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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경건의 연습과 훈련의 유익
2019년 4월 21일 / ♬ 324장 / 딤전 4:5-8
1.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후렴>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2. 겟세마네 동산까지 주와 함께 가려 하네 피땀 흘린 동산까지 주와 함께함께 가려네
3. 심판하실 자리까지 주와 함께 가려하네 심판하실 자리까지 주와 함께 함께 가려네
4. 주가 크신 은혜 내려 나를 항상 돌보시고 크신 영광 보여주며 나와 함께 함께 가시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성도들이 늘 찬송해야 할 곡 중에 하나이다.
■ 현대 첼로 연주의 아버지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였던 파블로 카잘스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첼로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영국 BBC에서 그에 관한 특집방송을 제작하면서 인터뷰를 했다. 기자는 평소에 궁금하던 것을 질문했다. “선생님께서는 세계 최고의 첼리스트이십니다. 그런데 95세 된 지금까지도 하루에 6시간씩 연습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왜 힘들게 계속해서 연습을 하십니까?” 카잘스는 “지금도 연습을 통해서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90세가 넘어서도 매일 6시간씩 연습하며 기본기를 다지는 데 비결이 있었다. ‘기본기 없는 고수는 없다’는 말이 있는데 기초와 기본의 중요성은 신앙생활에도 적용된다. 건강하고 튼튼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기초와 기본을 굳건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말씀묵상과 기도생활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고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하며 예수님을 닮기 위해 끊임없이 힘써야 한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 [출처] - 국민일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치, 추구, 기준이 무엇인가? 성경이 주어진 이후로 지금까지의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소원이 있다. 바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이다.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바로 ‘경건’(Godliness)이다. 이 ‘경건’에 대한 책 가운데 가장 잘 설명한 책 중의 하나가 18세기의 경건주의자인 윌리암 로오(William Law, 1686-1761)가 쓴 「경건한 삶을 위하여」(A Serious Call to a Devout and Holy Life)이다. 그는 이 경건을 정의하기를 ‘하나님께 드려지고 바쳐진 삶’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삶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면서 경건의 내용들에 대하여 기도, 겸손, 순종에 이어 삶의 실제적인 부분이 시간 사용문제, 재물의 사용문제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경건’이란 말이 헬라어로 ‘유세베이아(ευσεβεια)’라고 하는데, 이는 ‘유(ευ,좋은)’+ 세베이아(σεβεια, 두려움)의 합성어이기에, ‘경건’에 대한 가장 성경적인 뜻은 ‘바람직한 두려움’이고 정의하였다. 즉, 경건이란 세상의 사건이나 환경, 사람으로 인한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있음으로 인해 갖게 되는 ‘좋은 두려움’이라고 한 것이다. 또한 ‘경건’은 어떤 이상(理想 -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이나, 이념(理念 - 이성에서 얻은 모든 경험을 통제하는 최고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 태도임을 강조했다.
왜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경건’을 요구하시는가? 즉, 경건은 하나님의 본성이신데, 하나님은 당신의 본성인 이 ‘경건’을 통해 당신과 원수된 인간에게 당신을 만나게 하시는 길을 여셨다. 즉, 경건은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호환성’(compatibility)이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우리는 이 ‘거룩’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 1:18-19 /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오라, 우리가 이 문제를 상의해 보자! 너희가 아무리 죄악에 찌들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너희의 죄악을 씻어 주리라. 금방 떨어진 눈송이보다도 더 희게 하리라. 너희가 진홍같이 붉게 물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너희를 양털처럼 희게 씻어 주리라. 19) 너희가 내 도움을 받으려고만 하면, 너희가 내 말을 듣기만 하면, 너희는 땅이 내는 좋은 것을 먹을 수 있으리라.
사도 바울은 이 ‘경건’의 비밀을 알았기에 이렇게 고백하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권면하였다.
딤전 4:5-8 /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기 때문입니다. 6) [그리스도의 훌륭한 일꾼] 이러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 가르쳐 주시오. 그러면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의 훌륭한 일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가 따르는 믿음의 말씀과 건전한 가르침으로 성장하여 보다 큰 인물이 될 것입니다. 7) 공허한 이론과 저속한 신화나 전설을 가지고 논쟁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오. 그대의 시간과 힘을 영적인 성장을 훈련하는 데 사용하시오. 8) 육체의 훈련도 좋지만 경건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생활 태도를 몸에 익혀 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노력하시오. 이것은 이 땅위의 생활뿐 아니라 오는 세상의 생활에도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 경건이 이와 같이 중요한 것임을 알았던 바울은 믿음의 후배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다. ‘연습하고 훈련하라’이다. 가만히 탁구나 야구, 농구, 베드멘트, 축구, 볼링을 비롯한 모든 운동을 보면 참 신기할 때가 많다. 그리고 선수들을 보면 더 신기하다. 저 정도의 수준까지 오르려면 어느 정도 연습해야 하는지?
우리가 알다시피 운동선수의 그러한 수준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훈련과 연습의 결과이다. 운동선수들의 운동연습과 훈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은 거의 극기에 가까운 것이다.
