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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68)
《숫자 '3'을 뜻하는 '트로이카'에 대해서》
*"문장이 조금(?) 깁니더.
마음의 근육 꽉 잡고 끝까지 읽어 주셔유~
끝까지 읽는 분께 복(福)이 있나니~"
우리의 일상은 거의 숫자와 더불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숫자에는 물체와 대응하는 수의 개념을 뛰어넘는 상징적 의미가 숨어 있다.
“수는 세거나 헤아린 양(量)의 크기를 나타내는 말이고, 숫자는 수를 나타내는 기호(문자 글자)로서 한자 숫자, 바빌로니아 숫자, 이집트 숫자, 그리스 숫자, 로마 숫자, 마야 숫자, 아라비아 숫자 등이 있다. 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남아프리카 스와질란드에서 발견된 개코원숭이의 종아리뼈에 그어진 29개의 선명한 금이며, 기원전 3만 5000년께의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기원전 3300년 이전부터 수에 대한 기호 체제가 있었는데, 사물이나 동물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이다.”(조경미)
세계적으로 3이라는 숫자의 삼각형, 그리고 그 입체적 구조인 피라미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 속담에도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집단 무의식 속에서 1이라는 숫자는 너무 적고, 2는 서로 충돌하므로 이를 조절해 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게 되어 3이 탄생한 것이 아닐까.
“삼각형은 우리 삶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논리학자들은 언어를 화자(話者)와 청취자, 화두(話頭)의 삼각관계로 이해한다. 종교에서는 하나인 동시에 셋인 신격(神格)이 ‘삼위일체 신(神)’으로 불린다. 일찍이 로마 시대에는 뛰어난 재량을 갖춘 세 사람이 삼두(三頭)정치를 했는데 이 또한 삼각구도의 한 예이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힘의 상징인 삼지창을 지녔고, 고대 로마인들은 전쟁에서 그것을 무기로 사용했다. 또한 많은 섬사람들이 이런 형태의 작살로 물고기를 잡았다. 삼각형의 특징은 강함이며 무게를 버티고 압력에 저항하는 힘이다. 그래서 삼각형의 원리가 건축에도 널리 사용된다.”(스와미 시바난다 라다)
몇 개의 직선 부재를 삼각형의 연속된 뼈대 구조로 조립한 것을 트러스(truss)라 하는데, 트러스교(橋)는 이러한 트러스를 주·부재로 하는 교량을 의미한다. 한국 최초의 트러스 다리는 바로 한강철교이다.
숫자 1과 2를 더하면 숫자 3이 된다. 옛사람들은 숫자 1은 남자를 뜻하고 숫자 2는 여자를 뜻한다고 생각했다. 남녀가 결혼하여 아기를 낳는 것처럼 숫자 1과 2를 합한 숫자 3은 생명의 탄생을 뜻하는 완전한 수로 여겼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완벽해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3이라는 숫자는 1과 2가 합쳐져 만들어진 숫자이다. 여기서 3은 완벽하거나 조화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한자 문화권에서는 셋을 가리키는 3(三)이라는 글자는 그 획이 각기 하늘과 땅을 의미하여 신성한 숫자를 뜻한다.
영어에서 숫자 3(three)은 나무(tree)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 흔히 나무는 풍요와 번영, 안정의 상징으로 보는데 숫자 3은 이처럼 보았다.
