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 봄바람 나다 (3)
전호준
잠시 일장춘몽 속 물외한인이 되었는데 벌써 화흥포항 도착이다.
오늘의 숙박 예정지 진도로 향했다. 시간이 여유롭다. 완도 일정의 마무리로 통일신라시대 해상 왕 장보고 대사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해신海神 촬영지 청해 포구에 들렀다.
최인호의 역사소설 ‘해신‚을 원작으로 한 KBS2 TV 특별기획, 2004년 11월부터 방영한 드라마 촬영 세트장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래로 내려갔다. 바다를 감싸않은 수려한 해변이 예사롭지 않다. 드라마 속 펼쳐지던 멋진 장면들을 희미한 기억 속에 되살리며 옛 거리를 서성인다. 청해진의 옛 건물들과 물품 교역 장소 지역 민초들의 삶이 녹아있는 초가지붕들 여느 드라마 촬영장과 다를 바 없다. 해신 외에도 대조영. 주몽. 세종대왕. 명량까지 많은 드라마를 촬영했다 한다. 드라마의 멋진 장면에 매료되는 시청자들은 결국 연출자의 기발한 연출과 연기자들의 실감 나는 연기력, 수려한 주변 경관의 조화인 것 같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주막에 들러 동동주 한 잔으로 완도와 작별하고 일명 보배 섬, 진도珍島로 향했다.
진도 타워에 올랐다. 우리나라 최초의 복선 사장교인 아름다운 진도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대교 밑으로 흐르는 울돌목의 거친 물살, 쌍안경에 비친 울돌목의 소용돌이에 빨려들 듯 가슴이 서늘하다.정유재란 때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수장시킨 세계 해전사상 유례없는 명량해전 대첩지다.
소용돌이치는 물살을 이용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신출귀몰한 전술도 전술이지만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목숨 건 필사즉생必死則生필생즉사必生則死 정신의 승리가 아니었을까? 멀리 보이는 장군의 동상을 향해 목례를 올렸다.
울돌목 해변을 따라 한동안 내려가니 바다가 발아래인 언덕 위 펜션에 여장을 풀고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틀 만에 자동차 키를 친구에게 넘겼다. 아내의 표정이 밝아지는 걸 보니, 그동안 나름의 속앓이를 했나 보다. 그래도 진심으로 나을 걱정하며 함께하는 든든한 길동무가 곁에 있다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이다.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 련 선생이 말년에 은거, 그림을 그리고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신 운림산방으로 갔다. 스승인 추사 김정희 선생이 중국 원나라 대 서화가 황공망 대치 선생을 빗대어 소치라는 아호를 내리고 압록강 동쪽에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며 극찬한 남종화의 대가다.
2 년 전 가을 녘 화실 동료들과 이미 한 번 들린 곳이다. 늦가을의 산방과 봄의 산방은 그 감회가 다르다. 기념관과 전시관을 돌아보며 친구들 앞에 짧은 견문으로 임시 가이드 역할까지 하다 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산방 안쪽에 자리한 진도의 고찰 쌍계사를 둘러보고 운림산방을 나왔다.
사적 제127호인 남도 진성으로 갔다. 고려 삼별초가 제주도로 밀려나기 전 마지막까지 여몽연합군과 항전을 벌렸던 유적지로 배중손 장군이 최후를 마친 곳으로 전해지는 곳이다. 600여 m의 성곽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진도(팽목) 항을 찾았다.
무겁게 내려앉은 회색빛 하늘 아래 세찬 바람이 몰아친다. 저 멀리 붉은색 등대 벽에 그려진 노란 리본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등대길 양쪽 철책 난간에 매달린 빛바랜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요동친다.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어린 영혼들의 몸부림 같아 눈시울이 뜨겁다.
누구를 탓하라, 네 탓이 아닌 내 탓이란 각오로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다 함께 성찰省察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잠시 묵념으로 돌아서는 발길은 애석哀惜함뿐이다.
