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를 뜨겁게 달구웠던 화왕지절(火旺之節)이 이렁저렁 다 지나가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섰다. 9월의 첫 일요일(9.3)은 성동고 16회 바이콜릭스 동호회가 창립된 날로, 올 해로 11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강산이 한번 변하고 1년이 다가온 시점이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한강변에서 라이딩의 향연을 펼치기로 하고 오후 2시에 당산역 한강공원에서 만나기로 하였다.초기 창설 멤버 4명을 포함하여 람보림 부부, 써니영(스카이천 부인) 등 9명의 라이더들이 뭉쳤다. 람보림 부부는 한 달간 북유럽 여행을 마치고 오래간만에 라이딩에 동참하여, 반갑고 보고 싶은 얼굴이었다.
라이딩 코스는 한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가다가 잠수교를 건너 중랑천 군자교까지 갔다가 응봉역으로 복귀하는 코스로 , 대략 28km 정도 된다. 모임장소까지 집에서 타고온 개인들의 라이딩 거리를 합치면 이 거리의 두배들은 다 넘을 것이다. 하늘은 푸르고 흰구름이 떠다니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에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여의도 방향으로 페달을 밟았다.
한강은 역사의 깊이 만큼이나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있는 대한민국의 젖줄이다. 고대 삼국시대가 시작되기 아주 오래 전부터 한강은 흐르고 있었고, 그리고 우리가 알 수 없는 먼 미래까지도 한강은 계속 흐를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한강은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다.
여의도 샛강으로 접어들면 샛강 건너편으로는 자전거 도로가 울창하게 우거진 수목사이로 시원하게 펼쳐지고, 맞은편으로는 걷기 좋은 산책로가 조성되었다. 샛강은 큰강으로 흘러드는 지류가 아니라 섬을 사이에 두고 큰 강에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작은 강을 의미한다. 샛강을 일명 방학호(放鶴湖)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여의도 비행장으로 들어가는 샛강에 다리가 있었으나 1955년 장마로 인해 유실되었다. 여의도 샛강 주변에는 자연생태공원으로 조성하여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한강을 따라가다 보면 크고 작은 섬들과 교량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의도(汝矣島)는 예로부터 내화도, 라의주로 불렀던 섬으로 토사가 퇴적된 모래땅이라 고려시대에는 말의 사육장, 조선시대에는 방목지로 이용했다. 1916년 9월 일제는 이곳에 비행기 활주로를 건설했고, 광복후에도 한동안 미군 공항으로 사용했다.
1968년 수해를 방지하고 현대식 택지로 조성하기 위해 밤섬을 폭파해 얻은 골재로 제방(윤중제)을 쌓았다. 쇄도우수 김명수, 아스트라전 전인구, 스머프 차, 람보림 임종국은 이 당시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로 국군의 날 행사 퍼레이드 예행연습을 위하여 비포장된 여의도광장에서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한창 연습할 때였다.
49년이 지난 지금도 여의도의 모습이 머리속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황량한 벌판으로 쓸모없는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국군의 날 행사 퍼레이드 예행연습을 마치고 복귀하는 도중에 태릉입구 묵동천으로 군용트럭이 굴러 생도들이 다친 사고도 있었다. 5.16광장은 각종 대형집회나 국군의날 행사등이 있을때 사용되기도 했다.
아스팔트로 단장된 5.16광장은 청소년들이 모여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놀이터이자 운동장으로 사용되었다가,1999년 1월 여의도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이라 '나의 섬, 너의 섬'으로 지칭된 여의도(汝矣島)는 거대한 빌딩숲으로 변해 정치,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서강대교에 이르게 되면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밤섬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밤섬은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섬이다. 밤섬은 서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혔다. 밤섬에는 예부터 뽕나무를 관리하면서 배를 만들고 수리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마포나루에서 새우젖과 조기, 쌀 등을 부려놓은 지방 배들은 내려가기 전날 배를 수리하기 위해 섬에 배를대고 주막에서 술을 마시며 허기를 달랬다. 여의도를 지나 한강대교에 이르면 노들섬이 한 눈에 들어온다. 노들섬은 '물 가운데 있는 섬' 이라는 뜻의 중지도(中之島)라고 불리기도 했다.
