은 메추리알 하나 들어갈 걸 2개 넣고 새우 1마리 넣을 걸 2마리 넣어주고 20,000만 동에 5,000동을 더 받는 것을 말한다. 생각 외로 시골 쌀국수치고는 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나는 이제 각종 향채에 대한 거부감은 모두 극복한 지라 고수니, 쑥갓이니 뭐니 가리지 않고 뜯어 넣고 라임 반 조각을 짜 넣은 후 베트남 고추 썬 것 대여섯 개 넣었다가 고추는 반드시 건저내고 먹는다. 같은 쌀국수라도 집집마다 사람마다 맛이 달라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 양이 푸짐해도 쌀로 만든 것이라 소화도 잘 되고 영양학적으로 따져도 한 끼 식사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
식사 후 동네 카페에 가 커피 한 잔을 시켰더니 너무 진하다. 그래서 물을 한 병 주문해 타서 마셨다. 커피를 주는 아가씨가 우린 반 팔 티셔츠를 입었는데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다. 호찌민에서 약 300km 떨어진 남부 고원에 자리한 달랏은 해발 1,475m, 연중 평균 기온 18도로 일 년 내내 선선하여 과일, 채소, 화훼 등의 특산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호텔에도 난방이나 냉방시설이 없다. 달랏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프랑스인을 위한 휴양지로 도시 중심의 쑤언 흐엉 호수도 당시에 개발되었다. 북부의 사파나 중부의 바나힐과 비슷한 성격의 도시라 보면 되겠다.
호텔로 돌아와 내일과 모레 투어에 대한 예약을 120만 동으로 하고 쉬다가 달랏 시장 구경을 가기로 했다. 택시로 5분 정도 가니 꽃과 과일과 각종 채소 등 많은 물산들이 거래되고 있다. 시장 입구에도 화려한 꽃과 화분을 팔고 있지만 시장 옆 공원에는 라벤더, 수국을 비롯해 각종 이름 모를 꽃들이 잔득 피어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자카란다”라는 보라색 꽃이 핀 가로수도 인상적이다. 아무리 보아도 그 동안 저녁마다 술안주로 손색이 없었던 생(生) 잭 플루트는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말린 잭 플루트 1봉(1㎏)을 9만동에 사고 릿치 1㎏을 4만동에 샀다. 우리가 본 바로는 호텔 앞에는 슈퍼가 없어 “Lam Dong 종합병원” 앞 슈퍼에서 택시에서 내려 맥주를 8캔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택시 값은 왕복 4만동이니 편도에 1,000원 꼴이다.
< 딸기가 제 철인지 한 사람 앞에 한 바구니씩 두고 팔고 있다. 왠지 사는 사람이 각 1㎏씩 4㎏를 사지 않으면 미안할 것 같다. 게다가 표정이 궁서체라서 부담스럽다. 3월이라 구미가 당겼지만 아무래도 단맛보다 신맛이 많을 듯해서 사지 않았다. 과일의 당도는 그 나라의 문화수준에 비례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래서 딸기는 우리 것이 최고여! >
오늘 아침은 새벽 같이 컵라면을 먹었고 점심은 동내 쌀국수로 때웠으니 저녁은 뭔가 좀 그럴 듯하게 먹어야 할 것 같아 점심 이후 쉬면서 계속 “구글”로 호텔 근처 맛집을 찾은 결과 “Hai San Kyla”이란 곳이 있었다. “해산”이라고 하니 아마 해산물 전문식당인 모양이다. 그래서 안선생에게 제안을 하니 긍정적이다. 유니폼을 입은 남녀 종업원들이 인사를 깍듯이 하는, 제법 그럴 듯한 식당에 들어가니 바로 수족관으로 안내한다. 타이거 새우 1㎏에 85만동이라고 하면서 1/2㎏을 권한다. 그러나 무이네의 “Lam Tong” 식당의 빈약한 양의 새우 생각이 나서 1㎏를 달라고 하니 또 무얼 주문하겠느냐고 한다. 0.5㎏를 권해 놓고 1㎏를 주문했는데 더 주문하라고? 일단 샐러드 한 접시와 맥주 2병을 주문하고 나오는 음식을 보고 다시 주문하기로 하고 게가 유난히 눈이 가는 수족관 앞에서 후퇴했다.
