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1.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유럽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에 대한 주장은 그동안 억압되었던 인권의 복원에 대한 강한 지지를 동반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프랑스에서부터 이웃 나라로 빠르게 이동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혁명의 정신을 찬사했고 실제로 새로운 변화를 추진하려 했다. 하지만 모두가 혁명의 이상에 찬동한 것은 아니었다. 혁명이 가져온 폐해와 위험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였다. 그는 혁명이 일어난 지 약 1년이 지난 후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을 발표했다. ‘혁명’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영국을 위협하는 혁명의 열기를 차단하려 시도한 것이다.
2. 버크는 혁명이 전통이 가져다주었던 제도적, 관습적 안정을 파괴했다고 비판한다. 과거의 법과 제도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의 복잡한 심성과 사회적 요구에 대한 반응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다음과 같은 장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숙고를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며, 모든 변화를 타협할 주제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온건함을 생성시키는 것들이다. 또 절제를 낳아 가혹하고 조잡하며 부적절한 개혁이 지니는 심한 폐해를 방지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소수의 손에 있든, 다수의 손에 있든간에 자의적 권력의 모든 무모한 행사를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버크는 국가의 통치는 단순한 지식만으로 운영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본성과 필요 그리고 사회제도의 매커니즘에 의해 추진된 본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단지 추상적인 구호와 급진적인 변혁을 통해서는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변화시키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변화가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시대를 거쳐서 상당한 정도로 사회의 공통된 목적에 부응해온 건축물을 감히 쓰러뜨리려고 시도하는 경우나, 증명된 유용성을 간직한 모델과 모형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있지도 않으면서 그것을 재건축하려고 시도하는 경우에는 무한한 조심성이 요구된다.”
3.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며 귀족과 성직자의 권력독점과 계급적 우월의식을 철폐하려 시도했다.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특권과 권리를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버크는 이러한 주장을 반박한다. 어떤 사회이든 더 많은 권리를 지닌 사람들이나 집단이 존재하며 그들은 그러한 권리를 오랜 수련과 도덕적 태도를 통하여 획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모든 사회는 다양한 종류의 시민들로 이루어지는 법이어서, 그 중 어떤 부류가 최상위에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평등화하려는 자들은 사물의 질서를 변화시키고 전복시킬 뿐이다.” 버크는 귀족 중심의 통치를 옹호하면서 ‘제3신분’의 중심이 된 법률가들의 전문성을 인정하면서도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통치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공격하였고 하위 계층과 결탁한 귀족 세력들에 대해서는 위엄을 버리고 저급한 목적을 위해 사회를 타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4. 버크를 경악하게 한 것은 프랑스 왕실에 대한 모욕적인 행위였다. 혁명 이후 혁명의 중심세력이 구성한 ‘국민회의’는 국왕과 그의 가족을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파리로 강제로 이동하게 하였는데 그러한 결정과 실행은 국가의 왕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자 전통적 가치에 대한 파괴라는 것이다. “혼탁·경악·낭패·살육의 하루가 지난 1789년 10월 6일 아침에 프랑스 왕과ㅡ 왕비는 공적신뢰에 기반한 안전의 서약아래, 몇 시간의 유예를 받고 누워서 우울하게 휴식을 취했다고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5. 이렇듯 혁명은 프랑스의 전통과 지배계급을 철저하게 모욕하고 부정함으로써 프랑스의 가치를 무너뜨렸으며 자존심을 손상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단지 프랑스 내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유럽 문명을 지탱하고 있었던 종교적 전통을 파괴하였고 신뢰와 선의의 관계의 핵심이었던 ‘기사도 정신’까지 붕괴시켰던 것이다. 귀족들은 모욕받고 공격받았으며 교회의 재산은 몰수 되었다. 유럽의 전통적인 지배세력은 새로운 혁명 세력의 자선에 의존하는 초라하고 몰락한 상태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 버크는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프랑스의 왕실과 귀족 그리고 교회가 ‘혁명’을 통해 완전하게 바뀌어야 할만큼 타락하고 탐욕스러운가에 대해 의문시한 것이다. 