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라 7기 3차 과제: 기억에 남는 음식
제목: 삼시세끼와 라면
얼마 전 한 매체와 ‘일하면서 아이도 키웁니다’라는 테마로 인터뷰를 했다. 최근에 새 책이 나오고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채널예스와 내가 운영하는 책방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 담당했던 기자와 인연이 닿아 이번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다. 모든 인터뷰를 다 수락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하면서 아이도 키웁니다’라는 테마가 마음에 들었고 이 주제라면 나도 할 말이 많지,라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응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때여서 이번에는 서면 인터뷰로 진행했다. 에디터가 약 스무 개 정도의 질문지를 미리 보내줬고 일하면서 짬짬이 답을 적었다. 질문 중에 “일이나 육아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푸는 나만의 해소법이 있나요?”가 있었다. 스트레스 해소법이라...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잠시 생각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에서 책을 마음껏 읽는 것인데 이것이 진짜 스트레스 해소와 얼마큼 연관이 있을까를 떠올려봤다. 글 쓰고 책을 내고 강연을 하고 책방에서 일하다 보니 때로는 독서가 의무처럼 다가올 때도 적지 않았다. 보통은 이게 스트레스 해소법이라고 말했지만 육아동지들에게는 진짜를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표면적으로 좋아하는 것 말고, 다소 말하기 민망할지라도 내가 진짜 쉬고 싶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적기 시작했다. “저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라면, 라면 먹으면서 삼시세끼 보는 거요.(웃음) 이게 약간 길티 플레저 같은 건데요. 죄책감을 느끼긴 하지만 되게 많이 느끼는 건 아니고, 아무튼 라면을 너무 좋아해서 라면 끓여서 삼시세끼(같은 예능) 보면 그렇게 행복해요. 이때 남편도 없고 아이는 자고 그러면 더 좋아요. 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 독서지만 이런 소소한 재미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한마디로 머리를 텅 비우는 시간이라고 할까요? 삼시세끼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생각 없이 볼 수 있어서거든요. 스토리를 이해할 필요도 없고 전후맥락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저는 봤던 것도 계속 다시보고 그래요.” 답변을 적는 동안 나도 모르게 히죽히죽 웃었다. 좋아하는 걸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지 않나?
나는 라면을 참 좋아한다. 요즘은 주로 안성탕면을 끓여 먹는데 가끔 더 매운 게 당길 때면 너구리를 끓인다. 건강과 늘어나는 뱃살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면 내 삼시세끼도 라면으로 해결하고 싶다. 간단히 먹을 수 있고 맛까지 좋다. 국물을 워낙 좋아해서 자박하게 끓이는 것보다 국물 많게 끓여 밥까지 말아먹는 걸 즐긴다. 다행히 남편도 라면이 떡볶이 다음으로 ‘최애’ 음식이다. 주말에 한 끼 정도 뭐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은 매우 짧다. 우린 서로 눈치 볼 것 없이 각자 좋아하는 라면 끓여서 먹는다. 둘 다 라면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남이 끓여주는 라면보다 제 입맛에 맞게 끓여먹길 선호한다. 이때 만큼은 부엌 싱크대 앞에 서길 귀찮아하지 않는다. 남편은 국물 없이 짜게 먹는 스타일이어서 내가 끓인 라면을 두고 맨날 “한강이네 한강”이라며 놀린다. 라면과 곁들이는 반찬도 그는 단무지, 나는 김치다. 따로 먹어도 아무런 불평불만 없다. 부부는 사이좋게 라면을 먹어도 아이는 꼬박꼬박 밥을 챙겨줬는데 최근에는 조금 컸다고 라면에 눈독을 들여 내가 끓인 라면을 나눠 먹기도 한다. 너무 웃긴 게 엄마가 삼시세끼 보며 라면 먹는 시간을 좋아하는 걸 아는지 아이도 내가 라면을 끓여 그릇에 덜어주면 안방 티비 앞에서 혼자 먹는단다. 나는 그 즐거움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에게 혼자 라면 먹으며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시간을 가끔 허용한다. 덕분에 나도 좀 쉬고. 문득 오래 전에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유명한 박혜란 여성학자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삼형제를 키우며 가장 후회되는 게 무엇이냐 물으니 어릴 때 라면을 너무 많이 먹게 한 것이라고 한 게 떠오른다. 그런 후회 남지 않게 너무 많이 먹이진 말아야지.
라면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일주일의 긴장이 풀리는 금요일 밤이면 맥주 한 캔씩 앞에 두고 라면을 부셔먹는다.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라면을 부셔서 짜지 않게 적당히 스프를 뿌리는 건 남편 담당이다. 아이 재워놓고 거실 테이블에 마주 않아 이렇게 맥주 마시며 부신 라면을 입에 하나씩 넣어 먹으며 ‘나 혼자 산다’를 본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비싼 안주도 필요 없다. 이 순간 우리 입맛에 가장 맛있는 라면과자가 최고다. 먹은 다음 잔잔하게 남는 포만감과 함께 몸에 안 좋은 걸 또 먹었구나 싶은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 먹고 안 아프면 되는 거야! 라면서 무언의 다독임을 서로에게 보낸다.
*과제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ㅠㅠ
첫댓글 저도 라면이 최애 음식이에요~! 어릴때 할머니 방에서 자주 먹었는데, 엄마는 최근에 그 사실을 아셨어요ㅎㅎ 방해받지 않고 각자 좋아하는 음식먹는 장면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문장들. 읽는 동안 미소 지었어요.
와 정말, 라면의 그 고유의 맛과 가치를 너무 정확하게 잘 표현해 주신 것 같아 읽는 내내 먹고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ㅎㅎ '삼시세끼와 라면' 이라는 예능이 눈앞에 펼쳐진 듯 잘 읽었습니다~
라면에 밥 말아먹는 거, 삼시세끼 좋아하는 거 같은 취향을 공유하신 봉봉맘님! 사실은 브런치 독자로 오랜 기간 흠모해온 작가님이기도 하세요. ^^; 아직도 기억나는 글들이 많습니다.
글 중, 아이와 남편이 자는 저녁이 행복하다 하셨는데 그 고요 속의 짜릿함을 저도 알지요. ㅎㅎㅎ
아이를 기르며 시댁이나 친정 도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해요. 육아와 일을 어떻게 병행하시는 지 좀더 듣고 싶어요. 저도 다음주에 복직을 앞두고 있거든요.
라면 먹으며 ‘삼시세끼’를 보고, 같이 살면서 ‘나 혼자 산다’를 보는 비대칭이 재밌었어요. 길티플레저는 태생부터 연예인인 것 같은 사람들처럼 단어 발음과 느낌부터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것 같아요...
아이도 안방 티비 앞에서 혼자 라면을 먹겠다고 하는 게 정말 귀여운 거 있죠. 이 부분도 쓰면서 웃으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저는 누가 취미를 물어보면 넷플릭스 보기 말고 좀 멋진 걸 말하고 싶단 마음이 드는데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답하신 게 너무 좋았어요. 많은 분들이 쉽게 따라할 수도 있고 주눅들지 않을 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