노들섬으로 이름이 바뀐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노들'은 '백로가 노닐던 징검돌'이라는 뜻으로 용산 건너편 ,지금의 노량진 부근을 일컫는 이름이었다. 노량진(鷺梁津)은 '백로가 노니는 징검돌이 있는 나루'라는 뜻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옹벽에 둘러싸여 중세 성같은 느낌이지만 ,
원래는 용산구 이촌동 쪽과 연결된 거대한 백사장의 작은 모래 언덕이었다. 갈수기에는 여의도 보다 더 큰 규모의 모래밭이 갈대로 가득했고, 갈대숲 위로 지는 석양이 아름다워 용산 8경중 하나로 불리기도 했다. 정조가 1795년(정조 19)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찾아
수원화성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화성능행도>에도 노들섬이 등장한다. 아름다운 작은 모래 언덕의 운명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17년 일제가 이곳에 인도교를 세우면서 부터다. 1900년 한강 최초의 다리인 한강철교가 세워졌지만 차와 사람은 건널 수 없는 기차만을 위한 철교였다.
자동차의 증가와 함께 강을 건너려는 수요가 많아지자 공사가 용이한 모래언덕에 석축을 둘러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한강 북단 이촌동쪽과 남단 노량진을 잇는 두개의 다리를 이어 인도교(현 한강대교)를 세웠다. 광복후 노들섬은 본격적으로 서울시민의 대표적인 문화적,사회적 공간으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특히 주변 모래밭은 한강 백사장이라 불리면서 여름에는 피서지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변하는가 하면 대통령 선거 유세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표어로 유명했던 해공 신익희 선생의 선거 유세를 보기 위해 1956년 5월 3일 30만명이 백사장에 운집하기도 했다.
1968년 부터 시작된 한강개발계획을 위해 모래를 퍼내면서 아름다운 백사장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강쪽에 새로 둑을 쌓아 강변도로가 만들어지고 둑안쪽은 백사장에서 퍼온 모래로 채워져 10만평이 넘는 새로운 땅이 조성되었으며, 그 위에 한강맨션을 비롯해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한때 한강의 기적을 상징했던 동부이촌동 아파트단지는 이렇게 한강 백사장과 맞바꿔 만들어진 것이다. 노들섬은 맹꽁이들의 서식지였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시 오페라 하우스를 짓기위해 맹꽁이들을 월드컵공원내 노을공원 생태습지로 옮겨 놓았다. 현재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다.
섬의 대부분은 모래와 갈대 숲으로 이루워져 있다. 그리고 현재는 주말농장이 들어서 있다. 한강대교 북단에는 '노들카페와 리오카페가 있다. 맥주 한잔하며 야경을 즐기기에도 좋다. 한강의 전망대는 '한강의 르네상스 프로젝트 '일환으로 생겨난 것이다. 동작대교에 이르면 노을 카페와 구름카페가 있다.
노을카페는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작대교는 한강 다리 가운데 노을이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2층은 동작대교 남단과 구름카페 방면의 풍경을 품는다. 동작역에서 출발하는 지하철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눈 앞에서는 한강에 사는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멀리로는 지하철이 달린다.
3층은 노을카페의 명당이다. 한강철교와 한강대교, 노들섬, 그리고 그 너머로 여의도와 63시티와 쌍둥이빌딩의 전경이 들어온다. 노을카페는 구름카페와 더불어 한강다리의 전망쉼터 가운데 유일하게 옥상을 가지고 있다. 이곳을 으뜸으로 치는 진짜 이유다.
스탠드 형식을 취해 앉아서 한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뒤쪽으로는 반포대교와 달빛 무지개 분수까지 보인다. 여의도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대자연이다. 어느 사진작가가 동작대교를 배경으로 야간에 찍은 사진을 보면 마치 외국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강에 유유히 떠다니는 유람선의 불빛, 고층빌딩의 붉은 띠 그리고 동작대교와 한강이 어우러진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동작대교를 지나면 서래섬이 보인다. 서래섬은 반포 한강공원에 있는 섬으로, 올림픽대로 건설및 한강종합개발을 하면서 조성한 인공섬이다.
