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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 다음 스터지 자료입니다.
9장 논리학이 변증법 및 유물론적 인식론과 일치함에 관해
다른 모든 과학처럼 논리학도 인간의 의지와 의식에 의존하지 않는 객관적 형식과 유형을 설명하고 체계화하는 일에 관계한다. 물질적⋅객관적이며 정신적⋅이론적인 인간활동은 바로 그런 객관적 형식과 유형 내에서 수행된다. 따라서 논리학의 주제는 주관적 활동에 대한 객관적 법칙이다.(인간253)
이런 입장은 전통 논리학의 관점에서는 서로 결합할 수 없는 술어들, 가령 긍정과 부정, A와 not-A처럼 대립하는 술어들을 결합시키고 있기 때문에 전통 논리학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전통 논리학의 입장에서 볼 때 주관적인 것은 객관적이지 않으며 또한 객관적인 것은 주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재 세계에서 발생하는 사태는 물론 실재 세계를 파악하는 과학의 사태 역시 전통 논리학의 입장에서는 수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실재 세계와 과학에서 발생하는 모든 단계에서 문제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대립물을 자기 내에 포함하는 사물과 과정의 이행⋅형성⋅변형 등이기 때문이다.(부언하자면 전통 논리학이 사태의 내용을 문제 삼지 않고, 사고형식만을 문제 삼기 때문이다.) 결국 전통 논리학은 현실적으로 이뤄지는 과하적 사고에는 부적합하기 때문에 과학적 사고와 일치하도록 바꿔야만 한다.(인간253-254)
맑스와 엥겔스는 과학과 실천이 의식적으로 획득된 논리적 개념들과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변증법적 철학의 전통에 의해 기술된 보편적 법칙에 따라 전개돼 왔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과학과 실천의 일반적 진보 과정에 포함된 개별과학이 사고에 관한 비변증법적 관념에 의해 의식적으로 인도되는 상황에서조차 일어날 수 있고 또 실제로 일어난다. 비변증법적 견해들이 서로를 자극하고 교정시키면서 충돌하지만, 그럼에도 과학 전체는 더 고차적인 형태와 질서의 논리에 따라 발전한다.(인간254)
이런저런 논쟁적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을 발견하는 데 궁극적으로 성공했던 이론가는 확실히 변증법적으로 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경우에 진정한 논리적 필연성은 이론가의 의식에도 불구하고 의도한 대로, 마음대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논리에 입각해서 관철된다. 그러므로 과학의 주된 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위대한 이론가들과 자연과학자들은 대체로 변증법적 논리학의 전통에 의해 인도돼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를테면 아인슈타인은 스피노자에게, 아이젠베르크는 플라톤에게 힘입은 바가 컸다.(인간254)
맑스⋅엥겔스⋅레닌은 이런 집장을 자신들의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변증법이야말로 근대적 사고를 발전시킨 참된 논리학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비록 대표적 과학자들이 전혀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근대과학의 ‘출발점’의 역할을 한 것 또한 변증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으로서의 논리학은 변증법뿐 아니라 유물론적 인식론과 일치(결합)하게 된다. 레닌은 “자본론에서 맑스는 논리학⋅변증법⋅유물론적 인식론(이 세 낱말은 필요 없다. 그것은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을 단 하나의 과학에 적용했다”고 아주 명쾌하게 정식화하고 있다.
논리학⋅인식론⋅변증법의 관계에 관한 문제는 레닌의 저작에서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 과장 없이 이 문제가 그의 특수한 모든 철학적 반성−그가 되돌아와서 매번 자신의 견해와 해결책을 더 풍부하고 명백하게 체계화했던−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인간255)
레닌은 특히 헤겔 철학의 구조를 비판적이고 반성적으로 고찰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제를 분명하게 구별했다. 즉 (1) 논리학과 인식론의 내적 관계, (2) 과학으로서의 변증법에 대한 이해(이것은 논리학과 인식론의 형태로 전통적으로 과학과 무관하게 여겨져 온 문제들에 대한 과학적⋅이론적 해결책을 포함한다)다. 레닌의 명제들에 대해 완전히 일치하는 해석을 아직도 소비에트 철학에서 내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현대 유물론(맑스주의)의 입장을 명쾌하게 정식화할 수 있도록 했던 사고방식을 재구성하는 것은 중요하다.(인간255)
비록 철학노트에 기술된 비판적 분석의 직접적 대상이 무엇보다 헤겔의 견해였다 할지라도 이 책에서 헤겔의 저작들에 대한 비판적 주석만을 보는 것은 물론 잘못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레닌이 관심을 뒀던 것은 헤겔 자체가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절박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문제들의 실질적 내용이었다. 바꿔 말하면 레닌은 헤겔 사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 당시 철학의 상황을 조망하고자 했으며, 그 결과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또 해결하는 방법들을 비교⋅평가할 수 있었다. 이 철학적 문제들 가운데 과학적 지식의 문제가 전면에 부각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왜냐하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전 세계적 범위에 걸쳐 철학적 사고의 중심을 이룬 것은 과학적 지식의 문제였기 때문이며, 이런 경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분명해졌다. 레닌은 자신의 탐구 목적을 “논리학의 주제, 오늘날의 ‘인식론’과 비교되는 것”이라고 서술했다.(인간256-257)
