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4일 하늘언어교회
본문: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설교: '거룩한 손해' 조영찬전도사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한번 뿐이기 때문에 잘못된 가치를 따라 인생을 탕진한다면 돌이킬 방도가 없습니다. 잘못된 삶의 대가는 막심한 후회와 어둠과 죽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재물을 축적하는 데에 인생을 다 보냅니다. 그토록 재물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이유는 돈이 있어야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을수록 자존감이 높아지고 행복해진다고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고 특히 죽음 앞에서 돈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 어떤 부자도 돈으로 죽음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돈은 바르고 정의롭게 활용하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지만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우상으로 삼을 때 가장 큰 죄악과 재앙을 몰고 오는 원흉이 됩니다. 우상화된 돈은 사람들의 기대와 믿음과는 달리 오히려 죄와 어둠과 죽음으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돈을 벌기 위해 수많은 죄를 범하기도 하고 벌어 놓은 돈을 얼마 써보지도 못하고 삶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돈을 비롯해서 우리가 헛되이 우상화하고 있는 모든 것을 절대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합니다. 우리가 삶의 궁극으로 믿고 순종해야 할 대상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한분 뿐이십니다.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본질대로 살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추한 것이 사람입니다. 그만큼 죄악에 물들고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타락에서 구원받을 길은 하나님의 형상에서 우러나오는 좋은 성품을 회복하고 죄성에서 솟아나는 악한 습성은 버리는 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죄를 증가시키기 위해 혈안이 된 채 죄의 악취를 더 많이 축적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돈에 목매는 삶에는 결코 참된 만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돈만 바라보고 모든 것을 뒷전으로 미루면 사랑, 정의, 진리 등 고귀한 하늘나라 가치들을 잃게 되고 돈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상태가 되어 영혼이 피폐해지게 됩니다.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죄의 내리막 길입니다.
이렇게 치명적인 죄의 내리막길에서 속력을 줄이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손해’입니다. 무조건 많이 소유하고 모으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기꺼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열린 재물관이 절실합니다. 거룩한 손해는 자기만을 위해 욕심을 불사르는 죄악의 속도를 늦추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여유를 회복시켜줍니다.
모든 성경말씀이 결국은 거룩한 손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일, 죄의 유혹을 이겨내는 일,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는 일, 장애인과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는 일 등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룩한 손해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거룩한 손해를 실천하면 이 세상과 우리의 삶 속에 무한한 유익함이 있습니다. 무한경쟁의 속도를 거부하고 잠시라도 멈출 수만 있다면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뇌과학과 심리학적으로 보면 교감신경의 과잉에서 오는 많은 질병들이 치유되고 평안과 휴식의 신경인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돼서 심리적으로 평안과 휴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거룩한 손해는 온 세상과 삶의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육체에 거룩한 손해를 적용하면 식욕을 억제해서 몸을 정화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많은 질병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들이기 때문입니다.
눈의 즐거움을 거룩한 손해로 절제하면 게임중독을 비롯해 많은 문제들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많이 보는 만큼 많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보는가가 훨씬 중요한 문제입니다.
거룩한 손해를 교회에서 실천한다면 교회 내의 소외와 고립을 해소하고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교회는 결코 공짜로 부흥되는 일은 없습니다. 바울과 같이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온갖 발해를 무릅쓰고 거룩한 손해의 삶을 사는 이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은 말로만 전해서는 먹힐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복음 대상자를 사랑하고 도움을 주는 거룩한 손해를 실천해야만 비로소 하늘나라 복음이 전파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손해는 인간관계에서도 실천해야 합니다. 대인관계에서 신앙인은 자신을 낮추고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서 손해를 감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가 악으로 대하더라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아야 합니다. 모욕을 참고 그를 위해 기도와 축복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매사에 온유와 겸손으로 서로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이러한 거룩한 손해의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본분입니다.
거룩한 손해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가난하고 약하게 하는 것들은 돈이 없는 것뿐이 아닙니다. 건강이 없는 사람도 있고 마땅히 있어야 할 신체 일부가 없어서 장애인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은 이러한 상태를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절망으로 인식합니다. 하지만 그런 신체적 결핍조차도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라는 믿음을 품고 감내하는 것이 우리들의 본분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말씀은 장애나 건강의 악조건 속에서도 실천해야 할 마땅한 도리입니다. 감사로 주어진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토록 거룩한 손해의 삶을 감수하고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먼저 거룩한 손해의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거룩한 손해의 본을 가장 철저하게 보여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까지 낮추셨습니다. 모든 능력과 특권을 다 내려놓고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신 분이 우리 예수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더 많이, 더 높이, 더 강하게 추구하는 것들이 사실상 세상을 더욱 어둡고 암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은 복합적인 존재여서 오로지 돈만 가지고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반드시 돈 이상의 것, 아니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그 무엇이 절실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완전하고 참된 복의 근원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진정한 행복과 참 빛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하늘언어공동체 식구들이 모이는 이유는 거룩한 손해를 실천하고 서로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라도 움켜잡으려는 세상의 풍조에 맞서 하나라도 더 나누고 베풀고 섬기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취지의 모임을 교회와 세상에 알려서 시나브로 한걸음씩 동참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늘나라 복음의 진수입니다.
공동체소식
1. 가정을 천국으로 가꾸기
최근 들어 저희 가정을 새롭게 단장하고 있습니다. 가정교회는 가정집이 곧 교회입니다. 그래서 집을 가꾸고 단장하는 일은 교회를 단장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일반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편재 즉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에 모든 가정이 다 교회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방에는 책상을 들여놓았고 거실에는 조촐하지만 손님들이 관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소품과 점자책과 일반책 등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이것은 가정과 교회를 천국으로 가꾸기 위한 일환입니다. 저희공동체가 꾸준히 모이고 기도로 성원해주시는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천국, 하늘나라는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실현되고 가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여러분 내면에, 가정에, 직장에, 교회에, 사회에, 온 세상에 건설하시고 확장해가시기를 응원하고 기도드립니다.
2. 체험의 확장
우리가 무심히 습관적으로 생활하다 보면 익숙한 것만 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커피에 맛들인 사람은 커피만 마시고 다른 차를 맛보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맛의 다양성을 놓치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공동체도 체험시에 미각으로 한정하지 마시고 촉각, 후각, 잔존감각을 총동원해서 세상을 총체적으로 통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비록 소소하나마 거실에 배치해 놓은 것들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향도 맡아보고 하면서 다양성을 함양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여러가지 촉각게임을 함께 해보기도 하고 점자 필기구로 점자를 찍어보기도 하십시오. 그것을 손으로 만져서 읽어보기도 하고 점자로 성경 한구절 읽기에 도전도 해보셨으면 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저는 촉각테라피라 부르는데 일종의 심리치료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오늘 예배후에 읽을 말씀은 유다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