서래섬은 수양버들이 서있고 거위와 붕어, 잉어가 살고 있다. 봄철에는 유채꽃이 피어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비기도 하며 ,1년내내 각종 꽃과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면서 사진촬영은 물론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다. 반포대교에 접어들면 세빛섬을 만날 수 있다.
반포는 이 마을로 흐르는 개울이 서리서리 굽이쳐 흐른다 하여 '서릿개' 곧 반포(蟠浦)라고 하다가 음이 변하여 오늘 날의 반포(盤浦)가 되었다고 한다. 세빛섬은 서울시에서 수익형 민자사업으로 만든 인공섬으로, 컨벤션홀과 공연 ,전시공간, 레스토랑, 레저시설 등을 갖춘 섬이다.
세빛섬은 세계 최초로 물위에 떠 있을 수 있도록 건축된 수상복합 문화공간이다. 세빛섬이라는 이름은 세가지 빛이라는 뜻의 세빛(Sevit)과 Awesome이 결합된 단어로, 방문객들이 감탄을 자아낼만한 환상적이고 멋진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잠수교를 건너 한남대교에 이르면 레인보우 카페가 있다. 한강 다리중 제일 먼저 생겼다. 한남대교 남단의 레인보우카페는 자전거 카페라고도 한다. 카페내에는 별도의 자전거 보관 공간이 있다. 한강의 자전거도로와 연계한 자전거족들에게 호응이 좋다.
옥수역에 다다르면 동호대교 위에 지하철 3호선이 지나간다. 다리 이름은 조선시대 옥수동 앞의 한강을 동호(東湖)라고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일명 금호대교라고 불렀다. 옥수역을 지나면 중랑천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점과 용비교를 통과하여 응봉역에 이르게 된다.
용비교는 서울숲에서 금호동 방면의 두무개길로 연결되는 중랑천 하류에 있는 다리이다. 다리밑에 여울목을 이루어 옛날에 용이 승천한 곳이라고 하여 용비교(龍飛橋)라 하였다. 1971부터 1983년까지 통행세를 지불한 유일한 다리로 서울숲을 지나가게 된다.
한강과 작별하면서 1983년도 유행했던 조용필의 '한강' 노래를 불러본다. '한굽이 돌아 흐르는 설움, 두굽이 돌아 넘치는 사랑, 한 아름 햇살 받아 물그림 그려놓고, 밤이면 달빛받아 설움을 지웠다오,억년에 숨소리로 휘감기는 세월, 억년에 물결을 여민 가슴에, 출렁이는 소리 한강은 흘러간다'.
응봉역에서 중랑천변길로 접어들고 군자교 부근의 참새 방앗간 노점식당에서 시원한 맥주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크우익 식당으로 향하였다. 11년전 부터 이용한 단골식당이다. 오래간만에 만난 교우들과 함께 모여서 한 가족처럼 밝은 분위기속에서 웃음꽃을 피우며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돼지고기 오겹살 구이로 미식을 즐기면서 시원한 소주와 맥주, 막걸리로 권커니 잣커니 하였다. 화제 잇슈는 사사로운 옥하사담(屋下私談)보다는 자전거에 관련된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람보림 부부의 북유럽 여행 다녀온 소감 등이었다.
창설 멤버 언클조 조성춘과 블랙캣 김경흠은 요즘 동호회 라이딩을 쉬고 있지만, 행사가 있을 때는 꼭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는 마중물 같은 벗이다. 블랙캣 김경흠은 그동안 재정담당 총무로 활동하다가 이번에 스머프 차에게 인계했다.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불원 다시 동행 길에 나설 것을 기대한다.
11주년 기념행사를 뜻깊게 마무리하고 다음주에 만남의 약속을 하면서, 람보림 부부와 스머프 차, 스카이천 부부, 조성춘은 전철대신 라이딩으로 서울 한강의 야경을 감상하며 둥지로 향하였다. 성동고 16회 바이콜릭스(Bikeholics)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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