버크가 볼 때 당시의 프랑스는 분명 오래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문제를 갖고 있었지만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국가의 건전성은 여러 지표를 통해 볼 때 좋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구는 증가하고 있었고, 산업 생산도 향상되었으며, 귀족들과 교회의 개혁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만큼 프랑스 전체를 파괴할 만큼의 대변동은 절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6. 버크는 혁명의 원인들 중에서 ‘계몽주의자’들이라 불리는 급진적 사상가들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현실적인 이해관계에서 배재된 지식인들은 개인적 불만을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사회에 대한 냉혹한 공격을 통해 해소하려 했으며 교회의 전통적 행위를 극단적으로 왜곡시키는 그들의 글들을 통해 프랑스의 문제를 더 과장하고 확대시켰다는 것이다. “당신네 나라에서 근래 출판된 온갖 종류의 출판물에서의 일반적 묘사 방식에 따르면, 프랑스 성직자들은 일종의 괴물이라고 믿게 된다. 미신과 무지, 태만, 사기, 탐욕 그리고 압제의 소름끼치는 합성물로 믿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인가?” 프랑스 지식인들의 문제제기를 비판하면서 그들이 비판한 내용을 전통적 가치의 옹호와 교회의 특수성을 들어 옹호한 것이다.
7. 버크의 이러한 ‘프랑스 혁명’의 실상에 대한 평가는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혁명은 전통과 지배층을 부정했고 그것이 갖고 있던 장점과 가치까지 파괴했다는 것이다. 과격하고 증명할 수 없는 이론적 이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오래된 역사적 토대를 무너뜨렸으며 진보와 발전의 이름으로 관용과 절제를 잃어버린 채 폭력적인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도한 실험이었으며 무모한 혁명이었다는 것이다. 버크의 이러한 태도는 후일 보수주의의 중요한 원리가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전통의 옹호, 차별의 정당성, 급격한 변화에 대한 두려움, 종교와 도덕의 중시, 통치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필요성과 급진적 가치에 대한 부정 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버크의 전통과 지배층에 대한 옹호는 또 다른 반박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진보적인 사상가였던 페인은 <인권론>을 통해 “가장 비참한 감옥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가장 참혹하게 스러져가는 사람들에 대해 단 한 차례도 동정의 눈길을 보내거나 연민어린 고려를 하지 않았다.”고 버크를 비난했다.
8. 버크의 주장은 당시 그가 처해있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버크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잉글랜드에서는 취약한 권력을 지닌 소수자였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 이후 밀려드는 혁명적 열기가 영국에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자신이 정치적 입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프랑스 혁명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혁명의 문제점을 분석하였으며 이런 방법을 통해 영국의 정치와 사회의 우수성을 강조한 것이다. 정치 초기에는 조금은 급진적 태도를 지녔던 버크였지만 변화된 정치적 상황은 그를 보수적인 사상가의 중심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사상이 사람의 변화를 이끌 수도 있지만, 상황이 더 강력한 힘으로 사상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례를 버크에서 발견할 수 있다.
9. 버크의 주장에 나타나는 귀족 계급의 자연적 우월성이나 귀족과 교회의 부패에 대한 지나친 옹호는 과도한 느낌을 주지만 ‘이성’에 대한 지나친 확신이나 독단적인 변혁에 대한 경고는 여전히 중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사상이나 논리도 완전하게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변화는 인간의 처한 심리적 조건과 사회적 환경의 결합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시간의 모든 구조를 바꾸는 혁명보다는 느리지만 점진적인 개혁을 통한 변화에 방점을 두는 태도는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개인이 지닌 이성의 양만에 의지하여 생활하고 거래하는 처지를 불안해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개인이 지닌 양이 적으므로 여러 국민과 여러 시대가 축적한 종합은행과 자본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문제점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원인이 여전히 존속한다는 점에서 의심스러운 해결방법일 것이다. 혁명이 아닌 개혁을 선택하더라도 문제의 원인을 반드시 제거하는 것은 모든 변화의 가장 핵심적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 "어떤 사상이나 논리도 완전하게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 급진적인 혁신의 겉모습은 항상 그럴듯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