서양에서도 3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수였다. 특히 고대 그리스인들은 숫자 1을 근본, 창조라고 생각했고 숫자 2는 세상과의 통로를 상징하는 수로 보았다. 그리고 1과 2를 더한 숫자 3을 완전한 수라고 보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3은 완성, 최고, 최대, 신성, 장기성, 종합성 따위로 인식되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사상가들은 1이 다수로 전개되는 것을 3과 관련지어 설명하려 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삼생만물(三生萬物) 즉 “도(道)에서 하나가 나왔고 하나에서 둘이 나오고, 둘에서 셋, 셋에서 만물이 나왔다”라고 보았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절대적으로 하나가 대립한 두 힘으로 분리되면서 세계가 창조되고 두 힘이 셋으로 화합하면서 생명이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단테는 3을 사랑의 원리로 이해했다. 여기에도 사랑은 곧 종합의 힘이다. 또한 2는 3이 삼위일체에서 구체화된다고 보았다.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러한 자연현상 속의 3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이다. 다만 이를 인식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서구의 ‘3’ 개념이 가장 절대적으로 드러난 부분은 역시 삼위일체다. 삼위일체는 초기 기독교 시대에 등장, 후에 정립된 완벽의 개념이다. 우리나라 종교관이 3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과 비교할 때 그 유사성이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도 3과 종교는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자문화권에서는 한자를 풀어서 一과 二를 합한 것을 三으로 보았다. 三을 거꾸로 세우면 ‘川’ 泉이 되어 셋과 샘은 어원도 같고 무궁무진함을 뜻하기도 한다. 문자가 생성되던 상고시대부터 3은 늘 완벽의 상징이었다.”(주강현)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숫자 3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쓰인다. 여러 나라에서도 3이라는 숫자는 빈번하게 쓰이지만, 우리만큼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단군신화를 보면 3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온다. 먼저 3위태백(三危太白), 천부인(天符印) 3개, 환웅이 끌고 온 3천 명과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 3인을 찾아볼 수 있고, 환웅과 같이 살기 위해 곰과 호랑이가 금기를 지켜야 할 기간이 삼칠일인 21일이었고, 단군이 국호를 정하고 개국한 것이 공교롭게도 기원전 2333년이었다.
제주도 신화에서 3의 중요성은 삼성신화(三姓神話)의 본거지인 삼성혈(三姓穴)에서도 두드러진다. 삼성혈에 가면 탐라를 만들었다는 고(高), 양(梁), 부(夫) 세 성씨가 나왔다는 ‘세 구멍’이 있다.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세 신인’이 한라산 북녘 기슭의 모흥혈(毛興穴)에서 솟아났다고 전해진다.
민족의 신화는 우리들 안방을 차고 들어와 삼신신앙으로 거듭났다. 산부인과가 드물었던 시대에는 아기를 받을 때, 대부분 삼신할매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삼신할매를 모르는 이가 없을 듯하다. 삼신할매가 어서 빨리 세상으로 나가라면서 아기의 엉덩이를 찰싹 때린 흔적이 몽고반점이란 얘기다. 한국인 대부분은 몽고반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몽고반점이야말로 북아시아 종족들 사이에서의 서로 간의 공통점을 말해주는 표징이라고들 말한다. 삼신(三神)이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돌보는 산신(産神), 즉 포태신(胞胎神)을 의미한다.
“삼신신앙은 직접 불교계에 스며들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으나,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하던 조선시대만 해도 여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사찰의 삼성각 혹은 산신각이었다. 산신과 칠성, 독성의 삼신을 모신 삼성각은 전래 토착 신앙과 외래 종교였던 불교가 만나 융합한 것이다.”(주강현)
이어령 석학도 ‘3’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으로, 한국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 살의 냇물을 건너 하나의 인간이, 한국인이 되어가는 존재인 것이다. 삼자와 같은 무수한 문화유전자의 영향을 받으면서 세 살 때 버릇을 잘 익히지 않으면 생떼를 부리는 한국인(용서하라 한 번만 막말을 쓰겠다), ‘생쑈’를 부리는 오늘의 비한국인이 생기게 되는 거다.” 꼭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씀 같다.
경남 의령군과 함안군 경계에는 남강이 흐르고 있고 강의 중간에는 솥단지 모양으로 생긴 커다란 바위가 있다. 10여 명이 올라앉을 수 있는 크기의 바위이다. 물 밑으로 세 개의 다리가 달려 있다.
삼성(三星)이라는 작명은 이 솥바위의 세 다리를 상징한 것이 아닐까? 왜 이름을 ‘세 개의 별’이란 뜻의 삼성(三星)으로 지었을까? 여기에는 솥바위(정암, 鼎巖) 전설이 깔려 있다. 동양에서는 ‘먹을거리가 곧 하늘’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식위천(以食爲天) 사상이 그것이다. 그래서 밥을 하는 솥은 재력·권력을 상징하는 산물이 되었다고들 말한다.
