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편으로...
3. 2일차: 5월 2일 - 울진 기성
망양 삼성 모텔 ~ 묵호 장수장 115.8km
지난밤 몸이 아주 피곤한 상태라 대략 11시 이전에 잠이 들어 생각보다
이른 5시 30분경 잠에서 깼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감상한 후 모든 짐을 챙겨 모텔을 나왔다. 어제
땡볕을 자전거로 달리며 이런 날에 한낮에 자전거를 탄다는 건 자살 행위라는 거에 둘이 동의해 2일 차부터는
새벽에 출발해 한낮에는 낮잠을 자며 휴식하기로 했다. 5시 40분경
자전거를 타고 다시 고성을 향해 북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북진하는 길목에 있던 식당에 들러 김치찌개로
아침을 먹고 다시 달린기 시작한 시각이 6시 50분이다.
7시 31분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 바닷가에 도착했다. 망양정은 해수욕장이 보이는 산언덕에 있어 정자를 감상하려면 거기까지
올라가야 했다. 자전거를 해수욕장 한쪽에 세워두고 카메라만 들고 망양정에 올라가 여기저기 사진도 찍고
감상을 했지만, 그 앞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고 실망했다. 원래
망양정의 위치가 여기가 아닌데, 조선 철종 때 이리로 옮겼다는 거다. 송강
정철이 망양정에서 동해를 보고 썼다는 "天텬根근을 못내 보와 望망洋양亭뎡의 올은말이, 바다 밧근 하날이니 하날 밧근 므서신고. 가득 노한 고래, 뉘라셔 놀내관데, 블거니 뿜거니 어즈러이 구난디고. 銀은山산을 것거 내여 六육合합의 나리난 듯, 五오月월長댱天텬의 白백雪셜은
므사 일고." 이 구절을 쓴 망양정이 지금 우리가 있는 망양정이 아니란 얘기다!
망양정에 실망하며 다시 바닷가로 내려와 자전거에 올라 북진했다. 그런데
어제와는 달리 엉덩이의 아픈 정도가 심해 안장에 앉기도 쉽지 않아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어떻게든 페달을
밟아 전진하다가 시원한 음료를 마시기 위해 들린 편의점에서 택배 취급하는 걸 알았다. 해서 주인장에게
빈 상자 하나를 얻고 테이프를 산 후, 배낭에 들어 있던 등산 관련 장비는 모조리 상자에 담았다. 하다못해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슬링까지! 테이프로 상자를 밀봉하고
택배로 보내기 위해 저울에 올리는 순간 놀랐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5.3kg이나 나갔다. 금액으로
7,000원! 택배를 접수 시키고 가벼워진 배낭을 둘러메고 자전거를 타는 순간 기분 때문인지
엉덩이 아픔이 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10시 24분 울진을 지나
삼척에 도착했다. 해안도로와 산악도로가 반복되는 패턴 속에 택배로 등산 장비를 보낸 이후 속도가 빨라져 12시 10분경 삼척 임원항에 도착했다. 항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해서 주변을 둘러보다 메뉴 중에 회덮밥을 크게 써놓은 식당으로 들어가 회덮밥과 이슬이를
주문했다. 이슬이 반주로 회덮밥과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고 12시 44분경 식당을 나왔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곳은 뜨거운 햇볕을
피해 잘 수 있는 장소다. 그렇다고 시끄러운 항구에서 잘 수는 없고 잠자리를 찾아 뒤로 돌아갈 수도
없어 계속 북진했다.
잠자리를 찾아 거의 1시간가량 북진해 도착한 곳이 삼척 해신당 공원이다. 물론 여기까지 자전거를 끌고 올라왔다. 해신당 주차장에는 해와 비를
피할 수 있는 기다란 의자가 설치되어 있어 배낭을 벗어 두고 그 의자에 누워 잠을 청했다. 내 기억으로는
대략 30분가량 잔 거 같다. 한잠 자고 일어나자 피로가
풀리고 몸이 가벼워졌다. 몸이야 좋아졌지만, 햇볕은 따가워
아직 자전거 탈 상황은 아니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바로 자전거를 달려 3시 30분경 삼척 레일바이크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 주차장으로 가 편의점에서 덥고 목이 말라 기존의 음료수가 아닌 팥빙수를 샀다. 꽁꽁 얼어 숟가락으로 퍼지지도 않는 팥빙수에 물을 붓고 깨 가면서 먹어야 했는데, 그게 더 시원하고 좋았다.
