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 부족하거나 숙면이 필요할 때는 월곡역사공원에 간다. 집과 가까워 운동 복장으로 가볍게 간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 밟으며, 별이 뜨면 별 헤고 달이 뜨면 달을 보며 걷는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하늘을 보며 생활하고 있는지 물어도 본다. 여름에는 저녁 시간대에 사람이 많다.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 더위와 함께 땀을 흘리는 사람이 함께한다. 집에서 저녁 9시에 출발해 공원을 10바퀴 정도 돌다 보면 10시가 넘는다. 이때쯤이면 배드민턴 치는 사람, 체조하는 사람, 에어로빅을 하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소리 없이 걷는 사람만이 드문드문 보인다.
이제는 나만의 시간이다. 도시의 조명에 둘러싸인 나무와 꽃과 밤하늘의 어둠이 함께한다. 초승달이면 어떻고 보름달이면 어떠하리. 별이 보이면 좋고 보이지 않아도 고독해서 좋다.
아이가 어릴 때는 가족이 우선이었다. 신매동에 살면서 월드컵운동장 주변 공원과 욱수골에서 아이들과 놀았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아내도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지금의 공원 산책은 오롯이 내 것이다.
월곡역사공원은 상인동 월촌마을 앞에 조성된 공원으로 도시개발공사에서 조성한 근린공원 3천 평과 단양우씨 소유인 낙동서원 앞 식물원과 장지산 7천 평을 한데 묶은 공원으로 단양우씨 5백여 호가 6백 년을 살아온 유서 깊은 곳이다. 말이 산이지 조그만 언덕 같은 장지산의 소나무 숲은 경주 남산 삼릉의 숲을 연상시킨다.
월곡역사 박물관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의병장 월곡 우배선을 기린 박물관이다. 1층은 옛날의 농기구와 생활용품 5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2층은 보물 제1334호인 ‘성주화원우배선의병군공책’ 등 우배선 관련 유물과 단양우씨 월촌 종중 소장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좌측으로는 유학자 우동규의 강학소인 덕양제, 순국지사 우병기 추모비, 월곡이 학문을 강론하던 강학소인 열락당, 우종식 공적비, 민족정기탑, 월곡 우배선 창의유적비, 의마비,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각종 편의 시설, 운동시설, 운동장, 시가 있는 오솔길과 대나무 숲이 있다. 나는 대나무 숲길을 좋아한다. 바람 소리와 함께 우는 댓잎, 돌아서 보면 쑥쑥 커버린 대순이 좋다.
우측으로는 월곡을 제향하는 낙동서원, 월곡 우배선 장군상, 월촌마을 연혁, 겹벚꽃 터널과 연못이 있다. 사월 중순부터 말까지 연분홍빛의 겹벚꽃 터널은 공원의 명물이 되었다. 연못 둑에 조성된 겹벚꽃 길은 평소에는 잠겨있다가 꽃이 피면 열린다. 넓디넓은 연꽃잎 사이에 살포시 얼굴을 내밀고 있는 한 송이 연꽃은 걸음을 멈추게 한다.
휴일 아침 6시의 공원풍경은 새롭다. 걷는 사람, 배드민턴치는 사람, 체조하는 사람들은 비슷한데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다. 젊은이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휴일 아침의 꿀잠을 즐기는가 보다.
전에 볼 수 없었던 풍경이 하나 늘었다. 언제부터인지 아침 시간에 두부, 감자, 오이, 토마토, 파와 가지 등 계절 농산물을 파는 장이 섰다. 대부분 2천 원에서 5천 원 정도이다. 2천5백 원짜리 두부를 흔들며 집에 올 때도 있다.
상인동이 있는 월배 지역은 달서구를 관통하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의 남쪽 지역을 말하며 대구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으로 경북 경산시의 인구수와 비슷하다. 월배라는 지명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상인동 동쪽에 있는 대덕산과 동남쪽에 있는 청룡산 줄기 사이의 계곡에 달이 뜨면 달빛이 계곡을 비춘다고 하여 ‘달비골’이라 불렀다. 달비골이 ‘달배골’로 변했다가 ‘월배’로 되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등 뒤에서 달이 뜬다는 한자어인 ‘월배(月背)’라는 설이 있다.
상인동은 월배 지역에 있는 ‘상인지’ 또는 ‘상인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고 대구광역시가 되면서 월배동에서 분리되었다.
상인동 부근에는 달과 골짜기를 나타내는 지명과 이름이 많다. 지하철 월촌역, 월배역과 대곡역이 있고 앞산에는 달비골이 있다. 인근에 있는 경북기계공고의 체육관이 ‘달비관’ 이고 축제가 ‘달비’ 축제이다. 단양우씨 집성촌인 월촌마을, 우배선 장군의 호인 월곡과 달비골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상인 월곡역사공원은 도시의 역사적 장소나 시설물, 유적·유물 등을 활용하여 도시민의 휴식·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역사공원의 역할과 주민의 보건, 휴양 및 정서 생활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근린공원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에 고향을 떠나와 지금까지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자식은 성인이 되어 우리 품을 떠났고 지금은 아내와 기대고 부딪히며 각자의 취미생활과 인생관을 가지고 살고 있다.
월곡역사공원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생각의 깊이를 더하거나 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기도 하고, 삶의 여유와 함께 세상과 소통하며 별생각 없이 뱉어내는 독백의 공간이기도 하다.
2024.7.17.(15)
첫댓글 좋은 곳에 사시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어, 그 동네로 이사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거주지 부근 여러가지 역사적인 것과 각종시설들을 잘 소개했습니다 글이 점점 발전됩니다 더욱 매진하시기를 당부합니다
상인동 역사가 있는곳이군요 신설동네인줄 알고 있았는데 잘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