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쉽게 읽는 중국이야기] 중국의 '금순이'를 아십니까? | |
출처 : 온바오 |
1. 한국인들은 중국이 고구려 역사까지 가로채려 한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가장 많이 들어봤겠지만 중국에는 이밖에도 수많은 ‘공정’이 있다. 2. 이런 공정들 말고도 중국에 금순공정(金盾工程)이라는 것이 있다. 금순은 금(金)으로 만들어진 방패(盾), 즉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는 단단한 방어막을 뜻한다. 중국의 인터넷 통제 정책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에서 인터넷을 하다 보면 이래저래 불편한 점이 많다. 속도가 느린 것은 그렇다치고, 자료를 찾다보면 검색이 제한된 단어가 숱하게 많다. 2008년 티베트에서 시위사태가 발생했을 때 필자는 수차례 ‘티베트 + 인권’ 등의 검색어로 중국어로 된 티베트 인권 문제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때마다 번번이 ‘검색불가’ 또는 “시장(西疆 ; 티베트)는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엄연한 중국 영토”라는 중국 정부의 입장만을 밝힌 자료들만 상위 검색결과로 쏟아져나왔다. 2010년 류샤오보(劉曉波)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을 때에는 며칠동안 ‘류샤오보’라는 이름 자체가 검색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후 ‘류샤오보’가 검색이 되기 시작했는데, “류샤오보는 중국의 현행법을 어긴 범법자이다”라는 중국 정부의 입장을 전하는 기사가 최상단에 검색결과로 노출되었다. 류샤오보가 중국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에 알고 싶었는데, 중국어로 된 검색결과를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한글이나 영문 자료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며칠 뒤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식에 참가한 국가들은 응당한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협박성 논평이 큼지막하게 눈에 띄었다. 허망하고도 살벌한 순간이었다. 필자는 글을 쓸 때 위키백과를 종종 참고하는데, 랴오닝성 선양에 살고 있을 때에는 위키백과가 아예 접속조차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래서 ‘중국에서의 위키 검색은 불가능’이라는 나름의 선입견을 갖고 살다가 톈진으로 이사를 와서 아무런 기대를 갖지 않고 그냥 습관적으로 접속을 시도해보았는데 위키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어찌나 기쁘던지……. 팔짝팔짝 뛰면서 기뻐할 정도였다. 중국에 살다보면 때로는 이렇게 사소한 일로 기쁨을 얻는다. 고마운 중국이 아닐 수 없다. 일전에 중국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선배가 있었는데, 파룬궁(法倫功)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할 때에는 절대 조심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받곤 했다. 중국 PC방에서는 이 단어를 검색하기만 해도 곧바로 공안국에서 파악이 가능하다나. 어느 PC방의 몇 번 PC에서 이 단어를 검색했는지까지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곧바로 공안요원이 출동하여 그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을 체포하여 간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까지 들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전에 중국 톈진의 우리집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파룬궁’이라는 한글 단어로 위키백과를 검색해보니 페이지가 열리지 않았다. “Internet Explorer에서 웹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문이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보쉰(博訊)이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중국의 인권문제를 주로 다루는 사이트다. 한국에서는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중국에서는 이 사이트가 아예 접속이 안된다. 이밖에도 반(反)중국적인 사이트, 중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가 게시된 외국 사이트에도 거의 접속이 안된다. 그냥 접속만 안되면 모르겠는데, 그런 사이트에 접속을 자주 시도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게 된다는 이야기 때문에 겁쟁이인 필자는 접속이 안되는 사이트가 있으면 다시는 재접속을 시도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사는 일이 이렇게 팍팍하다. 이른바 ‘재스민 혁명’이라고 불리는 중동 국가들의 연쇄적인 민주화 시위가 있었을 때에는 재스민의 중국어인 모리화(茉莉花)에 혁명(革命)이나 운동(運動) 또는 행동(行動), 집회(集會) 등의 단어를 결합하면 아예 검색 자체가 되지 않았다. 호기심에 그런 단어를 몇 번 입력해봤다가 ‘이러다 잡혀가는 것 아닌가?’하는 소심한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중국에 사는 일이 이렇게 스펙터클하다. 어디 그 뿐인가. 