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없는 책상 / 송덕희
“우리 도서관 책상 사는 데는 돈 좀 쓰시게요.” 듣고 있는 실장의 얼굴색이 변한다. 어떤 걸 원하는지 눈으로 묻는다. “원목으로 만든 걸 알아보면 어떨까요?” 곧바로 되돌아온다. “굳이요?”
빠듯한 예산을 생각하자는 말이 이어진다. 학생 수에 맞춰 돈부터 가늠한다. 요즘 원자잿값과 인건비가 터무니없이 올라서 웬만하면 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넉넉하지 않는 형편이라 뭐 하나 손대려면 겁부터 난다. 비품은 관리가 편해야 한다. 학생들이 물건 귀한 줄 모른다. 낙서하고 부러뜨리기 일쑤여서 굳이 비싼 걸 살 필요가 없다. 많은 사람이 쓰는 학교 물건이라 더 그렇다. 이런 걸 따져보면 원목보다 합판이 낫다.
금액이나 조건을 생각하면 이해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 도서관에 들일 거다. 이왕 살 거면 질을 생각하자. 만지고 엎드리며 여린 피부에 닿는 거라 잘 골라야 한다. 비싸더라도 나무의 질감이 느껴지는 원목이 좋다. 분위기도 아늑하게 살리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공방에서 튼튼하게 만든 가구는 손때가 묻어도 시간이 지나면 더 멋스럽다. 쓸수록 품위가 느껴진다. 읽고 싶은 맛이 절로 나게 괜찮은 걸 사서 오래 쓰면 이득이다. 소중하게 다루는 법은 시간을 두고 가르치면 된다.
실장이 나가며 “댁의 가구도 다 원목을 쓰나 봐요?” 한다. ‘아이들이 두고두고 쓸 거라 그렇지. 우리 집에는 책상도 없다네.’ 말하려다 삼킨다.
10여 년 전, 재배치 공사를 하는 ○○초등학교에 근무했다. 45년이 넘은 건물을 헐고, 20여 년 지난 별관을 증축했다. 2년 이상 걸리는 큰일이었다.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건물은 지어졌다. 새 교실과 특별실에 기능과 쓸모를 살펴 비품과 기자재를 넣어야 끝난다. 크고 작은 물건 하나라도 만족스러우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돈만 날리고 만다. 두고두고 애물단지다. 하여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살 수 없다.
양지바른 2층에 자리 잡은 도서관에 심혈을 기울였다. 여느 학교와 달리, 안쪽 문을 열면 야외 정원으로 이어진다. 키 작은 소나무, 화살나무와 잔디가 자란다. 햇빛 잘 드는 곳에 흔들의자가 있다. 직원들이 야외 파티도 할 만하게 꾸몄다.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 학생과 교직원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교실 두 칸 크기의 넓은 도서관 안을 채우는 데에 고심을 거듭했다. 먼저 서가를 키 낮은 걸로 배치하고 창가와 여기저기 구석진 곳에 의자와 소파를 놓았다. 편안하고 아늑해졌다. 도서관 활용 수업을 하려면 한 반이 쓸 책상과 의자도 있으면 좋겠다는 사서의 의견이다. 목공예 공방을 수소문했다. 학생들이 책에 몰입할 수 있는 좋은 재료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나무의 나이테가 예쁜 원목 책상과 몸에 착 감기는 듯 편한 의자를 들였다. 맘에 쏙 들고 만족스러웠다. 모두가 오고 싶은 곳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새로 만들 학교에서 보러 온 사람마다 본보기로 인정할 만하단다. 이런 만족을 주는 일은 힘들어도 보람을 느낀다.
지금 근무한 학교 도서관은 내가 오기 전에 요모조모 신경을 써서 고쳤다. 깨끗하고 널찍하다. 단을 따로 올리고 영상도 볼 수 있다. 작은 공연장이자 극장 역할을 한다. 창가 쪽으로 긴 의자가 있고 아기자기한 소파도 군데군데 놓았다. 다 괜찮은데, 책상이 없다. 아이들이 구석진 곳에서 집중하지 못하고 자세가 너무 흐트러진다는 말이 나왔다. 꼭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2년 전이다. 돈이 여의찮아서 못 하다가 작년 가을쯤 얘기를 꺼냈다.
실장이 내 의견 쪽으로 기울어지기를 바라며 기다렸다. 2주가 지나고, 학교장터(학교 전용 온라인 매장)에서 검색하여 몇 가지 표본을 가져왔다. 삼나무로 만든 반질반질한 걸로 정했다. 6인용 책상 네 개와 의자 스물두 개를 합하니 천만 원이 조금 못됐다. 실물을 보고 나서 실장이 한마디 한다. “원목이라 좋긴 합니다.” 사서 선생님이 상판과 다리가 튼튼해서 오래 쓰겠단다. 무엇보다 은은한 나무 향이 좋아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학생들이 “도서관에 또 오고 싶어요.” 하며 맘에 쏙 들어 한단다.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든다나? 교직원들은 손바닥으로 쓸어보며 집에도 이걸로 바꾸고 싶어 한다.
막내가 고등학교 졸업하자 오래 써 온 책상을 치웠다.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 오면 편히 쉬고만 싶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가끔 식탁을 쓰면 됐다. 공간을 채우는 건 최소한으로 하여 넓게 살고 싶기도 해서다. 그런데 요즘 줌(ZOOM) 수업을 들으려니 좋은 책상과 의자가 욕심난다. 대리석 식탁이 차가운 느낌이 들고 의자는 등받이가 조절이 안 돼 허리가 아프다. 조만간 괜찮은 걸로 장만해야 하나 싶다.
첫댓글 글 잘 쓰시는 교장 선생님이라 학교 경영도 남 다르네요.
도서관 책상에 관심을 두시고 천만씩이나 투자하셨어요.
유능한 관리자는 무엇이 우선인지 잘 파악하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고맙게도 잘 읽어주시는군요. 저는 선생님 글 읽고 댓글도 못 달아드리는데, 이렇게 칭찬해 주시니 낯간지럽습니다.
맞아요. 편안하고 좋은 곳은 또 오고 싶어지거든요. 좋으네요.
선생님도 도서관에 자주 가시는 걸로 아는데, 책상이 좋으면 책 읽는 재미가 더 나겠지요? 하하하.
네, 장만하세요. 아프시면 안 되니까요.
정곡을 찌르는 말씀이네요. 하하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