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노루의 댄스판타지소설]
광무(狂舞)(53회)
26.댄귀모(귀신모임)(2)
장승백은 감찰대장 저승사자의 양쪽 겨드랑이를 붙잡아서 겨우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장승백의 마음도 열렸다. 본래 장승백은 감찰대장한테 이를 갈고 있었다. 감찰대장 때문에 그의 실수로 인해서 아직 죽어서는 안 되는데, 장승백이 죽어서 영혼이 되어 지금 저승에 와 있는 것이었다.
감찰대장도 그의 심정을 알고 있기에 이렇게 무릎까지 꿇고서 간절히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무슨 춤을 배우고 싶소?"
장승백은 계속 무뚝뚝하게 물었다. 이미 그의 마음은 풀어져서 그에게 댄스를 가르쳐 주려고 작정한 상태였다. 그래도 일부러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게 굴었다. 그 험상궂고 큰 덩치로 무릎까지 꿇고서 부탁하는데 안 들어 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가 밉고 용서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선생님 왈츠를 가르쳐 주십시오!"
감찰대장이 두 손을 깍지 껴서 배꼽에 갖다 대며 공손히 말했다.
"뭐, 왈츠를...?"
장승백은 어이가 없어서 덩치가 큰 그를 올려다보았다.
"네, 선생님!"
감찰대장이 용기가 생겼는지 아주 씩씩하게 대답했다.
"나 참 기가 막혀서... 어이가 없네."
장승백이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왈츠가 누구 집 강아지 이름인가 싶어서였다. 댄스 중에서도 가장 배우기 어렵고 힘든 종목이 왈츠인데... 정말 소나 개나 말이나 아니 도깨비 귀신들까지 다 왈츠 타령이라니. 장승백은 어이가 없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감찰대장 같은 배불뚝이에다 거구한테는 왈츠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배불뚝이는 어느 종목이든 댄스 하기에는 좀 그랬다. 폼이 안 나는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무게 중심을 잡기도 매우 어려워서 배우기가 힘이 든 건 인정해야 될 게다.
감찰대장이 왈츠를 꼭 배우고 싶어 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험상궂고 무시무시한 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은 혼자서 짝사랑하는 입장이었다.
감찰대장은 아직 모태 솔로 미혼 총각이었다. 그의 나이는 칠천 살 정도였다. 인간 기준으로 치면 쉰 살 정도였다.
그의 앞에 우연히 나타난 여인은 황녀궁에서도 하주공주 다음으로 빼어난 미모의 공주를 시중드는 시녀중의 한 명이었다. 그녀는 초선낭자였다.
감찰대장이 그녀에게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지난번에 인간세계로 탈출한 장승백의 영혼을 체포하러 갈 때였다. 그때 그녀도 장승백과 함께 특별 사면을 받았다. 그리고 장승백의 영혼을 소환하러 가는데 감찰대장이 인솔하는 체포조 저승사자들과 동행하여 협조하라는 하주공주의 특명을 받았었다. 장승백의 영혼을 찾으러 가는 저승 호송버스에 초선낭자도 동행 탑승을 했었다.
그 호송버스의 인솔 대장이 바로 감찰대장이었다. 그 계기로 그때 감찰대장은 초선낭자에게 단번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이었다.
초선낭자가 장승백한테 댄스를 배우는 애제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자존심을 팽개치고 장승백을 찾아와서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원하는 왈츠반에는 아직 들어 갈 수 없었다. 기존 멤버들은 라틴댄스를 먼저 거쳐서 그 반 멤버들이 진급해서 왈츠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완전 초보는 왈츠반에 들어가서 따라 갈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감찰대장이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댄스하면 왈츠만 있는 걸로 착각을 한 것이었다. 그는 아직 다른 종목의 댄스 종류를 알지 못했다. 댄스하면 왈츠이며 왈츠가 댄스의 대명사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감찰대장 혼자만 왈츠를 개인레슨 할 수도 없었다. 지금 개인레슨은 하주공주만 특별 혜택으로 하고 있을 뿐이었다. 예외적으로 또 한 명이 있었다. 초선낭자였다. 그녀는 장승백이 단체반에서 시범 조교로 키우고 있었다.
"초선낭자도 왈츠를 배운다고 했는데..."
감찰대장이 혼잣말로 궁시렁 거렸다.
"뭐요?"
장승백이 초선이라는 말을 얼핏 듣고 그에게 반문했다.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감찰대장이 무언가 들킨 것처럼 숨기려고 했다.
"초선이가 어쨌다구요?"
장승백이 궁금증을 못 참고 되물었다.
"초선낭자도 왈츠를 배운다고 했는데..."
그가 기어들어 가듯이 입을 뗐다.
"왜요? 초선낭자가 마음에 들어요?"
장승백이 짓궂게 물었다. 일부러 감찰대장을 곯려 주려는 듯이.
"아 아니요. 그냥.., "
감찰대장이 우물쭈물 대답을 피하며 털로 뒤덮인 불그스레한 얼굴이 더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본 장승백은 감을 잡은 듯 빙긋이 웃었다.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댄스 판에서 달아 빠진 그는 남녀 관계에 관해서는 빠삭한 그였다. 눈치가 척하면 척이었다. 그의 표정만으로도 이미 무슨 마음인지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장승백은 지난번에 초선낭자를 유혹했었다. 여자로서 매력이 끌리기도 했지만 다른 목적이 있어서였다. 그녀가 보유하고 있는 황천문 통행증 때문이었다. 그것이 있어야 인간세계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통행증을 이용해서 황천문을 통과해서 저승을 빠져 나갔었다.
