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부터 시행된 곤충산업법, 벌레가 돈 되는 시대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농진청 양잠 시험장에서 노란 비단실을 뽑는 품종의 누에가 고치를 지은 모습. 군데군데 흰 비단실로 지은 고치도 섞여 있다. | |
그는 “누에의 체액에는 세포 증식을 촉진하는 물질이 들어있어 기능성 화장품의 원료로 가치가 높다. 현재 민간 의과대학과 함께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되는 화장품을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또 체액을 짜낸 누에의 배를 길게 갈라 실샘을 분리한다. 투명하고 끈적한 실샘을 핀셋으로 콕 집어내는 손길이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실샘은 유리컵에 따로 모아 원심기로 빠르게 돌린다. 가만히 놔두면 금세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날 해부한 누에에선 노란 실샘과 하얀 실샘이 동시에 나왔다.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될 때 노란 비단실을 뽑아 고치를 만드는 품종이라서다. 그는 “누에 실샘도 세포 증식 효과가 있어 화장품 원료로 연구 중이다. 필름이나 스펀지 형태로 만들어 반창고 같은 의약품 소재로도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샘의 비단 성분은 사람 피부에 매우 친화적이다. 수술 후 외상에 파스처럼 붙이면 회복이 빠르고 후유증이 적다”고 덧붙였다.
실험실 한쪽의 정제기에선 누에 분말을 이용해 당뇨병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인 데옥시노지리마이신(Deoxynojirimycin·DNJ)이란 물질을 뽑아내고 있다. DNJ는 당 성분이 천천히 분해되도록 작용한다. 음식을 먹은 다음 혈당이 갑자기 상승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원래 뽕잎에 있던 성분인데 뽕잎을 먹고 사는 누에의 몸 속에 고농도로 축적돼 있다. 누에 2만 마리(약 5㎏)에선 대략 20g의 DNJ가 나온다. 이 박사는 “누에를 냉장고에서 급속 동결해 가루로 만들어 정제하면 DNJ 성분을 추출할 수 있다. 이미 관련 특허를 취득해 의약품으로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혈당강하제·동충하초도 누에로 만들어
▲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실험실에서 ‘누에박사’ 이희삼 연구관이 핀셋으로 누에를 들어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이희삼 연구관이 누에를 해부해 비단실을 뽑아내는 실샘을 채취하고 있다. 누에 실샘은 세포 증식 효과가 있어 화장품이나 의약품 소재로 쓰인다.신인섭 기자 | |
하지만 누에의 변신은 화려했다. 95년 누에 분말이 혈당 조절에 효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이후 누에로 만든 기능성 식품이 각광을 받았다. 누에가루·누에차 등이 속속 건강기능식품으로 개발됐다. 항암 효과가 있다는 ‘누에 동충하초’, 성기능 강화에 도움을 준다는 ‘누에그라’ 등도 나왔다. 비단실을 뽑기 위한 ‘입는 누에’에서 건강식품의 원료가 되는 ‘먹는 누에’로 진화한 것이다. 누에를 활용한 화장품·비누 등도 잇따라 출시되며 ‘바르는 누에’로 한 단계 더 발전했다.