< 새우가 20마리가 나왔다. 왼쪽 옆에 보이는 것은 누룽지 비슷한데 이것도 계산에 들어가고 손 닦는 휴지도 역시 돈을 받는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너그럽게도 그릇 값은 받지 않는다. >
먹고 먹어도 새우는 줄지 않아 결국 평시와 달리 맥주를 한 병 더 주문하고서야 4마리를 남기고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종업원 말을 들어 0.5㎏만 주문했으면 넉넉했을 텐데 만용을 부린 듯하다. 오늘의 계산은 957,000 동이다. 47,850원이니 한 사람 이 거의 25,000원 정도 먹은 셈이다. 한국에서도 한 끼 식사비로 많은 금액인데 베트남에서 그 정도 먹었으니 호사를 누린 셈이다.
간단하게 호텔 방에서 한 잔하고 달랏에서 첫 밤을 닫았다.
♠제 9 일 (2019. 03. 06. 수) 달랏 투어 1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어 일찍 깨었다. 오늘은 투어도 있고 해 일찍 아침을 먹기로 했다. 6시 경에 식당이 있는 L(lobby)층 – 2층으로 가니 불은 꺼져 있고 식사하는 곳인 듯은 한데 전혀 온기를 느낄 수 없다. 그래서 G(ground)층 – 1층의 리셉션에 가니 여직원이 부스스한 얼굴로 빵과 계란 프라이를 먹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좋다고 했더니 나에게 다시 쌀국수로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야 당연히 “OK”라고 했더니 L층에 가서 기다리란다. 10분 쯤 뒤에 쌀국수 집에서 소고기 쌀국수 2그릇을 가져와 차려 주었다. 그래서 내가 어제 저녁 해산물 식당에 가면서 본, “Pho Hung?이라고 하니 겸연쩍은 듯 빙그레 웃는다. 하긴 식당 안에는 우리 두 사람뿐이니 굳이 주방의 전 식구가 나와 뚝딱거릴 필요가 있겠는가? 7층 건물에 각 층마다 대여섯 개의 방이 있다면 40개 이상의 방이 있을 터인데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고 손님이 우리 둘뿐이라니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깨끗하고 치장도 화려한 호텔과 하루 종일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리셉션에 앉아 있는 서너 명의 아가씨들의 공들인 화장이 너무 가여웠다.
< 식당의 오른쪽 면인데 왼쪽에 주방과 또 이만큼의 식탁이 놓여 있다. >
< 저녁 시간 G층의 위용. 중앙의 바닥이 금빛 무늬가 마블링된 대리석이라 번쩍뻔쩍하고 리셉션도 조그마한 아가씨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삐가번쩍하다. >
< 소파도 거의 궁전에 두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크고 화려하다. 아마 나와 안선생 생애에 이런 큰 단독 소파에 앉아 본 것은 거의 영광이라 할 만큼 기념비적 일이다. >
< 별로 큰 감흥을 줄 만한 폭포는 아닌데 아마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 사람들이 찾는 모양이다. >
8시 15분경에 Tour pickup이 왔는데 호텔의 급과 우리의 급에 맞게 포드 승합차이다. 달랏 시내를 벗어나 조금 가니 Datanla 폭포 입구가 나온다. 차에서 내려 폭포까지는 6만 동으로 표를 끊어 썰매 비슷한 모노레일을 타고 가게 되어 있는데 안선생은 포기하고 혼자 내려가는데 당기면 나가고 밀면 멈추는 방식이었다. 한참 신나게 내려가는데 앞 커플이 사진을 찍는다고 멈추어 있다.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충돌을 면할 수 없었지만 별 탈은 없어 앞 커플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으로 끝났다. 올라올 때는 케이블로 연결된 썰매를 당겨 빨리 올라 올 수 있었다. 혼자 있어야 했던 안선생은 찻집에서 차도 얻어 마시고 심심해 걸어 내려오다가 중간쯤 다시 올라 왔다고 한다.