탁구의 경우, 한 선수가 상대방이 스매싱한 공을 똑같이 스매싱하여 받아칠 수 있기를 위해 수없는 반복 훈련을 통하여 몸의 근육이 정확히 그 때 해야만 하는 행동과 동작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야구도 마찬가지고, 모든 운동이 다 마찬가지이다. 모든 운동의 목표는 좀 전문적인 표현으로 쓰면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어떤 한 행동이 완전히 몸에 베일 때까지, 그것을 몸의 모든 세포와 근육이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그것도 상상할 수 없는 짧은 시간에 수행해 내게 하는 작업이다. 그것이 운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운동뿐만이 아니다. 음악도 그렇고, 발레도 그렇고, 미술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다. 모든 것은 끊임없는 훈련과 연습을 통하여 ‘무의식이 의식화’ 된다. 무의식적인 행동이 어떤 의식보다 더 정확해지게 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훈련과 연습을 소화해 내고 있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선수는 올림픽 우승 후 인터뷰에서 ‘연습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고 싶었다.’라는 말을 했었다. 훈련과 연습을 통하여 성공을 이루어낸 것이다.
▶ 어느 의대생의 이야기다. 의사가 되려면 2년 정도 의과 대학에서 열심히 이론에 대해 공부를 한다. 그런 다음에는 병원에 직접 가서 이것저것을 보고 배운다. 이것을 로테이션이라고 부른다. 몇 주 동안은 산부인과에 가서 보고 배운다. 몇 주 동안은 수술실에 가서 수술하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몇 주 동안은 소아과에 가서 배웠다. 이렇게 전체를 한번 다 돌고 자기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선택해서 앞으로 자기의 분야로 삼게 된다. 그런데 이 학생이 수술실에서 가장 많이 보고 충격 받은 것이 있는데 다리를 자르는 것이었다. 2주 동안에 14명의 다리를 잘랐다. 그래서 왜 그렇게 많은 다리를 자르느냐고 물었더니 당뇨병 환자가 자기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피 순환이 잘 되지 않아 합병증으로 인해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면 육체의 연습을 잘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합병증없이 살아간다. ○○○ 목사님의 어머니는 60세쯤 당뇨병 환자가 되었는데, 의사가 운동을 하라고 하니 열심히 하셨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동네를 몇 바퀴씩 돌았다.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며 육신의 훈련을 하니 지금 84세인데도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육신의 연습을 한 사람이 얻는 유익이다. 그런데 이러한 연습은 육체를 가지고 있을 동안에만 유익하다.
30-40년 전만 해도 예수 믿는 사람을 향해 ‘예수쟁이’라고 했다. ‘쟁이’라는 말은 사람을 좀 비하하여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전문가’라는 의미이다. ‘쟁이’라는 말과 비슷한 말로 ‘꾼’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우리들을 보고 ‘예수쟁이’라고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예수 믿는 것을 예전처럼 우습게 여기고 비하하려는 생각이 없어진 까닭이기도 하지만, 세상 사람들 보기에도 우리들이 ‘쟁이’이란 말을 들을 만큼 예수를 열심히 잘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믿음의 선배들이 받았던 비아냥거림은 면류관이었다. 저들은 정말 ‘예수쟁이’였다.
우리 신앙은 매우 ‘의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전혀 무의식적이지 않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전혀 기독교적이지 못하다. 말은 기독교인라고 하지만, 실제의 삶과 행동은 전혀 기독교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로, ‘훈련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습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몸에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옛날 평양에 최권능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온 평양 거리를 다니시면서 ‘예수 천당’을 외치며 전도하셨던 유명한 분이다. 최 목사님이 신사참배의 문제로 경찰에 잡혀 고문을 받았다. 고문하는 순경이 매를 때릴 때마다 최 목사님은 ‘예수’, ‘천당’ 하면서 매를 맞으셨다. 고문하는 순경이 하도 기가 막혀서 최 목사님에게 물었다. 너는 매를 맞으면서도 ‘예수 천당’을 하느냐? 이에 대한 목사님의 대답이 또한 명언이셨다. ‘내 몸에는 예수가 꽉 차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튀어 나오니 듣기 싫으면 때리지 마라.’ 정말 명언 중의 명언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죄인들이다. 몸의 영적인 근육이 전혀 말씀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그런 상태로 태어났다. 그런 자신을 훈련을 통하여, 연습을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 나가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의 ‘영적 근육’이 말씀을 기억하여, 사탄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우리를 공격해 오던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식대로 반응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만 한다.
매실을 정성껏 깨끗이 씻어서 얼마의 설탕에 재어 놓는다. 처음에는 매실과 설탕이 따로, 따로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안에서 효모가 생기면서 매실과 당분이 하나가 되어 매실청이 된다. 발효시간에 따라 약으로까지 쓰인다. 사실 매실은 열매 그 자체로서 별로 그렇게 매력적이지 못하다. 먹을 수도 없다. 그러나 설탕에 재어지고, 발효가 되면서 시간이 걸려 숙성되면, 좋은 향과 맛을 내는 열매가 된다.
예수를 믿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재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과 생각과 삶 속에, 말과 행동 속에 재어져야만 한다.
