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피의 증거자가 태어난 계기가 된 진산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1791년 신해박해의 원인인 진산사건은 그 해 5월 모친상을 당한 윤지충(바오로)이
"교회 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일을 하지 말라" 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외종 사촌인 권상연(야고 보)과 함께 유교식 제사를 거부함으로써 당대 사회에 패륜으로
받아들여졌고 체포령이 떨 어지자 윤지충과 권상연은 진산 관아에 나아가 자수함으로써
1791년 12월 8일에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당한 사건이다.
참수 당하기 전 혹독한 형벌을 당하면서도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천주를 큰 부모 로 삼았으니, 천주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그분을 흠숭하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
특히 윤지충은 " 만약에 제가 살아서건 죽어서건 가장 높으신 아버지를 배반하게 된 다면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라고 증언하며 권상연과 함께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진산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의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바오로), 권상연(야고보)의 두
순교 자의 고귀한 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곳이다.
[ 진산성지 안내문 ]
[ 진산성지성당 앞에서 ]
* 1927년에 세워진 성당으로 2017년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 682호로 지정됨
[ 진산성지성당 내부 ]
[ 진산성지 신축 성당 ]
* 신축 성당은 2023년 5월에 완공되었다. 진산성지 미사는 여기에서 한다고 함
[ 진산성지 신축 성당 내부 ]
17세기 천주교의 전례 이후 1784년 서울에 조선 최초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생겼고,
1790년 북경 구베아주교로부터 조선 천주교인들에게 제사금지령이 전해지게 되었다.
진산지역의 윤지충과 권상연은 1791년 천주교도였던 윤지충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장례 때 유교식 장례를 거부하였다.
조선조정은 윤지충과 권상연을 체포하여 배교을 강요 하였으나, 뜻을 굽히지 않자 결국
두 사람을 전주 남문 밖에서 참형에 처했는데 이를 "진산사건" 혹은 "신해박해"라 한다.
진산사건 이후 100여년에 걸쳐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박해시대를
맞이했다.
[ 진산성지 신축 성당에서 바라본 전경 ]
전경이 멋있다.
또한, 진산면은 1592년 임진왜란 때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왜적이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고바야카와의 2만여 병력이 이치를 넘으려할 때 권율장군의 1,500여 군사로
왜적을 격퇴한 곳이기고 하다.
이 싸움을 이치대첩 또는 이치싸움이라고 하며,
여기에 힘입어 이후 권율장군은 행주대첩과 웅치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첫댓글 성지순례 이벤트 참여가 오늘로써 마무리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성지순례를 하였다. 보람도 있었고, 성지마다 어떤 특별한 느낌이 있었고,
신앙심도 깊어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가보지 않은 성지를 다녀 보려 한다. 성지를 다니면서 기도도 열심히 하고, 마음도 정화하고, 천주교의
역사도 배우고...
여러가지로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예전 성당은 국가등록 문화재로 등록되어서 국가에서 보존하고있어요. 그 옆에 진산 역사 문화관이 있는데 천주교의 전래와 새해박해(진산사건)로 인하여 첫 순교자가 되신 권산현야고보와 윤지충바오로의 이야기를 해설사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들을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새 성지성당이 멋지게 조성되어있어요.
추워서 웅크린 따님들이 너무 귀엽네요.
진산성지 성지기금 마련으로 울 성당에 신부님이 오셨던 곳이지요?
해설사 선생님의 안내까지 받았으니
더 더욱 따님들이 기억이 오래 가겠습니다.
아름다은 곳이네요.
한번 가보아야 할듯 확인할게 있어서ㅋㅋㅋㅋ
기부하셨다면 더욱 가보셔야해요. 멋진 성지성당을 만드는 데에 함께하셨으니까요! 구유도 엄청 예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