< 달랏이 왜 꽃의 도시인지는 죽림선원에 와서 보니 이유를 알겠다. >
차를 조금 달려 죽림선원이란 절에 도착했는데 꽃이 많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꽃을 가꾸는 그 정성이 대단하다. 초봄에 피는 군자란과 6월에 피는 접시꽃, 10월에 피는 코스모스가 맨드라미, 달리아, 수국, 개량 국화, 난초 등과 함께 계절도 없이 시간을 초월한 화원을 이루고 있다. 어떻게 각 계절에 각각 피는 화초들이 한 계절에 꽃을 피울 수 있는지 매우 궁금했다. 아마 각 화초들이 꽃을 피울 공통 요소를 달랏이란 고원지대가 가지고 있겠지. 게다가 잘 손질되고 절제된 분재까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내 보기 좋으라고 남에게 빈궁한 삶을 요구하는 느낌이 들어 궁극적으로 나는 분재를 좋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 놓고 훤칠한 키로 미끈하고 우뚝하게 자란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장(壯)한 마음은 저래도 살까하는, 극도의 옹색한 삶을 사는 분재의 신기함에 비할 바 아니다. 우린 흔히 소나무라고 하면 우리나라 산천에 있는 꼬꾸라진 늙은 할매 같은 소나무를 생각하고 우리나라가 소나무의 원산지 정도로 생각하는듯한데 나는 베트남에도 소나무가 자라고 그것도 키가 15m 정도로 곧게 자랄 줄은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었다. 이곳이 지대가 높아서인지 반 아름은 되어 보이는 탐나는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소나무는 자연 분재가 되어 젊은 나이에 조로(早老)병에 걸려 늙은이 몰골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스님들의 울력이 있어야 선원이 수목원이 된 듯, 눈이 호강하는 즐거움을 중생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
< 저 큰 나무가 저 좁은 분(盆)에 뿌리를 내리고 살려면 얼마나 힘들까? 게다가 언젠가는 죽을, 저 분재를 돌보는 스님은 얼마나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나날을 보낼까? 문득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나고 무소유를 감명 깊게 읽었다는 쥐를 닮은 인물이 생각나고 그가 지금은 소유로 말미암아 감옥에 가 있음을 생각하니 결국 분재가 사람도 잡고 나무도 잡고 있다. >
죽림선원에서 나오니 안내하는 아가씨가 케이블카를 타고 가라고 해서 차는 보내고 1인당 6만동의 요금을 내고 맞은 편 산으로 이어진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는 4명이 정원인데 중년의 러시아 남녀와 같이 타고 오다가 안선생이 갑자기 무방비 상태의 남자에게 “Where are you from?”이라고 칼날 같은 질문을 던지니 러시아 남자는 이 돌발 상황에 당황하여 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서양인이 생긴 것이 비슷하다고 그 속까지 닮았으리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여자가 겨우 알아듣고 러시아라고 했다. 우리는 묻지도 않았지만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이 어디인지 한참 생각하다가 겨우 생각이 난 모양이다. 그러나 서로가 의사소통할 창구가 없는 상황이라 그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어색하게 멀뚱히 창밖을 보다가 도착해 “바이”라고 말하고서야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축지법을 섰는지 차를 타고 간 아가씨들은 이미 와 있다.
다시 차를 타고 간 곳이 “High tech strawberry garden”이라는 곳인데 달랏이 기후가 좋아 각종 농작물이 잘 되어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농사짓는 것을 보여주는 농원이었다. 그러나 별로 첨단 기술이라 할 수준은 아니고 비닐하우스에 자동 급수 정도로 조금 과학 영농을 하는 수준으로 보였다. 상점에 들어가 커피 값을 대강 알아보고 과일 말린 것도 구경하다가 더 재미난 것을 보게 되었다.
< 모피 코트를 입은 여자가 얇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보고 있는 곳, 이곳이 바로 달랏이다. 오른 쪽에 고급진 우리 차도 보인다. >
조금 앉아 쉬다가 다시 출발해 도착한 곳이 “Domaine De Marie”인데 달랏 대성당이다. 나중에 보니 우리 호텔 부근이었다. 달랏에는 큰 성당이 몇 곳 있는데 달랏 니콜라스 바리 대성당과 곳곳에 천주교 성당이 있다.