히 8:8-12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나무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아, 너희는 똑똑히 듣고 알아라.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 전체를 상대로 새 계약을 체결하겠다. 9) 물론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도 계약을 체결한 일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것과 아주 다른 새 계약이다.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나는 그들을 데리고 나왔다. 내가 이렇게 그들을 해방시키던 날에 그들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나는 그 계약을 충실하게 지켜 주었으나 그들이 일방적으로 그 계약을 깨뜨려 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미워하고 징계하였다. 10) 그러나 이제 내가 이스라엘 백성과 체결하려는 새 계약은 계약 자체가 완전히 옛 것과 다를 것이다. 이 계약은 내가 각 사람과 개인적으로 체결하겠다. 나는 이제 나의 새 계약을 돌판에 써서 그들에게 주지 않고 그들 각자의 마음과 양심에 새겨 놓겠다. 나는 이렇게 내 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새겨 놓고 그들의 부드러운 살과 핏속에 넣어 주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도록 하겠다. 11) 그러면 아무도 다른 사람을 훈계할 필요가 없고 아무런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고 두려워하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는 가장 천한 사람에게 가장 존귀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내가 누구인가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12) 이렇게 모든 사람이 나를 알 때가 오면 나도 모든 인간의 불순종과 반역을 용서하고 더 이상 인간의 악행과 허물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하는 말이다.”
이렇게 될 때에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다.
벧전 4:10-11 /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누구에게나 특별한 능력을 주셨으니 그것을 서로 돕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십시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선물을 잘 관리하도록 하십시오. 11) 설교를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이었습니까? 그렇거든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빠짐없이 설교하십시오. 남을 돕는 일에 부름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거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열성을 모두 쏟아서 남을 도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영광과 권세가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하소서. 아멘.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가 나기를 바라신다.
고후 2:15-16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한 우리의 생활은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향기는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향기이며 우리 주위의 구원받은 사람에게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퍼져 나갑니다. 16)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이 향기에서 죽음과 멸망의 공포에 찬 냄새를 맡겠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생명의 향기를 맡을 것입니다.
향기(아로마)는 그냥 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에 베어질 때, 크리스천으로서의 향기가 난다.
그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는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여야만 한다. 혹독한 훈련을 통하여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고 세계적인 운동선수가 되면 얻는 유익이 많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는 한 경기에서 우승해서 얻는 상금이 최소한 몇 십만 $이 넘고 큰 시합이 경우에는 우승상금이 몇 백만 $이 넘는다. 메이저리그의 프로야구 선수들이 받는 연봉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지옥과 같은 연습과 훈련을 감내해 내고 있는 것이다.
■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씨는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가 되었다. 희아씨의 어머니 우갑선 여사는 네 손가락으로 태어난 딸 희아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희아는 ‘쇼팽의 즉흥환상곡’에 도전하였다. 6개월 동안 피나는 연습 끝에 그는 음대 피아노 교수의 평가를 받았다. 교수의 평가는 냉정했다. “난 네가 무슨 곡을 쳤는지 모르겠다.” 희아가 연주한 것은 ‘즉흥환상곡’이 아니며, 음악도 아니라는 것이다. 희아의 노력은 대단하지만 ‘즉흥환상곡’은 그에게 무리라는 지적이었다. 희아와 어머니는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다음날, 어머니는 딸 희아를 다시 피아노 앞으로 부른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만두는 것은 쉽다. 그만두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 연습, 또 연습, 네 손가락과 엉덩이가 짓무르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5년 동안 연습해 희아는 드디어 온 세계를 감동시키는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완주해냈다.
결 론
요한 계시록 2장 3장에 보면,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7가지 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❶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하리라(2:7). ❷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2:11) ❸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2:17). ❹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2:26) ❺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3:5). ❻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3:12). 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3:21).
세상 끝날까지 경건을 유지했던 다윗과 그렇지 못했던 솔로몬의 경건을 비교해 보면 경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하며 경건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한다면 다윗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은 정말 끝까지 하나님을 두려워한 왕이었다. 그는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거짓을 감출 수 있었고, 자신의 권력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억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솔로몬도 아버지 다윗의 경건한 모습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날 밤 솔로몬이 성소에서 잠을 잘 때 여호와께서 꿈에 나타나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 솔로몬이 대답하였다. ‘나의 아버지 다윗이 언제나 주께 충성하며 진실하게 섬겼으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주께서는 그가 죽은 후에도 한결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주께서 약속해 주신 대로 그의 아들이 이제 그를 대신하여 왕위에 앉게 되었습니다.’(왕상 3:5-6).
하지만 솔로몬의 말년은 그렇지 않았다. 솔로몬은 세상적으로 부귀영화를 만끽한 대명사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아주 편안한 분으로만 인식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세상 말년에 전도서를 쓰면서 결론으로 “이제 이 모든 말씀의 결론을 듣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 이것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이다. 우리가 행한 모든 일들은 그것이 악한 일이든 선한 일이든 지금은 비록 숨겨져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다.”(전 12:13-14)라고 했다. 열왕기상 11장을 보면 그의 후반기 삶은 경건의 삶이 아니었다.