최근에는 한술 더 떠 바이오기술(BT) 산업의 신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치료하는 누에’의 시대다. 지난해 말 농진청은 한림대 의료원과 공동 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로 누에에서 인공고막 소재를 개발했다. 누에고치의 실크 단백질을 부드럽고 투명한 막으로 만들어 고막 재생에 활용하는 동물실험도 성공했다. 미국·일본 등 5개국에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강필돈(농학박사) 농진청 연구관은 “인공 고막의 세계 시장은 25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10%만 누에 소재로 대체해도 국내 농가와 관련 업체의 수입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인공고막에 이어 누에고치로 인공뼈를 만드는 연구도 한창 진행 중”이라며 “인공뼈의 세계 시장은 5조원대에 달해 성공하면 경제적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광길 농진청 잠사양봉소재과장은 “누에는 바이오 자원의 보물창고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체에 유용한 성분을 다양하게 갖고 있다. 누에치기는 더이상 사양 산업이 아니며 첨단 산업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곤충산업, 처음으로 법률로 규정
벌레가 돈이 되는 시대가 활짝 열렸다. 곤충을 국가적인 산업의 대상으로 키우겠다는 법률도 최근 시행에 들어갔다. 이달 5일 발효된 ‘곤충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곤충산업법)’이다. 인간에게 이로운 곤충이나 곤충 관련 물질을 연구·개발해 산업적으로 적극 활용하자는 취지다. 곤충을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블루오션’의 자원으로 주목한 것이다. 이 법은 곤충산업을 ‘곤충을 사육하거나 곤충의 산물 또는 부산물을 생산·가공·유통·판매하는 등 곤충과 관련된 재화 또는 용역을 제공하는 업’으로 정의한다. 곤충산업을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은 처음이다.
농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곤충시장의 규모는 1000억원에 달한다. 2015년엔 3000억원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앞으로 10년간 농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담은 ‘비전 2020’에서 곤충산업을 농업 분야의 5대 신성장 동력 중 1순위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20년 곤충시장의 규모를 지난해의 일곱 배인 7000억원 수준으로 육성한다는 목표도 내놓았다.
곤충산업법에 따르면 농식품부 장관은 5년마다 곤충산업 육성과 지원을 위한 종합계획을 세우고, 농진청장은 해마다 세부 시행계획을 마련해 실천해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 곤충 농가와 관련 업체에 자금과 기술을 지원하고 우수한 곤충 전문인력을 길러낼 계획이다. 김배성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지구상에 서식하는 곤충은 총 500만~1000만 종으로 추산되고, 이 중 1만5000여 종이 인간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이처럼 곤충은 풍부한 종 다양성으로 21세기 최대 미개발 생물자원으로 주목받는다”고 강조했다.
쇠똥구리에서 내성 없는 항생제 연구
곤충산업은 크게 ▶누에처럼 바이오 신소재 개발에 유용한 식·약용 곤충 ▶병해충을 퇴치하는 천적 곤충 ▶열매를 맺게 하는 꽃가루 매개 곤충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환경정화 곤충 ▶나비축제 같은 행사용이나 학습·애완용 곤충 등으로 나뉜다. 특히 곤충을 활용한 바이오 의약품은 미래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분야다. 현재 누에 외에도 쇠똥구리·굼벵이·벌·무당거미·딱정벌레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의학에선 오래전부터 의약적 효능을 지닌 곤충을 약제로 써왔다. 대표적으로 허준의 '동의보감'은 95종의 약용 곤충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엔 서양 의학에서도 신약 개발을 위해 곤충에서 추출한 물질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미래학회가 제시한 20년 후 유망한 10대 미래 기술에도 곤충을 활용한 신약 개발이 포함됐다.
농진청은 쇠똥구리 애벌레에 있는 고기능성 항균 물질인 ‘펩타이드’를 연구 중이다. 펩타이드는 기존 항생제와 달리 병원균이 자기 방어를 위한 내성을 지니기 어렵게 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신약 개발에 성공할 경우 1928년 페니실린 발견 이후 가장 획기적인 항생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장수풍뎅이 애벌레인 굼벵이에선 간을 보호하는 데 효과적인 물질이 발견되기도 했다.