< 건물 구조와 색채의 조화가 아름다운 성당을 배경으로 천사 놀이를 하는지 두 아가씨가 온갖 비현실적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다. >
나는 소양인이라 감각기관 중 시각이 발달해서 아직 돋보기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투명한 낚시 매듭을 묶는데도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남이 보지 못한 여러 가지가 내 눈에는 띄는데 그것이 반드시 좋다고만 할 수 없다. 이 날도 성당을 보고 내려오다가 오른쪽 좁은 수로에 휴지 뭉치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뭔가 이상해서 보니 작고 흰 토끼였다. 그 토끼는 수로 안에서 마음에 드는 풀을 뜯어먹고 있었는데 마침 벤치에 쉬고 있는 가이드 아가씨에게 이야기해 주었더니 냉큼 토끼를 납치해 온다. 그리고 그 토끼는 그 아가씨 소유가 되어 우리와 여행을 같이 하게 되었다. “임자가 있는 토끼가 아닐까?”부터 “그냥 두고 오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를 거쳐 “이 아가씨가 키울 수 있을까?”까지 온갖 미혹의 상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냥 지나쳤으면 좋았을 것을, 토끼에 대해 책임질 수 없는 내가 괜히 토끼의 삶에 개입한 것이다. 나의 행동이 토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면서.
< 지금, 글을 쓰는 이 때 토끼야, 너는 살아 있느냐?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렴. >
그리곤 점심을 먹기 위해 시내로 이동했는데 우리는 그냥 운전기사가 추천하는 식당 “Golf Valley”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우린 오늘 아침 프리지던트 호텔 식당에서 둘만 식사하는 난생 최초의 경험 이상의, 또 다른 최초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식당은 엄청 크고 깨끗하였고 직원들도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는 제법 격이 있는 식당이었다. 우리는 같이 온 일행 2팀과 함께 큰 테이블에 앉았는데 메뉴를 본 한 팀이 슬금슬금 나가더니 다른 한 팀도 곧 소지품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나가버렸다. 둘만 남은 우리는 메뉴를 심사숙고해 보았더니 음식 값이 제법 비싼 편이었다. 아! 그래서 2팀은 다른 곳으로 갔구나. 그러나 옮기는 것이 귀찮은 나이인 우리는 사이공 맥주 2병, 구운 새우가 들어간 그린파파야 망고 샐러드 1접시, 그리고 식사로 나는 포크 립(250g)을 시켰고 안선생은 고국의 맛이 그리운지 김치 쇠고기 볶음밥을 시켰다. 시원한 맥주가 먼저 나오고 우리는 안 그래도 갈증이 나든 터인지라 목을 축이며 오랜 만에 나는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안선생은 김치 볶음밥을 먹을 생각에 음식이 좀 늦게 나오는 것도 참고 기다렸다. 드디어 음식이 나오고 우리는 깜짝 놀랐다.