우리나라 소설에서도 보통 2대나 4대보다는 할아버지, 아들, 손자 3대에 걸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전래동화에서도 숫자 3이 자주 등장한다. 세 번의 과정을 겪으면서 완숙이나 성숙으로 향하는 통찰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기할 때도 삼세번을 기본으로 한다. 거기에 비해 일본의 스모는 한판승이다. 임금님을 보좌하는 삼정승도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이 있었고, 더위도 삼복(三伏)더위라 했다. 회식 자리에 늦게 도착한 사람에게는 후래삼배(後來三盃)를 외쳤다.
무리를 지어 다녀도 삼삼오오(三三五五)라고 하였다. 중국의 한자 문화권에 편입되면서 삼강오륜, 삼강행실도, 삼일장, 삼배, 삼색실과 삼탕 등이 쓰였다. 또한 가을 상달 고사를 지내고 떡을 조금 떼어 던지면서 고수레를 3번 하는 풍습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굿에서는 서 말 서 되, 서 홉으로 쌀을 준비하여 신성(神聖)의 의미를 한결 강하게 했다. 잘못하여 도망칠 때는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다고 하였다. 이처럼 3은 완성과 최고, 신성 등의 의미로 쓰이는 동시에 우리 민족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숫자로 여겨져 왔다.
인간은 물체의 세 가지 상태인 고체, 액체, 기체와 피조물의 세 가지 집단인 광물, 식물, 동물을 발견했다. 인간은 식물에서 뿌리와 줄기와 꽃을, 과실에서는 껍질과 과육과 씨앗을 밝혀냈다. 또한 태양은 아침 정오 저녁에 각각 다른 모습을 갖는다고 여겼다. 우리가 지각하는 3차원은 길이와 높이와 공간의 좌표 안에서 형성된다.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트에는 33333의 신(神)이 나온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삼대 신은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이다.
언제나 깨어 있으면서도 모든 것을 보고 듣는 삼위일체의 상징인 토끼들, 그들의 귀로 삼각형을 이루는 이 토끼들의 모습은 독일 파더본(Paderbon)의 대성당 유리창에서 볼 수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 ‘성(聖) 가족과 세 마리의 토끼’도 삼위일체를 표방한 것이다.
인도 고전 찬도기야 우파니샤드에서도 세계를 삼원적 구도, 즉 듣기·이해하기·인식하기와 찰흙·금·철 그리고 흰색·검은색·붉은색 등으로 이해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3은 일체(一切)라는 표현이 들어맞는 최초의 수’라고 주장했다.
기독교에서 3이 성스러운 수라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1534년 예수회를 창립한 로페스 데 로욜라는 3의 수로 형태를 이룬 사물을 보기만 해도 눈물을 흘리곤 했다고 전해진다. 왜냐면 이러한 사물들은 삼위일체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예수의 부활은 3일째 되는 날 일어나며, 부활한 후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세 번 모습을 나타낸다. 또한 베드로에게 슬퍼하며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하였다.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온 동방박사가 세 사람이었던 것도 우연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바울의 서한들과 요한 계시록도 숫자 3으로 채워져 있다.
성서 주석학자들은 언제나 3을 삼위일체와 관련시켰다. 예수도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세 마디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삶에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3을 전형적인 남성의 수로 보았다. 이는 남자의 성기 모양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삼각형이나 델타(그리스 알파벳의 네 번째 글자)는 석기시대만 해도 여성의 표시로 이용되었다.
피타고라스는 삼각형을 우주적 의미에서 ‘생성의 시작’이라고 풀이했다. 왜냐하면 삼각형에서 사각형이나 육각형 같은 기하학 도형들이 생겨나기 때문이었다.
종교의식과 마술에서 기도문과 주문을 세 번 반복하는 것은 핵심적인 절차에 속한다. 리그베다에서는 “세 겹 땅 밑에 있으라”는 저주를 내린다. 3이라는 수는 인도의 전례(典禮) 행위에서 수없이 발견된다. 1949년 이후부터 사용되고 있는 인도 독립기념문장(紋章)은 세 마리의 사자로 장식되어 있는데, 기원전 240년경 마우리아의 왕 아쇼카의 기둥 꼭대기에 새겨져 있는 걸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하루 세 번의 식사도 미국의 앨런 던디스가 말하는 3의 문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교통신호등은 세 단계로 운용된다. 야구에서 3의 역할은 지대하다. 세 개의 베이스, 세 번의 스트라이크, 세 번의 아웃 등이다.