‘인식론’이란 단어에 붙어 있는 따옴표는 우연히 붙여진 것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여러 가지 철학적 문제를 이 특수한 철학적 분과(이때 우리가 이것을 과학적 철학의 유일한 형식으로 간주하든지, 철학의 많은 분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든지 간에 상황은 항상 같다)에서 따로 취급하는 것은 최근에 생겨난 일이다. 이 용어 자체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특수한 과학, 즉 특수한 탐구 분야에 대한 명칭으로 널리 통용됐다. 그런데 지식 일반, 특히 과학적 지식이 ‘인식론’의 발달과 더불어 특별한 관심의 주제가 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잘못이라 하더라도, 이 특수한 탐구 분야는 전통적 철학체계 내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정확하게 분류되지 않았으며 특수한 과학, 심지어 특수한 분과조차 이루지 못했다.(인간256)
인식론이 하나의 특수한 분과로 확립된 것은 역사적으로 신칸트주의의 광범한 확산과 본질적 연관을 맺고 있다. 신칸트주의는 19세기 후반의 30여 년 동안 유럽의 부르주아 철학 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향이 됐으며, 그리고 교수들 중심의 공인된 강단 철학파로 변했다. 이 강단 학파는 처음에는 독일뿐이었으나, 그후 전문적^ 철학을 연구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독일 대학에 유학함으로써 세계 각처에서 형성됐다. 신칸트주의의 확산은 특히 칸트⋅피히테⋅셸링⋅헤겔의 고국인 독일의 전통적 명성에 의한 것이었다.(인간256-257)
신칸트주의의 고유한 특성은 철학의 중심문제를 지식의 발견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적 문제가 제기되는 특별한 형식으로 파악한 점에 있다. 이 학파의 다양한 분파들 간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그런 특별한 형식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인식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과 이 조건들에 따라 확정된 인식의 한계들을 탐구하는 인식에 관한 이론을 ‘인식론(the theory of knowledge, epistemology)’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어떤 인식이라도 이와 같은 인식 조건 내에서는 확장될 수 있으나 그 조건을 넘어서면 거기에는 전혀 논증 불가능한 억견의 영역이 펼쳐진다. 물론 인식론은 위에서 언급된 과제와 더불어 다른 부수적 과제도 안게 된다. 그러나 인식론이 의미 있는 과학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인식한계의 설정 유무부터 문제 삼지 않으면 안 된다.”(인간257)
위 인용문의 필자인 러시아 칸트주의자 베덴스키(Wedensky)는 신칸트주의 경향의 문헌과 신칸트주의의 막강한 영향 아래서 생겨났던 모든 학파에서 소위 인식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분과의 고유한 특성을 아주 정확하고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정식화된 인식론에 관한 수많은 정의는 전형적 신칸트주의자인 리케르트, 분트, 카시러, 빈델반트 등의 저작이나 신칸트주의에서 ‘파생된’ 분파를 대표하는 슈페(Schuppe), 파이힝거(Vaihinger) 등의 저작으로부터도 인용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인식론의 과제는 한 사람 또는 인류 전체의 인식능력이나 과학적 실험⋅탐구 기술이 아무리 고도로 발전한다 하더라도 그 어떤 경우에도 인식능^력이 건널 수 없는 경계, 즉 인식의 한계를 확정하는 것이라고 간주됐다. 이런 ‘한계’는 원리적으로 인식 가능한 영역을, 원리적으로 인식한계를 ‘초월한’ 인식 불가능한 영역으로부터 구분한다. 인식의 한계는 공간과 시간 내에서 이뤄지는 인간 경험의 한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경우에 ‘경험영역’의 확장은 끊임없이 그 한계를 넓힐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결국 이미 알려진 것과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원리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을 구별하는 일이다)이 결코 아니라, 모든 외적 영향을 굴절시키는(마치 프리즘처럼) 인간의 정신생리학적 특성이라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인간257-258)
외적 세계가 인간에게 주어지는 이와 같이 유일하고 ‘특수한 메커니즘’은 원리적으로 인식 불가능한 영역을 상정하는 인식의 ‘한계’라는 개념을 발생시키는 메커니즘이다. 사실 원리적으로 인식 불가능한 것은 ‘그것이 의식에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식 외부의 실재 세계와 다름없다. 달리 말해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식론’은 오로지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만 하나의 특수과학으로 분류될 뿐이다. 즉, 인간인식이란 외적 세계(의식 외부에 존재하는)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내적 경험’−궁극적으로 외적 세계의 상태나 사건과 완전히 다른 인간 유기체의 정신생리학적 상태−의 사실들에 질서를 부여하고 조직화하며 체계화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명제를 선험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인간258)
이것은 물리학⋅정치경제학⋅수학⋅역사학 등 어떤 과학도 물질이 외부세계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관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음(알려 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모든 과학은 우리들 자신 안에서 생겨나는 사실들, 즉 외부 사실들의 총합이라고 착각되는 정신생리학적 현상들만을 기술하는 것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인간258-259)
