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기나긴 밤을 - 황진이
“자네, 황진이 하고 하룻밤 지내보았는가?” 당시 선비들은 그녀와의 풋사랑을 대단한 감투처럼 여겼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녀와 살을 맞대었던 사내들은 사회의 저명인사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첫 남자”만은 저명인사가 아니었다. 황진이의 첫 남자는 평범한 동네 총각이었습니다. 그는 황진이를 짝사랑하다 그만 상사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마지막 이성을 떠나가는 길목, 황진이 집 앞을 지나가는 데 상여가 꿈적도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놀라 허둥대고 있는 데, 황진이가 술잔을 들고 앞으로 다가가서 관에 절을 하고 자신의 속옷을 올려놓자 그제 서야 움직였다고 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황진이는 세상 모든 남자들의 애인이 되기로 마음먹고 기녀세계에 발을 들여 놓습니다. 그로부터 자유분방한 삶은 시작되었고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녹입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시조】- 황진이(黃眞伊)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어휘풀이】
<한 허리> : 한가운데
<버혀 내여> : 베어 내어. 버히다〉버이다〉베다.
<춘풍(春風) 니불> :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 니불〉이불(두음법칙)
<서리서리> : 노끈이나 새끼 등을 서리어 놓은 모양. 국어의 묘미를 살린 말로 외로운 동짓날 기나긴 밤이라는 추상적인 시간을 구체적인 사물로 형상화하여 이를 압축한 표현.
<어론님> : 정든 임. ‘얼다’는 ‘정을 통하다’의 옛말. 또는 어른님. ‘임’의 존칭. 얼+오(삽입모음)+ㄴ(관형사형)〉얼온. ‘얼다’를 ‘추위에 얼다’로 보는 설도 있다.
<구뷔구뷔> : 굽이굽이.
【전문풀이】
동짓달 긴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 내어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아래에 서리서리 넣어 두었다가,
정든 임이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펼쳐 내어 그 밤이 더디 새게 이으리라.
이 시는 은근하게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야한 시이다. 어떻게 보면 육체적인 사랑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시이기도 하지요. 임에 대한 그리움이 “이불”을 통해 성관계로 바뀝니다. 그리고 한번 임과 함께 이불속으로 들어가면 영영 안 나올 것 같은 보통 이상의 성욕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단순히 초절정의 그리움에 대한 노래일 수도 있고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에 대한 반항의 한 단면 일 수도 있습니다.
출처 : 덕양선원 지심행 글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