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초반의 어느해 3월
우리는 몇명 안되는 인원으로 산악회를 하나 만들었어.
모두가 참석해야 6명, 그나마 누군가 일이 있어서 못나오면 산악회라고 부르지도 못할 인원이었지.
산행 장소를 천마산으로 정하면서 누군가 한마디 했어.
"3월이면 산신제 지내는 달이잖아? 우리도 지내자."
대부분의 친구들이 찬성을 했고, 나 혼자 반대를 했다.
"우리의 인원이 고작 6명이야, 산신제를 지내려면 여러가지 음식과 술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인원으로 준비하기에는 너무 힘들지 않을까?"
"크게 지낼 필요 없잖아? 그냥 과일 한두개씩 하고 떡 조금 준비하고 막걸리 가져가면 되지."
"아니야, 이왕 준비하려면 제대로 하던지, 아니면 안하는게 좋아."
"양 보다는 성의 아니야?"
"신들은 원래 사람보다 질투가 많아. 애초에 안지내면 산신이 우리한테 아무런 신경을 안쓰지만 대충 지내면 섭섭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 사람도 그렇잖아 어떤 사람은 나에게 진수성찬을 주는데, 어떤 사람은 나에게 라면에 밥을 말아 준다면 누구의 것을 먹겠냐구? 신이 섭섭하게 생각하면 오히려 안한것만 못하다구."
"야,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거지, 솔직히 신이란게 어디 있냐?"
"형식적이라고 생각하고 신이란걸 없다고 생각한다면 산신제를 뭐하러 하냐구?"
"그냥 음식 준비해서 우리끼리 먹으려고 하는거지 뭐."
결국 다수결의 원칙에서 산신제를 하기로 결정되었어.
내 의견에 안따랐다고 산악회에서 빠질수는 없잖아?
그냥 모른척 하기로 생각하고 산행을 했어.
우리는 각자의 배낭에 과일과 떡, 술을 나누어서 메고 올라갔지.
초입에 들어서자 어느 산악회인지 아주 커다랗게 상을 놓고 제삿상을 잘 차려 놓았더군.
온갖 과일과 여러가지 떡, 돼지머리도 있었어.
산악회를 보니 인원이 100명도 넘겠더라구.
버스를 대절하고 왔으니 힘들게 오지는 않았을거야.
우리는 그 옆에서 산신제를 지내기가 챙피해서 조금 더 올라가 보기로 했어.
올라가면서 산신제를 지낼만한 장소에는 다른 산악회에서 구색을 갖춰 놓고 이미 산신제를 진행하고 있었지.
우리는 그들을 피해서 조금만 더 올라가보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산 정상에까지 와버렸어.
원래 정상에서는 산신제를 지내는게 아니거든.
다른길을 찾아 다시 내려갔더니 산신제를 지낼만한 장소가 보이더군.
"정상을 밟았으니 산신제는 안하는게 좋겠어."
"그래도 준비를 해 왔는데 안할수는 없잖아? 그냥 여기서 하자."
내 말은 다시 묵살이 되었어.
천마산을 다녀온 후로 내 고객들이 끊기기 시작했어.
마치 아는 놈이 그런식으로 산신제를 지냈으니 벌을 받는 느낌이 들었지.
가까운 절을 찾아 기도를 했지만 고객들은 돌아 오지 않았지.
A한테 잘못해 놓고 B한테 가서 부탁을 하면 A가 들어주겠냐구?
어떡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어.
그렇게 몇일이 지나갔고 나의 고객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지.
수입이 제로 상태가 되었어.
평소 알고 지내던 무속인에게 찾아가 방법이 있냐고 물어 봤어.
방법은 있다고 하더군.
"지난번에 산신제를 지냈던 장소에 가서 다시 산신제를 지내도록해. 그런데 정상을 밟고 내려오면 안되니까 다른길로 정상을 밟지 않고 올라가야 되는거야."
같이 갔던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한명이 다른길을 안다고 하더군.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길이 아주 험하다고 하네.
걱정은 됐지만 어쩌겠어. 험해도 가야겠지.
그때 산신제를 지내자고 밀어붙였던 친구도 일이 안풀린다면서 동행하기로 했어.
좋은날을 잡아 친구와 함께 셋이서 천마산을 향했어.
조금 올라가다보니 정말 산길이 험하더라구.
거기다 강풍이 몰아치는데 마치 누군가 내가 올라가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것 같았어.
스틱을 잡고도 바람에 밀리더군.
결국 스틱 한개는 부러져버렸어.
그만큼 강풍이 무섭게 불었지.
나는 스틱을 버리고선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어.
나뭇가지를 붙잡고, 돌을 붙잡고 기어가는데도 엄청 힘이 들더라구..
기어가는데도 미끄러지기를 여러번 했지.
산신제를 지냈던 장소를 가는데까지 강풍은 멈추지 않았지.
정말 힘들게 도착을 했어.
바람이 조금 잔잔해지더군.
우리는 준비한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했어.
오늘도 준비한 음식은 조촐하지만 노여움을 푸시라고 말하면서 절을 했지.
순간 주변이 평온해졌어.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은 온화했지.
내려오는 길은 바람 한 점 없는 아주 온화한 길이었어.
옆에서 걸어 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어.
"조금 전까지 강풍이 무섭게 불더니 날씨가 참 좋네요?"
"강풍이요? 에이,, 언제 강풍이 불었다고 그래요? 오늘 일기예보도 아주 좋았는데.."
강풍은 없었다네.
우리 세사람만 강풍을 경험한거야.
다음날부터 고객들이 다시 오기 시작했어.
그리고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 왔지.
한 달 정도를 힘들게 보냈었네.
아마 남들은 아무도 안믿을거야..
우리 세사람 말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