이와 같은 주제를 별도로 논증하기 위해 ‘인식론’이라는 특수과학이 창출됐는데, 이때 인식론은 인식의 ‘내적 조건들’에만 관계하고, 이 내적 조건들로부터 ‘외적 조건들’, 특히 외적 세계의 존재나 그 객관적 법칙 같은 ‘조건’의 영향에 따른 의존성을 조심스럽게 제거해 버린다.(인간259)
그래서 인식론은 존재론(혹은 ‘형이상학’)과 대립되는 하나의 특수과학으로 분류됐으나, 주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실질적 인식과정을 탐구하는 분과는 결코 아니었다. 그와는 정반대로 인식론은, 모든 인식의 형식은 예외 없이 주변 세계에 대한 인식의 형식이 아니라 ‘인식 주관’을 구성하는 특수한 도식일 뿐이라는 사실을 전제하는 이론으로 탄생됐다.(인간259)
이런 종류의 ‘인식론’의 관점에서 볼 때 기존의 지식을 주변 세계에 대한 지식(이해)으로 해석하려는 모든 시도는 허용될 수 없는 형이상학이요, 순수 주관적 활동형식의 ‘존재론화’이며, 주관에 대한 규정을 ‘물자체’, 즉 의식 외부의 세계에 귀속시키는 것이다.(인간259)
그럴 경우 ‘형이상학’과 ‘존재론’은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한 특수과학, 즉 세계에 대한 보편적 도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개별과학, 소위 ‘실증적’ 과학(물리학⋅화학⋅생물학⋅정치경제학⋅역사학 등)의 총집합을 의미하게 된다. 그리하여 신칸트학파의 ‘인식론주의(epistemologism)’는 그 주된 관심사를 과학적 세계관의 사상, 즉 개별과학 자체에 실현된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정반대되는 방향에 두고 있음이 판명됐다. 이런 신칸트주의의 견해에 따르며 ‘과학적 세계관’이란 불합리한 것이고 터무니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과학 일반’(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총집합)은 의식 외부의 세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또 전혀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칸트주의자들은 ‘형이상학’이라는 경멸적 용어를 통해 실제로 물리학⋅화학⋅생물학⋅정치경제학⋅역사학 등에 의해 발견되고 정식화된 법칙과 형식, 즉 세계관으로서의 철학적 의미를 거부한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과학’일 수 없으며, 그리고 과학(모든 과학의 총집합)은 형이상학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없고 수행해서도 안 된다. 다시 말해서 과학은 과학의 진술에 대해 객관적 의미(유물론적 의미에서 이해된)를 주장할 수도 없고, 주장할 권리도 없다. 그러므로 세계관도 과학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세계관은 인간이 생활하고 활동하고 사고하는 세계에 관한 여러 관점들을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은 해결 불능의 난점인 모순에 빠지지 않고서는 자신의 성과물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결합시킬 수 없게 된다.(인간259-260)
들리는 바에 따르면 이것은 이미 칸트에 의해 단숨에 논증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의 자료로부터 세계관을 확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불가능할까?(인간260)
왜냐하면 바로 인식의 원리−표상들을 개념⋅추론⋅판단, 즉 범주를 통해 과학적으로 종합할 수 있는 조건−는 동시에 모든 과학적 관념을 무모순적으로 연관되고 결합된 세계상으로 완벽하게 종합할 수 없는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칸트주의자들의 언어로 표현하면, 과학적 원리 위에서 구축된 세계관(요컨대 과학적 세계관)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과학적 세계관에는 (우연이나 정보의 부족으로부터가 아니라 범주도식으로 표현된 사고의 본성으로 내재하는 필연성 때문에) 모든 분석판단의 최고 원리(과학적으로 규정하면 모순율)를 위배하지 않고서는 서로 결합될 수 없는 작은 조각들로 과학적 세계관을 분쇄해 버리는 모순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인간260)
그러나 과학적 세계상의 개별적 단편들을 더 고차적인 통일체로 결합해 연결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존재한다. 그것은 최고의 원리를 깨뜨리거나, 같은 말이지만 통일된 전체 속에서 관념들을 결합하는 비과학적 도식을 종합의 원리로 바꿈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합의 원리는 모순율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단지 신념⋅억견⋅독단−과학적으로 논박하거나 논증할 수도 없고 비합리적 변덕⋅동정⋅양심 등에 따라서만 받아들일 수 있는−등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과학을 통해 종합하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한 곳에서는 오직 신념만이 지식의 단편들을 통일된 모습으로 종합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과학과 신념을 결합하고, 과학적 세계상을 구성하는 논리적 원리와 비합리적 교훈(논리적으로 논증하거나 논박할 수 없는)을 결합해 무력함을 보상하려고 한 모든 칸트주의자들에게 고유한 표어는 지식의 최고 종합을 성취할 수 있는 예지에 근본적으로 귀착되고 만다.(인간261)