중국의 지역마다, 그리고 시기에 따라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접속이 아예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중국의 인권문제를 비난하는 사이트나 자료에 대한 접근을 차단한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어찌하여 이런 비(非)정치적인 사이트까지 막아버렸는지 의아하기도 하지만, 이른바 ‘SNS혁명’이라고 불리는,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한 정보의 교환으로 여러나라에서 민주주의 혁명이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차단해버린 것 같다. 심지어는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까지 차단해버린 적도 있다. 티베프 소요사건이 있었을 때, 시위 진압 장면과 같이 중국 정부에 좋지 않은 동영상이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을 우려해 한동안 차단해버린 것이다. ‘차단’ - 이 두 글자가 오늘의 중국을 말해준다. 금순공정은 이러한 ‘차단’의 공정이다. 인터넷 상에 중국만의 방화벽으로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하여 방화장성(防火長城)이라 부르기도 하고, 황금방패(黃金防牌)라는 멋들어진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참고로, 방화장성이라는 명칭은 중국 정부에서 붙인 이름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중국의 인터넷 통제 형태를 비아냥거리는 뜻으로 붙인 이름인데, 현재 중국에서 중국어판 위키를 통해 이 용어를 검색해보면 결과가 차단된다. 이러한 금순공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추진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에 살다보면 앞에서 필자의 실제 경험담을 나열한 바와 같이 실생활을 통해 금순(金盾)이를 만나게 된다. 어떤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 3만여 명의 공안요원들이 이러한 금순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종일 쉼없이 유해한(?)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내고 여기로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익명으로 댓글을 다는 경우도 많은데, 중국에서는 게시글 바로 옆에 대체로 IP 주소가 노출된다. 예를 들어 중국의 3대 포털사이트 가운데 하나인 왕이(网易)에 게시된 어떤 기사에 댓글을 달게 되면 网易北京市网友(왕이 북경시 네티즌)이라는 식으로 표시가 된다. 그 옆에서는 3.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중국이 참 엄청난 독재를 하고 있구나’하고 오해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금순공정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중국에 몇이나 될까? 물론 금순공정으로 인해 정보가 통제되고, 그로인해 민주화의 실현이 늦춰지게 되면 그것은 곧 전 인민의 손해이겠지만, 길거리에 지나가는 중국의 일반 인민들을 붙잡고 “금순공정 때문에 불편하세요?”라고 물으면 거의 대다수가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느냐는 눈빛으로 바라볼 것이다. 먹고살기에도 바쁜 사람들이다. 중국 인권과 관련된 검색어가 차단된다고 불편할 사람들은 일부 학자나 언론인, 지식인 정도일테고, 절대 다수의 중국 국민은 금순공정과는 상관없이 인터넷으로 영화보고, 신문보고, 게임하고, 메일 보내고, 메신저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정말 아무런 불편없이’ 인터넷의 편리함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대외적으로 금순공정은 중국공산당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실시하는 인터넷 통제정책으로만 알려져 악명이 높지만, 사실 금순공정의 주요한 타격대상 가운데 하나는 음란 사이트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추측하기에, 금순공정에 의해 차단되는 사이트의 90% 이상은 음란, 범죄 사이트를 비롯하여 불건전한 사회문화를 조장하는 유해 사이트들일 것이다. 차단되는 웹페이지의 숫자로만 따지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실제로 당국의 통제가 없는 공간에서의 준법의식이 상당히 약한 중국 사람들의 문화수준을 놓고 볼 때 중국 인터넷 공간이 이토록 질서있게(?) 운영되는 것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 암암리에 포르노 동영상이 공유되고, 해킹툴이나 불법복제물이 오고가며, 최근에는 음란 화상채팅이 성행하고 있는 보도까지 있지만 3억 명이 넘는 중국의 인터넷 인구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치라고 볼 수 있다. 온갖 음란, 유해사이트가 난무하고 인터넷을 통해 자살동호회까지 생겨나는 한국의 경우와 비교해보라. 금순공정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중국 정부는 금순공정을 인터넷 통제정책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빙산의 일각만을 바라본 것”이라고 반박한다. 사실 금순공정은 금(金)자가 들어가는 중국 정부의 12개의 공정 가운데 일부분이다. 공용 경제망을 구축하는 금교공정(金桥工程), 대외무역망을 구축하는 금송공정(金关工程), 전자결재 수단을 통제하는 금잡공정(金卡工程), 농업정보망을 구축하는 금농공정(金农工程), 품질표준화 서비스를 통합하는 금질공정(金质工程) 등과 함께 치안서비스망을 구축하고 통합 관리하는 작업으로써 출발한 것이 금순공정이다. 