동성제약은 지난달 초 농진청과 공동 연구를 통해 벌침액(봉독)을 이용한 여드름 전용 화장품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벌침액의 항균력은 피부에 여드름균 등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 농진청의 설명이다. 이 소식으로 동성제약의 주가는 6월 말 1200원대에서 지난달 말 2000원대까지 뛰어올랐다. 다만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화장품으로 허가받은 제품이지 치료 효과가 입증된 의약품은 아니다”고 소비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진디혹파리·무당벌레로 진딧물 제거
현재 곤충산업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는 천적 곤충이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병해충을 천적을 활용해 제거하는 것이다. 예컨대 진딧물이 생기기 쉬운 참외·수박·오이·상추나 장미·국화 등을 재배할 때 진디혹파리·무당벌레 등을 뿌리면 효과적이라고 한다. 가격은 진디혹파리 1000마리에 3만원, 무당벌레 100마리에 4만원 정도다. 농약보다 다소 비싸지만 독성과 부작용이 없어 친환경적이란 이유로 천적 사용은 급증하는 추세다. 같은 종류의 농산물이라도 무농약이나 유기농 인증을 받으면 평균 30% 정도 비싼 값에 팔리기 때문이다. 농진청에 따르면 98년 3만㎡에 불과했던 천적 보급 면적은 2008년 2114만㎡를 기록했다. 10년 만에 70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현재 천적 곤충 시장에선 코스닥 상장기업인 세실을 비롯한 7개 사가 연간 2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특히 세실은 세계 3위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농진청은 평가했다. 이 업체는 ‘우리천적’이란 브랜드로 31종의 천적 곤충을 생산하고 있으며 지난해 천적 제품 매출액은 176억원에 달했다. 정부는 2013년까지 전체 시설원예 면적의 절반 수준인 2억㎡에 천적 곤충을 보급할 계획이다.
꽃가루 매개용 벌을 쓰는 농가도 늘어나고 있다. 꿀을 모으기 위해 돌아다니며 꽃가루를 옮기는 벌은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 없어선 안 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최근 기상 이변으로 벌의 개체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벌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에 농약을 집중 살포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벌이 없으면 사람이 일일이 꽃가루를 묻혀주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농촌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로 여의치 않다. 이런 경우 꽃가루를 옮기는 수정벌을 사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토종 호박벌보다는 서양에서 들여온 뒤영벌이 꽃가루를 옮기는 기능이 더 뛰어나다고 한다.
뒤영벌의 봉군(벌떼) 제품은 여왕벌 1마리와 일벌 50~80마리로 구성된다. 가격은 봉군 1개에 8만원 정도며 농장 면적 1000㎡(약 300평)당 평균 1.6개의 봉군이 필요하다. 현재 토마토·사과·딸기·고추·수박 등을 재배하는 시설원예 농가에서 주로 활용하며 시장 규모는 연간 100억원대에 달한다. 2002년까지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으나 농진청이 연구개발에 성공하면서 2007년 이후에는 70% 이상을 국내 생산으로 대체했다.
등애등에 1마리가 음식물 쓰레기 2g 처리
지역축제 등 각종 행사용과 학습·애완용 곤충은 연간 800억원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전남 함평 나비축제(112억원)와 전북 무주 반딧불축제(150억원) 등이 곤충을 활용한 대표적인 지역축제다. 학습용 곤충은 일부 대형 마트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일반화됐다. 곤충 전문점 장풍이닷컴의 신영식 사장은 “주고객층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아이들이고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를 주로 사간다”며 “왕사슴벌레는 길이 1㎜ 차이에도 가격이 상당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우람한 집게발을 가진 왕사슴벌레 수컷의 경우 길이 7㎝가 넘는 대형은 10만원대에도 팔린다. 일본에선 길이 8㎝짜리 왕사슴벌레가 1억원에 팔린 적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왕귀뚜라미를 애완용으로 찾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환경정화 곤충도 유망한 분야로 꼽힌다. 특히 파리의 일종인 등애등에는 ‘청소부 곤충’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등애등에 애벌레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 치워 친환경적으로 분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한 마리가 평균 2g의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다고 한다. 등애등에 애벌레 1000마리로 음식물 쓰레기 2㎏을 처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제주 동부농업기술센터의 경우 현재 12곳에서 등애등에를 활용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냄새도 없고 친환경적이어서 농민들의 반응이 좋다. 등애등에의 배설물을 퇴비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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