영혼이 황천문을 통과해서 인간세계로 탈출하는 행위는 저승세계에서 아주 큰 중범죄였다. 즉시 감찰대장이 이끄는 체포조 저승사자들한테 붙잡혀 오기 마련이었다. 그 죄인 영혼은 저승에 붙잡혀 오면 무조건 지옥행이었다.
그렇지만 장승백은 하주공주의 특별사면으로 다시 황녀궁으로 복귀했다.
그때 초선낭자를 배신한 꼴이 된 그로서는 그녀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초선낭자의 쿨할 행동으로 지금은 다시 정상적으로 댄스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렇긴 해도 마음 한 구석이 영 찜찜했고 개운치가 못했다. 그런 모든 사연들을 알고 있는데도 감찰대장이 그녀를 연모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안 장승백으로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초선낭자에게 남자가 생기는 걸 누구보다 반기고 좋아할 이는 따로 또 있었다. 바로 하주공주였다. 그녀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둘을 용서하고 특별 사면은 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또 다시 사고를 칠까 해서 내심 불안한 심정이었다. 그렇기에 하주공주 입장에선 초선낭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기는 걸 오히려 반길 입장이었다.
감찰대장이 우락부락 하고 막무가내 기질은 있었지만 한편으론 남자다운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초선낭자에게도 그런 든든한 남자가 있으면 나쁠 건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바로 왈츠반에는 못 들어와요. 입문자들을 위한 라틴반이 있으니까 거기 우선 참여해요. 그 반이 진급해서 올라갈 때 그때 왈츠를 하면 되요."
장승백이 비교적 상세하게 안내해 주었다.
감찰대장은 매우 좋아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예,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몇 번이나 허리를 굽신 거리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열심히 해보세요."
장승백이 감찰대장을 보며 분명하게 말해 주었다.
감찰대장이 댄스에 입문하는 걸 장승백이 정식으로 허락하는 것이었다.
이제부터 감찰대장 저승사자도 장승백의 제자가 되었다.
감찰대장이 황녀궁의 댄스교습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룸바 반이었다. 장승백이 그를 수강생들이자 댄귀모 회원들한테 정식으로 인사시켰다. 어차피 그곳에서 그를 모르는 저승사자나 천상시녀는 없었다. 그의 직책이 높고 권력도 막강해서 저승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 반에는 저승재판정에서 재판관을 보좌하는 서기 저승사자도 다니고 있었다. 다른 반에는 재판관 저승사자도 댄스를 배우고 있었다. 그만큼 저승세계는 이제 댄스를 배우지 않으면 낙오되고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인식할 정도였다.
"나와서 본인 소개 하세요."
장승백이 첫 날 수업에 참석한 감찰대장을 불러내서 자기소개를 시켰다. 모두 알고 있는 신분이었지만 장승백은 누구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감찰단본부에서 근무하는 감찰대장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감찰대장이 자기 신분 직책을 말하고 고개를 꾸벅하고 인사를 했다. 기존 수강생들이 큰 박수로 그를 맞이했다. 그가 들어가자 장승백이 나섰다.
"초선낭자님 어디 계시죠?"
장승백이 수강생들을 쭉 둘러보며 그녀를 찾았다.
"아 거기 계셨군요! 앞으로 특별히 감찰대장님 잘 좀 챙겨 주세요."
그는 장난기 섞인 말로 시녀들 틈에서 장승백의 부름에 손을 든 초선낭자를 향해 말했다. 그는 아주 콕 찍어서 단도직입적으로 그녀를 감찰대장한테 붙여줄 요량이었다. 물론 감찰대장을 곯려 주려는 장난기 섞인 속셈도 있었다.
초선낭자는 이미 감찰대장이 이 반에 참석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장승백이 그녀에게 미리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초선낭자도 그 말을 듣고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장승백을 소환하러 가면서 저승 호송버스 안에서 그녀에게 베풀어준 감찰대장의 호의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의 고마운 마음을 언젠가는 갚고 싶었다.
감찰대장의 큰 체구와 험상궂은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어하며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몸을 비틀고 있었다. 마치 쑥스러워 하는 소년처럼. 다른 저승사사들과 천상시녀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들을 머금으며 그 둘을 힐끔 거렸다.
이곳 저승에서도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도 댄스 시간에는 댄스를 못하면 별 볼일 없는 대우를 받는 건 인간세계에서나 마찬가지였다.
감찰대장도 처음에 못 따라 해서 쩔쩔 매며 연신 이마에 땀을 훔쳐냈다. 먼저 들어온 졸개 저승사자들은 자신감 넘치게 천상시녀들과 댄스를 즐겼다. 하지만 댄스를 떠나서는 감찰대장이 눈만 부라려도 그들은 벌벌 떠는 입장이었다.
감찰대장이 그 반에 들어와서는 그 반의 반장겸 전체 댄귀모 모임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엄하고 무서운 감찰대장이었다. 인간이라면 그의 존재만으로도 혼이 빠져버릴 게다.
그런 그도 초선낭자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