왕상 11:1 [이방 여인들과 우상숭배] 솔로몬왕은 여자들을 좋아하였다. 그것도 이스라엘 백성이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이웃 나라의 여자들을 좋아하였다. 솔로몬은 본래 애굽의 공주와 결혼하였으나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족속과 같은 인접 국가의 이방여자들도 아내로 맞아들였다. 2) 일찍이 여호와께서는 이방여인들과의 결혼문제에 대하여 명백하게 금지 명령을 내리셨다. `너희는 이방의 남자나 여자와 결혼하지 마라. 그들이 너희를 꾀어 그들의 신을 섬기게 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의 경고를 멀리하고 이방여자들을 좋아하였다. 3-4) 그가 왕비로 맞은 아내는 모두 700명이요, 그 밖에도 첩이 300명이나 되었다. 이렇게 많은 이방여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여호와로부터 온갖 우상에게로 옮겨 놓았다. 솔로몬이 늙어 가서 그들이 솔로몬을 꾀어 다른 신을 섬기게 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제 자기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한 마음으로 섬길 수 없었다. 그는 자기의 아버지 다윗과 같은 마음을 품고 살지 못하였다. 5) 솔로몬은 시돈 족속의 여신 아스다롯과 암몬 족속의 우상 밀곰도 섬겼다. 6) 이렇게 솔로몬은 여호와의 마음에 거슬리는 일을 저지르고 자기의 아버지 다윗처럼 온전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지 못하였다. 7) 솔로몬은 또 모압 족속의 우상 그모스와 암몬 족속의 우상 몰렉을 위하여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산 위에 산당을 지었다. 8) 그리고 이방의 아내들을 위해서 그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분향도 하고 제물도 바칠 수 있게 해주었다. 9-10) 여호와께서는 일찍이 솔로몬에게 두 번씩이나 나타나셔서 이방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명백하게 경고하셨으나 솔로몬은 주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 이에 진노하신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11) 다음과 같은 형벌을 내리셨다. “네가 나와 맺은 언약을 위반하고 나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너의 통치권을 빼앗아 네 신하에게 넘겨주겠다. 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생각해서 네 생전에는 참고 있다가 네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으면 내가 그렇게 하겠다. 13) 물론 나는 네 아들에게서도 나라를 다 빼앗지는 않고, 나의 종 다윗과 약속한 것을 생각하고 내가 예루살렘을 나의 영원한 도성으로 선택한 것을 생각해서 유다 지파 하나만은 네 아들에게 남겨 두겠다.”
그렇다. 경건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용서와 용납하심을 깊이 알고 체험하지만 그 사랑과 용서를 남용하지 않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늘 깨어 있는 모습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즉 그분의 권위를 의식하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권위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자주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우리의 예배는 그분의 권위 앞에 서는 것이다. 그분의 권위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개인의 세상 끝날까지 경건의 연습은 정말 많은 유익을 준다. 육체의 연습은 그것이 아무리 커도 금세에 그치지만 경건의 연습은 금세와 내세에 모두 큰 유익이 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여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거룩한 백성이 되십시다. 이를 위해 경건의 연습을 충분히 하십시다. 꾼이 되십시다. 쟁이가 되십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십시다. 경건을 연습하고 훈련하십시다. 경건의 능력이 있는 예수 제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경건에 대한 예화
■ 여호야김 왕의 범죄 / 예레미야 36장을 보면,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두루마리에 기록해서 그 말씀을 왕의 신하들에게 전해주었다. 신하들이 그 말씀을 읽고는 너무 두려워했다. 그래서 신하들이 이 두루마리에 적힌 말씀을 왕에게 들려드려야겠다고 결정했다. 왕이 이 두루마리 소식을 듣고 신하 여후디로 하여금 그 말씀을 읽게 했다. 그런데 여호야김 왕은 그 말씀을 읽는 대로 그 두루마리를 면도칼로 베고, 화로 불에 던져 모두 태워버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경건치 못한 시대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남 유다가 멸망할 때 그들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권위 앞에 서지 않았다. 얼마든지 자신이 화로에 불태울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태우면 하나님의 말씀도 태워진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 남 유다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왕이었다. 누가 그를 당할 수 있겠는가? 누가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있겠는가? 그 앞에 무슨 권위가 설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11년을 왕위에 있다가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해 첫 번째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그가 무시한 하나님의 권위 앞에서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말씀의 권위가 사라질 때 오는 비극이다. 말씀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때 인간의 삶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 사무엘의 반응 / 반면에 사무엘은 달랐다. 그가 태어나서 젖을 뗀 후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자랐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못 알아듣고,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줄 알고 여러 번 그에게 찾아갔지만, 후에 그는 그 음성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인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 이것이 사무엘의 경건한 모습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의 권위 앞에 자신을 내려놓았다. 그분의 말씀의 권위 앞에 섰다. 그 앞에 경건한 두려움으로 섰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100% 들었다. 우리는 그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다면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듣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음이 깨끗한 사람(심령이 청결한 자)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마 5:8)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11:25-26에서 “그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다. ‘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여, 스스로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이 진리를 감추시고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라고 하셨다. 어느 시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음성은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들릴 것이다.
