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자회 (自恣悔)
가끔씩 새로 인사를 나누는 동문 법우님들이 농담삼아 물어보시고는 한다.
수행하러 와서 연애 했느냐고..^^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고 만만의 콩떡이다. (아~ 십년전 유행어)
내게는 삶의 벼랑 끝에서, 하루 하루가 절박했던 시간들이다.
스님과 상담할 때도 말씀드렸지만, (불교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있었기에) 두어달의 시간을 두고 마음을 정하고 싶었고,
수행 과정 내내.. 신(身)출가에 대해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아무튼... ^^;;
갈마를 하고, 하룻밤을 뜬 눈으로 지새고.. 다음날 삭발을 하고, 삼보일배, 적멸보궁..
며칠이 지나서야, 일과에 겨우 적응을 하여 어느덧 마음의 평온을 찾아갈 무렵이다.
저녁 공양 마치고 법륜전 자자회 시간.
70여명의 행자님들이 벽을 등지고, 반원을 그리며 큰 법륜전에 빙 둘러 앉는다.
앞에는.. 동은스님, 주봉스님, 해욱스님, 선나스님, 현묵스님이 고요히 앉아 지켜보시고,
우리는 마이크를 돌아가며 잡고, 지난 며칠 자신의 생활을 살피며, 중앙에 나가 부처님 전에 참회의 삼배를 올린다.
순서가 돌아오는 사이 사이에 '나는 무슨 참회를 해야 하나' 설핏 고민하던 중..
여행자님 한 분이 마이크를 잡고 주저주저 한다.
고등학생? 은 아닌거 같고.. 대학 초년생쯤? 되어 보인다.
"양말이 없어서.. 세면장에 널려 있던 두꺼운 양말.. 하루 신고 가져다 놓았어요."
얼굴이 붉어져서, 금방이라도 울듯이 어쩔줄을 모르다가, 종종걸음으로 나가 부처님 앞에 삼배를 불안스레 올린다.
적광전 새벽 예불은 참 추웠다.
지금은 양쪽에 공기순환식 히터를 넉넉히 틀어주시지만,
5년전 그 겨울의 새벽, 냉골 법당에는 겨우 석유난로 두 개.. 그것도 냄새와 소음 때문에 왠만하면 꺼놓고는 하셨다.
새벽 예불 끝나고 법륜전으로 이동할 때면, 발끝이 살짝 얼어 있고는 하던 기억..
자자회가 끝나고, 세면 마치고, 빨래 널어놓고 잠자리 펴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내 양말을 하나 그 행자님한테 줄까?'
그러나, 나름대로 꼼꼼하게 준비한다 했는데, 나 역시 양말에서 이미 문제가 생겼다.
평소에 겨울에도 추위를 별로 안타기에, 얇은 양말 세 개, 두꺼운 양말 두 개를 준비해 왔다.
아차.. 적광전 거친 카펫 위에서 절을 하니, 얇은 양말이 이틀만에 해져서 구멍이 난다.
이제 얇은 양말은 비상용으로나 쓸모 있을까,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어져 버렸고
두꺼운 양말 두 개로 겨우 하루걸이 연명하며 지내는 신세..
마음은 안타깝지만 내 것을 줄 수는 없다.
'내일 종무소 권보살님에게 부탁해 볼까?'
행자 신분으로 묵언하고 지내며.. 오지랍 넓게 남의 양말 하나 달라 하기도 아니다 싶다.
'어찌해야 하나..'
명등 소임자의 "소등하겠습니다" 한 마디에...
하루 내내 잠이 부족하던 새내기 행자는,
차거운 한겨울 달빛 고즈넉한 서별당 귀퉁이 잠자리에서
세상 모르고 어느덧 수면 삼매에 빠져 버린다. ()
2. 꿈길과 버스안에서
목욕하러 가는 날이다.
깊은 겨울이면 오대천 물사정이 매우 안좋아져서, 때로는 밥 해먹을 물 조차 충분하지 않다.
한 달 쯤 목욕 안해도 설마 죽기야 하겠냐만.. ^^
단기출가학교를 진행하시는 사중의 입장에서는, 행자들의 위생과 건강도 돌보아야 하겠기에
그나마 월정사에서 가까운 근처 호텔(지금은, 켄싱턴플로라)로 단체 목욕하러 간다.
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한 걸음 내려 오솔길로 접어든다.
오대산 호텔 가는 길이 꿈꾸는 듯 하였다.
싯구 속에, 그림 속에 들어간 듯.
그렇게 좋구나 한다.
혼자라면 아마 외로웠을 것을
많은 도반들이 있어
그 풍경이 정겹고 따듯하다.
사람은, 인연 때문에 아파하고
또 인연을 그리워하고...
무소의 뿔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나도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 있을까?
(2005.1.13. 수행일기에서..)
바윗돌 사이사이를 지나
꽁꽁 언 오대천 위에 미끄럼도 지쳐보고
모처럼의 바깥 바람에, 소풍나온 유치원 동무들^^ 처럼..
그렇게 꿈길을 따라 한 줄로 걸어간다.
목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개운한 맘으로 다시 월정사로 향했다.
조그만 버스에 70여명이 탔으니 복작복작...
대행행자님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창밖을 빼꼼히 내다보며 한 마디 던진다.
"걸어오니까 좋든데.. 돌아가는 길두 걸어가자구요 !!"
조용... 누구도 반응이 없다.
묵언에 철저하던 때이기도 했지만, 말썽쟁이^^ 대행의 본색이 서서히 드러나던 무렵인지라..
마침 옆에 섰던 나는, 한 마디 거들어 본다.
"행자님, 담에 저랑 또 걸어요. 오늘은 공양 시간도 늦었고 하니까, 버스 타고 얼릉 올라가자구요."
발그레한 미소를 살짝 보여주고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대행...
버스는 어느덧 월정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금강교 앞에 내려서 (청량한 오대산 겨울 공기를 마음껏 느껴보다가)
이내 우리는 대열을 다듬고, 안행으로 줄지어 간다.
일불은, 결혼 후 나에게 말했었다.
그 때, 그 따듯하던 목소리가 누군지 참 궁금했다고.
(좋은 마음으로) 스치듯 건낸 다정한 말 한 마디..
이제와서 돌아보니, 과연 우리 부부의 인연의 끈이 되었는가 ? ^^
성 안내는 그 얼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오늘은 율이의 세 돌 맞이 생일입니다. ^^
아름다운 인연 만들어주시고, 보듬어 주시고, 또한 넉넉히 사랑해 주시는
오대산 월정사의 모든 불보살님들께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
첫댓글 두분의 인연으로 지난 한달의 시간을 다시하는듯 새롭습니다 다음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명등 소임자의 "소등하겠습니다" 한 마디에...
하루 내내 잠이 부족하던 새내기 행자는,
차거운 한겨울 달빛 고즈넉한 서별당 귀퉁이 잠자리에서
세상 모르고 어느덧 수면 삼매에 빠져 버린다. ()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울컥~! 그 시절이 아련합니다.__;;
저 때 나는 내몸하나 추스르기에도 버거웠는데...
다음편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