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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타삔디까에 대한 가르침의 경 (M143) Anāthapiṇḍikovāda-sutta
-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4권 535-545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런데 그때 장자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중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러자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어떤 사람을 불러서 말했다.
"여보게, 그대는 세존을 찾아뵙게. 세존을 뵙고 내 이름으로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리고,
'세존이시여,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중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가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라고 문안을 여쭙게.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를 찾아뵙게. 뵙고 내 이름으로 사리뿟따 존자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리고,
'존자시여,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중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가 사리뿟따 존자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라고 문안을 여쭙게.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려주게.
'존자시여,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연민을 일으키시어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거처를 방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러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그 사람은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말에 대답하고 세존을 뵈러 갔다.
세존께 다가가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중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가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를 찾아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존자시여,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중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가 사리뿟따 존자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존자시여,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연민을 일으키시어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거처를 방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침묵으로 동의하였다.
3.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아침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아난다 존자를 시자로 삼아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거처로 갔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사리뿟따 존자는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어떻습니까? 견딜만합니까? 지낼만합니까?
괴로운 느낌이 진정되고 더하지는 않습니까? 차도는 좀 있고 더 심하지는 않습니까?"
4. "사리뿟따 존자시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참기가 힘듭니다.
예리한 고통은 심해지고 가라앉질 않습니다. 더 강해지고 차도가 없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시여, 마치 힘센 사람이 시퍼런 칼로 머리를 쪼개듯이 거센 바람이 제 머리를 내리칩니다.
사리뿟따 존자시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 더 강해지고 차도가 없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시여, 마치 힘센 사람이 튼튼한 가죽끈으로 된 머리띠로 조이는 것처럼
그와 같이 제 머리에 극심한 두통이 생겼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시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
더 강해지고 차도가 없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시여, 마치 능숙한 백정이나 그의 도제가 예리한 도살용 칼로 배를 도려내듯이
그와 같이 거센 바람이 제 배를 도려냅니다. 사리뿟따 존자시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
더 강해지고 차도가 없습니다.
사리뿟다 존자시여, 마치 힘센 두 사람이 약한 사람의 양팔을 붙잡고 숯불 구덩이 위에서
굽고 태우듯이 그와 같이 제 몸에 맹렬한 불길이 치솟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시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참기가 힘듭니다.
예리한 고통은 심해지고 가라앉질 않습니다. 더 강해지고 차도가 없습니다."
5.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1)
‘나는 눈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눈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귀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코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혀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몸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마노[意]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마노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1) 세 가지 움켜쥠(tīhi gāhehi)으로 눈을 움켜쥐면 지금 생겨나서 괴롭히는,
죽음에 다다른 극심한 고통(māraṇ-antikā vedanā)을 가라앉게 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므로 눈을 취착하지 않으리라(na cakkhuṃ upādiyissāmi)고 공부지을 것을 설하고 있다.”(MA.ⅴ.78)
“세 가지 움켜쥠은 갈애와 자만과 사견으로 움켜쥠(taṇhā-māna-diṭṭhi-ggāhā)이다.”(MAT.ⅱ.417)
6.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형색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형색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소리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냄새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맛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감촉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마노의 대상인] 법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마노의 대상인] 법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7.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눈의 알음알이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눈의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귀의 알음알이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코의 알음알이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혀의 알음알이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몸의 알음알이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마노의 알음알이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마노의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8.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눈의 감각접촉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눈의 감각접촉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귀의 감각접촉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코의 감각접촉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혀의 감각접촉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몸의 감각접촉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마노의 감각접촉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마노의 감각접촉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9.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10.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땅의 요소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땅의 요소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물의 요소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불의 요소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바람의 요소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허공의 요소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알음알이의 요소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알음알이의 요소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11.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물질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물질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느낌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인식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심리현상들[行]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알음알이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12.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공무변처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공무변처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식무변처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무소유처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
나는 비상비비상처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비상비비상처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13.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이 세상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2)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이 세상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저 세상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3)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저 세상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2) “‘나는 이 세상을 취착하지 않으리라(na idhalokaṃ upādiyissāmi).'는 것은
거처나 음식이나 옷을 취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필수품에 대해 동요하지 않기 위해 설한 것이다.”(MA.ⅴ.78~79)
(*3) “나는 저 세상을 취착하지 않으리라(na paralokaṃ upādiyissāmi).'고 했다.
여기서 저 세상(para-loka)은 인간세상(manussa-loka)을 제외한 나머지의 다른 세상을 말한다.
이러이러한 천상에 태어나서 이러이러한 자리에 있을 것이라거나
이러한 것을 먹을 것이고 입을 것이라고 이렇게 동요하는 것을 버리게 하기 위해 설한 것이다.
‘나는 이것에도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도 그것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세 가지 움켜쥠에서 벗어나게 한 뒤에 장로는 가르침의 절정인 아라한과로 가르침을 끝맺는다.”(MA.ⅴ.79)
14.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보고 듣고 생각하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그것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15. 이렇게 설했을 때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그대는 집착이 생기거나(*4) 실의에 빠집니까?”