지난 주간은 사순절 기간 중에 고난 주간이었다. 이 기간 우리의 경건을 회복할 수 있기를 원했는가? 고난 주간에 있었던 말씀도 많이 읽었을 것이다. 그냥 성경을 읽는데 끝난 것은 아닌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리기를 원하는가? 내가 말씀을 읽는 단계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내 귀에 들리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 앞에 설 수 있다. 금식기도를 하거나 절식하는 성도들, TV 시청을 하지 않거나, 오락을 삼가하는 등의 일들은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기는 하겠지만 그런 절제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그 음성이 우뢰와 같이 들려서, 그 음성 앞에 거부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분 앞에 경건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 참된 경건 / 옛날 경건한 사람들은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걸어 다니다가 나무에 이마를 부딪쳐 피를 흘리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마에 피가 흐르는 사람을 보면 경건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이 말을 듣고 싶어하던 바리새인들이 아예 집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의 이마를 벽에 찧어 피를 흘리며 나왔다고 한다. 그들의 경건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으로 변질되었다. 토마스 왓슨이 말한 대로 거짓 경건은 이중 죄악이다. 경건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정적이며 고요한 것을 의미한다. 경건에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참된 경건이란 동적이고 활기찬 것이다. 야고보서에는 참된 경건은 자기 혀에 재갈을 물리고,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경건은 세상 속에서의 삶과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의미한다. 참된 경건은 사람을 세상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더 잘 살면서 세상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이원적으로 분리해서 사는 것은 바른 삶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삶은 이 세상에서 경건하게 사는 것이다. 세상에서 무엇에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할 만하고 칭찬할 만해야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것이다. - 「도시 속의 사막」/ 이성희
■ 경건한 삶을 위한 질문 / 웨슬리가 경건생활을 위해 스스로 자문했던 내용이다.
1. 항상 기도하는가?
2. 매순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가?
3. 모든 경우에 감사하는가 ?
4. 욕심 내는 것은 없는가?
5. 두려워하는 일은 없는가?
6. 내 중심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7. 무슨 말이나 일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가?
경건에 이르는 훈련은 영원의 삶을 위해 가장 유익한 일입니다. 스스로 질문해보면서 자신의 경건생활을 점검해 봅시다. 주님! 경건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경건한 태도가 무너지는 때가 언제인지 점검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합시다. <김장환 큐티 365 / 나침반출판사>
■ 경건된 어머니 /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모세의 어머니 유니게는 성서의 대표적인 경건되고 현숙한 어머니들이다. 탕자 어거스틴이 목메어 애원하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이달리야로 도망치던 밤에,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밤새 울고 기도하는 소리를 등 뒤에 버리고 멀리 떠나 방탕하던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돌아왔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무디의 아버지는 40세에 별세하고 유복자 쌍둥이를 합해서 아홉 자녀를 키운 무디의 어머니는 밤마다 벽난로 앞에서 성서를 가르치고 자녀들이 잠든 후에는 밤을 새워 울며 기도하던 어머니였다. 아침에는 햇살처럼 밝고 맑은 표정으로 아이들을 대했다.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19명의 자녀를 성자처럼 믿음의 자녀로 키워 감리교의 어머니로 유명하다. 세상에서 만난 나의 첫사랑 내게 처음 언어와 기도를 가르치고 주님과 하나님 아빠를 부르게 해 주신 분, 내 신앙의 원적지 내 어머니.
■ 경건의 시간 /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고요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규칙적인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예수를 더 잘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루이스 스미스는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인 생활을 했던 여자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녀는 생활의 긴장과 공허 때문에 신경 쇠약에 걸리게 되었다. 그녀가 주님께 도움을 구했을 때. 성령님께서는 그녀가 전에는 한 번도 유의하지 않았던 이사야 30장으로 주위를 돌리게 해주셨다.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이라고 15절에서 성경은 말씀하였다. 그 여자는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 30분간을 경건의 시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했고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위대함. 능력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몇 가지 어려운 일로 가득 찬 머리로 그녀는 홍해를 건너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수 십 만의 백성들이 바다를 건너게 하셨는가?를 깨달았을 때 그녀는 말했다. 나는 그분이 나의 하루 중에 일어날 어떤 홍해든지 안전하게 건너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경건의 시간을 끝낼 때에는 확신. 자신.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의 신경쇠약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곧 영감과 능력으로 넘치는 사람이 되어서 사람들은 그녀가 신경쇠약의 위험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정도였다.
