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72)
어머니의 이름으로
모친(76세)은 몸이 약하여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았지만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간병하고 있다. 젖은 장갑에 비누거품을 묻히더니 환자의 전신을 닦고 마른 수건으로 다시 닦는다.
환자는 24세였던 2003년 5월 출장 중 양산의 국도에서 빗길에 승용차가 미끄러지며 가드레일을 들이박고 굴렀다. 경추부 다발골절, 두개내손상, 척수손상으로 목 아래부터 사지마비 증세가 있어 손가락도 마비가 되었으나 다행히도 음식을 삼킬 수있고, 말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신마비로 일상생활 수행시 타인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한 상태이다. 또한 양측 무릎에 부종이 심하였다. 마비된 상태로 20년 이상을 끌었으니 사지가 극도로 쇠약해져 있다. 24살 아들이 하루아침에 생후 5개월 된 아기처럼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한 것이다. 처음엔 누나가 돕다가 결혼하여 나가고 모친이 전적으로 간병하게 되었다. 아들과 어머니 모두 2003년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이 보인다. 그런대도 목 위는 살아있어 이마에 작은 막대기를 달아 컴퓨터 자판을 짚으며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한번은 보니 모친이 복도 끝에서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어머니, 저를 왜 살렸어요? 목 위만 살아있는 이게 사람이에요?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편히 저승으로 갈 것을 왜 그렇게 목숨을 다해 저를 살리셨어요?“
“선생님,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우리 아들 목숨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수없이 기도했거든요.”
사고 이후 환자에게 시간은 정지되어 있었지만 세월은 흘러 청년은 이제 45세가 되었다.
20여 년이 지날 동안 어머니도 시간이 정지되어 있다. 어머니는 웬만한 간병인보다 환자를 더 잘 돌보는데 몸을 닦고 자주 돌려 눕히고 대소변을 일일이 다 받아낸다.
76세 여성이면 집에 가만히 있어도 몸이 아플 나이이다. 하지만 이분은 아파도 아플 수가 없고 아무리 힘들어도 1분 1초도 편히 쉴 수가 없다. 이 환자와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누가 먼저 저세상으로 갈지 알 수가 없다.
5월 어버이의 날에 이분의 가슴에 카네이션 꽃이 달려 있었다.
이전에 근무했던 병원에서도 어머니와 아들의 비슷한 사연이 있었다. 환자는 40대였는데 머리 부분에 큰 수술 흉터가 보였고 한쪽 팔다리에 마비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자전거를 타던 아들이 차에 받혀 멀리 튕겨 날아가 땅에 떨어지며 머리도 다치고 전신이 크게 부상을 입었다. 머리 수술도 몇 번 했고, 다리 골절 수술도 몇 번이나 했다고 곁을 지키는 노모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뇌를 다쳐 인지도 크게 떨어져 있었지만 미소만은 살아있었다. 손을 잡고 팔을 쓰다듬어 주면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연약해 보이는 노모가 물수건으로 부지런히 아들의 몸을 닦고 있다. 노모는 제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있을까 하고 걱정되는 작고 연약한 여성이다. 하지만 90kg이 넘어 보이는 아들의 몸을 돌려눕히는데 마치 작은 장난감처럼 쉽게 다루고 있어 놀랐다.
“어머님, 어떻게 그처럼 무거운 아들을 쉽게 다룹니까?”
“중학생일 때부터 아들의 몸을 다루다보니 지금까지 익숙해져 그렇다오.”
아들을 치유하는 분은 바로 이 어머니이다. 의사는 단지 어머니의 보조자에 불과할 뿐….
요양병원에 있다 보면 세상에 왜 이렇게 불행한 사람이 많고, 왜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이 많은가 하고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아들이 중학생부터 중년이 될 때까지 극진하게 간호하는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을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곳임을 알게 된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필연의 인연으로 자식과 연결되어 있다. 무조건적인 희생으로 자식의 고통에 동참한다. 이 어머니를 보면, 자식에게 부모란 정말로 정년 없는 봉사자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