위에서 언급된 한계 내에서만, 인식론과 논리학의 관계문제를 제기한 칸트주의적 의미가 이해될 수 있다. 칸트주의자들에 따르면 논리학 그 자체는 인식론의 한 부분으로 해석된다. 논리학은 때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하고, 어떤 때는 거의 전체를 차지하기도 하며(가령 코헨, 나토르프, 카시러, 리케르트, 베덴스키, 첼파노프 Chelpanov 등 다양한 형태로) 그리고 어떤 때는 가장 작은 위치로 격하되기도 하며, 인식론의 다른 ‘부분’에 종속되기도 한다. 그러나 논리학은 항상 ‘부분’이다. 인식론은 그 과제가 더욱 폭넓기 때문에 더욱 포괄적이다. 왜냐하면 이성(오성)은 가장 중요하기는 하지만 감각자료⋅지각⋅관념 등을 지식⋅개념과 개념체계⋅과학으로 가공⋅처리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트주의적 의미^에서 논리학은 결코 인식론의 전 영역을 포함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지각⋅직관⋅기억⋅상상 등 다른 많은 능력에 의해 유발되는 과정들에 대한 분석은 논리학의 영역을 초월해 있다. 여기서 논리학은 엄격한 규정과 분명하게 이해되고 정식화 가능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추론적 사고이론으로 간주되고 있다. 따라서 논리학은 복잡한 인식능력들 가운데서 추출된 자신의 고유한 대상만을 분석함으로써 단지 부분적으로만 인식론의 과제를 수행한다. 인식론의 주요 과제는 인식의 한계를 설정하고 세계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가능성에 대한 내적 한계를 분명히 하는 것인데, 이것은 또한 논리학의 주된 과제이기도 하다.(인간261-262)
그러므로 논리학은 ‘물자체’라는 실재 세계에 대한 이해와는 전혀 관계가 없게 된다. 논리학은 이미 이해된 사물(논리학과 연관이 있든 없든)에만 적용될 수 있을 뿐이다. 즉, 인간 문화의 심적 현상들에만 적용될 수 있다. 논리학의 특별한 과제란 이미 통용되고 있는 의식의 상(선험적 대상)을 엄격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의식의 상을 엄밀하게 규정된 용어로 표현되는 단순 요소로 분해하고 난 다음, 역으로 마찬가지로 엄밀하게 확립된 규칙에 따라 그 요소들을 복합적 규정체계(개념⋅개념체계⋅이론)로 다시금 종합하거나 결합하는 것이다. 또한 논리학은 실질적인 추론적 사고가 기존 의식의 한계를 초월하는 지식이나 ‘물자체’의 세계와 ‘현상’계를 분리하는 경계를 넘어서는 지식을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논증해야만 한다. 만약 사고가 논리적이라면, 그것은 물자체에 관계할 수 없으며, 도 그럴 권리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인식의 경계 내에서조차 사고는 논리학의 규칙을 구속하는 제한된 합법적 적용범위에 한정된다.(인간262)
논리학의 규칙과 법칙은 지각 자체의 상⋅감각⋅관념⋅신에 대한 관념과 영혼 불멸의 관념 등을 포함하는 신화화된 의식의 환영에는 적용될 수 없다. 그러나 논리학의 규칙과 법칙은 과학적 지식의 한계 내에서 이런 상을 유지하는 여과 장치의 역할을 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논리적 사고는 이런 상이 그 자체로 진리인지, 그리고 그것이 정신문화 속에서 긍정적 역할을 하는지 아니면 부정적 역할을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나 권리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만약 의식의 상이 정신의 특별한 논리적 활동에 앞서 독립적으로−과학 이전에 그리고 과학의 영역 밖에−나타난다면, 의식의 상과 관련해서 합리적으로 입증되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입장이란 있을 수 없다. 과학에서는, 논리학에 의해 규정된 과학의 특수한 한계 내에서는 그런 상의 존재가 허용될 수 없다. 과학의 한계를 넘어선 영역에서는 그런 상의 존재는 독립적이고 추론과 이해의 관할 밖에 있으며, 따라서 도덕적이고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침범할 수 없다.(인간263)
논리학과 인식론의 관계에 대한 이상과 같은 칸트주의적 해석의 특징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레닌이 이 문제에 대한 헤겔의 해결책에 대단한 관심을 가졌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헤겔의 이해방식을 살펴보면, 논리학 전체는 비합리적 흔적 없이 인식 문제의 전 영역을 포괄하고 있으며 그 경계 밖에 명상이나 환상의 상을 전혀 남겨 놓지 않았다. 논리학은 그런 상을 실질적 사고의 힘이 외화된(감각적으로 지각되는 물질로 구현된) 산물로서 포함한다. 왜냐하면 이런 외화된 산물은 단어⋅판단⋅결론⋅연역⋅추리는 물론 개별의식과 감각적으로 대립하는 사물(행위⋅사건 등등)로도 구체화되는 사고 자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밖의 모든 인식능력은 사고의 형식, 다시 말해서 아직 적절한 표현형식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그런 표현형식으로까지 성숙되지 못한 사고작용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논리학은 인식론과 합치한다.(인간263-264)
여기서 우리는, 말하자면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이라는 극단의 표현과 맞닥뜨리게 된다. 절대적 관념론에 따르면 인식능력뿐 아니라 세계 전체도 아직 자기자신에게 이르지 못한 소외된 혹은 외화된 사고로 해석된다. 물론 일관된 유물론자였던 레닌은 이런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레닌이 헤겔의 해결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신중하게 정식화하고 있는 점은 매우 암시적이다. 즉 “이런 입장(즉, 헤겔의 입장)에서는 논리학이 인식론과 일치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인간264)
