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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2006년 7월 30일 / 대예배 / 요 6:47-69
요 6:24-40 / 24) 군중들은 그곳에도 예수와 제자들이 없자 배를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왔다. 25) 그들은 바다를 건너와 예수를 뵙자 "선생님, 언제 이리로 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26)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내 이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먹을 것을 배불리 주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 애써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 28)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묻자 2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이 우선과제> 30-31) 그들이 다시 말하였다. "만일 당신이 메시야이신 것을 우리가 믿기를 원하신다면 우리에게 더 많은 표적을 보여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 있던 때처럼 날마다 필요한 음식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우리의 조상들이 배가 고프면 주께서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주셨다'고 한 성경 말씀처럼 말입니다." 3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그들에게 떡을 내려 준 것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이시다. 이제 아버지께서는 하늘로부터 참된 떡을 너희에게 내려 주신다. 33) 하나님께서 주시는 떡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준다." 34) "선생님, 그 떡을 날마다 우리에게 주십시오"하고 그들이 말하였다. 35)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내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영적인 축복) 36)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내가 전에도 말한 대로 너희가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 일이다. 37) 하지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은 반드시 내게 올 것이고 나는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39) 하나님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들을 단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일이다. 40)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고 마지막 날에 아들인 내가 그들을 살리는 일, 이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요 6:47-63)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48) 내가 생명의 떡이기 때문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떡을 먹었으나 결국 죽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이 떡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이 떡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이 떡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는 내 살이다." 53)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할 수 없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고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모두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안에 있다. 58)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떡이다. 너희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고도 죽은 그런 떡이 아니다. 이 떡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 60) 그러나 제자들조차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운 말씀만 하시는구나. 어느 누가 그 말뜻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단 말인가?'하고 생각하였다. 61) 예수께서 제자들이 불평하며 수군거리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그러면 인자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볼 때는 어떻게 하려느냐? 63)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생명에 관한 것이었다. 66-69)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를 떠나갔다. 67) 그러자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다. "너희도 내 곁을 떠나려 하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말씀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69)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 속죄(贖罪)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은 이미 유대인의 제사 문화 속에서 뿌리 깊게 전해져온 제사 의식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을 속죄하기 위해 속죄제를 드립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제사가 있는데 양을 끌고 와서 제사장이 양의 머리에 안수를 합니다. 그 뜻은 인간의 모든 죄를 그 양에다 뒤집어씌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양은 운명적으로 죽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죄 값으로 죽는 것입니다. 그 양을 잡아서 함께 먹는 순서가 있는데, 함께 나누어 먹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 영혼 가장 깊은 곳에 영접하게 되고, 속죄는 물론이거니와 하나님과 성도들과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제사의식이 오래 전부터 실시되어 왔습니다. 이때 제사에서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만약 먹지 아니하면 그 제사는 무효가 됩니다.
본문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제사 음식은 반드시 먹어야 되는 것같이 예수의 살은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먹고 마셔야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 더구나 예수님은 “이것을 영원히 기념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의미를 우리가 상징화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많은 관계성 중에서 가장 깊은 관계를 두 가지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① 사랑하는 남녀가 사랑의 최고 표현을 결혼입니다. 이 결혼(結婚)은 그 단어가 의미하듯이 예식과 함께 마음과 뜻과 힘을 하나로 결합하기에 성경에서도 “둘이 한 몸이 될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신성시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어느 민족이나 가지고 있습니다.
② 예수님의 살을 먹는다는 의미는 그 이상의 의미 관계입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승화시키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런데 이 살을 나누는 관계보다 더 진한 관계가 있습니다. 피를 나누는 관계입니다. 그것이 자녀입니다. 자녀와의 관계는 영원히 뗄 수가 없습니다. 피를 나눈 나의 분신이라는 의미가 뿌리 깊이 박혀 있습니다. 예수의 피를 마신다는 의미는 그런 관계의 결합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주님과 나는 이제 위대한 생명의 결부가 이루어져서 떼려고 해도 뗄 수 없고, 잊으려야 해도 잊을 수 없는 생명의 진액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 주고받고 하지만 부모는 자식에게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렇게 살과 피를 물려받는 아버지의 자녀라는 의미로서의 표현입니다.
이 관계에 대한 분명한 고백을 가진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요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이런 관계를 말씀하신 성구를 고른다면 갈 2:20와 요 15:5-10입니다.
갈 2:20 /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여 나를 위해 그 몸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은 덕분에 지금 내가 참 생명을 얻었습니다.
