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원주민 역사 시리즈 68부
● 기숙학교 강제 수용에 대한 배상 판결 ●
2005년 캐나다 사법 역사상 최대 규모인 50억 달러의 손해배상금액 조정이 최종 타결되었다.
버나드(Nora Bernard)여사가 1993년 캐나다 정부와 실제로 학교 운영을 맡았던 4 개의 종교단체(가톨릭, 성공회, 장로교회, 연합교회)를 상대로 인디언기숙학교(캐나다에서는 residential school, 미국에서는 boarding school) 재학 시 신체적, 정서적,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7만 명을 대표하여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12년간의 긴 법정 다툼 끝에 승소 판결을 얻어 냈다.
캐나다에서는 버나드 여사의 케이스 외에도 유사한 소송이 많이 벌어졌는데, 엄청난 배상금 부담으로 인하여 관련된 종교단체, 특히 성공회는 도산할 지경에 이르렀다.
캐나다의 기숙학교 제도는 1870년대 당시 국회의원이던 다빈(Nicholas Flood Davin)이 주도하여 도입된 것으로서 인디언들을 백인 중심의 주류사회로 동화(assimilation)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인디언 어린이들을 그들의 전통주거시설인 위그웜(wigwam)으로부터 나오게 한 후 기숙학교로
강제로 수용하여 그들의 고유 언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영어만을 쓰게 했다.
그들의 고유 풍습을 버리게 함으로써 인디언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게 만든 다음 백인 문화를 강제로 주입시킬 목적으로 시행된 이 정책은 1996년 마지막으로 기숙학교가 문을 닫을 때까지 100년 이상 지속되었다.
기숙학교의 설립과 운영은 종교단체가 맡았는데 학교의 생활환경은 지극히 열악하여 수많은 학생들이 죽어갔고 살아남은 학생들도 성적 학대를 포함한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고 가족의 사랑을 받지도 못함으로써 입게 된 심리적 외상으로 인하여 훗날 약물중독, 가정폭력, 실업, 자살 등의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게 된 것이다.
기숙학교를 나온 인디언들은 문명의 교차로에서 방황하는 형국이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옛 방식으로 살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백인 주류사회에 완전히 동화될 수도 없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2008년 캐나다 정부는 기숙학교로 인하여 피해를 본 본인과 그 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기숙학교 스캔들이 캐나다에
비하여 늦게 이슈화되었다.
2003년 원 스타(Sonny One Star)와 다른 다섯 명의
수우족 인디언들은 연방정부와 로즈버드 수우 인디언 보호구역(Rosebud Sioux Indian Reservation) 내에 있던 성프란시스코 미션기숙학교(St. Francis Mission boarding school)를 대상으로 인권운동가인 프리셔(Gary Frischer)의 도움을 받아 250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대표소송을 제기하였다.
원고를 포함한 수많은 인디언 학생들이 학교의 신부, 수녀, 수사 등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포함한 다양한 신체적, 육체적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였다.
2003년 6월 2일자 워싱턴 포스트지에
이 소송의 대표 원고인 원스타의 이야기가 게재되었다.
그는 6살에 이 학교에 강제로 수용되었다고 한다.
다른 인디언기숙학교에서 인디언 이린이가 죽었다는 말을 들어서 알고 있는 터라 손자가 학교로 끌려가자 할머니는 죽음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학교 안에서 매를 맞는 것은 일상사가 되었고
곧 성적 학대가 시작되었다.
성적학대에 가담한 사람들은 두 명의 수녀와 다섯 명의
신부 또는 수사였는데, 성추행의 형태는 애무, 구강성교
또는 강간의 형태이었으며, 학대 행위는 8-9살 무렵까지 지속되었다고 한다.
특히 한 수녀가 휴식시간에 반복적으로 성적 접근을
해오는 것이 두려웠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그 수녀의 냄새와 손놀림이 느껴진다고
하면서 정말 몹쓸 여자였다고 털어놓았다.
원 스타는 십대에 벌써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중증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얼굴은 흉측하게 변해갔다고 한다.
뒷날 부족 동료의 도움으로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결혼하여 아들 셋을 보았으나 어린 시절 겪었던 충격으로 인하여 사람을 사랑할 줄을 몰랐다고 한다.
자녀들을 포옹해 주는 법도 없었으며 사랑한다는
말도 할 줄 몰랐는데 부인으로부터 하나씩 배워가면서
새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불행스러운 일이 비단 이 학교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사우스다코타 주 내에서 종교 재단이 운영한 많은 학교에서 만연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하였다는 소식은 듣지 못하였다. 오히려 2012년 9월 6일 사우스다코타 주의 법원은 양크톤 수우 인디언 보호구역(Yankton Sioux Reservation)에 위치한 한 기숙학교의 학생 학대 사건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결정했다.
원고 패소 판결의 논지는 첫째로 학대 사건의 시효는 주법에서 3년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미 그 시한이 경과하였으며, 둘째로 학대 행위는 학대 행위자의 개인적인 결정에 의하여 이루어졌을 뿐 교구의 업무수행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가톨릭교회가 책임질 성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유사한 사례에서 캐나다에서는 인디언이 일방적으로
승소한 데 반하여 미국에서는 법원이 오히려 정부와 종교단체의 손을 들어 주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러한 현상은 양국 간에 존재하는 법률의 차이로
인한 것인지 인디언들에 대한 기득권자의 인식의
차이로 인한 것인지 잘 모를 일이다.
● 인디언에 대한 사과 결의(Native American Apology Resolution) ●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2009년 12월 9일 '미국원주민에 대한 사과결의문
(Resolution of Apology to Native Peoples of the United States)'이 포함된 법안에 서명했다.
그동안 미국 의회는 사과 결의문 채택과 관련하여 많은 논의가 있어왔는데, 우여곡절 끝에 동 결의문을 '2010년도 국방예산지출법안(2010 Defense Appropriations Act)' 속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결론이 났다.
이 정도만이라도 전에 비하면 많이 진전된 것이긴 하나 원주민들은 여전히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아직도 솔직하게 완전히 공개적으로 명명백백하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를 은근히 비난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때까지도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비준한 '세계원주민인권선언(The United Nations Declaration on the Rights of Indigenous Peoples)'에 미국만이 서명을 거부하고 있었던 점을 보더라도 의회와 정부는 원주민 문제에 관한 한 크게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주민들은 이렇게 중요한 결의문을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고 다른 법안 속에 슬쩍 묻어서 통과시킨다는 게 납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의문 속에 면책 조항을 삽입하여 이 결의문이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원주민의 대정부 소송에서 인디언에게 유리한 근거로는 쓰일 수 없다고 밝히고 있는 점 또한 사과의 진정성을 훼손시킨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