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글쓰기
참고말씀: 왕상4:32; 딤후3:16; 벧후1:21
주제말씀: 눅1:1,2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 하나님은 언제나 글쓰기를 장려합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눅1:1,2)
하나님은 언제나 글쓰기를 장려하십니다. 이는 무엇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의 기록입니다. 성경은 모두 몇 명에 의해 기록되었습니까? 40여 명입니다. 몇 년 동안 기록되었습니까? 주전 1400년경부터 주후 90년경까지 약 1500년 동안입니다. 모두 몇 권을 기록하게 하셨습니까?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입니다. 즉 1500여 년 동안 다양한 배경을 가진 40여 명의 사람들을 통해 총 66권의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성경에는 모순이나 오류가 없습니까? 그들이 자의로 쓰지 않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3:16 상) /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1)
모세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다섯 권을 기록했고, 다윗은 150편의 시편 중 절 반가량을 지었으며, 솔로몬은 잠언 3,000가지와 노래 1,005편을 지었으며, 바울도 신약성경의 절반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왕상4:32)
물론 하나님은 이 40여 명 외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독려하셨습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눅1:1,2)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1500여 년간 40여 명의 사람들을 통해 66권의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 각자를 통해 다양한 글쓰기를 하게 하신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까?
* 비전글쓰기란?
글쓰기를 하되, 특별히 비전 글쓰기(vision writing)를 하도록 힘쓰기 바랍니다. 어떤 글쓰기가 비전 글쓰기입니까? 자신의 비전에 대하여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글로써 표현하는 것입니다. 왜 비전 글쓰기를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그때마다 주시는 비전에 관련된 영감이나 아이디어, 생각 등을 붙잡아두기 위함입니다.
붙잡아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주시는 것들을 놓치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남기기만 합니까? 아닙니다. 그건 메모(memo)에 불과하지만, 비전 글쓰기를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갑니다. 곧 처음에는 짤막한 단어나 문장에 불과했던 내용을 한 문단, 하나의 글,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비전 글쓰기는 항상 무엇에 근거를 두고 해야 합니까? 성경입니다. 어떤 글을 쓰든지 항상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어야합니다. 아무렇게나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게 아니라, 성경 몇 구절이든지 아니면 전체적인 맥락이 되든지 반드시 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글쓰기를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떤 습관이 필요합니까? 떠오르는 성경구절이나 관련 구절들을 메모해두는 습관입니다.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습니까?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글쓰기는 머리가 아닌 손으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단순히 자신의 생각대로 글을 지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전 글쓰기는 글짓기가 아닙니다.글짓기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글쓰기입니다. 즉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서 글을 써내려가는 것입니다. 소위 ‘손으로 쓰는 글 작업’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성경을 읽다가 어떤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먼저 적고 거기서부터 시작해가면 됩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우연히 어떤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먼저 적어두고 관련 성경구절들이 있는지를 찾아 같이 적어둡니다.
적었다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 6하 원칙에 근거하여 질문하기를 시작합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질문을 막 던지다 보면 그것들이 우리에게 답변을 내놓기 시작하는데 질문-답-질문-답... 끊임없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벽돌들이 쌓여서 건물이 되듯이, 문장들이 모여서 문단이 되고, 문단들이 모여서 하나의 글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벽돌을 쌓아둔다고 건물이 됩니까? 아닙니다. 벽돌과 벽돌을 모르타르(mortar)가 붙여주듯이, 문장들이 모여서 글이 되려면 다양한 접속사들을 자유자재로 넣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접속사만 잘 골라도 글이 훨씬 더 매끄러워질 수 있고, 글의 내용 역시 더욱 심화될 수 있습니다.
또(는), 더구나, 하물며, 그러니, 따라서, 다만, 그러나, 하지만, 그런데, 이같이, 이처럼, 이를테면, 뿐만 아니라, 그러므로, 그러기에,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리고, 아울러, 허면, 한편, 과/와, 하고, 하며, 그리고, 및, 그렇지만, (이)랑, (이)고, (이)며, -면서, (이)나, (이)든지, 거나, 지만, |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비전글쓰기(vision writing)를 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해 본적이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비전에 대하여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글로써 마음껏 표현해볼 수 있길 바랍니다.
* 수필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비전 글쓰기란 자신의 비전에 대하여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글로써 표현하는 것이므로 글쓰기를 할 때 굳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아도 됩니다. 글의 형식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표현해볼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도 굳이 형식을 따지자면 어떤 것이 가장 무난할 수 있습니까? 수필(隨筆, 에세이)입니다. 수필(essay)이란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 따위를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기술한 산문(散文) 형식의 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필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단상들을 적어도 좋을 것입니다.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처럼 말입니다. 블레즈 파스칼(Pascal, Blaise, 1623~1662), 그는 누구입니까?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과학자, 수학자, 철학자, 신학자입니다. 그는 팡세라는 명작(名作)을 남겼는데, 팡세(Pensées)란 무엇입니까? ‘생각’이라는 뜻으로, 파스칼이 세상을 떠나기 3,4년 전에 집필을 시작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할 목적으로 쓴 수백 편의 단상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굳이 길고 장황하게 쓸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그때마다 떠오르는 단편적인 생각(단상, 斷想)들을 글로써 붙잡아 두기만 하면 됩니다. 그 때마다 주신 생각들을 짤막하게 써두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것들이 무슨 유익이 있냐고 의문시할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비전글쓰기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유익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막연했던 우리의 생각들이 분명해지고, 애매했던 부분들이 확실해지며, 난해했던 문제들이 하나둘씩 해결되어 감으로써 말입니다.
논리적으로 글을 쓸 수 있다면, 칼럼(column) 형식도 좋습니다. 칼럼 형식이야말로 그때마다 떠오르는 비전의 단상들을 붙잡아 두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비전 글쓰기(vision writing)를 해 본적이 있습니까?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틀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마다 주신 생각이나 사실 등을 글로 써서 자유롭게 표현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