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薛)씨의 기원은 신라 건국 설화의 고야촌(明活山 高耶村) 촌장 호진(虎珍)이다.
신라 유리 이사금[1]
신라시대 설총은 원효대사와 태종무열왕의 딸
요석공주(瑤石公主) 사이에서 태어나
국학(國學)을 크게 진흥시키고 이두순창
고려시대 대대로 의술을 가업으로 이어온
집안에서 태어난 설경성설경성[2]
경주 설씨는 조선시대 무과 급제자 10명, 생원·진사 7명을 배출하였다.[3]
항렬자[편집]
41세
42세
43세
44세
45세
46세
47세
48세
49세
50세
51세
口기(基) 진(鎭) 口원(源) 표(杓) 口열(烈) 재(在) 口현(鉉) 택(澤) 口식(植) 환(煥) 口규(圭)
경주 설씨(慶州偰氏) / 맑을 설(偰)[편집]
경주 설씨 (慶州 偰氏)
관향
경상북도 경주시
시조
설손(偰遜)
주요 인물
설장수, 설미수, 설순, 설송웅, 설민석
인구(2000년)
3,269명
위구르[回鶻] 사람이 설련하
원나라 태부 설극직(偰克直)의 6세손 설문질(偰文質)이 원나라에서 참지정사를 지냈고, 설문질의 손자 설손(偰遜, ? ~ 1360년)은 순제(順帝) 때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해 한림응봉문자(翰林應奉文字)·선정원단사관(宣政院斷事官)을 지내고 홍건적이 대령을 침범하자 1358년(공민왕 7)에 병란을 피하여 고려[4]
설손의 맏아들 설장수(偰長壽)는 서역인(西域人) 출신이기 때문에 왕의 특명으로 1362년부원군[5]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설손의 넷째 아들 설경수(偰慶壽)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하였고, 「천상열차분야지도설경수의 아들 설순
설손의 다섯째 아들 설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