여기에는 주민등록 자료를 전산화하고 이러한 자료에 대한 방어막을 구축하는 작업, 범죄관련 자료를 구축하고 이를 공안당국이 공유 관리하는 작업, 각종 사이버 범죄에 대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작업, 치안전산시스템을 더욱 현대화하는 작업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인권 ․ 민주화 관련 자료를 통제하는 것은 금방패의 모퉁이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금순공정이 시작된 것은 1998년의 일이다. 중국에 아직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부터 ‘전산화 ․ 현대화’의 일환으로 금순공정이 제기되었고, 2002~2004년에 기본적인 골격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보면 중국이 어떠한 문제의 발생 가능성을 빨리 예측하고 대응책도 제법 짜임새 있게 마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넋놓고 앉아있다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저 무식하게 대응하는 공산당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국을 마냥 우습게만 볼 일이 아니다. 4. 공산당이 인터넷을 통제하는 것은 그만큼 인민을 무서워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011년 2월 27일 온자바오(温家宝) 중국 총리는 네티즌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한국에서도 ‘대통령과의 대화’와 같이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민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이벤트를 종종 마련하지만, 흔히들 무소불위일 것이라 생각하는 중국공산당의 ‘넘버 쓰리’(중국 총리는 국가주석, 전임대 상무위원장에 이어 공산당 내부 권력서열은 3위다)가 국민들 앞에서 직접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네티즌과의 대화하는 모습을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물론 이것을 ‘쇼’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어쨌든 관영통신인 신화통신 홈페이지를 통해 1시간 동안 진지한 채팅이 이어졌다. 네티즌들의 질문은 주택문제, 물가안정 문제, 실업문제, 대졸자들의 취업문제, 빈민구제의 문제, 호적제도의 개혁문제 등이었고, 총리는 이에대한 정부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채팅이 중국어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그렇지, 한글로 바꿔놓으면 한국의 대통령과의 대화나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주제들이다. 세상 어디나 우리네 민초들의 관심사항은 엇비슷한 것이다. 이러한 네티즌과의 대화는, 바로 그날이 중국 인권운동 세력들이 제2차 재스민 시위의 날로 선포한 날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일각에서는 그래서 “재스민 시위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한 수작”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 대화는 2009년부터 매년 ‘양회(两会 ;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앞두고 정기적으로 실시해오던 것이었다. 중국은 연말연시나 춘제(春节 ; 설날)와 같은 명절, 그리고 양회와 같은 국가적인 정치행사를 앞두고 ‘기층으로 달려가다(走基层)’, ‘기층으로 내려가다(下基层)’와 같은 민심 달래기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내보낸다. 총리와 네티즌과의 토론도 이러한 민심공정(民心工程)의 하나로 보면 될 것이다. 중국에서 이 기층(基层)이라는 표현이 흔하게 사용된다. 기층 군중, 기층 간부, 기층 당조직, 기층 공작, 기층 의료기구……. 여기서 기층이란 ‘최말단’이라는 뜻도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이라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 따라서 “(당간부가) 기층으로 내려가 사업한다”라는 말은 가장 말단으로 내려가서 민중과 고락을 함께하며 민중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다는 의미를 갖는다. ‘기층을 존중하라’는 말은 공산당원들이 서로 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주고받는 말이다. 때로는 민중 위에 군림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민심을 무서워하는 분위기가 중국공산당에는 오랜 전통처럼 몸에 배어있기도 하다. 2010년 중국에 유행했던 말 가운데 하나가 “워빠스리깡(我爸是李剛)!” - “우리 아빠가 리깡이야!”였다. 멀쩡하게 일하고 있는 회사 동료의 뒤에 가서 주먹으로 한 대 툭 치고는, ‘대체 애가 왜 이래?’하는 표정으로 그 사람이 쳐다보면 “우리 아빠가 리깡이야!”하면서 씨익 웃었다. 그때야 상대도 무슨 말인지 알고 허겁게 웃었다. 2010년 10월 16일 중국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시 어느 대학교 캠퍼스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술에 취한 운전자가 대학생 2명을 치었는데,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다른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 목격자가 많았음에도 피해자를 못 본 척 뺑소니를 친 운전자는 태연하게 다시 차를 몰아 여자친구를 만나기까지 했다. 