“축구나 아이스하키 등에서 3득점을 올리는 것을 해트트릭(hat trick)이라고 말한다. 왜일까? 그것은 영국이 발상지인 크리켓에서 유래된 용어다. 세 명의 타자를 연속 아웃시킨 투수에게 그 실력을 칭송하는 뜻에서 멋진 모자를 씌워주는 풍습이 있었다. 해트트릭의 해트(hat)는 그 모자에서 따온 말이다. 오늘날 축구나 아이스하키에서 혼자 3득점을 올린다는 것은 크리켓의 해트트릭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엔드레스, ‘수의 신비와 마법’ 중에서 발췌 참조함)
‘묘수 세 번 두면 바둑 진다’는 격언이 있다. 묘수는 기발한 착상으로 돌을 살리거나 죽이기도 하고 부분적으로는 전세를 역전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묘수를 연발해서 바둑을 이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 격언은 묘수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정수가 결국 승리로 이끄는 힘이라는 의미이다.
가장 안정적인 의자는 다리가 세 개인 의자이다. 물론 완벽하게 수평을 이뤄 거울처럼 평평한 바닥이라면 네 개나 다섯 개의 다리가 있는 의자가 더 안정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닥은 어차피 어느 정도 굴곡이 있게 마련이다. 이때 다리가 세 개 이상인 의자는 바닥에 닿지 않고 허공에 뜨게 되어 안정성을 잃고 만다. 그러나 다리가 세 개인 경우에는 세 점으로 평면을 딛고 버티기 때문에 어떤 지면에서도 안정적이다. 카메라맨이 삼각대를 애용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오래전부터 3이 안정을 나타내는 완전무결한 수, 행운의 숫자로 여겨졌던 것은 3의 이런 안정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향을 피우는 향로 역시 대부분 다리가 세 개다. 세 개의 다리가 땅을 받치고 서 있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고 완벽한 모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삼족오(三足烏)는 태양 속에 사는 다리가 세 개인 까마귀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삼족오를 하늘의 뜻을 인간에게 전해주는 ‘하늘의 자식’이라 여겼다. 삼족오는 세 개의 다리로 땅을 지탱하고 있어서 완벽함을 상징했다.
삼두매는 머리가 셋에 한 개의 다리를 가진 매다. 사람들은 이 매에게 나쁜 귀신을 잡을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새해가 되면 대문에 삼두매 그림을 붙여 놓았다.
“삼재(三災)니 조심하거라”는 말도 있다. 삼재는 인간에게 돌아오는 세 가지 재난이다. 물·불·바람에 의한 재난이나 병을 가리킨다. 심지어는 12년마다 한 번씩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삼 년 동안 사람을 괴롭힌다고 알려져 있다. 산삼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을 심마니라고 부른다. 심마니들은 산삼을 발견하면 동료 심마니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심봤다’를 세 번 외쳤다. 이는 산삼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주위에 알리고, 산신에게 산삼을 캐게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리는 뜻이기도 하였다.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통상 3분, 짧은 듯 긴 시간이다. 무슨 일이든 알맞은 시간이 있는 법이다. ‘3분 스피치’도 있다. 인간이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 3분이란 말이다. ‘1·2·3화법’이란 말은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장구친다는 화술의 기본 예법을 얘기하고 있다.
이 외에도 ‘3’은 우리 일상에서 격언 및 속담 등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수(數)이기도 하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세 사람만 우기면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살이하지 않는다’, ‘삼 년 가뭄에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 ‘내 코가 석 자’, ‘작심삼일’, ‘중매는 잘하면 술 석 잔, 잘 못하면 뺨 석 대’,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다.
숫자 3은 이렇듯이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숫자 3은 우리 민족은 물론 전 세계인에게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삼각형의 특성은 강함이며, 무게를 버티고 압력에 저항하는 힘이다. 삼각 자세로 서서 균형을 잡고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 때, 정확한 집중이 가능해진다. 이 자세를 통하여 육체적 균형이 얻어지면 일상의 모든 분야에서 필요한 생명력이 솟아오를 것이다.
“마음과 영과 몸은 하나여야 한다. 셋은 하나이고 하나는 셋이다.”요가의 대가 'B.K.S.아헹가'의 말이다.
(끝)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
※여기까지 다 읽으신다고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삼세번'은 더 읽어야 기억할 듯 하죠^^^(아이쿠 머리야)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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