팥빙수로 몸을 충분히 식힌 후 다시 북진했는데, 해신당 이후의 길은
높은 산악도로가 없어 달리기 아주 좋았다. 거의 최대 속도로 달려 4시 46분에 해맞이 모텔 기준 200km 지점에 도착했다. 처음 계획으로는 첫날 150km, 둘째 날 130km 정도를 달리는 거였지만, 우리의 체력과 우리가 가진 장비와
길의 상태가 그걸 허용하지 않아, 하루에 100km 이상
가는 거로 목표를 변경했었다. 5시 30분경 삼척을 벗어나
강릉으로 접어들었다. 역시 또 허름한 모텔을 찾아 계속 북진해 8시가
조금 안 된 시각에 묵호항에 도착했다. 묵호항 가까운 곳은 유흥가라 빈방이 없어 골목길에서 발견한 장수장이라는
여관으로 갔다. 거기서 방 하나를 구해 자리를 잡았다. 여관비는 40,000원!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회를 먹기 위해 여관 주인장에게 길을 물어 회센터를 찾아갔다. 그리고 살아서 펄떡거리는 생선 50,000원어치를 산 후 그 수산
주인장이 가르쳐준 식당으로 갔다(노량진이나, 자갈치와 같은
구조). 그런데 문제는 그 식당은 예약으로 자리가 없었다. 그때가
울릉도에서 배가 들어오는 시각으로 이미 예약으로 자리가 다 찬 상태였다. 팔딱거리는 생선이 든 검정
봉지를 들고 황당한 상황이 된 거다. 해서 식당 주인에게 해결책이 없는지 물어보니, 회센터 앞의 시장 식당으로 가보라고 해서 그리로 갔다. 그런데 그
골목의 식당들도 거의 문을 닫았고, 문을 연 집도 회를 뜰 수 있는 사람은 퇴근해서 떠줄 수가 없다고
했다. 아주 황당한 상황이라 다시 생선을 샀던 수산으로 돌아가 대책이 있는지 물어보니 우리를 데리고
회센터 한쪽 구석에 있는 회만 전문적으로 떠 주는 노인네에게 데려갔다.
노인네가 떠 준 회와 시장 입구 구멍가게에서 초장과 고추, 마늘을 사서 여관으로 돌아갔다. 가는 중에 편의점에 들러 햇반과 빨갱이도 사고. 우리 방으로 들어가
떠온 회와 빨갱이로 늦게까지 저녁을 먹고 12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4. 3일차: 5월 3일 - 강릉 묵호
장수장 ~ 강릉 사천해변 36.3km
7시가 좀 넘어 기상한 후 모든 짐을 챙겨 들고 자전거를 끌고 어제
봐둔 식당으로 갔다. 그 식당이 어젯밤 예약으로 자리가 없다는 곳으로 아침 식사가 가능했다. 아침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먹어본 적이 없는 물곰치 지리를 먹기로 했다.
해장도 해야 하니! 처음 먹어보는 물곰치 지리는 해장으로 괜찮았다. 그렇게 해장을 하고 8시 30분경
식당을 나와 강릉항을 향해 출발했다.
이번 종주 서울 출발 전에 흥수가 강릉에 사는 Family 친구와
연락해 2일 차 저녁에 만나기로 했었다. 물론 강릉에서! 우리의 주제를 모르고, 이틀이면 강릉까지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한 약속이다. 그 친구와 만난 후 나는 서울로 흥수는 계속 고성으로 북진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한 상황 되어
3일 차 점심을 같이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동진을 거쳐 강릉항까지 달리는 과정에 어쩌다보니
내가 앞장서서 달리다가 자전거 도로를 놓치는 사태가 발생했다. 흥수는 뒤에서 따라오며 내비에 의지해
정상적으로 가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둘이 통화를 하며 간신히 자전거 도로로 다시 들어갔다.