그러다 나중에 대학경비원들에게 붙잡히자 “우리 아빠가 리깡이야!”라고 큰소리를 쳤다. 리깡은 바오딩시 베이스(北市)구 공안국 부국장 - 바로 뺑소니 운전자의 아버지였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이 들끓었다. ‘우리 아빠는 리깡’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화들짝 놀란 중국 정부가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지시했고, 리깡은 옷을 벗고 아들은 6년형을 받았다. 이 형량이 적다고 중국 네티즌들이 다시한번 들끓었다. 2011년 2월에는 선전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한 승객이 공항 보안원의 멱살을 잡고 뺨을 때린 사건이 발생했다. “베이징시 공안부국장이 우리 친척인데, 전화해서 너를 가만히 놔두지 않도록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인터넷에 올라와 또 한 번 떠들썩했다. ‘선전공항의 리깡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 동영상은 지금 중국 인터넷 상에서 찾을 수가 없다. 검열에 의해 삭제됐다. 중국에서 살아보면 누구 아들, 누구 친척이라고 권력자의 이름을 대면서 - 사실 그 ‘권력자’라고 해봤자 기껏(?) 한국의 경찰서장급인 공안국장 정도이다 - 큰 소리를 치는 사람을 종종 만나기도 하는데, 알 만 한 사람은 그게 다 뻥이라는 것을 안다. 정말로 권력이 있는 집안의 사람들은 오히려 관계를 숨기거나 복잡해질 만한 일은 피해버린다. 철없는 어린애들이나 ‘우리 아빠가 리깡’이라고 떠벌이고 다니지, 그러한 행위가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에게 오히려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몸을 사린다. 중국에서 이런 권력형 추태가 보도될 때마다 “중국은 아직 멀었어”하고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지만, 그 이면에 담긴 또 다른 모습을 보아야 한다. 이제는 중국 정부도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그런 사건에 대해 더욱 단호하게 대처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이 더 확산되지 못하도록 어떻게든 여론을 차단하고 저지해버린다. ‘선전공항 리깡 아들’의 동영상이 삭제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일을 담당하는 금순이들도 무척이나 바쁠 것이다. 5. 중국공산당은 ‘선전(宣傳)’으로 중국을 세웠다. 일본군과 싸우는 와중에도, 국민당과 결전을 벌이는 동안에도, 공산당은 꾸준히 유인물을 배포하고 라디오와 책자를 통해 공산당의 정책을 알리면서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했다. ‘부패한 국민당’이라는 중국 인민들의 원성의 목소리를 재빠르게 파악하여 ‘청렴한 공산당’이라는 대안적 이미지를 꾸준히 유포해 나간 것이다. 국민당 지역을 장악하고나서도 점령군처럼 행세하지 않았고, 공손하게 지역유지들을 대접했다. ‘인민의 물건은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정해놓고 공산군 대원들의 약탈이나 절도행위를 철저하게 엄벌하였고, 인민의 여염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될 때에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장작을 패오고 농사일을 도와주면서 신임을 얻었다. 당시 중국 국민의 절대 다수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을 판화로 찍거나 만화로 그려서 유인물로 배포하며 ‘인민의 벗 - 홍군’을 알리는 기가 막힌 선전 기량을 발휘하였다. 중국은 그렇게 세워진 나라다. ‘프로파간다’로서는 당시 공산당 가운데 세계 최고였을 것이다. 2011년 2월 2일,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锦涛)는 하북성 바오딩시를 방문했다. 리깡 아들이 행패를 부린 바로 그 바오딩이다. 물론 그것 때문에 바오딩을 방문한 것은 아니다. 음력 설날을 앞두고 국가주석이 주민들의 생활현장을 직접 찾아가 둘러보는 연례적인 기층 탐방의 일정이었다. 매년 그렇게 하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정말로 리깡 아들 사건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2011년 설날에는 바오딩을 찾았다. 가장 먼저 시외버스터미널을 방문했다. 버스표를 구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는 시민들과 악수하고 매표소 직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으로 군부대를 방문했다. 군인들의 소박한 공연을 하급병사들과 똑같은 테이블에 앉아 관람하고, 함께 만두를 빚었다. 거기서 식사를 하고 겨울가뭄에 신음하는 농촌의 들녘으로 향했다. 바오딩시의 혁명박물관을 둘러보고, 노(老)혁명가의 집에 방문하여 부엌의 솥뚜껑을 열어보며 살림에 어려움은 없는지 살펴보고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쭈그렁 할머니가 된 그 여성 혁명가는 “당신은 인민의 몸이니 건강을 잘 살펴라”고 후 주석에게 당부했다. 발길을 옮겨 인근의 아파트 단지를 방문한 후진타오는 마이크를 잡고 주민들에게 “여러분과 함께 설을 쇠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당(공산당)은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주민들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직접 북을 치면서 어울렸다. 후진타오가 바오딩시를 방문한 2월 2일 저녁부터 사나흘동안 중국중앙텔레비젼(CCTV)는 이런 장면을 줄기차게 메인뉴스로 내보냈다. 1~2분 정도로 간단히 대통령의 동정을 소개하는 한국의 뉴스보도와는 분량부터 다르다. 