고려 원종 11년 삼별초의 난이라 일컬어진 대몽 항전의 근거지 사적 제 126호인 용장성에 들렸다. 고려가 몽고의 침략으로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개경 환도를 강행하고 삼별초 해체를 주장하자 삼별초 지도자 배중손 노영희 등이 이에 불복 왕족 승화후承化候 온溫을 왕으로 추대 대몽 항전을 결의하고 진도로 내려와 성을 쌓고 결사항전을 한 호국성지다. 성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곳곳에 널려있는 이끼 낀 높은 돌 축대가 옛 궁성 터임을 말해준다.
임시 궁궐로 사용했다는 용장사에서 흘러나오는 불경소리를 뒤로하고 내려와 인근에 있는 벽파 나루로 이동,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벽파 진 전첩비를 찾았다. 자연석을 깎아내어 만든 돌계단을 오르니, 왼쪽에 있는 정자가 벽파정이다. 벽파정은 진도의 관문인 벽파 나루로 들어오는 사신들과 관리들을 영송迎送하고 위로하던 곳으로 고려 희종 3년에 창건하고 조선 세조 11년에 중건하였으나 허물어진 것을 2016년 진도군민들의 뜻을 모아 세웠다 한다.
온통 바위 언덕길을 10여 m 오르니, 돌 거북 등에 우뚝 선 전첩비가 벽파 해변을 바라보며 서있다. 명량대첩 승리를 기념하고 해전에 참여한 주민들의 숭고한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56년에 건립되었다 한다.
진도대교 근처 호젓한 식당에서 해물찜으로 늦은 점심을 나누고 호국의 성지 보배 섬 진도를 뒤로하고 진도대교를 건넜다. 어느 듯 2박 3일, 황혼의 봄바람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무사히 대구에 도착했다. 할매들의 환한 표정을 보니, 간만에 마음이 뿌듯하다. 어쩜 올가을 늦바람이 또 한 번 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2019. 3. 27 집에 돌아와 ~
(* 다들 아시는 내용을 3회에 걸쳐 장황하게 늘어놓아 송구합니다.)
첫댓글 선생님께서 부부동반 황혼의 봄바람 덕분에 역사공부도 하고 남도여행을 함께 따라다녀온듯 합니다. 황혼이 주는 행복을 부부가 함께 누리고 오심은 삶의 충전입니다. 아프기전 외국여행을 계모임에서 열흘넘게 함께 하다가보니 이방저방에서 부부싸움도 했답니다. 20 여년전이니 그때만해도 주로 선물문제로 다투게 되더랍니다. 미국카나다에가서 밤늦도록 고스톱치고 구경해야할 낮에는 차안에서 잠자고 지나고보니 여행을 그렇게 했구나 싶네요.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봄소풍의 여정을 그림처럼 그려놓은 글을 읽고나니, 내 가슴에도 어디로 떠나고 싶은 바람이 부네요.
발걸음 마다 고인 그 사연들이 아름답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먼거리 혼자서 운전하느라, 글감 보고 다듬느라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선생님 뒤 따라가며 여행 한번 잘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봄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무사히 돌아와서 좋은 글을 남겨주어서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이런 봄바람은 자주 나도 좋을 듯 합니다. 저도 선생님 따라 2박 3일 여행 잘 다녀 왔습니다. 저는 같은 곳을 가도 못 보고 못 느낀 것을 선생님께서 다시 짚어 주시니 다시 여행하고 온 바나 다름 없습니다. 선생님의 글따라 저의 여행을 되새기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안가본 곳이어서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고 새롭습니다. 우리 땅과 섬 곳곳이 역사, 예술, 삶의 기쁨과 슬픔이 서린 곳이기에 언젠가는 꼭 찾아 보고 싶습니다. 여행의 길잡이가 되는 글을 써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황혼의 봄바람이 가을바람으로 이어저도 좋을 듯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선생님의 필력이 부럽습니다
덕분에 저도 남도 여행을 다녀온 듯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황혼의 봄바람은 훈훈한 바람인가 합니다. 즐거운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