요 15:5-10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내 안에 살고 내가 그 안에 살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6) 만일 누구든지 나를 떠나면 필요 없는 가지처럼 버려질 것이요, 말라서 다른 것과 함께 묶인 채 불에 태워질 것이다. 7)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내 안에 살며 내 말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거든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라.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내 참 제자가 된 사람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 살아가라. 10) 너희가 내 말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사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사는 것과 같다.
※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성도라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1.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다는 사랑의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롬 8:35-39 / “그러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려움이나 재난을 당할 때, 또 박해받고 죽임을 당한다고 할 때, 과연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더 이상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겠습니까? 굶주리고 헐벗고 위험을 당하고 죽음에 직면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겠습니까? 36)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때문에 종일토록 죽임을 당하고 도살당할 양처럼 취급당하며 살아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결국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큰 승리를 거두고야 말 것입니다. 38)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죽음도 그렇게 할 수 없고, 생명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천사들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지옥의 모든 세력을 다 합친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멀리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오늘에 대한 우리의 염려도 내일에 대한 우리의 공포도 39) 또는 하늘 높이 올라가거나 바다 깊은 곳에 들어가거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2. 성찬을 마친 예수님이 고난의 잔을 마시려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갔듯이 우리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졸지 말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고난의 잔을 마십시다.
마 26:36-39 /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라는 동산으로 가셨다. 거기서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고 돌아올 때까지 여기 있으라"하고 이르신 뒤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예수께서는 근심과 번민에 싸인 얼굴로 38) 세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것 같구나. 여기 머물러 있으라. 여기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 다오." 39) 예수께서는 홀로 조금 앞으로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다. "아버지, 만일 하실 수만 있으시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3.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뒤를 이어 세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마 20:17-28 /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열두 제자를 곁으로 불러 18) 예루살렘에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말씀하셨다. "나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19) 그들은 나를 로마 정부에 넘겨주어 그들의 조롱을 받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20) 그때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절을 하며 청을 드렸다. 21) "무엇을 원하느냐?" 예수께서 물으시자 그 부인이 대답하였다. "주님의 나라가 서거든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22) 그러자 예수께서 그 부인에게 "네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하는 말이냐?"하고 말씀하신 뒤에 야고보와 요한을 향하여 다시 "너희는 내가 마시게 될 그 무서운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예, 저희는 마실 수 있습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도 정녕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누가 앉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내 권한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24) 다른 열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개하였다. 25) 그러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왕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백성을 내리누른다. 26) 그러나 너희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만일 너희가 으뜸이 되기를 원하거든 반드시 종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라. 28)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하여 목숨을 내주려고 온 것이다."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기를 원한다면 이렇게 하십시오.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이렇게 하십시오. 우리도 예수님처럼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과 목숨을 다 하십시다.
4.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마 4:18-22에서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다가 배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두 형제 베드로라고도 불리는 시몬과 안드레 그리고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 안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겠다"하고 말씀하자 곧바로 그물을 버려두고, 일하던 것을 그만두고 아버지를 남겨 놓은 채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요 1:43 이하에서 갈릴리로 가려던 참에 빌립을 만나자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빌립은 자기뿐만 아니라 나다나엘까지 예수님께 인도하여 함께 제자의 길을 갔습니다.
또 마 9:9에서 예수께서 큰 길로 내려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와서 내 제자가 되라"하고 말씀하시자 마태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나머지 5제자들은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는지 기록은 없으나 대개 그렇게 따랐을 것입니다.
물론 이들은 세상을 등지고 사도가 되기 위하여 제자의 길을 나선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들 모두가 다 그렇게 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밭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 집에서 멧돌을 돌리는 여인들 심지어 방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까지 휴거가 될 수 있다면 우리들은 있는 처소에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면 됩니다. 대신 예수님의 그 정신과 그 행위를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세상 일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5. 예수님을 따르고자 할 때에 이러한 마음과 다짐이 필요합니다.
a. 마 11:28-30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온유와 겸손은 내 자신의 신앙생활에서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제자의 길을 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당연히 성도가 갖추어야 할 인격입니다.
b. 마 8:18-22 / 예수께서 군중이 떼 지어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갈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셨다. 19) 바로 그때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가겠습니다." 20)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21) 제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선생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22)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죽은 자들의 장례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
c. 눅 18:22, 29-30 / 유대인의 지도자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다가 네 재물을 쌓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29)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리는 사람은 30)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의 보상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d. 눅 9:22-24 / "인자는 많은 고난을 겪고 유대 지도자들인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23) 그러고 나서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욕망과 편안한 것들을 다 버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24) 누구든지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지만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다.
