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수업75 도반과 자주 다툽니다 #굴종 #스승과멘토 #자신감
"자신감을 갖고, 번뇌를 극복하며, 스승과 도반의 지도 아래 독립적인 정신으로 수행하라"
ㄷ. 미혹을 끊을 자신감
7:60 수많은 번뇌 가운데 서 있더라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싸우면서
여우떼 가운데 서 있는 사자처럼
번뇌의 떼에게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네.
#굴종
생각은 감정의 지배를 받습니다. 감정은 본능에 뒤흔들리죠. 의식의 영역에서 주로 나타나는 마음 작용은 생각 그리고 감정의 일부입니다. 무의식의 영역에 주로 숨어 있는 것이 바로 감정의 대다수와 본능입니다. 생각, 감정, 본능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나'라는 존재 방식을 결정합니다. 의식과 무의식에서 활동하는 습관과 태도가 '나'라는 존재의 흐름을 형성합니다. 묻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왜 우리는 노예의 태도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난 노예 아닌데요?'
발끈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시대가 변했기에 우리는 타인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노예가 아니라 고용인이니 말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번뇌의 노예입니다. 왜 번뇌의 명령을 목숨처럼 따르고, 번뇌의 눈치를 보며, 번뇌에게 완전히 사로잡혀 저항도 못하고 살아가는 태도가 형성되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굴종의 태도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답을 찾기를 바라는 질문이 아니라 각성의 질문입니다. 굴종하지 말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번뇌에게 저항하고, 번뇌와 다투며, 번뇌를 다스리고,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권장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더 이상 치욕스러운 인내를 하지 말고, 들고 일어나 온갖 수단을 전부 활용하여 독립운동을 해야 합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마음을 고취시키며, 지혜를 쥐어짜내서 활용하며! 최선을 다해 수행해야 합니다. 오직 이런 노력만이 번뇌의 노예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가만히 굴종하고 있어서는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나빠지면 나빠질 뿐.
7:61 [신체적으로 해를 입을] 위험한 상황을 만나면
사람들이 자신의 눈을 보호하듯이
[정신적으로 해를 입을] 번뇌를 만나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보호해야 한다네.
#스승과멘토
개천에서 용 나는 것, 쉬울리가 없습니다. 이미 형성된 노예의 태로라는 물살을 바꾸는 것이 쉬울리가 없죠. 쉬웠으면 다들 원하는대로 부자되고 명성을 얻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의 상황은 부와 명예는 커녕 자신의 건강 하나 관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번뇌에게 굴복하여 게으름과 얼빠진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무력한 상태에서 바꾸기 가장 어려운 주제인 본능적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을리가 없죠?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스승, 도반, 멘토입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 내 등을 보고 따라오라며 앞서 걸어주는 사람, 뒤에서 힘내라며 밀어주는 소중한 도반이 수행의 전부인 이유입니다. 도반이 없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수행을 그만둡니다. 지금까지 그랬으니까요. 이 영겁에 가까운 세월동안 형성된 포기와 굴종의 버릇을 혼자서 고칠 수 있을까요? <아비투스>에서는 멘토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합니다.
"마크 저커버그에게는 스티브 잡스가 있었다. 에마뉘엘 마크롱에게는 프랑수아 올랑드가 있었다. 최고의 경력을 달성한 인물들은 혼자 힘으로 그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성공을 지원했던 멘토가 있었다. 비록 그들이 이미 높이 오른 뒤에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그들을 날개 밑에 품어주긴 했지만, 어떤 사람이 얼마나 우수하든 후원자는 성공에 필요한 추진력을 적시에 제공해준다."
이런 예시를 들며 멘토의 중요성을 한 마디로 정리합니다.
"단 한 번 뒤에서 슬쩍 밀어주는 손이 강력한 순풍이 된다."
<금강경>에서 수보리 존자가 붓다를 찬탄하며 그 근거를 두 단어로 표현합니다. 선호념 그리고 선부촉입니다. 붓다는 최고의 스승입니다. 최고의 멘토이고, 최고의 도반입니다. 번뇌에 굴종하여 불안에 빠져 있는 마음을 선호념의 힘으로 안심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끝난다면 '최고'의 도반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안심했다면 이제 다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각성시켜주시는 선부촉의 힘도 갖추고 계십니다. 이 두 가지 불안을 안심으로 이끌어주시는 힘, 안심의 힘으로 기꺼이 몰입하도록 밀어주시는 힘으로 인해 붓다는 최고의 도반입니다.