■ 경건의 연습 / 막스 비어의 소설 「행복한 위선자」는 비양심적인 악인 로드 죠오지 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마음뿐 아니라 행동에도 야비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의 얼굴만 보아도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어느 날 그는 아름답고 순결한 미어리라는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소녀는 얼굴이 저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의 아내가 될 수는 없어 하고 그를 거절했다. 로드 죠오지 헬은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고심한 끝에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인자하게 보이는 가면을 쓰고 미어리에게 청혼했다. 그녀와 결혼하게 된 그는 날마다 그의 위선을 감추고 참을성 있게 너그럽게 보이려고 힘썼다. 좋은 사람같이 보이려고 끊임없이 그의 나쁜 성질을 억눌렀다. 어느 날 옛 친구가 사랑하는 아내 앞에서 로드 헬의 가면을 무자비하게 벗겨 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면이 벗겨졌을 때 거기에는 거룩한 얼굴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이 얘기는 소설이지만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준다. 사람은 날마다 노력했던 만큼의 선한 모습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모든 것이 부족하다. 인격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경건에 이르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 경건의 훈련 /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는 경건 생활에 대해 정제된 지혜를 제공해주는 고전으로는, 16세기 도미니칸 수도회에 속했던 평신도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연습]을 들 수 있다. 그 책에서 그는 편지와 대화를 통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생활 중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계속 자각하며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시지 않는다. 때때로 하나님을 잠시 생각하고, 경배하며, 그분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를 하며, 당신의 슬픔을 그분께 내려놓고, 슬픔 가운데서도 당신에게 주시며 이미 주신 은총들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산다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힘든 일이 아님을 알 것이다. 하나님은 되도록 자주 당신이 하나님과 함께 당신의 슬픔을 위로하기를 원하신다. 당신이 식사할 때든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라도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라. 잠깐잠깐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당신은 크게 외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더 가까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러한 경건의 훈련은 우리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며,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자주 생각하도록 우리 마음을 훈련시킬 때, 이루어질 수 있다. 기도의 주제가 되지 못할 만큼 중요하지 않은 문제는 없다. 우리가 연습하고 훈련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음의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약 4:8 /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씻으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이 주시는 순결로 채우고 하나님께 진실하십시오.
■ 경건을 연습하라 / ‘아다리’ 바둑을 두기를 매우 좋아하시는 목사님 한 분이 계셨다. 일주일 내내 그 주간에는 여유시간만 있으면 바둑을 두었다. 주일날이 되어 강단 위에 서서 보니 성도들의 머리가 바둑알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바둑의 아다리치는 것이 이쪽저쪽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아마 흰머리, 검은머리가 흰 바둑알 검은 바둑알로 보였던 모양이다. 목사님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눈을 비비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기도드리셨다. 기도의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까지는 잘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온 말이 ‘아멘’이 아니라 ‘아다리’였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다리!!’
■ 예배의 경건 / 예배는 기독교인의 지고의 의무이다(레 10:1-11 참조). 교회에 가서 저녁식사 때의 얘깃거리나 만들어 오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배에 임할 때 하나님께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신령과 진정으로(요 4:24)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예배는 신성해야 한다. 진지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입술의 말이 내면의 참되고 솔직한 표현인지 마음을 살피고 계신다. 예배시간이 지루하다면 어쩌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경외감이 상실되고 있는 징조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배가 꼭 근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쁨과 감격과 갈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흐트러진 몸과 마음, 안일한 자세 등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세는 아니다. 이제, 예배시간을 맞이할 때마다,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나가 진지하게 이 날의 예배와 자신과 예배 인도자를 위해 기도드리기 시작하라. 분명히 새로운 은혜를 맛보기 시작할 것이다.
■ 경건의 연습을 하라 / ❶ 열심히 성경을 읽으라. ❷ 의미를 연구하지 않고 대강 읽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❸ 이 지식을 성장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다른 책들을 부지런히 구하고 이용하라. ❹ 다른 사람들과 이 목적을 위하여 대화를 자주 가지라. ❺ 남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기 위해 혹은 다른 사람들과 논쟁을 할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 자신의 영혼의 유익과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지식이 늘어나도록 노력하라. ❻ 거룩한 지식을 추구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당신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도록 기도하라. ❼ 당신이 가진 지식을 따라 실천하라. 이것이 더 많이 아는 첩경이 될 것이다.
■ 그 사람은 죽었소 / 중국의 그리스도인 워치만 리는 삶에 있어서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워치만 리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서 돈을 걸고 마작을 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작을 하고 있던 한 사람이 워치만 리를 바라보면서 당신도 돈이 있으면 와서 함께 합시다.라고 했다. 이때에 워치만 리가 아주 유명한 말을 하였다. 옛날에 마작놀이를 하던 워치만 리는 이미 죽었소! 이처럼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넘어뜨리기 위해 과거에 우리가 범하였던 못된 죄와 악습을 기억나게 하여 시험에 빠뜨리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도 워치만 리처럼 ‘과거에 살던 나는 죽었소’라고 담대히 외쳐야만 한다.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 세 가지 조심할 것 / 동양의 성현 공자는 ‘군자유삼계(君子有三戒)’ 즉 군자에게는 세 가지 경계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가르쳤다. ❶ 청년기는 혈기를 주체할 수 없는 때이므로 혈기를 다스리지 아니하면 인생의 방향이 빗나갈 수 있음을 주의시켰다. ❷ 장년기는 혈기가 왕성한 시기이므로 싸우는 일에 주의하라고 했다. 이때는 일에 열심을 내면서 앞으로 전진만 하다 보면 좌충우돌하며 사방에 대적을 만들 수가 있음을 경계했다. ❸ 노년기는 혈기가 쇠한 때인데, 이때는 욕심이 많아지므로 재물이나 명예를 얻는 것에 주의하라고 일러주었다. 사람이 늙을수록 혈기는 쇠하지만 욕심은 반비례하여 커지므로 그것을 다스리지 않으면 명예를 잃게 될 것을 가르쳤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양심의 법이 있어 자기를 다스리고 죄로부터 자신을 정결히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부지런한 사람은 하루에 세 번씩 자기를 반성하며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몸이 성령의 전임을 알고 끊임없이 정결하게 살도록 애써야 한다. 하루에 세 번씩이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세속을 경계할 때, 경건의 능력을 지닌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이다.