이로부터 레닌이 헤겔의 논리학을 탐독하는 과정에서 왜 이 문제가 그에게 점차 분명하게 ‘매우 중요한’, 아마도 가장 중요한 문제로 드러나는지를 논증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레닌의 사고는 거듭해서 이 문제로 되돌아가는 순환과정을 밟음으로써 그때마다 점점 명료해지고 더욱 분명해졌던 것이다. 사실 논리학을 인식론의 일부로 보는 그 당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칸트주의적 견해는 결코 추상적이고 철학적이며 이론적인 구성물로 남아 있지 않았다. 칸트의 인식론은 과학 일반이 갖는 능력의 한계를 규정지음으로써 그 한계를 넘어서 있는 세계관에 관한 가장 첨예한 문제들을 방기하고, 그런 문제들을 이론적 지식이나 해결 등의 논리적 사고로부터 ‘초월해 있는’ 것으로 단언해 버렸다. 그러나 논리적 사고의 경우에도 과학적 탐구와 세계관적 신념 사이의 결합은 허용될 뿐 아니라 필연적이기도 하다. 사실상 수정주의적 경향(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과 콘라트 슈미트가 주장한 원리들)은 칸트주의의 가치를 내세우면서 사회주의 운동으로 물밀 듯 몰려왔던 것이다. 여기서 칸트의 인식론은^ ‘엄밀한 과학적 사고’(베른슈타인에 따르면, 맑스와 엥겔스의 사고는 흐리멍덩한 헤겔의 변증법과 결합돼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과학적이지 못하다)를 ‘선’, ‘양심’, ‘이웃과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 등과 같은 선험적 요청으로 나타난 논증할 수도 없고 반박할 수도 없는 신념이나 ‘윤리적 가치’와 ‘결합’시키려는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더욱 고귀한 가치’의 보급이 노동자계급 운동에 끼친 해악은, 물론 악하지 않은 선한 양심에 관한 훈계나 인류에 대한 증오를 버리고 인류를 사랑하라는 훈계에 있지 않다. 과학과 더욱 고귀한 윤리적 가치 체계를 결합시키고자 한 칸트 사상의 해악은, 원리적으로 볼 때 칸트 사상이 맑스와 엥겔스가 발전시킨 가르침과는 정반대되는 노선을 취한 점에 있었다. 과학과 윤리적 가치 체계를 결합시킨 칸트의 사상은, 사회민주주의 이론가들을 위해 과학적 탐구에 대한 칸트주의 고유의 전략을 수립하고자 한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이론저 사고의 중요한 발전 경향이나 당시의 현실적 문제에 대한 이론적 해결을 모색하는 경향을 사상적으로 혼란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칸트의 인식론은 사회관계 전체 피라미드의 토대를 형성하는 인민들의 물질적⋅경제적 관계에 대해 분석하는 이론적 사고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칸트의 인식론은 억지에 가까운 윤리적 구성물, 제반 정책의 도덕적 해석 가능성, 그리고 베르댜에프(Berdyaev)류의 사회심리학, 나아가서 흥미롭기는 하지만 노동자계급 운동에 전혀 쓸모없는(해롭지는 않을지라도) 것들을 정교화하는 이론적 사고가 돼 버렸다. 자본의 논리에 대한 이론적 사고경향이 아니라 이차적 상부구조에서 파생된 자본주의 체제의 부차적 결함에 대해 도덕적이고 허구적인 말을 되풀이하는 이론적 사고경향은 결국 제국주의 단계의 결정적이고 지배적인 조류로 귀결됐다. 제2인터^내셔널 이론가들의 눈에는 자본주의 발전의 새로운 단계인 제국주의 단계가 보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재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소부르주아적 계급 성향과 그릇된 인식론적 관점 때문이었다.(인간264-266)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힐퍼딩과 쿠노의 운명은 매우 특징적이다. 그들이 변증법이 아닌 ‘최신의’ 논리적 장치를 통해 맑스의 정치경제학을 전개시키려고 하는 한,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당시의 경제 현상에 대한 피상적인 분류상의 묘사, 다시 말해서 경제 현상의 무비판적 수용과 변호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향은 결국 레너(Renner)의 자본주의 경제론 Theory of the Capitalist Economy으로 곧바로 이어졌다. 이 저작은 우파 사회주의의 바이블로서 사고방법과 탐구논리와 관련해 천박한 실증주의적 인식론과 이미 결합돼 있었다. 레너의 철학적 신조는 다음과 같다. 즉, “우리에게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시대에 아주 다른 사고방식 아래 쓰인 맑스의 자본론과 그 설명 방법은 궁극적으로 완성되지 않았고, 10년 주기로 독자들의 어려움을 매번 증가시키고 있다.…독일철학자들의 문제는 우리들에게 이미 낯선 것이 됐다. 맑스는 이런 철학적 시대의 산물이었다. 오늘날 과학은 더는 연역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탐구 과정에서뿐 아니라 서술 과정에서도) 귀납적으로 발전한다. 과학은 실험적으로 확립된 사실들에서 출발해 그 사실들을 체계화함으로써 점차 추상적 개념의 수준에 도달한다. 이런 식으로 사고하고 탐독하는 데 익숙해 있는 시대에 맑스의 주저의 제1부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난점을 드러내고 있다.”(인간266)
이미 베른슈타인과 더불어 시작된 ‘현대과학’과 ‘현대적 사고방식’의 경향은 ‘현대과학’에 대한 관념론적이고 불가지론적인 애매한 해^석, 즉 흄⋅버클리⋅칸트의 인식론적 경향으로 변모됐다. 레닌은 이런 경향을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19세기 중엽부터 부르주아 철학은 공공연히 ‘칸트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전개했고 나아가 흄과 버클리에게 돌아가자는 운동도 일어났다. 그리고 절대적 관념론임에도 불구하고 헤겔의 논리학은 과학적 지식의 발견 이론(인식론)으로 이해된 논리학의 영역에서 맑스 이전의 모든 철학 발전의 정점으로 점점 더 뚜렷하게 부각됐다.(인간266-267)
레닌은 헤겔로부터 진보하는 길은 오직 하나의 방향, 즉 헤겔의 성과를 유물론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의 방향에서만 가능하다고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왜냐하면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은 실제로 관념론이 오성적 사고, 지식, 과학적 의식을 위한 원리가 될 수 있도록 관념론의 모든 가능성들을 남김없이 검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과학 외적인 특정한 상황 때문에 맑스와 엥겔스만이 헤겔의 성과를 유물론적으로 재구성하는 노선을 취할 수 있었다. 이것은 부르주아 철학에는 닫혀 있었다. 더욱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사고에 대한 변증법적 관점의 정점에서 개시된 사회적 전망에 의해 자극을 받고 두려워한 나머지 ‘칸트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절박하게 내걸지 않을 수 없었다. 유물론적 역사관이 출현하자마자, 부르주아 철학자들은 헤겔을 맑스주의의 ‘정신적 대부’로 간주했다. 이것은 사실 상당한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맑스와 엥겔스는 헤겔의 주된 업적이라 할 수 있는 변증법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에 대한 인간의 합리적 태도의 원리인 변증법적 원리가 그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힘뿐 아니라 혁명적이고 파괴적인 힘도 지니고 있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다.(인간267)
