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 해소 약
최원혜
내 나이 지천명(知天命) 막연히 학구열에 목말라 대학 졸업장 취득하려는 명목상 계획과 목표 없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등록금 또한 저렴하기에 만학도로 도전하였다. 그 시절 두 아들 고등부·대학 입학 무렵이라 한창 돈이 필요할 때이었다. 한국방송통신대학에 입학으로 일 학년 과정에 히라가나, 가타카나 배우며 일본학 초급 단계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알아갈 때이다. 평일에는 직장 다니며 MP3 이어폰으로 귀에 꽂아 일본어 들으며 공부하였다. 특강 있을 때 교수 강의 또한 놓치지 않았다. 시험 기간에는 주일 도서관으로 직행하여 나름 대학 생활을 만끽하기도 하였다. 목말랐던 학구열을 불태우며 갈증 해소하였다.
여학교 시절 대학 진학을 희망하였어도 남동생들 공부 때문에 부모님의 만류가 있었다. 직장으로 진로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혼인하여 두 아들 육아 하느라 학구열을 챙기지 못하였다. 새로이 불타올랐던 학구열을 일 학년으로 휴학의 명찰을 달았다. 그 시절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하였다. 시어머니의 병환으로 도저히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그때 부풀었던 학구열은 바람 앞에 등잔불이듯 그냥 꺼져버렸다. 대학생이 아닌 직장생활과 살림하는 엄마, 아내, 며느리의 원위치로 돌아온 것이다. 그때는 또다시 학구열의 갈증을 품어 버린 것이다.
세월이 지난 뒤에 두 아들 모두 저네들 밥그릇 챙기었을 즈음 돈 벌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사회복지대학 만학도로 들어갔다. 나에게 한국장학재단에서 소득분위에 의하여 등록금 면제로 공부하는기회가 온 것이 다. 가슴에 묻어 버리었던 나의 갈증을 또다시 해소하게 하여 주었다. 나는 그때 생각하였다. 갈증은 결핍이 아니라, 어쩌면 살아가려는 마음의 또 다른 욕망일지도 모른다
2014년 내 나이 쉰네 살 이었다. 시아버지 돌아가시고, 시어머니 요양원 모셔두어 시간적인 여유가 날 때이다. 또다시 학구열을 불태울 기회가 온 것이다. 이번에는 직장 일해나가며 돈 벌 수 있는 대학을 찾았다. 그곳에서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국가자격증, 민간자격증 등 닥치는 대로 취득하였다. 만학도 공부 덕택에 병원 직장으로 이직하여 제대로 된 정규직 급여로 일하게 되었다.
두 아들 제 밥그릇 잘 챙겨나가기에 이순의 나이에 대학 학부 졸업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학부 졸업하고 난 후 또깊이 생각하여 보았다. 그때는 어딘가 모르게 2 프로 부족한 갈증이 내 안에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절 병원에 근무하였다. Day조, Evening조, Night조 이렇게 삼 교대로 근무하였다. 2 프로 모자라는듯한 학구열로 사회복지 대학원 진학을 무조건 감행하고 보았다. 이왕 시작하였던 공부인지라 예순 전에 학부에만 그치려고 하였으나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석사과정을 넘겨보았다.
직원을 삼 교대 운영으로 경영하는 직장에서 대학원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은 조성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수업 날 근무에서 빠지기 위하여 근무 변경해달라며 수간호사에게 얼굴에 철면피하게도 부탁하였다. 알량한 자존심은 버리고, 아쉬운 소리도 더러 하였다. 손바닥 비벼도 보고 물품 공세도 하였다. 억지로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받아 내었다. 근무 순번을 배치 작성하는 것이란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도움준 수간호사 덕분에 대학원 공부 이 년을 눈치코치 보아가며 어렵게 공부하여 예순 나이에 석사학위 받았다.
대학원 졸업 후에“수간호사 선생님 덕분에 저의 꿈을 이루어서 감사합니다.”라며 메신저를 보냈다. 그 시절 내가 걸어온 길은 오직 시종일관 공부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그리고 자아실현을 위하여 무작정 달려온 것이다. 너무 목 말라 하였던 공부이었다. 공부를 노래 불러서 끝내었다.
논어의 학이편 첫머리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하였다. 이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아니한가?”뜻이다. 그렇게 목말랐던 나에게 폭포수 같은 물을 퍼마시었던 것 같아 참으로 기뻤다. 그것도 대학원 졸업하였기에 나의 갈증이 100 프로 해소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노령 되어 쉼 없이 해 오던 공부며 일까지 손을 놓았다. 왠지 허전하였으며 무료함에 우울하다는 심정을 느끼었을 때이다.
잠시 눈을 감아보았다. “정신 차리자! 최원혜! 일어나 움직이고 제2의 삶을 살아야지? 여기서 주저앉지 말자.” 메시지로 누군가 내 머리를 툭 치는 듯하였다. 정신 차려 우선 일부터 해야 하였다. 예전에 살면서 힘들었던 시절의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랐기 때문이다. 용돈이라도 벌어 쓰려는 생각이 앞섰다. 뒤적거리어 국가자격증을 찾았다. 노령에도 사용할 수 있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내 눈에 띄었다. 너무도 감사하였다. 그 시절 갈증을 채워두었던 흔적이 이제라도 일할 기회를 다시 찾았으니 말이다.
인생 안정기에 들자 또다시 갈증의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사람 팔자 길들이기에 따랐다.” 하였던가? 어느 날 일하고 퇴근 후에 무료함을 느끼던 중에 여고 동기 단체메신저에 시인 친구가 시집 발간하였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아! 바로 이런 거구나. 그러나 시 쓰는 일은관심 없었다. 친구에게 메신저 보냈다. “수필 배우고 싶은데 배울 수 있는 곳, 어디 없느냐?”물었다. 바로 전화 와서 “당장 만나자.”하였다. 그리하여 그 친구가 나에게 나의 무료한 갈증 해소 약을 갖다주었다.
요즘은 살아온 내 인생의 체험을 수필로 쓰며 갈증 해소하고 산다. 그것도 당당한 수필가가 되어 흠뻑 목축이어가며 살아가는 이유로 나의 행복한 모드를 찾았다. 아주 특효약을 찾았다
(20260624.)(20260627.1차퇴고)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