짧게는 5분, 길게는 15분 정도로, 어디서 무엇을 했고 무슨 말을 했으며 주민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육성과 화면으로 친절하게도 보여준다. 설날 연휴동안 꼼짝 없이 집에 갇혀있어야 했던 필자는 그 뉴스를 족히 열댓번 정도는 반복해서 보았다. 하도 보다보니 나중에는 그 현장에 같이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혹자는 어용언론의 실상이라 치부할지 모르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중국에서 살다보면 국가 최고지도자들의 업무광경이나 연설모습을 TV를 통해 의외로(?) 많이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소비자의 날을 앞두고는 상무부장이 직접 TV에 나와 중국 정부의 소비자 정책을 소개하고, 불량제품을 발견하였을 때에는 이렇게 조치를 하라고 설명해준다. 이것을 훈계하듯 무게 잡고 연설하는 방식의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나운서와 함께 슈퍼마켓을 방문하여 계산대를 배경으로 한마디를 하기도 하고, 쇼핑카트를 몰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여 내심 감탄사를 연발할 때가 있다. 기막힌 선전의 방법이다. 이런 사례 이외에도, 한국의 장관들보다 중국 국무원 부장(한국의 장관급에 해당)들의 모습을 TV에서 더욱 자주 접한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사안이 발생하면 부장이 직접 나와 설명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중국 TV 뉴스를 관심있게 보다보니, 그래서 필자는 지금 한국 장관들의 얼굴과 이름은 잘 몰라도 중국 부장들의 얼굴이나 이름은 대충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과거에 ‘땡전뉴스’라고 하여, 저녁 9시를 알리는 자명종이 ‘땡’하고 울리면 ‘전두환 대통령은~’하고 매일같이 정부를 홍보하는 뉴스로 첫 보도를 시작하여서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리하여 정권홍보성 관제보도가 크게 줄어든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정부의 홍보수단이 너무 적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때도 있다. 친(親)정부적인 언론의 대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정부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듣고 싶은데, 그러한 기회가 지나치게 적은 것 같다. 그러니, 나름대로는 열심히 하고 있겠지만,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청와대 기왓장 아래에서 무엇을 하고 있지 알 턱이 없으며 장관이란 사람들은 정부청사에서 맨날 낮잠만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니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6. 한쪽으로는 차단하고 금지하고 때로는 잡아가두고, 또 한쪽으로는 홍보하고 선전하고 어르고 달래면서 유지되는 정권이 현재의 중국공산당이다. 중국 인터넷에 늘어나는 금칙어를 볼 때마다 ‘언제까지 차단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는다. 페이스북가 트위터가 막히면서 중국에는 중국판 트위터라고 할 수 있는 웨이보(微博)가 큰 유행이다. 한국의 NHN(네이버)과 다음에 견줄 수 있는 중국의 양대 포털사이트 신랑(新浪)과 텅쉰(腾讯)에서 웨이보를 서비스하고 있다. 최초로 웨이보를 선보인 신랑은 서비스 18개월만에, 텅쉰은 단 10개월만에 1억명 돌파에 성공했다. 트위터가 4년만에야 세계시장에서 1억명을 돌파한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확장 속도다. 그만큼 중국인들이 정보와 소통에 목이 말라 있다는 증거다. 지금 중국인들은 웨이보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알리고, 소식을 주고받는다. 인형인지 진짜 사람일지 구분이 안되어 한국 네티즌들사이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던 중국 여고생 왕자윈(王嘉韵)의 사진도 웨이보를 통해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웨이보를 통한 미아찾기 운동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하고, 중국의 어느 간호사가 응급환자들이 사망 뒤처리를 하는 것이 귀찮아 “죽으려거든 내가 퇴근하고 나서 죽어라(等我下班再死啊)”라고 망언을 하였던 것도 웨이보를 통해서 알려지면서 중국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장쯔이도 웨이보를 통해 시시콜콜 사생활을 공개하고, ‘황색탄환’으로 불리는 중국의 육상영웅 류썅의 웨이보 팔라오는 1천만 명이 넘는다. 이렇게 지금은 킬링타임(killing time) 정도로 이용되는 웨이보이지만, 물론 중국 정부의 필터링 기능을 모두 탑재하고 있을 것이 뻔하지만, 언젠가 그것이 칼이 되어 중국공산당의 목을 겨누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중국 정부는 그에 대한 대비책을 이미 세워놓았을 것이고, 문제가 심각해진다 싶으면 또다시 그에맞는 발빠른 대응책을 내놓을 터이지만, 인민과 공산당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결코 공산당에게만 유리할 것 같지는 않다. 선전으로 일어선 나라가 선전으로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bitdori2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