다다익선입니다. 스스로 게으름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더라도 스승과 도반과 자주 만나야 합니다. 힘이 있어도 이러한데, 게으름에 항상 굴복하는 태도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스승과의 인연을 목숨처럼 귀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귀하게 여기는 척만 하지 말고, 자주 찾아뵙고 공양 올리며 질문하고 가르침을 명령으로 여기며 따라야 합니다. <금강경> 정신희유분에서 올바른 믿음을 일으키는 희유한 존재들의 비결로 언급하신 내용이 바로 무량한 부처님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한 인연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번뇌에 굴종하는 존재에게 스승은 그리 가치가 없습니다. 스승보다는 주인인 번뇌가 더욱 중요하니, 번뇌를 자주 찾아뵙고 공경하게 됩니다. 하지만 스스로 수행자라고 생각하는 존재들에게는 스승과 도반이 가장 귀합니다. 목숨처럼 귀합니다. 내 생각과 내 감정보다 더욱 귀하고 귀한 것이 도반과 스승입니다. 이런 태도가 굴종로부터의 자유에 큰 도움이 됩니다.
7:62 나는 불에 타서 죽게 되거나 머리가 잘려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번뇌라는 적에게 굽실거리며 복종하지 않으리라.
더불어 일체 모든 상황에서도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은 하지 않으리라.
#자신감
한국의 옛 선사들의 수행담을 들어보면 종종 객기처럼 보이는 행동이 보입니다. 도반들의 일화를 들어봐도 그런 모습이 조금 있습니다. 물론 이런 무모한 행동이 상식적이지는 않지만 제 눈에는 그리 안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수행자는 조금 과하더라도 이렇게 자신감 있고 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부럽기도 합니다. <입보살행론>을 읽다보면 초심자들이 깜짝 놀랄만큼 과격한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나는 불에 타서 죽게 되거나 머리가 잘려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번뇌라는 적에게 굽실거리며 복종하지 않으리라!"
무섭죠? 과격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수행자의 고요한 언어로 듣는다면, 그 속에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단호함 그리고 자신감을 느껴야 합니다. 붓다의 제자는 법왕자입니다. 특히 보살은 법왕자로써의 역할을 실천하고 있는 중생의 구원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격에 맞는 당당한 태도, 고귀한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존재의 격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불보살의 가문에 속한 이에게 번뇌에 굴종하는 태도는 결코 어울리지 않습니다.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 보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빽이 있습니다. 부처님과 대보살님들입니다. 관세음보살이 우리는 보호해주시고, 지장보살이 지옥문 앞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십니다. 문수보살이 지혜를 주시고, 보현보살이 실천의 원동력이 강렬한 용기를 주십니다. 항상 불보살 앞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두려울 일은 없습니다. 당당하게 용기있게 기꺼이 기쁘게 주어진 인연에 전념하세요. 번뇌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시고, 전도된 주객을 다시 뒤엎어서 오히려 번뇌를 굴종시키시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항상 스승과 도반을 으뜸가는 행운으로 여기며 소중히 하시길_()_
"어떻게 하면 번뇌의 노예에서 벗어나, 당신의 마음을 스스로 지키고 강화할 수 있을까요?"
공지 리마인드
하나, 붓다스쿨 녹취반 사경반 모집
https://cafe.daum.net/everyday1bean/TqU/1286?svc=cafeapi
첫댓글 스승과 도반을 으뜸가는 행운으로 여기며 소중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_()_
지금 막 인터뷰를 마치고 이 글을 읽었습니다.
가슴이 뜁니다. 진정이 잘 되지 않네요. 이분이 내 스승이다 라고 밖에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습니다.
스님이 매일 올려주시는 말씀마다 너무나 좋았습니다.
영상으로 뵈니 해주고 싶은 얘기를 어떻게 해야 우리한테 더 잘 전달될수 있을까하는 그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뻐근해집니다.
스님은 항상
그런 마음으로
그런 정성으로 우리 뒤를 열심히 밀고 앞에서 당기며 가고 계시는 군요.
스님, 감사합니다 ()()()
제게는
처음부터 가자 손잡아준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그 길을 앞서 이끌어주는
그러면서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등을 보고 따라오라며 앞서 걸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뒤에서 힘내라며 밀어주는 소중한 사람이 있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이번에는 주저앉지 않고 의지하며 그 등을 보며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