그러면 왜 레닌이,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과 대결하는 동안 절대적^ 관념론의 성격이 더욱 두드러지는 지점에서 헤겔과의 더욱 공고한 결합을 여러 측면에서 시도했던 것일까? 인간사고, 그리고 의식 외부의 실제 세계를 원리적으로 포괄하는 과학으로서의 논리학 개념이 범논리주의(실제 세계의 형식과 법칙을 사고의 외화된 형식으로 해석하고, 사고 자체를 세계를 구성하는 절대적 위력으로 해석하는 입장)와 결합된다고 확신했기 때문일까?(인간267-268)
사실 헤겔은 실천을 인간의 심적 상태에 대한 언어의 기호적 설명 영역에서 인간이 수행하는 활동의 진리 기준 및 정당성 기준으로 파악하고, 또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논리학에 의식적으로 도입한 맑스 이전의 유일한 사상가였다. 헤겔에서 논리학은 인식론과 동일하다. 그 정확한 이유는 인간의 실천(감각대상과 자연 소재의 물질에서 ‘정신’적 목적의 실현)이 논리적 과정의 한 발전 단계로 발생하며, 그리고 물자체와의 직접적 접촉을 통해 그 결과를 검증하는 외적 발현 과정에서 사고로 간주되기 때문이다.(인간268)
헤겔의 사상이 발전하는 과정을 레닌은 각별히 용의주도하게 추적했다. “인간과 인류의 실천은 인식의 객관성에 관한 시금석이고 기준이다. 이것이 헤겔의 사상일까? 이 점에 대해서 해답을 줄 필요가 있다” 라고 레닌은 썼다. 그리고 이 점에 대답하면서 그는 자신 있고 아주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헤겔의 경우 실천은 인식과정의 분석에서 하나의 연결고리로 작용하고, 게다가 객관적(헤겔에 따르면 ‘절대적’) 진리로 이행시키는 역할을 한다. 결국 맑스는 실천이라는 기준을 인식론에 도입할 때, 헤겔을 실마리로 삼고 있는 것이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를 보라.”(인간268)
사고는 실천적 행위로 나타날 때 자신의 운동 내부에 의식 외부의 사물들을 포함하며, 그때 ‘물자체’는 사고하는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고 인간의 사고가 지시하는 법칙과 도식에 따라 순순히 운동하고 변화한다. 그래서 ‘정신’뿐 아니라 ‘물자체’의 세계도 논리적 도식에 따라 운동한다. 결국 논리학은 정신의 자기 인식 이론일 뿐 아니라 사물들에 대한 인식 이론이기도 하다.(인간268-269)
레닌은 논리학의 주제에 관한 헤겔 견해의 ‘합리적 핵심’을 정식화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논리학은 사고의 외적 형식에 관한 과학이 아니라 ‘모든 물질적⋅자연적⋅정신적 사물의’ 발전법칙에 관한 과학이고, 세계 전체의 구체적 내용과 그 인식의 발전법칙에 관한 과학, 다시 말해 세계에 대한 인식 역사의 총계⋅총화⋅결론이다.”(인간269)
헤겔 자체에는 논리학의 주제에 관한 이런 정식화나 견해가 없다. 헤겔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레닌은 헤겔의 사상을 ‘헤겔 자신의 말’로 단순히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유물론적으로 재구성했다. 레닌이 논리학 개념의 ‘합리적 핵심’을 발견했던 헤겔의 저서 원문에는 결코 그와 같이 언급돼 있지 않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필요 불가결한 토대, 개념, 보편, 사고 자체(말하자면 사고라는 말을 사용할 때, 우리는 이 용어들을 관념적으로 추상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어떤 내용에 부착돼 있는 단순한 무차별적 형식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자연적이고 정신적인 사물(이 말만 레닌의 정식화에서 발견된다)에 관한 사고, 심지어 실체적 내용에 관한 이런 사고는 다양한 규정들을 그 자체로 지니고 있으며 영혼과 육체, 개념과 각 개념의 실재 사이의 구별을 포함하고 있다. 더 심오한 토대는 영혼 그 자체이고 순수 개념이다. 순수 개념이 주관적 사고작용 자체의 핵심이고 맥박인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대상의 핵심이고 생명의 고동이기도 하다. 정신에 영혼을 부여하고 정신을 촉발시킴으^로써 정신 속에 작용하는 이런 논리적 특징을 의식의 표면으로 분명히 끌언는 것이 우리의 문제다.”(인간269-270)
헤겔과 레닌의 정식들 사이의 차이는 원리적 차이다. 왜냐하면 헤겔에게는 자연적 사물의 발전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또 있을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논리학을 모든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사물의 발전법칙에 관한 과학으로 정의한 것이 오직 헤겔의 사상이고, 레닌은 그것을 전달하고 단순히 인용한 데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잘못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레닌 자신의 사상이고, 헤겔의 용어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과정에서 레닌이 정식화한 것이다.(인간270)
헤겔은 사고과학을 정신의 자기 인식의 역사 그리고 자연적 사물세계−자연적 소재로 외화된 논리적 과정의 계기, 사고의 도식, 개념의 제 계기−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으로부터 추론했기 때문에, 헤겔의 논리학은 또한 인식론이기도 하다.(인간270)