< 새우가 도망갈까 봐 그린 파파야로 울타리를 치고 망고를 조금 섞고 나니 자기가 봐도 양이 너무 적었든지 뻥튀기를 장식 겸해서 올려 두었다. 값이 우리 돈으로 6,500원이다. >
< 이것이 250g이라 적힌 포크 립이란 음식인데 밥과 쟁반 무게까지 포함해서 250g인지 매우 궁금했고 립(rib)이 어느 부위인지 아는지도 궁금했다. 게다가 질기고 덜 익어 25만동짜리 음식을 먹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파프리카와 새싹으로 접시를 화장시키는 것은 잊지 않았으니 주방장은 여자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안선생에 비하면 다행이었다. >
< 김치 대신 청경채 데친 것에 케첩을 좀 뿌리고 질긴 쇠고기 부위를 특별히 골라 양념한 후 구워 맨밥 열에 둔 기상천외한 볶음밥을 탄생시켰다. 이 주방장은 김치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김치를 만들고 “볶다”란 말 자체를 모르면서 볶음밥을 만들고 있다. 먼지 나는 길가 쌀국수만 못한 음식을 만들어 내고는 고급 레스토랑 주방장이라고 월급을 받고 손님에게 음식 값으로 18만동을 받으니 이놈이 바로 도둑놈이다. >
너무 처음 당하는 황당한 일이라 어이가 없어 항의할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항의를 했다면 짧은 영어실력에 밤을 새워야 항 것 같았다. 그래서 다만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탄식을 하며 식사 값으로 68만동을 지불하고 나왔다. 다음 코스는 “Golden Valley”라는 곳인데 평이 별로라서 우린 입구의 찻집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다가 가이드 아가씨를 있는 곳에 가보니 아직 토끼를 안고 다닌다. 나도 풀 좀 뜯어주고 생김새를 가만 보니 이 토끼는 야생토끼가 아니라 애완용 토끼란 생각이 들었다. 즉 주인이 있는 토끼라는 말이다. 주인은 어쩌면 성당에 기도하러 왔다가 성당 안에 토끼를 데리고 갈 수 없어 풀이나 뜯어 먹고 있으라고 도말 갈 곳 없는 좁은 수로에 두고 간 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와 보니 행방불명이라면 주변을 한참 찾을 것이고 하늘에 매 같은 맹금류가 없는지 하늘도 몇 번을 올려다볼지 모르겠다. 토끼야, 이게 너의 팔자라 생각하려무나.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나쁜 일도 가끔 생기는 법이란다. 아니면 그때 하늘에 매가 너를 노리고 있었는데 너의 명(命)이 길어 나에게 구조되었는지도 모르잖아. 오늘 점심 때 기대에 부풀었던 우리에게 닥친 예상 밖 불행을 생각해보면 인생이나 토생(兎生)이나 한치 앞을 모른다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리곤 출발해 “Langbiang Mountain”에 갔는데 오늘 빡빡한 일정에 이미 지친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짚을 타고 산꼭대기를 다녀오는 관광은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또 다른 이유는 점심 때 예상 밖 지출로 짚을 탈 돈이 없어서였다. 우린 졸지에 거지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가까운 포토 존에 올라가 사진 몇 장 찍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 오른쪽으로 난 길로 가면 꼭대기가 나오는데 우린 걸어갈 형편이라 포기했다. >
“Langbiang Mountain”을 끝으로 오늘 투어는 끝이 나고 차로 우리 호텔까지 오니 오후 4시 35분이나 되었다. 문제는 우리에게 '달러'는 있는데 '동'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결국 달랏 여행자 거리로 가서 그곳에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My dream hotel”로 가서 환전을 하거나 환전할 은행을 찾기로 했다. 택시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택시에서 내려 길 건너 호텔로 가니 한국인 남자 주인은 없고 아내인 월남 아줌마가 나와 띄엄띄엄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는데 400달러 환전을 할 수 있느냐고 하니 돈이 모자란다더니 나중에는 다 해주겠다고 했다. 달러 당 23,100동을 쳐주니 상당히 잘 쳐주는 셈이다. 그래서 924만동을 주머니에 넣으니 모든 고민은 저절로 해소가 되고 우리의 기분도 상쾌해졌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와 세탁물을 찾은 후 가격을 물으니 체크아웃 때 계산하잖다. 방에 냉장고도 없으면서 체크아웃 때 뭘 계산할 게 있다고 격식을 차리는가 싶었지만 고급 호텔을 지향하는 리셉션 아가씨의 애절한 소망을 따르기로 했다. 오늘 저녁은 비도 오고해서 호텔 바로 옆 Noodle 요리 전문집에 가기로 했는데 베트남식 라면을 먹었는데 제법 맵다. 그리고 벽에 걸린 메뉴 중 반미 하나를 포장해 달라고 해 룸에서 이것을 안주로 해서 한잔하고 피곤해서 9시 반 경에 취침했다.
< 반미는 빵에 소고기 볶은 것과 계란 프라이 햄 등 여러 가지를 끼워 먹는 베트남식 샌드위치인데 우린 따로 달라고 해서 빵은 버리고 속재료를 안주로 먹었다. >
< 3부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