■ 실천해야 할 경건 3가지 /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오물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자신의 얼굴을 깨끗하게 씻을 것이다. 만일 씻지 않는다면 그의 얼굴은 오물이 묻어 있는 모습 그대로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무언가 마음에 부담을 느낄 때는 그 부담을 떨쳐내기 위한 행동 즉, 실천이 수반되어야 한다. 실천하지 않는다면 부담에 둔감해짐은 물론 점점 진리에 대해서 멀어지고 말씀에 대해 온유한 태도가 사라지게 된다. 야고보는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경건에 대해 다음 세 가지를 말했다.
❶ 혀를 다스리는 것이다. 야고보서 1:26은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했다. 어떤 분은 직분자의 은사 중에서 첫 번 째 은사를 절제라고 했다. 절제의 은사 중 최우선은 바로 언어의 절제일 것이다. 우리는 예배시간에는 충분히 우리의 언어를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를 떠나 극도로 흥분했거나 기분이 나쁠 때는 언어를 조절하고 절제하기란 성령의 도움 없이는 힘들다.
❷ 인색함의 문제이다. 야고보서 1장 27절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라고 하였다. 누구나 자신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녀를 유학 보내는 데는 많은 비용을 쓰기도 하고 몇 백만 원짜리 스타킹이 잘 팔린다는 신문기사도 보게 된다. 하지만 타인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마음이 자꾸 닫히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그런 인색함의 문제를 성령의 도움으로 능히 이겨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❸ 이 세상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야고보서 1장 27절은 …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는 거대한 유행의 풍랑이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절대로 신앙인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거대한 신앙의 역풍이 부는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 익숙해지면 하나님이 어색해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로마서 12장 2절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다.
■ 영적 엥겔 계수 / 통계학에 '엥겔 지수'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한 가정이나 사회 또는 국가의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전체 생계비 지출 총액에서 음식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따라서 엥겔 계수가 높을수록 후진국에 속한다. 말하자면 자기 소득 중에서 먹는 것에 쓰는 비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후진국에 가깝다. 반대로 그 비율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그만큼 여유 있는 삶을 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엥겔 계수도 똑같다. 하루에 자기 육체의 본능을 위하여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을수록 그는 덜 경건한 사람이다. 반면에 경건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그것을 반복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기를 원한다면 경건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장엄한 성가가 울려 퍼지는 예배당 안에서가 아니라 불꽃 튀는 유혹과 욕망의 현장에서 말이다. 자기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는 순간에 말이다. 나의 인기나 명예가 짓밟으려는 바로 그 곳에서 말이다. 그 때 거기에서 하나님을 좇아 행동하는 경건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느 하루가 아니라 매일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경건이란 훈련의 결과요 반복의 열매이다. 이와 같이 경건한 사람을 살기 위해서, 지금 그대는 하루에 얼마만큼의 시간과 어느 정도의 힘을 쏟고 있는가?
■ 거룩한 교제를 힘쓰라 / 그리피스 존은 20년이 넘도록 중국에서 지내면서 젊은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경건해지도록 힘쓰라.는 말을 자주 했다. 1877년 상하이에서 열린 선교회의에서 그는 선교사는 무엇보다도 거룩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선교사들이 거룩한 사람이길 기대합니다. 나는 별로 경건하지 않은 채 큰 영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목회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목회자는 착한 사람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지방 사람들의 언어와 문학을 익힐 뿐만 아니라 경건해지기에 힘써야 합니다. 형제들이여, 이것이 바로 이 큰 나라가 우리를 통해 변화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삼위일체시요 거룩하신 분이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거룩함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영이시며 우리를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시간을 나누십시오. 이처럼 거룩한 교제를 위해 시간을 내어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친히 우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십니다. 끊이지 않는 교제를 경험하십시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습니다.라고 했다. / 앤드류 머레이
■ 경건한 생활 / 안토니오는 자기의 가산을 다 나눠 가난한 사람을 주고 굴속에 들어가 은둔생활로 고생하였다. 하루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안토니오야, 네가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자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헌 신을 고치는 노인만 못하다.” 하는 말이 들리었다. 그래서 안토니오는 곧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신 고치는 노인을 방문했다. 노인은 성자가 오므로 반갑게 환영해 드렸다. 안토니오는 노인에게 묻기를 “노인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십니까?” 하였다. 노인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생활이 가난하므로 매일 신 고치는 것으로 생활비를 삼고,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보고, 아이들에게 하나님 공경하는 법을 배워주는 것으로 과정을 삼습니다.”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이 경건한 생활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있다. 세상과 등지는 생활이라고 생각해 불의와 빈곤과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에서는 경건한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산으로, 기도원으로 가서 생활하는 것이 경건한 생활인 줄 알고 있다. 그러나 경건한 생활이란 별난 생활방식이나 모양에 있지 않다. 경건생활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을 말한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를 행하는 생활이 경건생활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불의한 생활을 할 수 없다. 성경읽기를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말씀 앞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생활이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경건한 생활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생활이다. 그리고 경건한 생활은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다.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 것이다. 경건은 무엇인가? 경건은 하나님을 닮는 생활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풀무에 연단한 금으로 믿음을 갈고 닦아 연마할 때 빛나는 것이다. 예배도 경건에 이르는 연습의 일부분이다. 그러면 언제까지 이 연습을 해야 할까?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해야 한다. 날마다 거듭해야 한다. 완전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계속 연습하고 계속 성장해야 한다. 은혜와 진리에서 자라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그대로 닮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바라보는 것은 사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얼굴, 성품, 생활을 닮으려면 예수님을 사모해야 한다. 예수님의 얼굴을 닮으려면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 우리는 온유와 겸손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태양처럼 빛나지는 못해도, 태양 광선을 반사하는 달빛처럼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의 빛, 온유의 빛, 겸손의 빛, 봉사의 빛을 이 세상에 반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자.