논리학은 또한 아주 다른 이유로 맑스주의의 인식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정신의 활동형식 자체인 논리학의 범주와 도식은 인류의 지식과 실천의 역사에 대한 탐구 과정, 다시 말해 사고하는 인간(오히려 인류)이 물질적 세계를 인식하고 변형하는 발전과정에서 추론됐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논리학은 사회적 인간에 의한 물질세계의 인식과정과 변형과정에 대한 보편적 도식을 설명하는 이론이나 다름없다. 논리학은 또한 그 자체로 인식론이다. 그러지 않고 인식론의 과제를 또 다른 방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칸트 입장의 이런저런 변종으로 귀착되고 만다.(인간270)
레닌에 따르면 논리학과 인식론은 어떤 경우에도 두 개의 다른 과학일 수 없다. 게다가 논리학이 인식론의 한 부분으로 규정될 수^는 더더욱 없다. 따라서 사고의 논리적 규정들은 오로지 수천 년간의 과학 문화의 발전과정에서 인식되고 사회적 인간의 혹독한 실천과정에서 객관성이 검증된 객관세계 일반의 발전에 관한 보편적 범주와 법칙(도식)만을 포괄한다. 다시 말해 자연적 발전과 사회역사적 발전에 공통된 도식만을 포괄하고 있다. 사회적 의식과 인류의 정신적 문화의 측면에서 반성해 볼 때 그런 범주와 법칙은 사고작용의 능동적인 논리적 형식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논리학은 자연⋅사회⋅사고 자체의 발전에 관한 보편적 도식⋅형식⋅법칙을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인간270-271)
그러나 이런 입장에서 볼 때 논리학(유물론적 인식론)은 변증법과 여지없이 완전히 합치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무리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하더라도 두 개의 과학이란 존재하지 않고, 주제와 개념의 체계에서 오직 ‘하나의’ 동일한 과학만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레닌은 이 점을 ‘사태의 한 측면’이 아니라 ‘사태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달리 말해 논리학이 동시에 인식론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올바르게 이해될 수 없다.(인간271)
그리하여 레닌에 따르면 논리학(인식론)과 변증법은 주제와 범주의 체계에서 완전히 동일한 관계에 있고 완전히 일치한다. 논리학(인식론)이 변증법의 주제와 결코 다른 탐구대상을 갖고 있지 않듯이, 변증법도 인식론(논리학)과 다른 주제를 갖고 있지 않다. 범주의 규정을 통해 사고의 논리적 형식과 법칙의 형태로 의식 속에 분명하게 반영되는 것은, 변증법에서도 논리학에서도 물질의 일반적 발전에 대한 보편적 형식과 법칙이다. 그리고 실험 자료들을 종합하는 도식인 범주는 개념상 매우 객관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범주의 도움으로 진행된 ‘경험’, 즉 과학, 과학적 세계상, 과학적 세계관에도 동^일한 객관적 의미가 적용된다.(인간271-272)
레닌은 “변증법의 문제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변증법은 (헤겔과) 맑스주의의 인식론이다”라고 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논리학에 대한 헤겔의 견해를 유물론적 방식에 입각해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수년간의 힘든 작업에서 이룬 방대한 성과를 요약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맑스주의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플레하노프도 전혀 주목하지 못한 사태의 측면(이것은 사태의 한 측면이 아니라 사태의 본질이다)이다.” 다른 어떤 해석도 허용하지 않는 이런 단언적 결론을 우연히 맞아떨어진 표현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것은 변증법, 논리학 그리고 현대 유물론의 인식론의 관계 문제에 관한 레닌 견해의 실질적 요약으로 간주돼야 한다.(인간272)
이상에서 말한 것에 비춰 볼 때, 맑스주의에서 변증법⋅논리학⋅인식론의 관계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결국 파산하고 말 것이며, 또한 레닌의 입장과 아무런 연과도 맺지 못할 것이다. 즉, 변증법을 ‘존재의 순수 형식’을 취급하는 특수한 범주로 변형시키려는 방식이나 논리학과 인식론을 변증법과 연관돼 있으나 일치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의식 내의 존재를 반영하는 ‘특수한’ 형식의 연구에 전념하는 특수과학−인식의 ‘특수한’ 형식에 전념하는 인식론과 추론적 사고의 ‘특수한’ 형식에 전념하는 논리학−으로 변형시키려는 방식이 그것이다.(인간272)
특수를 보편으로부터 구분하듯이 논리학을 변증법으로부터 구분해, 논리학은 사고의 ‘특수한 특성’을 연구하고 변증법은 이런 특성을 연구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고형식과 법칙의 ‘특수한 본질’이 논리학과 변증법 양자의 보편적 특성이라는 사실을 단순히 잘못 이해했거나 무시한 데 근거한다.(인간272)
과학으로서의 논리학은 결코 물리학자나 화학자, 경제학자나 언어학자의 사고작용의 ‘독특한 특성’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히려 보편적(불변적) 형식과 법칙에 관심을 둔다. 이런 형식과 법칙 내에서 모든 사람들의 사고작용이 발생함은 물론, 사고에 관해 특히 생각하는 전문적 논리학자를 포함한 모든 이론가들의 사고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물론의 관점에서 볼 때, 논리학은 외부세계에 대한 사고작용과 사고 자체에 대한 사고작용 양자를 똑같이 지배하는 형식과 법칙을 탐구한다. 그러므로 논리학은 사고와 실재의 보편적 형식에 관한 과학인 것이다. 논리학이 보편적 형식(존재와 사고에 공통된)뿐 아니라 사고운동의 ‘특수한 형식’까지도 탐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실제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논리학과 심리학 사이의 분업을 무시한 것이고, 심리학의 주제를 박탈한 것이며, 힘에 벅착 과제를 논리학에 던져 놓는 것이 된다.(인간273)
