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님이자 선배님이신 서용좌 선생님의 책 2권이 배달되어 왔다. 한 권은 《날마다 시작》이라는 장편소설이고, 다른 한 편은 《스물셋, 아무렇더라도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라는 산문집이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펼쳐본다. 손길 닿는 대로 넘겨 아무 페이지나 읽어 본다. 이것은 내 오랜 책 읽기 습관이다. 만약 여기에서 흥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대개 그 책을 읽어내기 힘들어진다.
먼저 수필집을 펼친다. 살풍경에 꽃눈이 열리고 시린 가슴이 봄볕 아래서처럼 따뜻해진다.
"이화의 첫 학기 천재와의 만남은 장 아제바도를 나누어 품게 했으며, 오늘 밤새워 글을 쓰게 한다. 그녀에게는 습작이란 없다. 글쓰기가 의식적인 작업이라기보다는 그냥 살아 있는 표식이니까.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게 도와줘…………. 나를 살게 해줘………….”
이 한 단락만 읽어도 그 천재가 누구인지, 작가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 것 같다. "음악은 일이 아니에요. (그냥 삶이죠.)" 얼마전에 보았던 영화 《파인드 미 폴링》의 대사가 생각난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소설도 펼쳐 읽어 본다.
"언니는 고귀한 성소에 순종했고, 나는 그저 순진한 소망을 이루었다. 언니를 제치고(?) 결혼에 성공한 내가 그 일로 잘못한 것은 없다. 다만 그것을 차마 소명이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나의 순진해서 평범한 그 선택이 그 나름 얼마나 큰 고통을 동반하는 길이었는지는 수녀님은 영영 모르리라. 그런 의미에서 경제생활의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수도자들이란 인생을 반밖에 살지 않는 사람들 아닐까. 이런 말 언니가 절대로 듣지는 않을 테니까 혼자서 하는 말이다."
"확진자는 1만 명을 훌쩍 넘었고, 사망자가 세상에나, 200명이라니.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었다. 사순 시기는 극도의 우울감 속에서 그 끝을 향하고 있었다."
동의와 공감이 이어진다. 글쓰기는 삶이다. 가수에게 노래가 그렇듯이 작가에게 글쓰기는 그냥 숨이다. 이 책들은 선생님께서 여러 가지 고통 가운데서도 그 숨을 쉬어내고 살아내신 열매들이리라. 그 전에 내신 장편소설 《숨》 도.
선생님, 고맙습니다. 잘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