“아난다 존자시여, 저는 집착이 생기거나 실의에 빠지지 않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을 스승님을 섬기고 마음을 잘 닦은 비구들을 섬겼지만
저는 이러한 법문은 들을 적이 없습니다.”(*5)
“장자여, 흰옷을 입은 재가자들에게 이러한 법문을 하지 않습니다.
장자여, 출가자들에게 이런 법문을 설합니다.”
“사리뿟따 존자시여, 그렇다면 흰옷을 입은 재가자들에게도 이러한 법문을 설해주십시오.
사리뿟따 존자시여, 눈에 먼지가 적게 들어간 선남자들이 있습니다.
법을 듣지 않으면 그들은 타락할 것입니다. 그 법을 이해할 만한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4) “‘집착이 생겼다(olīyasa)'는 것은
자신의 성취와 재산에 대해 집착을 하고 기대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MA.ⅴ.79)
(*5) “세존께서 이러한 미묘하고 심오한 법문을 설하지 않으신 것은 아니지만
사리뿟따가 설한 이런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와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 등은
전에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 장자는 보시하는 성향이 강하고 보시를 기뻐하여 부처님께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간 적이 없었다.
음식이 마련되지 않으면 모래라도 가져가서 향실에 뿌려 고르게 만들었다.
그는 보시를 하고 계를 보호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24년간 이 장자에게 대부분 보시에 관한 법문을 하셨다.”(MA.ⅴ.79~80)
16. 사리뿟따 존자와 아난다 존자는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이런 법문으로 가르침을 설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다.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사리뿟따 존자와 아난다 존자가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도솔천에 몸을 받았다.
17. 그때 아나타삔디까 천신은 밤이 아주 깊어 갈 즈음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아나타삔디까 천신은 세존께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이것이 바로 제따 숲
선인(仙人)의 승가가 머물고
법왕께서 거주하시니
내게 희열이 생기는 곳이라.
의도적 행위와 명지가 있고,
법과 계행과 최상의 삶이 있으니(*6)
이것으로 인간들이 청정해지지(*7)
가문 재산 때문이 아니라네.
그러므로 여기서 현명한 사람
자신의 이로움을 꿰뚫어 보아
지혜롭게 법을 깊이 검증할지라.
이와 같이 그곳에서 청정해지리.(*8)
사리뿟따께서는 통찰지와 계행
고요함을 두루 구족했나니
저 언덕에 도달한 비구 있다면
잘해야 그분과 동등할 정도입니다.(*9)
(*6) “‘의도적 행위(kamma)’는 도의 의도(magga-cetanā)이고,
‘명지(vijjā)’는 도의 지혜이고, ‘법(dhamma)’은 삼매의 편에 있는 법이고,
‘계행과 최상의 삶’은 계행에 확고한 자의 삶이 최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혹은 ‘명지’는 [팔정도 가운데]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이고,
‘법’은 바른 정진과 바른 마음챙김과 바른 삼매이고,
‘계행’은 바른 말과 바른 행위와 바른 생계수단이고,
‘최상의 삶’은 이러한 계에 확고한 자의 삶을 최상이라 하는 것이다.”(MA.ⅴ.81)
(*7) "'이것으로 인간들은 청정해진다.‘는 것은
이러한 여덟 가지 도(팔정도)를 통해 중생은 청정해진다는 뜻이다.”(MA.ⅴ.81)
(*8) “‘지혜롭게 법을 깊이 검증하여’라는 것은
옳은 방법으로 삼매의 편에 있는 법을 고찰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곳에서 청정해진다.’는 것은 그리하여 성스러운 도(ariya-magga)에서 청정해진다는 뜻이다.
혹은 옳은 방법(upāya)으로 다섯 가지 무더기의 법을 고찰해야 한다.
그리하여 네 가지 진리[四諦]에서 청정해진다는 말이다.”(MA.ⅴ.81)
(*9) "이것은 사리뿟따를 찬탄하는 게송이다.
이러한 통찰지 등에 의해 오직 사리뿟따가 으뜸이다.
열반에 이른 비구라면 어떤 자라도 최상이지만 사리뿟따 장로를 넘어서지는 않는다는 말이다.”(MA.ⅴ.81)
18. 아나타삔디까 천신은 이렇게 말했고, 스승께서는 동의하셨다.
그러자 아나타삔디까 천신은 ‘스승께서 내게 동의하셨구나.’라고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 그곳에서 사라졌다.
19.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밤이 지나고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간밤에 밤이 아주 깊어 갈 즈음
어떤 천신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와서는 나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그 천신은 나에게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제따 숲 …
잘해야 그분과 동등할 정도입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고 그 천신은 ‘스승께서 내게 동의하셨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나에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 그곳에서 사라졌다.”
20.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는 아나타삔디까 천신일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흔들리지 않는 청정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장하고 장하구나, 아난다여. 그대의 추론이 옳다.
아난다여, 그 천신은 다름 아닌 아나타삔디까였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아나타삔디까를 교계한 경(M143)이 끝났다.
대림스님옮김 『맛지마니까야』 제4권 535-5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