논리학을 변증법과 구별되는(비록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여길지라도) 과학으로 이해하는 것은 논리학과 변증법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고, 유물론적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변증법으로부터 인위적으로 본리된 논리학은 순수 주관적 방법과 행동, 다시 말해 인간의 의지와 의식 그리고 물질의 특수성에 의존하는 활동형식을 서술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고, 따라서 객관적 과학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세계 전체’에 대한 주장이나 ‘세계의 도식’의 형태를 취하면서 인식(사고)의 발전과정을 문제 삼지 않는 변증법은 마찬가지로 특별한 어떤 것(‘자연과 사회에서 모든 것은 상호작용한다’, ‘모든 것은 발전한다’ 그리고 ‘모순을 통해서’ 등등과 같은 종류의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것에 관한 극히 일반적인 진술들을 끌어모으는 것으로 불가피하게 변모되고 만다.(인간273)
이렇게 이해된 변증법은 동일한 보편적 명제를 만족해서 ‘확증하는’ 사례들을 통해 순수 형식적 방식으로 실질적 인식과정과 결합된다. 특수에 대한 보편의 이런 형식적 부가는 분명히 보편적인 것이기는 하나, 특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조금도 심화시키지 못하는 한편, 변증법은 죽은 도식으로 변형되고 만다. 그래서 레닌은 변증법을 사례들의 총합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변증법을 논리학과 유물론의 인식론으로 이해하지 못한 필연적 귀결이라고 생각했다.(인간274)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인 모든 과정이 발생하는 보편적 형식에 관한 과학인 논리학은 구체적 전체의 형성과정(혹은 구체적 전체를 정신적⋅이론적으로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연속적으로 계기하는 단계들을 반영하는 특수한 개념(논리적 범주)의 엄밀한 체계로 정의된다. 한 이론 내에서 연속적으로 계기하는 범주들의 전개는 인간의 의지와는 독립한 객관적 특징을 지닌다. 그런 범주들의 연속적 전개는 경험적 근거를 갖는 이론적 지식의 연속적이고 객관적인 발전에 의해 우선적으로 표현된다. 그와 같은 표현 형태로, 현실적인 역사과정의 객관적 연속은 우연적 사건들이 분열된 형태나 역사적 형태가 제거된 채 인간의 의식 내에 반영되는 것이다.(인간274)
그 때문에 논리적 범주는 직접적으로 세계를 구별해 인식하는 단계이며, 세계를 인식하고 지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결절점인 것이다. 레닌은 이런 견해를 피력하는 데서 논리적 범주의 일반적이고 연속적인 발전에 주목했다. “최초의 여러 인상들이 떠오르고, 그러고 나서 어떤 것이 뚜렷해진다. 그 후에 질의 개념들(사물 혹은 현상의 여러 규정들)과 양의 개념들이 전개된다. 그런 후에 연구와 숙고를 통해 사고는 동일성-차이-본질 대 현상-인관성 등의 인식으로 향하게 된다. 이런 모든 인식의 계기들(한 걸음 한 걸음, 단^계들, 과정들)은 주관으로부터 객관을 향해 운동하고, 실천적으로 검증되며, 이런 검증에 의해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인간의 모든 인식(모든 과학) 일반의 보편적인 전체 과정이다. 이것은 자연과학과 정치경제학(그리고 역사)의 진행과정이기도 하다.” 레닌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과학적 인식 운동의 핵심이다.(인간274-275)
논리적 범주들은 필연적으로 대상을 전개시키는 인식의 단계들, 즉 대상을 형성하는 일련의 연속하는 본질적 단계들이지만, 결코 어린아이들이 모래를 퍼 담을 때 사용하는 물통처럼 주관에 강제되는 기계장치는 아니다. 따라서 모든 논리적 범주에 대한 규정은 단순히 주관적 활동의 형식을 규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상도 규정하는 객관적 특성을 지닌다. 또한 사고이론 내에서 범주가 계기하는 연속적 과정 역시 마찬가지의 필연적 특성을 지닌다. 동일성과 차이, 질과 한도 등에 대한 과학적 규정에 앞서 그 규정과 무관하게 객관적 토대 위에서 필연성 혹은 목적을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그 단순한 구성요소들인 상품과 화폐가 미리 분리되지 않고서는 자본과 이윤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또 화학적 구성 원소들이 알려지지 않은 동안에는(분석을 통해 확인하지 않고서는) 유기화학의 복잡한 화합물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꼭 마찬가지다.(인간275)
논리학의 범주들을 체계적으로 다루기 위한 계획의 윤곽을 잡으면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즉 “비록 맑스는 그 어떤 논리학(Logic: 첫 글자를 대문자로)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본의 논리학을 남겼다. 이 점은 여기서 다뤄야 할 문제를 위해 충분히 활용돼야 한다.” 더구나 우리는 과학으로서의 논리학의 전개 과정에서 최상의 (변증법적) 전통에 근거를 둠으로써만 정치경제학 이론의 기저에 놓인 논리적 범주를 정치경제학 이론의 구체적 운동으로부터 구별할 수 있다. “헤겔의 논리학 전체를 철저히 탐구하고 이해하지 않고서는 맑스의 자본론, 특히 제1장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인간275-276)
더 나아가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맑스는 그의 자본론에서 부르주아 (상품) 사회의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대규모적이고 가장 일상적이며 수백만 번 접하는 관계, 즉 상품 교환을 최초로 분석하고 있다. 그 분석은 이런 가장 단순한 현상(부르주아 사회의 ‘세포’) 속에서 근대사회의 모든 모순(혹은 모순의 맹아)을 폭로한다. 계속 이어지는 서술은 이 모순의 발전(성장과 운동 모두) 그리고 이런 사회가 그 개별 부분들의 Σ(총합) 속에서 이루는 발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 방식은 또한 변증법 일반의 서술(혹은 탐구) 방법임이 틀림없다(왜냐하면 맑스는 부르주아 사회의 변증법을 변증법의 특수한 경우에 불과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인간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