■ 뉴멕시코 알바버지라고 하는 작은 도시에 요양원이 하나 있는데, 아주 감동적인 역사가 있습니다. 한 건강하지 못한 신학생이 어떤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사랑하였지만 신학생은 점점 더 폐가 약해져서 요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건강이 점점 더 나빠지자 그 아가씨의 부모는 딸에게 그 청년을 단념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에게 가장 기쁜 영혼의 사랑을 준 사람인데 그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하여 버지니아에 살고 있었던 그 아가씨는 뉴멕시코 요양원으로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원장의 서기 일을 보면서 작은 월급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치료비를 보탰습니다. 그런데 병이 점점 더 악화되어 일주일 후에 죽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일하는 목사님을 찾아가서 죽기 전에 결혼식을 올려달라고 합니다. 이때 목사님이 “이제 일주일 안에 죽을 것 같은데 왜 이 사람을 놓고 결혼식을 올리려 하느냐?”고 했더니 “그가 죽더라도 그의 흔적을 내 몸과 마음에 남기고 싶습니다. 결혼을 하면 그의 성을 내가 따르게 될 테니까 빨리 결혼하고 싶습니다.” 미국에서는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야 됩니다. 이에 목사도 할 수 없이 급하게 결혼식을 해주었습니다. 며칠 있다가 남편은 죽었습니다. 장례식에서 그의 아내가 직접 조가까지 불렀습니다. ‘내가 요양원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그 요양원을 떠나지 아니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90세에 이르도록 그곳의 책임자가 되어서 그곳을 찾아오는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한경직 목사님도 미국에 계실 때 그 요양원에 가서 그분의 사랑의 간호를 2년 동안이나 받았다고 합니다.
■ 로마에서 아피안 로(路)의 로마문(門)을 지나 남쪽으로 항구를 향해 가다보면 쿼바디스(Quo Vadis)라는 교회가 있는데, 이 예배당은 사도 베드로에 관한 전설을 따라 그를 기념해서 세운 곳입니다. 네로의 박해가 극에 달하였을 때, 베드로는 성도들의 강권에 의해 로마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피신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그를 향해 다가오는 신비한 형체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이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ae)" 예수님은 "내 종 베드로가 교회를 버리고 도망친, 내가 로마로 가서 다시 십자가를 지려 하노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눈물로 회개하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천지신명 앞에서 왕과 공신들이 행하는 혈맹의식
전통시대 동양의 공신은 국가나 왕실의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공신이 책봉되었다는 것은 그 만큼 위기상황이라는 의미였다. 비록 상황이 수습되어도 공신들 내부의 배신과 반목으로 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늘 있었다.
왕이나 공신들이나 다 같은 사람인데, 변덕스런 사람 사이의 배신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영원한 신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그 대답이 바로 공신회맹제(功臣會盟祭)였다. 공신회맹제는 천지신명 앞에서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서하는 의식이었다. 배신한다면 천지신명이 내리는 천벌을 감수하겠다는 의미였다. 알 수 없는 사람의 일이라 신령한 존재에게 영원한 믿음을 의지하는 것이었다. 공신회맹제는 왕이 공신들을 거느리고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왕세자가 대신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은 왕이 직접 참여하였다. 공신회맹제는 공신이 책봉된 직후에 거행했다. 공신회맹제가 결정되면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우선 회맹제를 위한 준비물들을 마련해야 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을 거행할 희맹단, 천지신명을 상징하는 신주, 그리고 맹서문이었다.
조선시대의 회맹단은 보통 한양이나 경복궁의 북쪽에 설치되어 북단이라고도 하였다. 회맹단은 터를 평평하게 고른 다음에 정사각형의 단을 쌓은 제단이었다. 조선시대 회맹단의 크기에 대해 기록으로 남은 것은 없는데,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주례의 맹단과 유사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조선시대의 회맹의식 및 준비물들이 기본적으로 주례의 내용을 참조로 했기 때문이다.
주례에 의하면 회맹단은 사방96척(약 20m), 높이 4척(약 1m)의 크기로 만들었다. 회맹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동쪽과 서쪽에 2개를 만들었다. 이중에서 왕은 동쪽의 계단을 이용했다.
천지신명을 상징하는 신주는 나무로 만든 사방 4척 크기의 정육면체였다. 신주의 위아래는 천지를 상징하는 검은색과 황색, 사방에는 방향에 따라 동쪽에는 청색, 서쪽에는 흰색, 남쪽에는 붉은색, 북쪽에는 흑색을 칠했다. 이 색깔은 천지사방의 신령들을 상징했다.