하나님은 경건한 성도를 사랑하셔서 천군과 천사를 보내어 보호하신다. 하나님은 경건한 성도를 사랑하셔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경건한 성도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반열(班列)에 세우신다. 그러므로 본문 8절에 말씀하시기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셨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며,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며, 자신을 타락한 세속으로부터 지켜 거룩하게 살아가는 경건한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
■ 경건에 관한 금언과 명언
경건은 두려워함과 함께 시작하여 사람에 의해서 완성된다(마루단티누스).
세상을 사랑치 않는 것, 이것이 경건생활의 첩경이다.
세속에 물들어 갈 때 경건은 사라지고 기도가 끊기며 결국에는 하나님과의 교제도 단절된다.
경건에는 휴식이 없다(세익스피어).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 훌륭한 설교자이다(세르반데스).
나는 경건이야말로 우리들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미덕이며 어떤 재능보다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경건이라는 것은 개개인의 영혼 속에 엄숙한 감정을 기르는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세계를 대하는 같은 인간에 관한 외경, 존경의 기분, 자기도 그 일원이며, 책임을 분담하고 있다는 감정이다(헤르만 헤세).
무엇보다도 먼저 소중한 것은 인생에 대한 척도가 경건해야 한다. 사람은 지식의 향상과 아울러 항상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알프레드 테니슨).
■ 친구들로부터 떠난 죠지팍스 / 1643년 영국의 레이스케스터샤란 곳에서 구두를 짓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가 어느 날 다른 친구들과 술집에를 갔는데 술을 마신 뒤 그 중 한사람이 술값은 마시지 않은 사람이 내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그가 일어나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날 밤 그는 하나님의 앞에 나가울었다. 그러자 그에게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허무하게 방황하여, 늙은 사람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았느냐? 그러니 이제는 그들로부터 떠나 모두에게서 구별되는 사람이 되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그는 지체하기 않고 그 말에 순종했다. 그 젊은이는 후에 궤어커교를 창시한 죠우지팍스였다.
■ 경건한 자의 고민 / 프린스톤 대학의 어떤 학생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았다고 한다. "나는 날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며 성서를 읽고 암송까지 합니다. 학교의 신앙집회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도 내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없습니다. 제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아마 이 학생의 고민은 경건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대다수 기독교인이 겪는 공통 된 고민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진정한 능력은 경건하고 거룩한 모양이아니라 실제적인 삶에서 나온다.
■ 더러운 말은 담아 가시오 / 괴테의 집에는 언제나 정치가, 문학가, 군인, 실업가 들을 괴테의 문학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담화를 나누곤 했다. 그런데 가끔 어떤 사람이 타인의 흉을 보거나 음담패설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괴테는 눈을 날카롭게 반짝이면서 엄하게 말했다. “여러분, 종이 부스러기나 음식 부스러기를 흘리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남의 흠이나 음담패설을 흘리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런 더러운 말을 모두 주워가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더러운 말을 저의 집에 가져오지 마십시오. 흠을 보는 것은 공기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 성도의 몸은 하나님의 전 / 하나님은 신성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었으며 이사야서에만 기재된 것도 30여 번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주시다. 신성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정결하시다는 것이다. 이 신성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체를 대표한 말이니 하나님께서 신성하신 것은 성경의 근본적인 진리요, 예수교의 기초적인 진리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니 죄를 미워하시며 의를 사랑하시고 신성을 소유하시고 불결을 물리치신다. 그래서 우리 사람이 죄악과 불결에서 떠나 순진하고 깨끗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또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이시니 그 분이 계신 가정이 거룩한 것이며, 그 교회가 거룩한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 그 좌석이 신성해야 할지니 가정이나 교회나 단체가 맡은 일, 개개인이 합하여 된 것이니만치 그 기초인 개인의 마음 중심이 신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급한 일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어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흰 눈과 같게 하는 것이다.
■ 시간 속에서 / 빈센트 감독은 매일 아침 지키는 습관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지만 우리에게 모범이 될 만한 것인데 이런 문구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도 순수하고 진실하게 생활할 것이다. 불만족, 불순한 생각, 자기만의 추구 등등은 모두 물리칠 것이다. 그리하여 기쁨과 정열과 환희와 거룩하고 조용한 행위를 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돈을 쓰며 주의 깊게 행동하고 또 화해하는 삶을 살 것이다. 봉사하는 데는 근면하고 하나님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깨끗한 믿음을 갖도록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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