강릉항으로 달리고 있는데, 흥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영이와 만나기로 한 식당을 지나쳤다는 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흥수가 따라올 수 있도록 천천히 가고 있었기에 그 식당에서 멀리 가지는 않았다. 다시 자전거를 돌려
그 식당으로 가보니 도영이 자리를 잡고 앉아 벌써 맥주를 한잔하고 있었다. 그 식당이 강릉에서는 꽤
유명한 곳인지 줄을 서서 먹어야 할 정도였다. 그나마 우리는 도영이가 한 시간 전에 와 자리를 잡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수고는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감자옹심이, 바지락 칼국수, 닭발 등의 안주에 소주 5병과 맥주 7병을
마셨나? 11시 47분에 만나, 1시 24분에 식당을 나왔으니, 대략 1시간 30분가량 마셨다!
정상적이라면 거기서 헤어졌어야 했지만,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오늘 중으로 끝내기는 틀렸다고 생각했었다. 역시 예상대로 도영의 유혹에 넘어가 도영이
강릉 사천해변에 설치해둔 텐트로 가 2차를 하기로 했다. 음주가
과해 자전거를 탈 상황이 아니라 도영이 벤을 불러 자전거를 싣고 사천해변으로 달려 1시 44분에 도영의 별장에 도착했다. 분위기로 봐서 우리 때문에 특별히
친 거 같지는 않고 여름이면 내내 쳐두고 별장으로 이용하는 거로 보였다.
동해안을 따라 올라오며 수없이 많은 해수욕장을 지났음에도 시간에 쫓겨 동해에 발을 담그지 못했는데, 짐을 풀어 텐트에 넣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지고
동해로 들어갔다. 흥수와 내가 동해에서 노는 동안 도영은 본인 자전거로 회를 사러 갔다. 그리고 30분 정도 후에 돌아와 가서 먹어야 한다고 해서 횟집 주인장이자
도영의 친구가 차를 가지고 우리를 데리고 왔다. 굳이 신발을 신을 이유도 없어 맨발로 차에 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략 2시간 동안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남은
회를 들고 다시 텐트로 돌아갔다.
5시부터 텐트에서 마시기 시작해 대략 10시까지 마셨다. 와중에 옛 가족에게 전화도 하고, 밖에 나가서 놀기도 하며. 도영이 술에 취해 텐트에서 자는 동안
배가 고프면 잠을 못 자는 흥수와 나는 자전거를 타고 6km 정도 떨어진 편의점으로 달렸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저녁을 먹고 술과 안주를 더 사 들고 다시 텐트로 돌아와 자는 도영을 깨워 다시 술판을
벌였다. 그리고 몇 시에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5. 귀경: 5월 4일 – 강릉 사천해변
~ 강릉시외터미널 18.5km
6시경 잠이 깬 흥수는 최종 목적지 고성을 향해 출발하고 오전 중으로
귀가하지 않으면 쫓겨나게 생긴 나는 아쉽지만, 조금 더 잠을 청한 후 기상해 도영과 함께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을
향해 출발했다. 가는 길목에 있는 식당에서 초당순두부로 아침을 먹고 경포대를 지나 시외버스 터미널에 8시 26분에 도착하는 거로 이번 동해안 국토 종주 포항, 강릉 구간을 마쳤다.
물론 흥수는 계속 달려 목적지인 고성에 도착한 후 저녁 버스로 서울로 복귀했다.
강릉에서 버스를 타고 11시 36분에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다. 처음 계획은 자전거를 고성에 버리고 오는 거였지만, 같이 고생한 걸 생각해 차마 버리지 못해 버스에 싣고 오기는 했다. 문제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집에까지 어떻게 가져가느냐다! 대안으로 주행을 불러 맡겨두는 방법도 있지만, 휴일이 아니라 평일이라 집에 있다는 보장도 없고 번거롭기도 해 그냥 한강을 따라 집에까지 가기로 했다
맞바람을 맞으며 한강을 달리는 고생 끝에 1시 31분 집에 도착했다. 동서울에서 집까지 32.8km!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포항에서 강릉까지 281.9km(트랭글
기준), 73시간 12분의 동해안 국토 종주를 했다. 이동 43시간 46분, 휴식 29시간 26분!
도영이 얘기했듯이 이번 건은 운동이 아니라 골병이라는 말이 정확하다.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다만 2000년 4월 캘리포니아 1번 국도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태평양 연안을 차로 달려본 바에 의하면 우리 동해안 국도도 그에 못지않은
절경이었다.
해파랑길에 도전하는 모든 순례자에게 경의를! 그 땡볕에 해안도로와
산악도로가 반복되는 아스팔트를 걷는 고행이 보답받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