맹서문은 회맹제에 참여하는 왕과 공신들이 천지신명 앞에 맹서하는 글이다. 맹서문은 참여자들을 대표하여 왕이 천지신명께 고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맹서문 뒤에는 참여자 모두가 자신의 관직명 아래에 직접 서명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공신회맹제에 사용된 맹서문의 사례가 풍부하게 실려있으며, 공신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실물 맹서문도 적지 않다.
공신회맹제에 참여할 사람들은 7일 전부터 재계하기 시작했다. 2일 전에는 회맹단 앞에다가 필요한 준비물을 설치했다. 왕이 들어갈 천막을 회맹단 앞의 좌측에 서쪽을 향하도록 마련했으며, 그 남쪽으로는 공신들이 머물 천막을 세웠다. 공신들의 천막은 왕이 머무는 북쪽을 향하도록 하였다. 1일 전에는 제사고기로 사용할 희생물과 혈맹에 사용할 피를 취할 희생물을 대령시켰다. 제사의 고기로 사용할 희생물은 소, 양, 돼지였으며, 피를 취할 희생물은 소, 닭, 돼지였다. 고기로 쓸 희생물은 이날 잡았다. 행사 당일 회맹단 위에 천지신명의 신주를 남쪽 방향으로 설치했다. 그 오른쪽에는 왕골자리를 깔고 맹서문을 놓았다. 천지신명의 신주와 맹서문 앞줄에는 향로, 향합, 촛불을 설치하고 그 앞줄에는 전날 잡은 소, 양, 돼지고기를 담은 그릇을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놓았다. 그 앞에는 술잔과 술통을 두었다. 의식이 거행되기 5각 전에 왕이 의장을 갖추고 궁궐을 나와 회맹단 앞에 설치한 천막으로 들어갔다. 이 때 왕은 최고의 예복인 면류관에 구장복의 복장을 했다.
3각 전에는 소, 닭, 돼지를 잡아서 그릇에 피를 받았다. 2각 전에는 회맹제에 참여할 공신들 및 진행자들이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1각 전에는 행사를 진행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로 나갔고 이어서 공신들이 자리를 잡았으며 천지신명의 신주를 향해 네 번의 절을 올렸다. 준비가 완료되면 왕이 천막을 나와 회맹단 앞으로 가서 공신들과 함께 네 번의 절을 올렸다. 절을 마친 왕은 동쪽 계단으을 통해 회맹단 위로 올라가 천지신명의 신주 앞에 향불을 피우고 술을 올렸다. 이어서 동쪽 계단을 통해 회맹단 아래로 내려온 왕은 공신들과 함께 단 앞에 꿇어앉았다. 그 다음이 혈맹의식의 핵심인 삽혈, 즉 피를 입 옆에 바르는 의식이었다. 왕부터 시작하여 공신들은 차례로 희생물의 피를 입 옆에 발랐다. 뒤 이어서 맹서문을 읽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함께 피를 마시고 천지신명에게 맹서하는 삽혈동맹 의식이었다. 왕과 공신은 함께 피를 마신 동맹이므로 이를 혈맹관계라고도 하였다. 왕의 역할은 여기까지 였으므로 읫기을 마친 왕은 곧바로 환궁했다. 희생물로 사용한 소, 닭, 돼지 등은 회맹단 뒤쪽에 파놓은 구덩이에 묻었다. 맹서문도 희생물의 위에 놓아 함께 묻었다. 맹서문을 재서(載書)라고도 하였는데, 희생물 위에 얹어서 함께 묻었기 때문이다. 왕이 참여하는 공신회맹제 말고도 공신들끼리 따로 모이는 회맹제도 있었다. 이것은 공신들끼리 모여서 국가와 왕에 대한 충성을 맹서하는 의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공신들의 후손들이 모여서 행하는 의식도 있었다.
이외에도 왕과 공신들은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여서 잔치를 하였다. 이른바 공신연(功臣宴)이라고 불리는 이 잔치는 1년에 네 차례씩 하였다. 공신연을 하게 되면 왕이나 공신들은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함께 즐겼다. 이 기회를 이용해 왕과 공신들은 그동안의 서운함이나 오해를 풀 수 있었다. 회맹제와 공신연을 통해 왕과 공신들은 영원한 우의를 확보하고자 했다. 왕과 공신들이 거행하는 의식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공신들의 역할이 중요했었으며, 사실상 조선왕조의 핵심세력은 왕과 함께 공신이었다. 왕과 공신간에 그리고 공신들 상호간에 신뢰가 돈독할 때에 정국은 평온을 유지했다. 공신회맹제와 공신연은 정치안정을 이루기 위해 초월적인 존재에까지 의지하려고 했던 당시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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